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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부전선' 설경구, 천의 얼굴을 가진 남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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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부전선' 설경구, 천의 얼굴을 가진 남자 [인터뷰]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9.25 11: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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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이상민기자] 배우 설경구(47)가 추석 시즌 극장가에서 “나 돌아갈래~”를 외치고 있다. 전쟁 휴먼드라마 ‘서부전선’(9월24일 개봉)에서 마흔이 넘은 나이에 졸지에 군 입대하게 된 남한군 졸병 남복으로 탈바꿈한 그는 천연덕스러운 코믹연기와 포효하는 감정연기를 한껏 터뜨린다. 가벼움과 무거움의 기분 좋은 동행이다.

삼청동 한옥 카페에서 인터뷰를 위해 만난 날, 한국영화촬영감독협회가 주관하는 제35회 황금촬영상 최우수주연남우상(나의 독재자) 낭보가 전해졌다. 2000년 신인남우상(박하사탕), 2003년 최우수인기남우상(공공의 적)에 이은 세 번째 수상이다. 소감을 전하는 내내 목울대가 뜨겁게 요동쳤다.

▲ 설경구가 영화 '서부전선'에서 마흔이 넘은 나이에 군에 징집된 남한군 졸병 남복으로 관객과 만난다

“이번이 제일 고마웠다. 영화를 다 말아먹었는데 기억해줘서. ‘나의 독재자’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고, 이것(황금촬영상)마저 없으면 영화 자체의 의미가 없어지니까 속상했을 텐데...그래도 좋게 기억해줘서 너무 고맙다. 지난해 영화제작자협회에서 상을 줘서 ‘왜 날 줘요?’ 그랬는데 이번에는 1년이 지났는데도 기억해줘서 각별하다. ‘국제시장’의 (황)정민이도 있는데. 연기상이라는 게 흥행된 이후에 주어지지 않나.”

◆ ‘초보’들이 만들어낸 사람 냄새 나는 전쟁영화

감독이 현장에서 ‘컷’ 사인을 외친 뒤 배우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게 촬영감독이다. 요즘엔 감독들도 OK 한 뒤 촬영감독에게 “어때요?”라고 물어보는 추세다. 영상물의 경우 촬영감독의 카메라 워크에 따라 템포와 리듬이 만들어지므로 촬영에 절대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배우 입장에선 가장 먼저 자신의 연기를 지켜보는 인물이므로 절로 눈치를 살피게 되는 대상이 촬영감독이다. 감독들은 대개 모니터를 주시한다.

‘서부전선’은 새내기들의 집합소였다. 이재혁 촬영감독은 조명감독 출신이며 ‘두근두근 내인생’이 입봉작이었다. 천성일 감독은 ‘해적: 바다로 간 산적’ 등의 시나리오 작가로 명성을 떨치다가 이번에 연출 데뷔를 했다.

“쌍으로 어리바리했다.(웃음) 경험이 많진 않으나 너무 좋고 인간적이라, 사람 냄새 나는 이 영화와 참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운 점이 많은 촬영장에서 템포와 리듬을 정확히 잡아가야하는데 경험의 부족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변명을 하자면 또 그렇게 세련되면 재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나기도 한다.”

‘서부전선’은 1953년 한국전쟁 휴전 3일을 앞두고 서부전선에서 맞닥뜨린 남한군 남복과 18세 북한 탱크병 영광이 일급 기밀문서를 둘러싸고 불편한 동거를 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아버지와 아들 뻘 되는 남북의 병사가 티격태격하다가 점차 서로를 가슴으로 품는 과정이 펼쳐진다. 예상을 뒤집는 결말을 두고는 평론가 집단 내에서 엇갈린 평가가 솟구치기도 했다.

 

“웃음이 더 가서도 안 되고, 더 비장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엔딩은 감독이 하고 싶었던 말이다. ‘서부전선’은 전쟁영화 같지 않은 전쟁영화다. 지금도 한반도는 전쟁 중이고. 그래서 그런 결말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게 장점이자 한계이지 싶다. 남복이나 영광 모두 전쟁으로 인해 희생됐다고 본다. 남복은 고향으로 돌아간 뒤에도 정상적으로 살아가지 못할 것 같다. 전쟁은 비극이니까 그 안에 있는 사람들도 비극을 겪게 마련이다. 해피엔딩인 전쟁은 없다. 피해는 고스란히 소시민에게 돌아가는데 그런 소시민이 남복과 영웅 아닐까.”

◆ 출연제의 수락하자마자 “여진구 스케줄은 어때?”

남복은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평범한 충청도 농사꾼이다. 그런 그에게 일급 비밀문서 전달이라는 미션이 주어졌다. ‘실미도’ 이후 12년 만에 군인 역을 맡은 설경구는 어수룩한 늙은(?) 군인 캐릭터를 능수능란하게 소화한다. 이미 2013년 코미디영화 ‘스파이’에서 몸 개그와 반전매력으로 웃음 자아내며 코믹능력을 입증한 배우답다.

“남복은 군기가 들어본 적이 없는 인물이다. 그래서 미리 군사훈련을 받을 필요조차 없었다. 군복만 입혀놓고 전장에 던져놓으면 되지 싶었다. 누구를 조준해서 쏠 마음이나 전우애 없이 자기 고민만 하는 캐릭터다. 남복과 영광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절박한 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슬랩스틱도 있으나 상업 코미디로 작정하고 찍진 않았다. 그런 티격태격조차 절박한 싸움이라고 봤으니까. 다만 그런 모습이 웃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다.”

