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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스포츠로 세상에 도전한 오주훈, 시한부 삶을 기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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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스포츠로 세상에 도전한 오주훈, 시한부 삶을 기적으로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5.04.13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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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때 희귀병으로 전신마비, 수영과 아이스슬레지하키 통해 새로운 삶 개척…스포츠가 인생을 바꿔

[300자 Tip!] 한국의 아이스슬레지하키(썰매하키) 수준은 세계 중상위권이다. 지난달 아이스슬레지하키 세계선수권 B풀 대회에서 한국이 5전 전승으로 우승 헹가래를 치면서 A풀로 승격됐다. 이제 세계선수권 A풀 대회에서 5위 안에 들면 3년 뒤 평창 동계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다. 여기 평창을 기다리고 있는 고등학생 선수가 있다. 주로 30대 초중반, 심지어 40대 선수가 버티며 힘을 내고 있는 한국 아이스슬레지하키 현실에서 10대 후반의 젊은피가 평창의 꿈에 도전한다는 것은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그런데 다른 선수들과 조금 다른 불편함을 안고 있다. 한때 한치 앞 미래도 장담할 수 없는 삶이었지만 지금은 당당히 패럴림픽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하겠다는 희망에 가득차 있다.

[성남=스포츠Q 글 박상현·사진 이상민 기자] 한국 아이스슬레지하키 최초의 팀인 서울 연세 이글스에는 '특별한 선수'가 있다. 모든 선수 한명한명이 소중하고 특별하지만 상암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오주훈(19)은 더 특별하다.

하반신에 신체적인 결함 또는 불편함이 있는 대부분 선수들과 달리 오주훈은 뇌병변에 자폐증까지 있다. 어렸을 때 갑작스럽게 후천성 장애를 겪으면서 병원으로부터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까지 들었다.

▲ 오주훈이 성남 탄천종합운동장 실내빙상장에서 진행된 서울 연세 이글스 주말 훈련에서 스틱으로 얼음을 지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아이스슬레지하키 선수로 뛰고 있다. 스포츠로 땀을 흘리면서 오주훈의 삶 자체가 바뀌었다.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균형도 잡지 못했던 그는 이제 썰매를 타고 빙판을 누빈다. 스포츠가 만들어낸 기적이다.

오주훈은 이제 일상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몸이 상당히 좋아졌지만 아직 자신의 의사를 명확하게 밝히기엔 약간의 어려움이 있다. 오주훈의 어머니인 곽은진(50)씨를 통해 스포츠가 그에게 얼마나 큰 기적을 가져왔는지를 들어봤다.

◆ 청천벽력 같은 시한부 통보, 스포츠로 이겨내다

"저희도 정확한 병명을 모르겠군요. 세상에 밝혀지지 않은 퇴행성 희귀병 가운데 하나라고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몇 개월 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씩씩하게 웃고 떠들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 주훈이가 갑자기 쓰러졌다. 아들을 등에 업고 이 병원, 저 병원을 돌아다녔지만 정확한 병명이 나오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시한부 진단까지 받았다. 이같은 의사에 진단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어머니 곽은진 씨는 물론 가족들의 억장은 무너졌다.

그래도 어머니는 강했다. 이대로 아들을 보낼 수가 없었기에. 단 하루를 살아도 10년 산 것처럼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해주자고 결심했다. 걷는 것은 고사하고 몸의 균형조차 잡지 못했던 아들을 곧바로 재활센터에 보냈다. 이때부터 힘겨운 재활의 시간이 시작됐다.

"병원에서 작은 치료부터 시작하면서 재활을 시켰죠. 전신마비이긴 하지만 조금 더 적극적으로 재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운동을 시키기 시작했죠."

