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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Q] '굿바이 싱글' 김혜수 "동안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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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Q] '굿바이 싱글' 김혜수 "동안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 원호성 기자
  • 승인 2016.07.12 15: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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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자 Tip!] 영화 '굿바이 싱글'에서 김혜수가 연기한 '고주연'은 어릴 때부터 20년 넘게 연기만 해온 40대 싱글의 여배우라는 점에서 좋든 싫든 김혜수라는 배우의 실제 모습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그렇다고 김혜수가 영화 속 '고주연'처럼 발연기의 대명사에 연예계에서 소문난 '싸가지'라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고주연'이라는 인물의 모습에 자연스럽게 '김혜수'라는 배우를 겹쳐 보게 될지도 모른다.

[스포츠Q(큐) 원호성 기자] 1986년 16세의 나이로 영화 '깜보'에 출연하며 연기에 첫 발을 디딘 김혜수에게 올해 2016년은 연기인생 3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이 정도 연기경력이면 배우들은 좀 더 편한 역할을 찾을 법도 한데 김혜수라는 배우에게는 그런 쉬운 길은 애초에 머리에 들어 있지도 않나 보다.

최근 2년 간 김혜수가 선보인 작품들에서 김혜수는 매 작품마다 시청자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연기변신을 선보여 왔다. 2015년 개봉한 영화 '차이나타운'에서는 머리도 회색으로 탈색시킨 채 인천 뒷골목의 부랑아들을 관리하는 조직의 '엄마'로 맹렬한 카리스마를 뽐냈고, 이어 tvN 드라마 '시그널'에서는 냉철해 보이지만 가슴 속은 따뜻한 경찰 '차수현 경위'로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렸다.

'차이나타운'과 '시그널'로 차갑고 쿨한 이미지를 온몸으로 발산한 김혜수는 이번에는 영화 '굿바이 싱글'을 통해 코믹연기가 무엇인지를 절절하게 보여준다. 김혜수와 코믹연기가 잘 어울리는 조합일까? 한국 드라마 사상 '역대급 캐릭터'로 불렸던 '직장의 신'의 '미스 김'을 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 영화 '굿바이 싱글' 김혜수 [사진 = 영화인 제공]

◆ 김혜수의 코믹연기 "전 지금도 코믹연기는 잘 못해요"

사람을 웃기는 것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노골적으로 사람을 웃기기 위해 웃긴 행동이나 욕설·비속어 등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말초적이고 저렴한 방식이 있다면, 다른 하나는 막상 등장인물들은 진지하지만 그들이 만들어 내는 상황과 대사가 웃음을 유발해 내는 경우다. 그리고 김혜수가 '굿바이 싱글'에서 '고주연'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만들어 내는 코미디는 명백하게 후자에 가깝다.

'굿바이 싱글'에서 김혜수가 연기한 '고주연'은 여배우 특유의 과장된 말투나 표정이 들어가긴 하지만, 이런 것들이 관객을 노골적으로 웃기기 위한 코미디적인 장치냐 하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런 '고주연'의 과장되고 철없어 보이는 캐릭터는 어린 나이부터 평생 연기만 해와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고주연'이라는 인물을 설명해 주는 중요한 키워드이기도 하다.

"전 지금도 코믹연기는 잘 못해요. '굿바이 싱글'에서 '고주연'이라는 캐릭터가 재미나게 보였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내가 코미디라는 장르를 의식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시나리오부터 '고주연'이라는 캐릭터가 잘 구축이 돼서 그런 것 같아요. 전 기본적으로 유머 센스가 많이 딸려요."

