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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명가를 찾아서] (8) 하키전용필드도 없는데 어떻게 쭉 우승을?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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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명가를 찾아서] (8) 하키전용필드도 없는데 어떻게 쭉 우승을? (上)
  • 이세영 기자
  • 승인 2015.05.02 1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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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스틱 산실' 수원 매원중...태광고 경희대와 한 구장 쓰는 열악한 환경, 열정 하나로 황금세대 잇는다

[300자 Tip!] 그동안 한국 여자하키는 국제무대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냈다. 1988년 서울 올림픽과 8년 뒤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아시안게임에서는 1986년 서울 대회부터 1998년 방콕 대회까지 4연패를 달성했다. 이후 중국의 3연패를 지켜봐야 했지만 지난해 인천 대회에서 다시 금메달을 가져왔다. 유망주를 꾸준히 육성하며 힘을 키운 것이 부활의 비결. 그 가운데서도 독보적인 기량을 발휘하는 유망주들의 젖줄이 수원 매원중이다. 지난해 3관왕을 차지한 뒤 올해 춘계대회와 소년체전 선발전까지 휩쓸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매원중이 골든에이지를 이어가는 비결은 무엇일까.

[용인=스포츠Q 글 이세영·사진 최대성 기자] “하나, 둘, 셋, 넷, 파이팅!”

따가운 봄  햇살 속에 소녀들의 기합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쩌렁쩌렁 울리는 구호가 비장함마저 감돌게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불과 일주일 전에 열린 대회에서 우승했지만 일사불란한 움직임에서 그 어떤 흐트러짐도 찾을 수 없었다. 여중부 하키에서 사실상 적수가 없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매원중은 정상 자리를 지키기 위해 구슬땀을 뻘뻘 흘렸다.

▲ 매원중 2학년과 3학년 선수들이 용인 경희대 국제캠퍼스 내 하키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김가은(2년), 김채민(3년), 유세림(3년), 조미희(3년), 김선아(3년), 박지수(2년), 신수정(2년), 장유리(2년), 이소민(2년), 최유빈(2년), 손혜령(2년).

1989년 창단한 매원중은 지금까지 수많은 국가대표 선수들을 배출한 여자하키의 젖줄이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과 4년 뒤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한 박용숙(38)을 시작으로 2012년 런던 올림픽 8위,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빛나는 천은비(23·평택시청)까지 수많은 국가대표 선수들을 길러내며 정상을 지켜왔다.

이제는 까마득한 후배들이 선배들이 쌓은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문화체육부장관기와 소년체전, 대통령기를 석권한 매원중은 올해 KBS배 춘계대회와 소년체전 선발전 정상에 오르며 전관왕을 향한 힘찬 스타트를 끊었다.

경기도 용인시 경희대학교 국제캠퍼스 내에 있는 필드하키장에는 21명의 선수들이 체력훈련과 전술훈련을 병행하고 있었다.

◆ 자발적인 훈련, 정상 지켜내는 힘

매원중 선수들에게 훈련은 놀이였다. 질서가 흐트러지지 않는 선에서 하키를 즐기려 애썼다. 주장 김채민(15)의 구호 아래 가볍게 몸을 푼 이들은 스틱을 들고 패스 훈련을 소화했다. 모두들 표정에서 열정이 묻어나왔다.

센터하프를 맡고 있는 김채민은 “감독님과 코치님이 선수들에게 하나하나 친절하게 알려주신다. 선수들도 열정이 대단해 그라운드에서 될 때까지 연습한다. 이런 노력의 결과가 경기에서 나오는 것 같다”고 웃었다.

▲ 본격적인 훈련에 앞서 러닝으로 몸을 풀고 있는 매원중 선수들. 주장 김채민(왼쪽)의 구호 아래 힘차게 발을 맞추고 있다.

기량을 쌓다가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새벽훈련도 마다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오전수업을 들어야 하는 선수들은 보완점이 필요하면 등교하기 전 필드에 나와 담금질을 했다. 2005년부터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는 오선유(33) 코치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새벽에 나와서 운동하는 게 피곤할 법도 한데 스스로 운동하는 선수들이 기특하다”고 말했다.

함께 운동하는 선배들이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매원중을 비롯해 태장고와 경희대 선수들이 경희대 국제캠퍼스 필드하키장을 사용하고 있다. 선배들의 플레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공부가 된다는 것이다.

