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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부심부터 리빌딩' 숙명여고 농구부, 명문의 심장이 다시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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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부심부터 리빌딩' 숙명여고 농구부, 명문의 심장이 다시 뛴다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5.06.04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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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명가를 찾아서 (10)] (上) 조준미 감독·방지윤 코치, '명가 DNA' 되살려...3년만에 빠른 재건과 도약

[300자 Tip!] 1907년 미국인 선교사 질레트에 의해 소개되면서 시작된 한국 농구의 역사는 192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농구가 학교에 보급되기 시작한다. 1925년 한국 최초의 여자농구 경기가 벌어진 뒤 1926년 한 학교에서 농구부가 만들어진다. 여자가 학교를 다니는 것만으로도 색안경을 쓰고 보던 시절에 여학교에 농구팀이 만들어지는 것은 분명 획기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이 학교가 한국 여자농구 '전설의 산실'인 숙명여고다. 한동안 잃었던 농구 명문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최근 몇 년 동안 리빌딩하며 흘린 땀의 결실을 정상에서 맛보고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스포츠Q 글 박상현·사진 노민규 기자] 숙명여고는 한국 여자농구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다. 여자농구의 대모로 불리는 고(故) 윤덕주 여사는 숙명여고 농구의 초창기를 개척했다. 그래서 숙명여고의 체육관 역시 '윤덕주 체육관'이다. 또 1967년 세계선수권대회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던 박신자(74) 전 여자농구협회 이사의 모교이기도 하다. 여고뿐 아니라 한국 여자농구를 통틀어 보더라도 가장 오래된 명문의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 1926년에 만들어져 89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숙명여고 농구부는 수많은 스타를 배출한 명문팀이다. 한동안 성적이 좋지 못햇지만 이제 다시 명문의 위상을 찾아가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김민정, 김효진, 최윤선, 김지윤, 방지윤 코치, 조준미 감독, 최민주, 한혜진, 박선영, 이다영.

하지만 숙명여고의 최근 성적을 보노라면 '명문'이라는 말이 무색해진다. 2009년 종별선수권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것이 마지막 우승이다.

헌데 명문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중학교의 선수층이 너무 얇아 여전히 선수 수급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유망주들을 대거 발굴하면서 점점 강호의 면모를 갖춰나가고 있는 것이다.

◆ 선후배 조준미 감독-방지윤 코치의 세심한 지도, '숙명 자부심'을 심어주다

숙명여고 농구의 '명문 DNA'를 가슴에 품고 있는 조준미(39) 감독, 방지윤(33) 코치가 모교에 부임한 때는 2012년. 조준미 감독은 숙명여고와 숙명여대 등에서 농구선수로 뛴 뒤 임용고시를 통해 모교 교편을 잡았고 2000년 대통령기 우승 당시 최우수선수에 선정되고 광주 신세계(현 부천 하나외환)에서 뛰었던 방지윤 코치는 선수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줄 수 있는 최적의 조합이었다.

부임 초기 팀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고 선수들의 의욕도 있었다. 그러나 숙명 농구인이라는 자부심은 크게 떨어진 상태였다.

후배 선수들과 직접 코트에서 부딪히는 방지윤 코치는 자신의 제자들이자 어린 후배들이 너무 예쁘고 귀여워 처음에는 언니 같은 지도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워낙 '명문 DNA'가 실종된터라 그냥 '좋은 언니'로만 남아있을 수는 없었다. 평소에는 편안하게 대하면서도 훈련시간에는 혹독한 훈련을 시켰다.

방지윤 코치는 "내가 부임했을 당시 숙명여고는 과거 명성에 비해 워낙 성적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팀을 위해서 희생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며 "명문 숙명여고의 자부심을 선수들에게 심어주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고 회상했다.

▲ 김지윤(오른쪽)이 숙명여고 윤덕주 체육관에서 드리블하며 전하영을 제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숙명여고는 선일, 숭의와 함께 셋만 남은 서울의 여고 농구팀이다.

그렇다고 방 코치가 무조건 성적에만 열을 올린 것은 아니었다. 선수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학이나 프로에 진출해서도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었다.

3년이 지난 현재, 숙명여고는 재건의 기틀을 마련했다. 숙명여중과 연계돼 선수 수급이 다소 원활해졌다. 또 부임 당시 2학년이었던 박혜미, 양인영(20·이상 인천 신한은행) 등 WKBL에 안착한 선수들도 나오는 등 성과가 있었다. 이와 함께 선일여고, 숭의여고와 서울 라이벌 관계도 회복됐다. 현재 서울 지역 여고팀은 단 셋뿐이다.

◆ 간절한 우승 트로피, 올해 전국체전서 승부본다

숙명여고가 다시 강팀으로서 모양새를 갖추게 됐지만 아직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했다. 2009년 종별선수권대회를 끝으로 전국무대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이후 2009, 2011년 협회장기, 2011년 춘계대회, 2012년 추계대회, 2013년 대통령기 등 5차례 결승에 올랐으나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범위를 4강으로 넓혀도 2009년 춘계대회 3위, 2013년 협회장기 3위, 2011년부터 3년 연속 쌍용기 3위, 지난해 추계대회 3위의 성적뿐이다. 방지윤 코치가 부임한 이후 최고 성적도 2012년 추계대회와 2013년 대통령기 준우승이 전부다. 또 연맹회장기에서는 2003년 우승 이후 단 한 차례도 4강에 오르지 못했고 WKBL배 역시 2009년 3위가 최고 성적이다.

