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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웅이 된 '엑스팩터' 우승자 임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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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웅이 된 '엑스팩터' 우승자 임다미
  • 이예림 기자
  • 승인 2014.05.08 0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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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자 Tip!] 9세 때 호주로 이민을 간 임다미(26)는 성악을 전공한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음악적 재능과 본인의 끊임없는 노력을 자양분 삼아 일생을 음악과 함께 살았다. 작고 큰 경연에 참가했던 그는 지난해 호주의 세계적인 오디션 프로그램 ‘엑스 팩터’에서 동양인 최초로 우승자가 됐다. 호주에서 비주류인 이민자였던 그는 단숨에 호주 사회에서 ‘다미 신드롬’을 일으키며 이민자들에게 꿈과 희망이 됐다. 비주류에서 주류로, 평범한 이민자에서 세계적인 유명인으로 드라마틱한 삶을 살고 있는 그의 소망은 “다른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아티스트가 되는 것”이다.

[스포츠Q 이예림기자] 세계적인 오디션 프로그램에 한 동양인이 머라이어 캐리의 ‘히어로’를 부를 거라 소개했을 때만 해도 심사위원들의 표정은 시큰둥했다. 노래가 시작되자 분위기는 반전됐고 관객은 열광했다. 어느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지난해 호주 오디션 프로그램 ‘엑스 팩터’의 최초 동양인 우승자인 임다미(26)의 이야기다. 앞서 언급된 장면보다 더욱 극적인 삶을 살고 있는 그가 7일 내한했다.

▲ '브릿지 오버 트러블드 워터'를 열창하는 임다미 [사진=소니뮤직코리아]

◆ 평범한 이민자에서 ‘영웅’이 되다

“‘엑스 펙터’ 우승을 한 이후에 한국에 처음 왔어요. 한국에서 공연을 하고 노래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얼마나 뜻 깊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몰라요.”

임다미는 9세에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호주로 이민을 갔다. 지금은 함께 살지만 당시에는 아버지가 한국에서 일하면서 가족을 뒷바라지했다. 처음 교회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던 날 부끄러워서 황급히 무대에서 내려온 소녀는 점차 교회와 집에서 노래를 따라 부르고 녹음하면서 목을 틔웠고 피아노와 바이올린도 함께 배웠다. 이후 임다미는 대학 친구들과 함께 보컬 그룹에서 활동하면서 크고 작은 노래 경연을 전전하다가 마침내 ‘엑스 팩터’에 도전해 우승을 거뒀다.

“제가 호주 이민자들 중 한 명으로 살다가 갑자기 우승자의 자리에 올랐어요. 호주에서 많은 사람들이 저를 알아봐요. 저를 보고 희망을 얻었다는 말을 많이 하고요. 호주에는 한국 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레바논, 아프리카 등 각국에서 온 이민자들이 많아요. 그분들이 호주 사회에서 살면서 억압받고 주눅들 때가 많이 있는데 제가 우승을 하니까 그분들에게는 힘이 됐나 봐요. 어깨를 피고 살게 됐다는 말도 많이 들었어요. 제가 외로웠던 분들에게 힘이 됐던 것 같아요.”

▲ '수퍼 러브'를 부르는 임다미 [사진=소니뮤직코리아]

호주 사회에서는 ‘다미 신드롬’이라는 용어가 생겼다. 호주에서 이민자가 주류 사회에 진입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기에 임다미는 자신의 우승이 이민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달라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호주에서 스타가 된 이후에 그가 느끼고 있는 변화는 무엇일까.

“호주에 어린이를 후원하는 단체가 있어요. 저도 그 단체를 통해 7년 전 부터 후원했는데 이번에 제가 홍보대사가 돼서 인도에 다녀왔어요. 제가 한국에 내한한 가장 큰 이유가 호주에서 저의 삶을 비추는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기 때문이에요. 제가 우승을 하고 난 뒤에 많은 소중한 경험들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죠.”

