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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암살'] 제작자 안수현 케이퍼필름 대표 "잊혀진 역사 자각한 관객들 뜨겁게 반응"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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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암살'] 제작자 안수현 케이퍼필름 대표 "잊혀진 역사 자각한 관객들 뜨겁게 반응" [인터뷰]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8.15 06: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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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이상민기자]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상을 그린 ‘암살’이 광복 70주년인 8월15일을 맞아 1000만 관객 위업을 달성했다.

영화를 연출한 최동훈 감독, 출연 배우인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 오달수 조진웅 최덕문 이경영 김의성 김홍파 박병은 허지원, 특별출연한 조승우 김해숙의 뒤에서 담담한 표정으로 서 있는 여성이 있다. 최동훈 감독의 아내이자 ‘암살’ 제작사인 케이퍼필름 안수현 대표다.

기획 단계부터 시작해 감독의 시나리오를 현실화하기 위해 투자사로부터 제작비 180억원을 끌어오고, 현장을 살피며 시간을 관리하고 후반작업·홍보 마케팅 등 영화제작 전반을 책임진 또 다른 주연이다.

◆ 사진 한장으로 출발 9년 걸려...중간에 접으려 했으나 스태프 반응에 용기

 

빛바랜 독립군 사진 한 장으로부터 시작해 완성에 이르기까지 9년의 세월을 감독과 함께 고민하고 가슴 벅차했던 나날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표정이다.

“우리는 이 영화를 재미있어 했고 좋아했다. 만들어서 관객의 사랑을 받았으면 했다. 문제는 관객이 좋아할지 아닐지, 불안이 가득했다. 1930년대 배경 영화는 흥행이 된 적이 없지 않은가. 또 최 감독의 전작에 비해 어둡다는 점, 여름 블록버스터와는 결리 다른 점, 경쟁작 ‘미션 임파서블5’가 ‘암살’ 다음 주에 개봉하는 점 등이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를 가졌던 이유는 첫 번째 관객인 스태프들의 반응 덕분이었다. 완성이 될 때까지 보통 100번은 보는데 볼 때마다 좋아하고 웃었다. 먹먹해 했다. 새로운 면을 발견했다.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벌떡 일어났다.

◆ 메시지와 재미,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갈등

“1930년대는 모더니즘과 낭만의 시대이자 식민지 지배하라는 비극적 현실이었다. 이를 수긍하지 않은 분들이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활발히 했던 시기였다. ‘이걸 직시하자!’ 했다. 무엇이 더 재밌을까, 뭐가 더 새로운 이야기일까 보다 이 시대의 모습을 직시하는 대신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을 캐릭터화 한 다음 필연적으로 관통하는 이야기를 재밌게 짜보자고 논의했다.”

30년대를 소재로 이야기를 구성하자는 이야기는 오랫동안 했으나 글로 적으면 고정화될까봐 놔두고는 형태가 무르익었을 때 초고 작성에 들어갔다. 최 감독은 20일 만에 해치웠다. 이후 1년간 10번 넘게 시나리오를 고쳤다. 중간에 너무 힘들어 제작을 접으려고도 했다.

 

“시대적 상징과 인물,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계속 갈등했다. 재미에 대한 강박도 힘든 요인이었다. 그러다가 세 인물인 안옥윤, 염석진, 하와이 피스톨의 위치가 잡아진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안옥윤이 당시의 희망을 상징한다면 염석진은 30년에 이르는 현실을 반영한 캐릭터였다. 하와이 피스톨은 해학과 웃음이 있는 그 시절의 아웃사이더였으나 도망가지 않고 시대에 맞서는 인물이었다.”

◆ 여성의 힘겨운 독립운동, 일본에 대항한 조선의 집요한 싸움과 맞닿아

그렇다면 독립운동 소재의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을 설정하면, 티켓파워가 있는 남자배우를 무난하게 기용할 수 있었을 텐데 왜 여자 주인공이어야 했을까.

“남자가 하면 너무 당연한 귀결이라고 여겼다. 30년대 여성 독립운동가, 힘겹게 신념을 유지한 채 액션을 벌이고 독립운동을 해나가는 느낌은 조선이 일본에 대항해 독립운동을 하는 느낌과 포개졌다. 30년간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건 여성이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지 않으면 독립운동을 소재로 한 활극이 돼버릴 것 같았다. 더욱이 전지현 옆에 이정재 하정우가 든든한 축 역할을 하니 안옥윤의 드라마가 중심이 되는 게 맞다고 확신했다. 영화의 운명은 배우들에게 달려 있다. 전지현 뿐만 아니라 모든 배우들이 이번에 톤을 너무 잘 잡아줬다. ‘암살’의 성공은 그들로 인해 가능했다.”

안옥윤에게 어떻게 생명력을 불어 넣느냐가 관건으로 떠올랐다. 신념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녀도 사람인데 커피도 마시고 싶고, 연애도 해보고 싶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비극의 가족사를 짊어진 채 신념을 향해 가는 데 있어 의미와 재미, 무거움, 시대적 딜레마의 밸런스를 맞출 수 있겠다 싶었다.