촌스럽고 어리바리한 느낌을 주기 위해 충청도 사투리를 구사해야 했다. 설경구는 충청도가 고향이나 그곳에서 자라진 않았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따로 사투리 교습을 받지 않은 채 ‘그까이 거 대충’ 했다. 공교롭게 제작사 대표, 감독 모두 충청도 출신이었다.

“충청도 사람들이 말은 느려 터졌어도 성격은 급하다. 말은 오히려 짧다. ‘기여? 안기여?’ 식이다. 나 역시 성격이 무척 급한데 많이 느려지고 좋아졌다. 나이가 먹으니 그렇게 되더라. 차기작 때문에 체중을 12kg 줄였는데 살을 빼면 예민해져서 주위 사람을 불편하게 할 텐데 ‘될 대로 되라’ 식으로 느긋해졌다.”

 

상대역으로 호흡을 맞춘 여진구(18)는 설경구가 원했던 배우다. 2009년 처음 출연 제의를 받고 거절을 했다가 배우 이은주의 기일 때 만난 제작사 대표와 프로듀서로부터 “냉동보관 중”이라는 간곡한 요청에 마음을 되돌렸다. 그리고는 즉각 “여진구 스케줄은 어떠냐”고 물어봤다.

“일단 나이가 딱 맞지 않나. 학생인 애한테 군복을 입혀 놓으면 영광 캐릭터에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인위적으로 만든 느낌이 나지 않고. 무엇보다 영화 ‘화이’를 보면서 중학생인 어린애가 너무 강렬해서 굉장히 감동적이었다. 그 아이 자체가 순수하고 맑다. 눈도 그렇고. 인민군복을 입혀놨을 때 더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한테도 도움이 되고.”

촬영 현장에 가면 남복이 영광을 대하듯 여진구에게 말을 했다. 애정 가득한 구박과 가벼운 욕설이 난무했다. 캐릭터에 젖어서 지내는 게 연기하는 게 편한 이유도 컸다. 여진구는 자신을 “큰아버지뻘” 혹은 “선배님”이라고 부르며, 가끔은 흉내도 내며 잘 따랐다.

◆ ‘살인자의 기억법’ 치매 걸린 은퇴한 연쇄살인범 맡아 12kg 체중감량

하반기 개봉작인 범죄 스릴러 ‘루시드 드림’에서 3년 전 아들을 잃어버린 남자(고수)의 사투를 돕는 엘리트 경찰 대호로 관객과 만난다. 다음달 중순부터는 ‘살인자의 기억법’ 촬영에 들어간다.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은퇴한 연쇄살인범이 딸을 지키기 위해 일생일대의 살인을 계획하는 내용을 다룬 스릴러다. 과거 ‘역도산’ 때 98kg으로 체중을 늘렸던 설경구는 이 작품을 위해 68kg을 만들었다. 평상시 몸무게는 80kg. 얼굴이 반쪽이 됐다.

 

“살을 빼는 것보다 찌우는 게 스트레스가 더 크다. 나중에 운동해서 다시 빼야하지 않나. 그리고 98kg 정도 되면 만사가 귀찮아진다. 감량할 때는 노하우가 생긴 것도 있지만 내장지방 등을 없애면서 ‘건강해지자’란 긍정적인 마음이 든다. 근력운동을 하고 식단을 조절하면서 천천히 빼고 있다. 빼다보니 욕심이 생기고 희열을 느끼게 된다.”

“기준을 딱히 정해놓고 작품을 고르진 않는다. ‘나의 독재자’는 대박칠 영화라고 여기진 않았으나 연기 욕심이 있어서 했다. ‘루시드 드림’은 내가 ‘그 놈 목소리’에서 애는 찾아봤는데 조력자 역할은 안 해봐서 선택했다. ‘살인자의 기억법’도 센 캐릭터인데 해보지 않았던 치매 걸린 연쇄살인범, 40대부터 60대까지를 연기하는 게 재미있을 것 같았다. 세월이 보이는 굉장히 궁금한 캐릭터이지 않나. 날 것의 재미를 안겨준 ‘구타유발자’와 계단 카액션에 매료됐던 ‘용의자’를 연출한 원신연 감독에 대한 궁금증도 컸다.”

극단 한양 레퍼토리와 학전에서 무대의 꿈을 키웠던 배우는 스크린에 상륙했다. ‘박하사탕’의 영호, ‘오아시스’의 종두, ‘실미도’의 인찬, ‘역도산’의 역도산, ‘공공의 적’의 강철중, ‘해운대’의 만식, ‘나의 독재자’의 성근 등 전쟁을 치르듯 매번 뜨거운 화인을 남겼다. 연기 여정을 걸어가는 동안 가지와 잎은 무성해졌고, 뿌리는 더욱 깊어졌다.

이제는 바람에 자신을 맡기는 유연함을 체화한 설경구에게 변함이 없는 건 지방 촬영장 인근 모텔 방에서 촬영하러 가기 전 하는 줄넘기 5500개와 무궁화 빨래비누 사용이다. 곰 같은 배우는 “처음과 끝의 연결고리를 간직하고 싶어서”라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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