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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분석] EPL 구조가 만든 '재정-전력' 평준화, 빅5 체제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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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분석] EPL 구조가 만든 '재정-전력' 평준화, 빅5 체제의 종말?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6.02.01 2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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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폭 인상된 TV중계권료 고루 배분…딜로이트 평가 매출 상위 30개팀 가운데 17개팀 포함

[스포츠Q(큐) 박상현 기자]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는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등 '빅3'가 주름잡고 있고, 독일 분데스리가도 바이에른 뮌헨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라는 '2강'이 언제나 선두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탈리아 세리에 A에는 유벤투스라는 절대 강자가 있다.

하지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는 사실상 '빅4' 또는 '빅5' 체제의 종말이라는 성급한 예상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23경기를 치른 가운데 레스터 시티가 13승 8무 2패(승점 47)로 선두를 달리고 있고 전통 강호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아스날, 리버풀, 첼시 등은 모두 3위 밑에 있다.

중동의 오일머니를 앞세워 기존 '빅4' 체제를 '빅5'로 만든 맨체스터 시티가 13승 5무 5패(승점 44)로 아스날에 골득실에서 앞선 2위를 달리고 있다.

이대로라면 1994~1995 시즌 블랙번 로버스 이후 21년 만에 '빅4' 또는 '빅5'가 아닌 팀이 정상에 오르는 대기록을 남길 수도 있다. 레스터 시티가 우승을 차지하면 1977~78 시즌 노팅엄 포레스트 이후 38년 만에 잉글랜드 최상위 리그에서 처음으로 정상에 오르는 팀이 탄생할 수 있다.

◆ 고른 TV 중계권료 분배로 부의 평준화, 절대 강자가 없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가 최근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 밀리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는 있지만 정작 구단들은 지갑이 두툼해졌다. 프리미어리그는 올해부터 2019년까지 3년 동안 BT 스포츠, 스카이 스포츠와 연 17억 파운드(3조715억 원), 총액 51억4000만 파운드(9조2868억 원)의 중계권 협상을 맺었다. 한 경기에 1019만 파운드(170억 원)에 달하는 특급 조건이다.

또 프리미어리그는 지난해 8월 미국 NBC 유니버설과 2016~2017 시즌부터 2021~2022 시즌까지 6년 동안 계약을 갱신했다. 정확한 금액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전 계약 조건인 연 5320만 파운드(961억 원)보다는 높은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프리미어리그는 자국 내 중계권료 수입의 50%는 20개 구단이 똑같이 나눠갖고 나머지 50%는 리그 순위(25%)와 중계 횟수(25%)에 따라 차등을 둔다는 것이다. 무려 50%에 달하는 금액을 똑같이 나눠갖기 때문에 프리미어리그 20개 구단의 중계권료 수입은 큰 차가 없다.

실제로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이 지난해 6월 발표한 2014~2015 프리미어리그 중계권 팀별 수입현황에 따르면 첼시가 9899만9554파운드(1190억 원)로 가장 높았다. 가장 적은 금액을 기록한 퀸즈 파크 레인저스도 6488만6028파운드(780억 원)로 큰 차를 보이지 않았다.

반면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는 구단마다 TV 중계권 협상권을 갖기 때문에 부익부 빈익빈이 심하다. 미국 ESPN이 조사한 2012~2013 시즌 기준 현황에 다르면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는 각각 1억4000만 유로(1827억 원)을 기록했지만 라요 바예카노는 1400만 유로(183억 원)로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의 10% 수준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프리메라리가는 지난해 2016~2017 시즌부터 중계권 협상권을 프리메라리가 사무국이 갖고 프리미어리그 방식대로 '50% 공동-50% 차등' 분배하기로 결정했다.

◆ 상향 평준화되고 있는 프리미어리그, 새로운 우승팀 속속 생겨날까

전력 평준화는 순위표에서도 잘 나타난다.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순위표에서 선두 레스터 시티부터 10위 왓포드까지 승점차가 15다. 레스터 시티가 13승을 거두는 동안 11위를 달리고 있는 크리스탈 팰리스(9승 4무 10패, 승점 31)까지 무려 11개팀이 9승 이상을 거뒀다.

이에 비해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는 선두 바르셀로나(16승 3무 2패, 승점 51)부터 10위 말라가(7승 6무 9패, 승점 27)까지 승점차가 24에 달하며 9승 이상을 거둔 팀은 아이바(9승 6무 7패, 승점 33)까지 8개 팀에 그치고 있다. 분데스리가 역시 선두 바이에른 뮌헨(17승 1무 1패, 승점 52)부터 10위 잉골슈타트(6승 5무 8패, 승점 23)까지 승점차가 29에 달하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달 28일 "레스터 시티가 23경기를 치르면서 승점 47을 기록, 2002~2003 시즌 이후 13년 만에 같은 경기수를 소화하면서 승점 50에 미치지 못한 선두 팀이 됐다"며 "이대로라면 승점 78로 1996~1997 시즌 맨유가 승점 75로 우승을 차지한 이후 가장 적은 승점으로 정상에 오르는 기록을 남길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올 시즌 강팀들이 조금씩 경기력에 문제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다음 시즌에는 친숙한 '빅4' 체제로 돌아올 수도 있지만 예전만큼 빅4들이 강하다고 볼 수는 없다"며 "프리미어리그 중위권 팀들의 재정 능력이 좋아지고 경기력이 향상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가디언은 "최근 딜로이트 리포트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 상위 30개 구단에 프리미어리그 구단이 17개나 포진했다. 특히 이 조사는 TV 중계권 갱신 이전을 기준으로 한 것이어서 다음 시즌 중계권료가 상승하면 순위가 더욱 올라갈 수 있다"며 "강팀이 아니더라도 최고의 선수를 영입하는데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없다"고 전했다.

결국 프리미어리그 구단들의 '부의 평준화'가 상향 조정되면서 대부분 구단들의 재정 상태가 나아지고 이는 선수 영입으로 이어져 전력의 상향 평준화까지 가져온다는 것이다.

만약 레스터 시티가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우승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쓴다면 앞으로도 같은 패턴이 계속될 수도 있다. 아직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우승을 차지한 경험이 없는 토트넘 핫스퍼와 웨스트햄 역시 굳이 올 시즌이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우승에 근접할 수 있다. 토트넘은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전인 1960~61 시즌 이후 55년 동안 우승을 경험해보지 못했고 웨스트햄은 전체 구단 역사를 통틀어 준우승도 차지해보지 못한 팀이다.

프리미어리그도 레스터 시티의 선두 질주가 '파란'이라고 불릴만큼 빅4, 빅5가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은 올 시즌 특이한 현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구단들의 재정 및 전력 상향 평준화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됐다. 그동안 프리미어리그가 특정 강팀들이 주도하는 군웅할거의 시대였다면 올 시즌은 춘추전국시대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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