안옥윤을 중심으로 3명이 주인공이다 보니 2시간을 훌쩍 뛰어넘는 분량의 시나리오가 나왔다. 주변부 인물들의 경우 장르영화에선 작전 수행하러 가면 되니까 필요 없을 수 있으나 ‘암살’은 그 시대를 구축해야 하므로 주변부 인물들의 이야기가 필수적이었다. 늘어난 분량 및 시간을 압축하는 작업이 뒤를 이었다. 최종 2시간19분의 러닝타임으로 줄여졌다.

◆ 정치적 입장 떠나 독립 위해 힘 모았던 시기...사실에 기초하려고 노력

 

보수와 진보 진영간 과거사에 대한 엇갈린 평가가 존재하는 나라에서 이 시대의 독립운동사를 건드리는 건 애초부터 논쟁을 유발할 소지가 컸다. 한편으론 실재 존재했던 단체와 인물, 사건들이 삽입되는 터라 고증을 둘러싼 논쟁의 여지도 있었다.

“영화적으로는 사실에 기초하려고 노력했다. 30년대 후반에 임시정부와 의열단이 연합했고, 우리는 운을 떼는 정도로 차용했다. 지금의 논리로는 논쟁적 이슈로 삼을 수 있겠으나 당시엔 좌우 이념이 혼재됐던 시기였다. 정치적 입장을 떠나서 ‘독립’의 기치 아래 모였다. 영화에서 해방 이후 반민특위까지 보여준 이유는,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법 정신만으로 그 시대 친일파 청산 분위기를 상징할 수 있다고 여겼다. 최 감독은 촬영현장에서 역사 교사였다. 배우들이 이런 시대 상황과 사건의 의미를 알아야만 대사의 뉘앙스를 살릴 수 있으니까. 다들 대하 드라마 찍어야겠다며 이구동성이었다.(웃음)”

◆ 대규모 제작비 효율적 사용...중국 세트 발견하면서 시작의 발판 마련

다음으로 다가온 난관은 제작비와 장소였다. 이 시대 영화가 많이 못 만들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30년대를 결정한 뒤 큰 예산이 들어갈 게 자명했고, 제작자 입장에서 “효과적으로 쓰자”고 다짐했다.

“상하이부터 이야기가 시작하는데 중국 상하이에 갔더니 운 좋게도 60만평 규모의 처둔 세트장 등이 있어서 시작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간 한국영화가 좋은 스코어를 내면서 비용을 들여 잘 만들면 관객이 봐줄 거라는 믿음도 형성돼 있었다. 제작비를 아끼느라 결과물이 나쁘게 나오면 관객들이 이런 유의 한국영화를 외면할 거란 책임감도 생겨났다. 그래서 최고의 미술·의상감독을 기용하면서 제대로 조사하고 볼만하게 프로덕션 디자인을 구현하려고 했다. 중국 세트와 경기도 고양시 오픈 세트가 지어진 걸 보고 깜짝 놀랐다.”

 

30년대 경성과 상하이 풍경, 집기와 의상 등에서 드러나는 디테일과 퀄러티는 철저한 자료조사의 노력 아니면 나올 수 없었다. 실제 30년대에 사용했던 51정의 총기를 구입하는가 하면 포드, 링컨 등의 클래식 자동차는 미국까지 건너가 수집가들로부터 대당 1000만~2000만원에 4대를 구입했다.

◆ "끝나지 않은 역사이자 이야기라 관객들 뜨겁게 반응"

지난 7월22일 개봉 이후 전 국민이 ‘암살’에 열광했다. 그 시대를 직접 경험한 노년층, 간접 경험한 중장년층을 비롯해 전혀 모르는 젊은 층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한 독립운동가들의 삶에 귀를 기울이고 감동했다. 이렇듯 뜨거운 열기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단지 올해가 광복 70주년을 맞은 해여서 일까.

“우리 세대가 직접 겪지는 않았으나 끝나지 않은 역사이고 이야기인 듯하다. 오히려 국사 교과서에서 보고 항상 이야기되면 모르는데, 없었던 듯 잊혀 있었기에 뜨겁게 반응하는 게 아닐까. 친일파의 경우 뉴스에 가끔이나마 나오지만 독립운동가 이야기는 거의 들려지질 않는다. 백범 김구와 약산 김원봉이 누구인지 모르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암살’을 보며 ‘내가 잊고 살았구나!”라고 느끼시는 것 같다. 재미나면서 의미를 찾을 수 있기에 좋아하시는 듯싶다.”

인터뷰를 갈무리하며 그는 “미국은 지금도 ‘노예 12년’ ‘헬프’ ‘셀마’ 등을 제작해서 남아 있는 인종편견을 환기시키며 ‘정의란 무엇인가’를 일깨운다. 부끄러운 역사일텐데 이야기로 만드는 공력이 부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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