▲ 서울 연세 이글스의 오주훈이 주말 훈련장인 성남 탄천종합운동장 실내빙상장에서 어머니 곽은진씨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재활을 목적으로 처음 시작한 운동은 수영. 물속을 헤엄치면서해 몸을 쓰기 시작하자 감각이 조금씩 돌아왔다. 그것이 기적의 첫 서광. 수영을 하면서 신체가 발달하기 시작했고 조금씩 걸을 수 있는 단계가 됐다. 하지만 여전히 중심을 잡을 수가 없었다. 함께 수영을 하던 한 장애인 선수의 권유를 받아 2년 전부터 아이스슬레지하키를 시작했다.

"처음에 아이스슬레지하키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우리 아이가 가능할까 걱정이 됐어요.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시키기를 너무나 잘한 것 같아요. 신체 균형이 맞아가기 시작했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하는 운동이어서 자폐증이 개선되는데도 큰 효과를 봤죠. 기술 향상은 더디지만 아이스슬레지하키를 하는 과정에서 아이가 어려웠던 것을 하나씩 극복해가는 것을 보면서 너무나 큰 뿌듯함을 느껴요. 이제 중심을 잡을 수 있게 됐죠. 인지력도 크게 좋아졌어요. 건강은 이루 말할 것도 없죠."

아직 오주훈은 오른쪽이 다소 불편하다. 그러나 양손을 모두 써야 하는 아이스슬레지하키에 잘 적응해나가고 있다. 중심을 잡고 양손을 모두 쓰게 되면서 점점 한쪽 마비 증상도 나아지고 있는 중이다. 지난 2월에는 서울 연세 이글스 소속으로 전국장애인동계체육대회에까지 출전했다.

◆ 걷지도 못했던 중증 장애인, 이제는 왕복 두시간 통학까지

스포츠는 오주훈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줬다. 아니, 오주훈이 스포츠를 통해 스스로 기적을 만들어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걷지도 못했던 오주훈은 수영과 아이스슬레지하키를 통해 균형감각과 운동신경은 물론 체력까지 키워냈다. 집이 있는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에서 마포구 상암고까지 혼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왕복 2시간 통학을 한다.

"주훈이가 다리도 불편하고 여러 가지가 좋지 않지만 혼자서 대중교통으로 등·하교를 시켜요. 오랜 시간이 걸리고 환승까지 해야 하지만 이런 여러 과정을 주훈이가 혼자서 할 수 있게 된 것도 역시 스포츠를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장애인 자녀를 두신 부모님들이 '스포츠는 재활을 목적으로 하는 것' 또는 '정상인도 하기 힘든 스포츠를 몸이 불편한 아이에게 어떻게 시키느냐'고 많이 말씀하시는데 잘못된 생각이에요. 스포츠는 꾸준히, 그리고 평생 함께 해야 하는 것이거든요. 병명도 모르는 중증 장애 진단을 받을 때만 하더라도 주훈이가 지금처럼 아이스슬레지하키를 하고 혼자서 학교에 다닐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에요. 그저 꿈이었던 일들이 스포츠를 하게 됨으로써 이뤄졌어요. 주훈이는 세상을 향해 도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까지 얻게 됐고요."

▲ 걷는 것은 고사하고 균형을 잡지 못해 서지도 못했던 오주훈은 수영과 아이스슬레지하키를 통해 혼자서 왕복 2시간 통학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됐다. 또 오주훈은 지난달 전국동계장애인체육대회에 출전하며 평창 패럴림픽 대표팀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적지 않은 장애인 선수들은 하계와 동계에 하는 종목이 따로 있다. 오주훈도 마찬가지다. 여름에는 수영을 하면서 겨울에는 아이스슬레지하키로 땀을 흘린다. 수영 종목에서 오주훈은 장애인학생체전 4관왕까지 오르는 등 만만치 않은 실력을 갖고 있다. 오주훈이 수영과 아이스슬레지하키 선수로 뛰면서 학교에서도 유명인사가 됐다.

