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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퀴어 캐릭터 '스타로 가는 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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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퀴어 캐릭터 '스타로 가는 관문'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7.08 09:4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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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용원중기자] 영화에서 성적 소수자를 연기한 배우들이 이를 발판 삼아 스크린과 안방극장의 빛나는 별로 도약하고 있다. ‘동성애 연기는 스타로 가는 관문’이라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올 정도다.

◆ ‘해적’ 김남길 ‘연애 말고 결혼’ 연우진, 퀴어멜로 통해 스타 발돋움

오는 8월6일 개봉하는 대작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의 산적 장사정으로 극을 이끄는 김남길(33). 2003년 MBC 공채 탤런트 31기로 데뷔한 그는 예명 이한으로 활동하던 2006년, 퀴어 멜로 ‘후회하지 않아’로 첫 주연을 꿰찼다. 호스트와 사랑에 빠지는 부유한 재민을 연기한 ‘후회하지 않아'는 단역·조연을 전전하던 김남길에게 기회이자 재발견의 순간이었다. 이후 ‘모던보이’ ‘미인도’ ‘선덕여왕’ ‘폭풍전야’ ‘나쁜남자’ ‘상어’의 주인공을 맡으며 톱스타로 자리매김했다.

▲ '해적'의 김남길(왼쪽)과 '연애 말고 결혼'의 연우진

tvN 금토드라마 ‘연애 말고 결혼’에서 결혼을 거부하는 훈남 성형외과 의사 공기태로 각광받는 청춘스타 연우진(본명 김봉회·30). ‘파파로티’ ‘분노의 윤리학’ ‘건축학개론’ ‘패션왕’ ‘고지전’의 연기파 스타 이제훈(30). 두 남자는 퀴어 로맨스영화 ‘친구사이?’(2009)에서 군입대한 민수와 그를 기다리는 연인 석이로 공연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 ‘연예계 블루칩’ 한주완 이이경 유민규 이현진 ‘퀴어 캐릭터’로 주목

KBS2 ‘조선총잡이’의 고독한 혁명가 호경 역 한주완(30)은 ‘지난여름, 갑자기’(2011)에서 남자 선생님을 사랑하는 고교생 상우로 주목받은 뒤 이듬해 드라마 ‘왕가네 식구들’의 상남으로 스타 반열에 올랐다. 올해 영화 ‘일대일’ ‘해적: 바다로 간 산적’과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너희들은 포위됐다’ ‘트로트의 연인’을 누비는 이이경(25)은 ‘백야’(2012)에서 항공사 승무원과 특별한 하룻밤을 보내는 퀵서비스 배달원 태준으로 주연을 맡았다.

▲ '조선총잡이'의 한주완(왼쪽)과 '원나잇 온리'의 유민규

유민규(27)는 드라마 ‘빛나는 로맨스’에 이어 지난 3일 개봉한 ‘원나잇 온리’의 ‘하룻밤’ 편 주연을 맡았다. 경남 진주에서 서울 이태원으로 놀러와 친구들과 각기 다른 하룻밤을 보내는 재수생 근호를 연기했다. 지난해 드라마 ‘상속자들’ ‘황금의 제국’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현진(29)은 ‘소년, 소년을 만나다’(2008)에서 김혜성과 열아홉 게이소년을 소화했다.

◆ 연기파 류덕환 황정민 과거 게이 역 소화해 연기 스펙트럼 입증

OCN 드라마 ‘신의 퀴즈’ 시즌4의 류덕환(27)은 ‘천하장사 마돈나’(2007)의 여자가 되고 싶은 씨름소년 오동구로 각종 영화제 신인남우상을 휩쓸었다. 현재 범죄영화 ‘베테랑’을 촬영 중인 황정민(44)은 2002년 ‘로드무비’에서 몰락한 펀드매니저 석원(정찬)과 무작정 여행을 떠나는 부랑아 게이 대식을 열연했다. 이를 통해 스펙트럼 넓은 배우임을 입증했고, 이후 ‘바람난 가족’ ‘여자, 정혜’ ‘너는 내 운명’ 등에 출연하며 충무로 대표 남우로 입지를 굳혔다.