"예전에는 코미디라고 하면 제가 부족한 것이 많으니 더 재밌게, 더 밝게 하려고 조금씩 과장되게 연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이게 잘못된 거였어요. 연기가 과잉되다 보니 관객들에게 제 캐릭터 전달이 안 되는 거였어요. 로맨틱코미디 영화가 한창 붐이었을 때 저도 많이 출연했는데, 그때는 연기를 할 때마다 너무 못해서 좌절하고 스크린에 나온 제 모습도 너무 보기 싫었어요. 명절 때 TV에 그때 영화가 나오면 너무 부끄럽고, 제 목소리만 들려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 영화 '굿바이 싱글' 김혜수 [사진 = 영화인 제공]

김혜수의 말처럼 김혜수는 1990년대 '닥터봉'이나 '미스터 콘돔', '찜' 등 로맨틱코미디 영화에 많이 출연했다. 그리고 당시 김혜수의 이미지는 1990년대 X세대의 이미지라고 해야 할까, 하이톤의 딱딱한 말투와 연기로 관객들을 웃기려는 모습이 분명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김혜수는 코미디를 하는 빈도 자체는 과거보다 많이 줄었지만, 간혹 등장하는 코믹한 모습의 완성도는 상당한 경지에 도달했다. '이층의 악당'연주'나 '직장의 신'의 '미스 김'처럼 김혜수는 관객을 웃기려들지 않고, 진지하게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의 배꼽을 뒤흔드는 코미디의 기술을 터득하게 됐다. 이는 '굿바이 싱글'의 '고주연'에 이르러 완벽하게 터져 나온다.

"'굿바이 싱글'을 하기 전에도 코믹연기라는 점 때문에 부담이 많았어요. 당연히 있죠. 그래도 이번에는 정말 같이 연기한 배우분들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어요. 마동석 씨는 과잉이나 과장도 없이 굉장히 유연하면서도 코믹센스가 있어요. 그리고 김현수라는 배우는 다른 아역배우들처럼 테크니컬한 연기를 기가 막히게 하지는 않아도 진심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배우였어요. '굿바이 싱글'이라는 영화가 서로의 진심이 전달이 되어야 하는 영화잖아요. 어린 친구지만 이번에 정말 큰 도움을 받았어요."

▲ 영화 '굿바이 싱글' 김혜수 [사진 = 영화인 제공]

◆ 20대의 김혜수, 40대의 김혜수 "전 요즘이 너무 좋아요"

1986년부터 2016년까지. 김혜수는 그야말로 한국 영화계의 드라마틱한 변천사를 온몸으로 겪어낸 배우다. 연기를 하는 배우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 없고 그저 주먹구구식으로 영화를 만들던 1980년대의 힘든 제작환경부터, 서서히 한국영화계의 틀이 잡혀 가던 1990년대 후반의 영화계, 그리고 이제는 영화제작 시스템이 할리우드처럼 엄연한 '산업'의 일부가 되어 버린 2010년대의 영화계까지 김혜수는 10대의 나이부터 40대의 나이가 될 때까지 '배우'라는 직업으로 이 모든 것을 겪어 왔다.

"사실 20대 때는 제 스스로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어린 나이에 연기를 시작해 20대가 되면서 제 자의식도 자리를 잡아가고 하는데, 제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너무 힘들었죠. 당시는 저도 나이가 어려서 전문 매니저도 아니고 보호자가 있던 시절이에요. 일에 대해서도 모두 제가 아닌 보호자와 대충 이야기하면 다 성립이 됐죠. 저한테도 취향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런 제 의지는 전혀 반영되지 않고 일은 많고. 그러다 보니 껍데기 같은 기분. 항상 웃고는 있지만 마음은 쭈그러져 있는 기분. 어디에 가도 '나'는 없는 거죠."

이런 고민은 김혜수처럼 자아를 완전히 갖추지 못한 어린 나이에 연기를 시작해 나이를 먹어간 배우라면 아마 누구나 한번쯤 가져 봤을 고민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김혜수의 고민은 '굿바이 싱글'의 '고주연'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김혜수는 '고주연'을 연기하며 자신이 30년 동안 연기를 하며 느낀 이런 감정들을 페이소스 있게 캐릭터에 녹여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김혜수는 그래도 40대의 나이에 '해탈'과 비슷한 감정을 경험하기도 했다. 자신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일에 치이고, '나'는 어디에도 없었던 힘든 20대를 지나 40대의 나이가 되어서 비로소 '김혜수'라는 개인을 돌아볼 여유와 시간을 얻게 되었다고 할까?