"학교 친구나 선생님들도 주훈이가 스포츠 선수라는 것을 알고 처음에 많이 놀랐어요. 아이스슬레지하키가 적지 않은 힘이 드는 종목인 것은 사실이에요. 하반신이 불편한 경우는 있어도 뇌에 이상이 생겨 인지적인 부분을 힘들어 하는 선수는 주훈이가 처음이라고 해요. 제가 알기로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드문 사례라고 해요. 주훈이가 아마 한국 아이스슬레지하키 선수 가운데 가장 중증 장애를 겪고 있을거예요. 그래도 스포츠와 정신력, 의지로 이겨냈어요. 그 어떤 것이든 극복하고 성장할 수 있으며 긍정적인 효과를 내게 만드는 것이 스포츠의 힘인 것 같아요."

◆ 이제 목표는 평창 패럴림픽, 3년 뒤 또 다른 기적이 기다린다

역시 오주훈의 꿈은 평창 동계패럴림픽이다. 아직 3년이 남았다. 아직 실력으로 봐서는 어려운 길인 것은 분명하다. 중증장애를 갖고 있기 때문에 아이스슬레지하키로 대표선수가 되려면 남들보다 몇 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걷지도 못했던 지난 날을 생각한다면 못할 것도 없다.

하진헌 연세 이글스 감독도 오주훈이 대견하다. 보통 클럽 선수들은 생계 또는 개인 사정 때문에 주말 훈련을 매주 나오기 힘들다. 그렇지 않아도 선수 인원이 적은데 이 선수, 저 선수가 빠져 제대로 훈련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오주훈은 집에서 성남 탄천종합운동장 실내빙상장까지 2시간 가까운 거리를 어머니와 함께 동행한다. 절대로 주말 훈련에 빠지는 법이 없다는 것이 하 감독의 귀띔이다.

▲ 오주훈이 성남 탄천종합운동장 실내빙상장에서 서울 연세 이글스 하진헌 감독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주훈은 서울 연세 이글스에서 최연소 선수이자 가장 심한 중증 장애를 겪고 있는 선수다.

"너무나 월등한 실력을 갖고 있는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대표선수가 된다는 것은 아직까지는 개인적인 바람일테죠. 하지만 같은 팀 동료이자 선생님들이 주훈이를 많이 다독여주며 하나하나 가르쳐주고 동계장애인체전에서 뛰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대견해 해요. 주훈이가 발전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스슬레지하키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렇게 좋은 운동이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홍보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주훈이가 언젠가 대표선수가 된다면 더 많은 장애인들이 스포츠를 하기 위해 나오지 않을까요."

오주훈은 스포츠가 가져다주는 기적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한국 아이스슬레지하키는 평창 패럴림픽에서 메달을 노린다. 안방의 이점을 앞세워 내심 우승까지 바라본다. 포디엄에 오주훈이 서는 날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취재후기] 한국 아이스슬레지하키 대표팀의 주축은 강원도청 선수들이다. 아이스슬레지하키의 유일한 실업팀이 강원도청이다. 이 때문에 클럽팀과 전력차가 상당하다. 강원도청은 전국장애인동계체전이 열릴 때마다 우승을 차지한다. 오주훈이 속한 연세 이글스는 이번에도 강원도청에 밀려 은메달을 따는데 그쳤다. 오주훈이 조금 더 성장, 발전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훈련이 필요하지 않을까.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평창 패럴림픽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집중 훈련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하진헌 감독의 바람대로 연세 이글스가 실업팀으로 변신하거나 강원도청이 대승적인 차원에서 오주훈을 특별 케이스로 입단시키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패럴림픽이 그저 장애인 선수들의 실력을 겨루는 단순한 대회가 아니라 아직 스포츠 활동에 주저하는 대다수 장애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대회라면 더욱 그래야 하지 않을까.

▲ 갑자기 찾아온 뇌병변 장애에 시한부 판정까지 받았지만 오주훈은 수영과 아이스슬레지하키를 통해 혼자서 고등학교 통학을 할 정도가 됐다. 스포츠를 통해 기적을 이뤄낸 그의 목표는 3년 뒤 평창 동계패럴림픽이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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