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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2015] (53) 꽃미남 '최연소 태극펜서' 오상욱, 그 칼끝이 향하는 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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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2015] (53) 꽃미남 '최연소 태극펜서' 오상욱, 그 칼끝이 향하는 곳은?
  • 이세영 기자
  • 승인 2015.11.09 11: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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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싱 사브르 사상 최연소 국가대표 발탁 1년, 폭풍성장 비결과 비전

[200자 Tip!] 세계적인 스포츠스타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노력이 필수적이지만 주변 환경과 운도 그에 못지않게 매우 중요하다. 여러 가지 조건들이 맞아떨어지면서 대형 스타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남자 펜싱 사브르에서는 신예 오상욱(19·대전대)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고등학생 최초로 사브르 국가대표가 된 세계랭킹 32위 오상욱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다”고 몸을 낮췄다. 세계적인 펜서로 무한 성장하고 있는 오상욱을 떠받친 힘은 무엇일까?

[태릉=스포츠Q(큐) 글 이세영·사진 최대성 기자] 멀리서 봐도 훤칠한 키의 청년이 성큼성큼 걸어온다. 얼추 봐도 190㎝는 넘어 보인다. “키가 몇이에요?”라고 묻는 질문에 “192㎝예요”라고 수줍게 답한다.

잘 생긴 외모로 ‘꽃미남 펜서’라는 별명이 붙은 오상욱은 장차 한국 펜싱을 이끌어갈 기대주다. 지난해 대통령배대회에서 세계랭킹 1위 구본길을 꺾으며 차세대 검객의 탄생을 알린 오상욱은 지난해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3위에 올라 태극마크를 달았다. 올해에도 각종 대회에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며 차세대 펜싱스타로 급부상하고 있다.

▲ 오상욱이 태릉선수촌 펜싱장에서 거울을 향해 칼을 겨누고 있다.

지난 2월 월드컵 남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세계 강호들을 잇달아 꺾고 동메달을 딴 오상욱은 전국체전에서 동의대 에이스 김준호를 1점차로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다. 지난달 구본길과 김정환(이상 국민체육진흥공단), 김준호와 함께 나선 2015~2016시즌 첫 월드컵 1차 대회 단체전에서는 7위를 차지했다.

큰 키와 잘생긴 얼굴, 여기에 실력까지 겸비했으니 여성 팬들이 몰릴 것은 시간문제인 듯하다. 하지만 오상욱은 “평소 내 기사를 잘 보지 않는다”며 손을 내저었다.

◆ 맞춤형 펜서? 긴 팔다리 앞세워 급성장

타고난 신체는 스포츠스타에게 큰 선물이다. 재능도 필요하지만 그것을 발휘하기 힘든 신체 조건이라면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오상욱은 부모님의 유전자를 잘 물려받았다. 펜싱선수에 적합한 큰 키와 긴 팔다리로 남들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다.

“중학교(대전 매봉중) 2학년 때까지는 160㎝대였는데, 중학교 졸업할 때쯤 키가 187㎝까지 자랐어요(웃음). 고등학교(대전 송촌고) 1학년 때 191㎝로 자랐고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펜싱선수로서 키가 클 때 가질 수 있는 장점이 실로 많다. 상대와 마주보고 섰을 때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게 없단다. 오히려 상대가 한 수 접고 들어가는 게 보인다고 했다. 보통 170~180㎝대인 상대보다 심리적으로 편안한 상황에서 경기를 치를 수 있는 오상욱이다.

▲ 남들보다 유난히 큰 키와 팔다리로 펜싱선수로서 성장 속도를 높인 오상욱은 한국 펜싱 사브르 사상 최초로 고교 3학년 때 최연소 태극마크를 단 선수가 됐다.

특히 기병의 검을 뜻하는 사브르는 심판의 시작 신호가 나면 곧바로 달려가 부딪치는 종목으로서 플뢰레, 에페보다 남성적인 색깔이 강하다. 상반신 위 전체가 타격 범위이며 펜싱 3개 종목 중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종목이다. 플레(준비), 알레(시작)를 심판이 외치자마자 튀어나가야 한다. 워낙 빠르게 경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1점을 내는데 아무리 길어봤자 7~8초를 넘기지 않으며 대부분 공격의 경우 1~2초 안에 결정이 난다.

이렇듯 스피드가 중요한 사브르에서 오상욱의 신체는 큰 장점을 발휘한다. 팔다리가 길다 보니 남들이 두 번 갈 때 한 번만 가도 되고, 남들보다 길게 베거나 찌를 수 있다. 그만큼 점수를 딸 수 있는 확률이 높다.

“이번에 국제대회를 나갔을 때 저를 잘 모르는 외국 선수들은 ‘이만큼 빠지면 되겠지’란 생각으로 뒷걸음질치다 제가 공격을 하자 당황스러워 하더라고요. 아직 기술은 부족하지만 팔다리만큼은 서양 선수들 못지않게 길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웃음).”

◆ '하고 싶은 건 다 한다', 단지 펜싱 외 관심사가 없을 뿐

운동선수로서 항상 긍정 마인드를 가졌던 것도 빠르게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됐다.

오상욱이 처음부터 선수로서 검을 잡은 것은 아니었다. 대전 매봉중 1학년이던 2009년 친형 오상민(21·대전대)을 따라 펜싱을 시작한 오상욱은 처음엔 취미삼아 칼을 휘둘렀다. 재미를 붙인 오상욱이 체육관에 다니던 사람들을 잇따라 이기자 그를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지켜봤던 이효근 남자 대표팀 사브르 코치가 발탁, 선수로서 첫 발을 내딛게 했다. 그렇게 3년간 꾸준히 실력을 갈고 닦았고 마침내 태극마크까지 달게 됐다.