"전 요즘이 너무 좋아요. 작품을 할 때마다 아직도 제 연기가 조금씩 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이고, 좋은 작품들과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에도 항상 감사해요. 그냥 개인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요즘 몇 년 간이 너무나 좋아요. 요 몇 년 생각해 보면 그렇게 행복한 일만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 생각해 보면 괜찮았던 것 같아요."

"사실 '굿바이 싱글'은 '차이나타운' 출연을 결정하기 전부터 시나리오를 보고 하고 싶어서 찜했던 작품이었어요. 최근 몇 년 동안 저한테도 물리적인 가족은 아니지만, 진짜 가족같이 느끼는 사람들이 생겼거든요. '고주연'에게 불알친구 '평구'(마동석 분)가 있는 것처럼. 그래서 시나리오를 읽으며 개인적으로도 공감을 많이 했고, 이런 것들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을 경험했기에 더 크게 공감했고 이 감정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 영화 '굿바이 싱글' 김혜수 [사진 = 영화인 제공]

◆ 30년, 배우로서 늙어간다는 것 "동안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신체나이의 전성기라는 20대를 지나 이제 30대, 40대에 접어들며 서서히 나이가 들어가는 배우들에게 흔히 하는 칭찬 중 하나가 바로 '동안(童顔)이라는 말이다. 하긴 기사를 봐도 '세월을 잊은 외모'와 같은 말이 자연스럽게 오르내리는 시대이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김혜수에게 '동안'이라는 말은 중요한 말이 아니었다. 16세에 연기에 첫 발을 디뎌서 올해로 연기인생 30년, 40대 중반의 나이. 인생의 2/3을 '배우'로 살아온 김혜수에게는 '동안'이라는 칭찬보다는 '배우'라는 말이 더욱 큰 칭찬이었다.

"솔직히 동안이라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나이보다 더 나이들고 싶은 사람이 어딨어요? 그냥 그렇게 생겼으니 그런 거지. 그런 걸로 남들보다 동안이라고 칭찬하고, 남들보다 나이 들어 보인다고 탓하고 그런 것은 좀 안 했으면 좋겠어요."

"동안이니 몸짱이니 하는 말보다 저는 한 살씩 나이를 먹어 가면서 인간적인 성숙함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마음의 순도를 유지하는 것은 배우에게는 생명같은 거예요. 배우를 볼 때도 눈가에 주름살 말고 '깊이'를 봐 달라고 하고 싶어요. 물론 저도 주름 싫을 때 있어요. 근데 그 주름에는 굉장히 많은 것들이 담겨 있어요. 울고, 웃고, 살아온 세월들. 이것은 배우에게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면접 때문에 성형한다는 이야기, 너무 슬프잖아요."

▲ 영화 '굿바이 싱글' 김혜수 [사진 = 영화인 제공]

아마도 20대 시절의 김혜수에게 '동안'이나 '주름살'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고 해도 이런 답이 나왔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30년 동안 연기를 해 오고, 40대의 나이에 접어든 김혜수는 이제 더 이상 그런 주변 세파에 휘둘리지 않고 '김혜수'라는 사람의 인생을 오롯이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것은 30년 동안 '배우 김혜수'로 살아오며 쌓아온 그녀의 자신감이 만들어낸 당당한 그녀의 길이다.

"배우라는 것이 내가 계속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관객들이 볼 이유가 있어야 보는 것이지, 의리로 봐 주지는 않아요.그래서 전 여러 선생님들의 연기를 나이가 들어서도 볼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경외감을 느껴요. 어릴 때는 그저 연기 잘 하는 대단한 선생님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그 분들 그림자만 봐도 고개 숙이며 눈물이 날 것 같아요."

[취재후기] 김혜수에게 연기는 아직도 어렵고 어려운 길이다. 아니, 오히려 연기 경력이 짧았던 10대와 20대보다 연기를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는 40대의 지금이 오히려 더 어렵게만 느껴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연기를 알면 알수록, 연기에 대해 알고 있기에 더욱 어렵게만 느껴진다는 김혜수라는 배우의 모습에서 앞으로도 김혜수라는 배우를 연기인생 40주년, 50주년, 60주년을 맞을 때까지도 계속 볼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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