오 코치는 “선배들도 훈련을 하기 때문에 기술적인 것을 가르쳐주지는 못하지만 아이들이 선배들 운동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 배우는 게 많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주장을 맡고 있는 김선아(15)는 “언니들의 움직임을 볼 때 소름이 돋을 때가 있다”며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플레이를 구사하면 그때그때 물어보고 내 것으로 만드는 편이다”고 말했다.

◆ 성적과 열정에 반비례하는 인프라

하지만 세 팀이 한 구장을 동시에 사용하다 보니 훈련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 이날도 태장고와 경희대가 연습경기를 펼치게 돼 매원중 선수들은 스탠드에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후 6시 이후엔 자리를 비워줘야 하기 때문에 남은 훈련은 근처 지하 주차장으로 옮겨 체력보강훈련 위주로 소화하고 있다. 선수들의 사기 저하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오선유 코치는 “우리만 쓰는 운동장이 아니다 보니 시간의 제약을 많이 받는 편”이라며 “전국 14개 시·도에서 하키부를 운영하고 있는데 우리만 전용구장이 없다. 그럼에도 전국대회에서 꾸준히 성적을 내는 걸 보면 나조차도 신기할 따름”이라고 열변을 토했다.

▲ 오선유 코치는 선수들에게 "운동장을 우리만 쓰는 게 아니다 보니 훈련시간에 많은 제약을 받는다"고 아쉬워했다.

그나마 현재 세 팀이 쓰는 인조잔디도 무척 노후화돼 교체가 시급한 상황이다. 인조잔디는 10년이 넘으면 수명이 다해 새것으로 바꿔야하는데 예산이 나오지 않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잔디결이 올라와 있지 않은 필드를 누비다 보니 지방에서 대회를 할 때는 잔디 적응훈련을 따로 해야 한다.

김채민은 “다른 팀은 전용 숙소와 운동장이 있고 장비도 자주 바뀌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우리는 그렇지 않다”며 “구장 문제만 해결된다면 더 편하게 운동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바람을 표현했다.

◆ 태장고-경희대로 이어지는 '골든에이지'

수원 여자하키의 명맥은 매원중을 거쳐 태장고, 경희대로 이어진다.

초등학교에는 여자 하키부가 없기 때문에 대개 중학교 1학년부터 선수생활을 시작한다. 감독과 코치가 경기도 전역을 돌며 선수를 모집, 중학교 1학년으로 올라오는 겨울방학 때부터 담금질에 들어가는데 여기서 코칭스태프의 눈에 드는 선수들이 하키선수로서 처음 스틱을 잡게 된다.

매원중 선수들이 졸업 후 입단하는 태장고도 전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하키 명문이다. 2005년 창단한 뒤 이듬해 전국남녀대회 여고부 우승을 차지했고 2007년 전국체전 동메달, 2008년 전국중고대회 우승의 성과를 냈다. 지난해에는 제주 전국체전에서 패권을 차지하는 등 4관왕을 달성, 위상을 높였다. 전체 인원이 11~12명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룬 성과라 더욱 의미 있다.

▲ 매원중 선수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꾸준히 성적을 내며 여중부 하키 정상을 지켜오고 있다.

이들 중 일부가 경희대로 진학해 선수생활을 이어가는데, 경희대 역시 각종 전국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 여자하키를 대표하는 3개 학교 선수들이 한 곳에서 꿈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오선유 코치는 “우리 아이들이 다른 학교 선수들보다 실력 면에서 우위에 있지만 자만하지 않고 열심히 해야 명성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며 “초심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진득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취재후기] 지반이 가라앉고 잔디가 올라오지 않아 하키를 하는 데 부적합하지만 매원중 학생들은 누구하나 얼굴 붉히지 않고 훈련에 매진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열정적으로 스틱을 놀리는 와중에도 선배들이 훈련하러 오면 깍듯이 인사했다. 매원중의 목표는 올해 열리는 6~7개 대회를 모두 휩쓰는 것. 큰 꿈을 품는 매원중이 오랜 시간 정상을 지켜온 비결엔 선수들의 훌륭한 인성도 한몫 한 것 같다.

[아마추어 명가를 찾아서] (8) 낡은 인조잔디에 메아리치는 매원 소녀들 '스틱합창' (下) 로 이어집니다.

syl015@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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