◆ "제가 태어나고 자란 한국에서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요"

임다미는 ‘엑스 팩터’에서 ‘Hero(히어로)'를 부른 뒤에 네 명의 심사위원으로부터 만장일치에 가까운 평가를 받았다. 그는 다음 단계 무대에서 중간에 가사를 까먹는 바람에 탈락 위기를 맞게 된다. 그러나 예정된 도전자가 개인 사정으로 하차하면서 어부지리 격으로 통과를 했고 최종 우승자가 됐다.

임다미는 오는 16일에 호주, 한국 뿐 아니라 각국에 새 싱글 ‘수퍼 러브(Super Love)'를 발표한다. 그는 신곡에 대해 “이번 곡은 굉장히 신이 나면서도 강한 사랑을 담은 긍정적인 곡이에요.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과 기쁨을 전하는 노래죠. 호주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도 기쁨을 줄 수 있는 곡이 됐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다.

▲ 임다미의 앨범 'Dami Im' 커버 [사진=소니뮤직코리아]

호주에서 스타가 되고 팝 앨범을 낸 임다미에게 한국어로 된 곡을 들어볼 날은 없을까. 임다미는 기회가 된다면 한국어로 된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말한다. 듀엣을 하고 싶은 한국 가수들을 물었더니 그는 보아, 이적, 김동률을 꼽는다.

“어렸을 때 K팝을 듣고 자랐어요. 제가 태어나고 자란 한국에서 활동하고 싶은 마음도 간절해요. 기회가 된다면 한국어로 된 노래들을 수록한 앨범을 발매하고 싶어요. 제가 어렸을 때 보아씨의 굉장한 팬이었어요. 지금도 팬이고요. 제 꿈은 보아씨를 만나보는 거예요. 남자 가수 중에는 이적씨를 좋아해요. 멋있고 노래를 잘 부르면서 작곡 능력도 뛰어나요. 또 김동률씨 노래는 제가 다 좋아하고요.”

◆ 첫사랑과 결혼하고 세계적 스타된 그의 꿈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아티스트'

아직 한창인 20대지만 임다미는 지난해 5세 연상의 남자와 결혼한 유부녀다. 남편과의 러브 스토리와 프로포즈에 대해 질문하자 상기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가 한국 나이로 15세 때 교회에서 처음 봤어요. 교회 오빠죠. 제가 첫 눈에 반해 계속 짝사랑했어요. 그 때 저는 10대였고 오빠는 20대였으니 5세의 나이차가 크게 느껴졌죠. 그래서 좋아하는 티도 못냈어요. 남편이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 다시 호주에 왔는데 그 때 나이가 저는 20세, 오빠는 25세였어요. 그 뒤에는 오빠가 저를 좋아해줘서 6년 동안 연애를 하고 결혼했어요. 남편이 김동률의 ‘아이처럼’을 부르면서 프로포즈했어요. 그런데 제가 아니라 본인이 울더라고요. 뜻밖이었지만 감동이었죠. 제 남편이 호주에선 국민 남편으로 사랑받고 있어요. 하하.”

▲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 임다미 [사진=소니뮤직코리아]

임다미는 첫사랑과 결혼하고 호주 오디션 프로그램 ‘엑스 팩터’의 우승자로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갑작스럽게 받게 된 유명세와 전 세계적인 관심 때문에 다른 꿈을 생각해 볼 여지가 없어 보이지만 그의 소망이 궁금했다.

“한국에 훌륭한 가수들이 많아요. 제가 춤을 잘 추는 것도 아니고 아이돌의 외모도 아니지만 저만의 색깔이 있는 가수가 되길 바라요. 무엇보다 좋은 음악으로 다른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아티스트가 됐으면 좋겠어요.”

[취재후기]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들을 위해 희망을 노래하는 곡인 ‘브릿지 오버 트러블드 워터(Bridge Over Troubled Waters)'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에서는 약간의 허스키함, 고음부로 치고 올라갈 때는 파워풀함이 느껴졌다. 또한 그는 잔잔한 선율이 흘러나오는 부분에서는 티 없이 맑은 소리를 냈다. 하나의 표현으로 정의할 수 없는 이 보컬은 어린 시절을 한국에서 보내고 자아를 찾는 시기를 호주에서 보낸 임다미의 평범치 않은 삶과 닮았다. 어쩌면 그가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이유는 소리를 내는 영혼이 아름다워서일지도 모르겠다.

pres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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