가장 예민한 사춘기에 친구들과 놀지도 못하고 운동만 해서 힘들지는 않았을까.

이에 오상욱은 “훈련 자체는 정말 힘들었지만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왔다”며 “대회에 나가 상을 받았을 때 밀려오는 쾌감으로 3년을 버틴 것 같다”고 말했다.

▲ 곱상하게 생긴 얼굴이지만 오상욱은 평소 외모에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약관의 오상욱. 하고 싶은 게 많은 나이일 텐데 선수촌 생활이 답답하지는 않을까? 돌아온 대답은 조금은 의외였다. 펜싱 외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게 없어 오히려 편하다는 것.

“태릉선수촌에서 지내면서 갇혀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운동하고 점심 먹고 쉬다가 나른하면 커피도 한 잔 마시고 피로 회복을 한 뒤에 또 운동을 하지요. 주어진 환경에서 하고 싶은 건 다 하는 스타일이라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어요. TV, 인터넷도 잘 안하고요 걸그룹에도 별 관심 없어요. 주말에 친구들 만나서 수다 떠는 걸 좋아해요.”

◆ 펜싱인생 지지한 세 명의 은인은?

밝고 긍정적인 성격의 오상욱 주위에는 좋은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그의 펜싱인생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매봉중, 대전 송촌고 시절 자신을 지도한 양승환 코치(현 대전대 코치)는 기술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오상욱이 자존감을 잃지 않도록 용기를 불어 넣어줬다. 경기 도중 수세에 몰리더라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일깨워줬단다. 이는 오상욱이 지금까지 피스트에서 긴장을 하지 않는 원동력이 됐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아시아 펜싱 최초로 금메달을 따낸 뒤 현재는 대전대 내 로러스 펜싱클럽 사령탑을 맡고 있는 김영호 감독도 오상욱에게 큰 힘이 되는 존재다. 김 감독이 선수로서 살아온 이야기만 듣고도 많은 공부가 됐단다.

오상욱은 “지금도 개인운동을 빠짐없이 하시고 운동시간에도 장난치는 것 없이 집중하신다. 그런 게 당연한 것이지만 매번 지키기는 힘들다. 선수로서 성실해야 한다는 걸 김 감독님으로부터 배운다. 감독님과 대화하고 나면 ‘나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난다”고 웃었다.

▲ 당장 내년이 되지 않을 수 있지만 오상욱은 김영호 감독을 보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꿈을 키우고 있다.

마지막 한 명은 함께 태극마크를 달고 훈련하고 있는 김정환이다. 오상욱보다 열세 살이나 많지만 눈높이를 잘 맞춰준단다. 어린 나이에 홀로 선수촌에 들어온 오상욱에 대한 배려심이 돋보였다.

“사브르 대표팀 맏형인데, 힘들 때마다 많이 도와주세요. 제가 슬럼프라도 빠지면 ‘형도 예전에 그랬다. 이렇게 극복했다’ 알려주시고 밥도 자주 사주십니다. 띠동갑도 넘는 나이차이지만 제 코드에 맞춰서 놀아주시는 좋은 형이에요.”

기술적인 부분에서도 많은 도움이 된단다. 178㎝의 키에 비해 팔이 긴 김정환은 오상욱이 팔을 이용한 공격을 연마할 때 좋은 교과서가 된다. 비록 지금은 김정환만큼 노련한 공격을 구사하진 못하지만 언젠가는 선배들을 뛰어넘는 기술을 구사할 것이라고 다짐하는 오상욱이다.

“물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게 꿈이지만 혹 메달을 못 따더라도 붙임성이 좋은 선수가 되고 싶어요. 제 주위에 있는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알고 인격적으로 완성된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그게 펜싱을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라 생각해요.”

■ 오상욱 프로필
△ 생년월일 = 1996년 9월 30일
△ 신체조건 = 192㎝ / 84㎏
△ 출신학교 = 대전 매봉중-대전 송촌고-대전대
△ 주요 경력
- 2015년 펜싱 남자 사브르 국가대표팀
- 2015년 국제펜싱연맹(FIE) 파도바 월드컵 남자 사브르 국가대표팀
- 2015~2016시즌 FIE 트빌리시 월드컵 남자 사브르 국가대표팀
△ 수상 경력
- 2015년 펜싱 남자 사브르 국가대표 선발전 3위
- 2015년 FIE 파도바 월드컵 남자 사브르 개인전 3위
- 2015년 전국 남녀 사브르 종목별 오픈 펜싱 선수권대회 개인전 3위
- 2015년 전국 남녀 사브르 종목별 펜싱 선수권대회 단체전 1위
- 2015년 전국체전 펜싱 남자 사브르 일반부 개인전 1위

[취재후기] 내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는 남자 사브르 단체전이 열리지 않는다. 펜싱 최연소 금메달리스트를 노렸던 오상욱에게는 아쉬운 소식. 세계랭킹 32위인 오상욱은 자신보다 랭킹이 높은 대표팀 선수가 4명이나 돼 개인전 출전도 아직은 불투명하다. 하지만 오상욱은 급하게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2018년 아시안게임과 2020년 올림픽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한걸음씩 묵묵히 걷다보면 곧 오상욱을 위한 무대가 열릴 것이다.

▲ 3년 뒤 아사안게임과 2020년 올림픽이 오상욱을 기다리고 있다. 오상욱의 펜싱인생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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