▲ '신의 퀴즈'와 '천하장사 마돈나'의 류덕환

이외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의 김재욱,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의 김동윤 송용진,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의 공명 신재하, ‘야간비행’의 곽시양 이재준 등이 게이 캐릭터로 관객과 만났거나 만날 예정이다.

◆ “날 버리고 인물에 몰입 욕심…더이상 못할 연기 없다는 자신감 충만”

이들은 대부분 신인이나 무명 시절 퀴어영화 주인공을 맡았다. 단역·조연이 아닌 주연은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다. 특히 성적 소수자는 사회적 차별과 편견으로 인한 내적 갈등, 동성과의 사랑, 인정받지 못해 더욱 절박한 멜로라인 등 다양한 감정선을 드러내고 일상성에서 벗어난 ‘특별한’ 캐릭터이므로 강렬한 인상을 남길 흔치 않은 기회다.

“게이영화라는 것은 전혀 문제되거나 두렵지 않았다. 어차피 연기는 자신을 버리고 타인이 되는 게 아닌가? 오히려 날 완전히 버리고 연기에 몰입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더욱 욕심이 났다”(연우진). “내 이름 연관 검색어에 ‘게이’가 있는데 그만큼 연기를 잘해서가 아닐까. 사람들이 이제야 날 연기자로 봐주는 것 같아 만족했다”(김동윤). ‘원나잇 온리’의 유민규는 “배우라면 정말 해보고 싶은 연기고, 성장의 발판이라 여겼다. 마지막 장면을 촬영한 뒤 이제 못할 연기가 없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털어놨다.

▲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의 신재하(왼쪽)와 공명

퀴어영화 제작사인 레인보우 팩토리의 김승환 대표는 “과거엔 배우들이 손잡거나 어깨동무까지만 수용하고, 키스와 베드신은 거부하곤 했다. 지금은 이런 행동이 많이 사라졌다”며 “신인 배우들은 조금 더 주목받을 수 있고, 동성애자 연기를 하고나면 다른 연기는 쉽게 할 거라 여겨 매우 하고싶어 한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배우들은 성적 소수자 역할을 맡으로써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고 고백한다. 처음엔 동성과 사랑을 나누는 연기에 어색해 했으나 각종 자료 연구와 인터뷰를 통해 이들 역시 나와 똑같은 인간이며, 그들의 아픔과 사랑에 대해 이해하게 됐다고 말한다. 인식의 지평이 확대된 점은 배우로써 소중한 수확이다.

◆ 김조광수 이송희일 감독 퀴어영화 꾸준히 제작, 빛나는 보석 발굴

퀴어 캐릭터에 도전하는 배우들이 대거 늘어나고, 스타로 거듭난 데는 주 영화 소비층인 젊은 관객 특히 여성관객들의 인식변화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퀴어 프렌들리’ 성향이 강한 이들이 신선한 꽃미남 배우들에게 큰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선구안이 뛰어난 김조광수, 이송희일과 같은 퀴어감독들이 2000년대 이후 꾸준히 작품을 제작하며 모델·대학생·독립영화배우·무명 연기자 풀에서 될성부른 신인들을 발굴해온 점, 실험적인 독립영화들이 대중화되고 있는 점도 한 이유다.

▲ 김조광수 감독의 '친구사이?'에서 연우진과 이제훈(오른쪽)의 극중 키스 장면
▲ 올해 베를린영화제에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받은 이송희일 감독의 퀴어영화 '야간비행'

하지만 여전히 ‘게이’ 수식어는 이미지로 먹고사는 배우에게 썩 달가울 리 없다. 예명 이한을 버리고 본명 김남길로 돌아가고, 서지후란 예명 대신 연우진이란 또 다른 예명으로 갈아탄 것은 퀴어영화 출연 이후에 이뤄졌다. 톱스타들이 누아르 액션영화 ‘하이힐’(감독 장진)의 여자가 되고 싶은 강력계 형사 지욱 역 제의를 줄줄이 고사했다는 후문은 작품의 민감한 주제와 대중의 정서적 거부감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크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은 남자배우의 또 다른 매력을 접하고, 배우는 도전을 통해 충만함을 느끼는 ‘동성애 연기’. 스타로 가는 지름길이자 한국영화계의 LTE급 변화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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