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9 08:42 (월)
[인터뷰] 새로운 비상 꿈꾸는 발레리노 김현웅
상태바
[인터뷰] 새로운 비상 꿈꾸는 발레리노 김현웅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8.23 10: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이상민기자] 돌아온 발레리노 김현웅의 행보(33)가 무섭다.

키 184㎝, 작은 얼굴, 긴 다리와 팔은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몸’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지난 2004년 국립발레단에 특채로 입단, 7년간 주역을 맡으며 대한민국 대표 발레리노로 군림했다. 완벽한 체격조건과 탁월한 표현력은 늘 그를 따라다닌 수식어였다. 2011년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국립발레단을 떠난 후 2년 동안 미국 워싱턴발레단 수석 무용수로 활약했다. 그의 재능은 미국에서도 통했다. 입단하자마자 주역을 맡아 화제를 뿌렸다. ‘지젤’ ‘드라큘라’ ‘백조의 호수’ 등을 섭렵했다.

 

◆ 완벽한 체격조건의 최정상 발레리노, 3년 만에 국립발레단 성공적 복귀

그러던 그가 국립발레단 객원 수석으로 복귀, 지난 6월 ‘돈키호테’의 낙천적인 이발사 바질을 연기하며 팬들과 다시 만났다. “역시 김현웅” “무대 위에서 제대로 즐길 줄 아는 무용수”라는 반응 일색이었다. 과거엔 빼어난 신체조건 때문에 오히려 테크닉이 잘 안보였는데 표현력이 깊어졌다는 평가도 고개를 내밀었다.

“미국이라고 해서 한국과 다르진 않아요. 그 발레단 레퍼토리에 맞춰 과거에 안 해봤던 동작들을 새로 했던 거지 기술이나 감정 표현을 배우진 않았어요. 다만 예전엔 온힘을 다해 뛰려고 했다면 지금은 편한 마음으로 하는 점이 다른 것 같아요. 표현도 마찬가지고. 3년 전 국립발레단을 그만 두면서 정말 많이 내려놨었거든요. 더 이상 무용을 하지 않을 거란 생각까지 했으니까요. ‘돈키호테’를 준비하면서 사람들의 기대로 인해 부담이 컸으나 ‘놀아보자’란 생각으로 임했어요.”

▲ 김현웅의 장기인 도약 포즈[사진=국립발레단 제공]

빨래부터 은행업무 처리 등 혼자서 모든 것을 다 처리해야 했다. 생애 첫 ‘나홀로 산다’였다. 공연이 없는 시간을 활용해 마이애미, 워싱턴, 보스턴 등 도시 여행을 많이 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되돌아봤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니?” “정말 행복하니?”

“대답은 ‘노’더라고요. 수석 무용수가 제 꿈은 아니었어요. 어떻게 하다보니 기회가 왔고,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달려갔던 것뿐이었죠. 그래서 계약 연장 계획을 접었어요. 그때는 국립발레단 복귀는 생각하지도 안했어요. 대학에 다시 들어가서 역사 공부도 하고 싶었고 제빵과 기타도 배우고 싶었죠. 그러던 찰나에 강수진 단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와 한국행을 결정하게 됐죠.”

◆ 오는 29~30일 창작발레 ‘왕자 호동’에서 가슴 절절한 사랑 연기

이번엔 자명고를 둘러싼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의 비극적 사랑을 모티프로 한 창작발레 ‘왕자 호동’(29~30일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호동을 연기한다.

▲ '왕자 호동'의 2인무[사진=국립발레단 제공]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국립발레단의 대표 창작발레로 이탈리아, 일본, 인도 등 해외에서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살아 있는 창작 발레‘라는 호평을 받은 바 있다. 1988년 국립발레단 초대단장 고 임성남 안무로 올려졌다가 2009년 안무가 문병남이 완전히 새로운 작품으로 탈바꿈시켰다.

한족과 고구려의 갈등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풀어낸 2막 12장의 화려하고 웅장한 작품 안에 국가, 전쟁, 사랑, 배신, 죽음의 이야기를 빼곡히 담았다. 카리스마 넘치는 남성 군무와 서정적인 2인무, 결혼 축하연의 디베르티스망(볼거리 중심의 연속적인 춤) 등 무용수들의 세련되고 정제된 움직임 역시 놓치지 아까운 장면들이다. 김현웅은 2009년 초연 때도 호동을 연기했다.

“최근에 영화 ‘명량’을 보면서 감동을 얻었듯이 나라를 지키는 마음을 춤으로 표현할 때 밀려드는 감동이 커요. 특히 사랑하는 낙랑공주에게 조국을 배신하고 자명고를 찢으라는 편지를 쓸 땐 소름마저 돋죠. 비극이지만 서구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스파르타쿠스’와 달리 한국적 느낌이 강하게 나요. 의상과 분장을 마치고 나면 제가 그 시대의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이순신 장군을 연기한 최민식 배우도 그랬을 거예요.”

 

‘왕자 호동’은 무용수에게 있어 까다로운 작품이다. 손과 발의 작은 동작에까지 섬세하고 독창적인 제스처를 불어 넣었는가 하면 역동적인 춤사위와 에로틱한 침실 파드되(2인무)까지 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선, 마임, 동작을 이리저리 꼬아놓으셨어요. 그래서 연습 과정은 씨름과 논쟁의 연속이죠. (웃음) 문병남 선생님이 호동을 연기해봤어서 그런 동작을 가미하신 것 같아요. 당신이 호동을 했을 때의 느낌을 저희에게도 전해주신 거죠. 이번에 선생님께선 ‘예전에 춤췄던 거를 생각해봐라. 처음의 느낌이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왕자 호동’은 제게 순수함은 떨어졌으나 설레는 첫사랑의 느낌이에요.”

◆ 국내 ‘K-발레월드’, 러시아 ‘발레 페스티벌’ 연이어 출격

‘왕자 호동’을 마친 뒤 일정도 숨 가쁘다. 고전에서 현대무용까지 춤향연인 ‘K-발레월드’(22일~다음달 5일·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의 31일 갈라 공연에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지영과 출연해 ‘돈키호테’ 그랑 파드되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9월에는 김지영과 함께 러시아로 향한다. 모스크바 크렘린궁과 크렘린발레단이 주최하는 ‘발레 페스티벌: 크렘린발레단과 함께하는 월드스타’에서 초청공연을 하기 위해서다. 두 사람은 25일 크렘린궁에서 러시아의 세계적 안무가 유리 그리가로비치가 안무한 발레 '로미오와 줄리엣' 전막 공연에 출연한다. 주인공 로미오와 줄리엣 역을 맡아 크렘린발레단 무용수들과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발레는 영화와 달리 NG가 없잖아요. 내가 한 배리에이션이 맘에 안든다고 ‘다시 할게요’ 할순 없는 거죠. 매일매일 다른 감정을 쌓아가야 하고, 그날의 감정만으로 표현해야 하죠. 그래서 그날의 그 느낌이 매우 중요해요.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뒤 드는 생각은 ‘내가 해야할 일이 발레구나’란 거예요. 무대에 설 때 가장 행복하니까.”

 

[취재후기] 몇 년 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밝아졌다. 마음의 전쟁을 겪은 뒤 평온을 얻는 자들의 밝음이다. 원래 직선적이고 활달한 친구였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가 짊어졌어야 했을 짐의 무게가 설핏 느껴졌다. 그럼에도 발레리노 김현웅은 여전히 에너지 넘친다. 잠시 위태위태했던 발레인생은 현재진행형이다.

goolis@sportsq.co.kr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