방지윤 코치가 선수로 뛰었던 2000년 대통령기 우승과 신혜인(은퇴)을 앞세운 2003년 연맹회장기 우승 등 여고 농구를 주름잡았던 2000년대 초중반과 비교했을 때 분명 처지는 성적이다.

▲ 2012년 부임한 방지윤 코치 역시 숙명여고 농구팀 출신이다. 방지윤 코치는 한동안 우승이 없었던 숙명여고의 올해 목표를 종별선수권과 전국체전 우승으로 삼고 있다.

방 코치는 올해 목표를 오는 8월 종별선수권과 전국체전 우승으로 잡았다. 그나마 종별선수권이 가장 최근에 우승한 대회인만큼 여기서부터 시작한다는 생각이다. 여기에 선일, 숭의와 라이벌전에서 이겨 서울지역 대표로 전국체전에 나가 정상에 오르겠다는 목표다.

3년 동안 꾸준히 선수를 키워온만큼 자신감도 넘친다. 3학년 주장 최윤선(18)은 178cm의 포워드로 슛이 좋고 드라이빙을 치고 나갈 때 순간 스피드가 굉장히 뛰어나다. 당장 프로에 데려다 놔도 전혀 손색이 없다는 것이 방 코치의 설명이다. 국가대표 출신인 어머니 우은경 씨의 '농구 유전자'를 물려받은 그는 이번 WKBL 신입선수 선발회에서도 상위 지명이 유력하다.

3학년 가드 이다영(18)는 체력과 근성이 좋아 기대가 된다. 164cm로 다소 키가 작지만 현역시절 '탱크 가드'로 불렸던 김지윤 신한은행 코치를 연상시킬 정도로 탄탄한 체격을 자랑한다. 부상이 잦았던데다 신장이 다소 작아 프로가 아닌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대학무대에서 기량을 쌓다보면 WKBL에서도 경쟁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2학년 포워드 듀오인 김민정과 김효진(이상 17)도 동계훈련을 통해 슛 감각이 크게 좋아졌다. 김민정은 178cm의 좋은 신장을 갖고 있고 김효진은 '예쁜 농구'를 하는 선수로 기량을 키워나가고 있다.

◆ 공격은 개인기로, 수비는 조직력으로

최민주(16)도 미래가 기대된다. 선일여중 2학년 때 농구를 시작해 이제 3년차에 들어선 초보이지만 방지윤 코치가 4~5개월 직접 지도하면서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 178cm의 키가 여전히 크고 있어 장신 포워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 체력이 열세여서 몸싸움에서 밀리기 때문에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체력을 더 키우는 것이 숙제다.

방지윤 코치는 "지난해는 조금 욕심을 부리다보니 빡빡한 일정 속에 선수들의 부상이 많았다. 올 시즌은 성적도 성적이지만 부상없는 시즌을 보내는 것도 목표"라며 "동계훈련을 열심히 했으니 더욱 꾸준한 성적을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부상없다면 성적도 좋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 숙명여고 농구팀은 공격은 개인기, 수비는 조직력으로 풀어가고 있다. 선수 개개인이 일대일로 상대 수비를 제칠 수 있는 개인기를 갖추고 조직력으로 상대 공격을 막아낸다는 것이다.

현재 숙명여고는 공격은 개인기, 수비는 조직력으로 경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이는 방지윤 코치의 오랜 지론이기도 하다. 선수 개개인이 자신감을 갖고 일대일로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비만큼은 조직적인 움직임이 필요하기 때문에 호흡이 중요하다.

방 코치는 "전력을 극대화하려면 역시 선수들의 개인기가 좋아져야 한다. 선수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야 경쟁력도 생긴다"며 "아직 숙명여고가 완전한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대회를 치르면서 계속 약점을 보완하고 선수들도 문제점을 해결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시즌 중반이 되면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전력이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주장 최윤선은 "3학년이 돼 후배들을 이끄는 위치에 있다보니 스트레스도 많고 성적이 좋지 안으면 자책감도 많이 든다. 하지만 8명의 선수가 기숙사에서 함께 지내고 서로 얘기도 많이 하면서 똘똘 뭉치고 있다"며 "모든 선수들이 다치지 않고 올해를 잘 마무리해서 2015년이 숙명여고가 최강으로 거듭나는 해가 됐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도 WKBL 신입선수 선발회에서 1라운드에 뽑히고 싶다"고 말했다.

[취재후기] 자부심이라는 마음은 종이 한 장 차이로 자신감과 자만감으로 나뉜다. 자부심과 실력이 조화를 이루면 강한 자신감이 돼 선수들 경기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지만 자만으로 이어진다면 결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다. 이 때문에 방지윤 코치는 농구 명문의 자부심을 심어주면서도 선수들에게 예의를 지키도록 교육하고 있다. 다시 '명문의 심장'이 뛰기 시작한 숙명여고가 침체된 여고 농구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진다.

▲ 숙명여고 농구팀은 전통의 여자농구팀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이 자부심을 바탕으로 국내 최고가 되겠다는 각오로 자신감 넘치는 경기를 펼치겠다고 다짐한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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