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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진언, 키이라 나이틀리…고음 과잉 시대의 '낮은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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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진언, 키이라 나이틀리…고음 과잉 시대의 '낮은 목소리'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9.21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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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용원중기자] ‘누가누가 더 높이 질러대나’ 경쟁하는 고음 과잉 시대에 나즈막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두 남녀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케이블채널 Mnet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 6’의 곽진언과 다양성 영화 ‘비긴 어게인’의 키이라 나이틀리가 '반란의 주인공'이다.

지난 19일 ‘슈스케6’의 콜라보레이션 무대에서 곽진언-김필-임도혁이 부른 ‘당신만이’는 음원 출시 이후 멜론, 엠넷, 올레뮤직, 지니, 네이버뮤직, 다음뮤직, 소리바다, 벅스, 싸이월드 뮤직 등 10개 음원차트 1위를 휩쓸고 있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심사위원들로부터는 최고의 찬사를 들었다.

▲ '슈퍼스타K 6'의 싱어송라이터 곽진언과 임도혁 김필(오른쪽부터)

1977년 이치현과 벗님들이 부른 ‘당신만이’를 통기타 반주로 재해석한 무대는 날카롭게 찌르는 듯한 고음(김필), 청아하면서 윤기 흐르는 보컬(임도혁), 묵직한 저음(곽진언)이 어우러져 최고의 감동을 선사했다. 서로 다른 보컬톤을 지닌 세 참가자는 저음과 고음을 오가며 차곡차곡 화음을 쌓아나갔다. 허밍 파트에 민요 ‘아리랑’을 끌어들여 성가풍으로 진행한 대목은 청자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특히 김필, 임도혁의 고음 직후 곽진언이 옥타브 아래의 저음으로 노래를 이어나간 편곡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이를 프로듀싱한 인물은 곽진언이다.

홍대 길거리 뮤지션으로, 언더그라운드 싱어송라이터로 명성을 떨쳐온 곽진언은 ‘슈스케6’ 예선 무대에서부터 자작곡 ‘후회’, 들국화의 ‘매일 그대와’를 어쿠스틱 기타 연주와 함께 노래하며 주목받았다. 그는 고음을 과시하는 법 없이 오롯이 진심을 울림 큰 목소리에 실어나를 뿐이다. 지그시 눈을 감은 채 희로애락을 얼굴에 담아내는 모습은 스물세 살 청년이라기보다 6현의 구도자에 가까워 보인다.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을 자아낸다.

▲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며 영혼을 노래하는 곽진언[사진=Mnet 방송화면 캡처]

음악영화 ‘비긴 어게인’은 지난 9월20일 231만 관객을 돌파하며 ‘색.계’를 제치고 역대 국내 개봉 다양성 영화 3위에 올랐다. 음악영화 ‘원스’를 연출했던 존 카니 감독이 다시금 메가폰을 잡은 이 작품은 스타 명성을 잃은 뉴욕의 음반 프로듀서 댄(마크 러팔로)와 록스타 남친을 잃은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가 우연히 만나 노래를 통해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노래로 이야기를 하는 영화’란 찬사를 끌어낸 ‘비긴 어게인’ 흥행 돌풍의 일등공신은 음악이다. 영화에는 마룬5의 보컬인 애덤 리바인과 여주인공 키이라 나이틀리가 부른 순도 높은 노래들이 빼곡하다. 개봉 전부터 두 사람이 부른 노래가 국내 음원순위를 석권하며 바람을 지폈으며 개봉 후에는 13곡이 수록된 OST가 음원차트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네이버 뮤직 해외 톱100과 디지털 음악 서비스 멜론의 해외영화 OST 순위에서 1위부터 10위까지를 싹쓸이하는 현상까지 보였다. 키이라 나이틀리가 별다른 기교 없이 청아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듯 부르는 ‘Lost Stars’ ‘Tell Me If You Wanna Go Home’ ‘Coming Up Roses’는 고음의 디바들에게 지친 대중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뜨거운 반향을 일으키는 중이다. 애덤 리바인의 ‘Lost Stars’ ‘No One Else Like You’의 인기도 못지않다.

▲ '비긴 어게인'의 키이라 나이틀리

노래에도 트렌드가 있다. 특히 R&B 장르와 테크닉을 겨루는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으면서 고음을 무기로 내세우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3단 고음’ ‘4옥타브’ ‘하이 피치’를 잘 찍어야 ‘가창력 있는 가수’라는 식의 편견이 어느새 가요계를 지배하고 있다. 박정현, 손승연, 바다, 옥주현, 다비치의 강민경, 알리, 에일리, 효린, 소향 등 빼어난 여성 보컬리스트들이 두각을 나타내며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됐다.

20세기를 풍미한 재즈 보컬리스트 빌리 할러데이, 니나 시몬, 루이 암스트롱 그리고 국내 가요계의 배호, 문주란이 들려줬던 가슴 저릿한 저음의 매력은 그 시대를 살았던 세대 혹은 음반을 통해 접했던 요즘 세대의 뇌리에 또렷하게 각인돼 있다. 잔잔한 기타선율과 목소리만으로 포크음악 붐을 선도했던 음유시인 밥 딜런·존 바에즈·양희은·송창식·트윈폴리오·정태춘 박은옥, 삶을 관조하며 노래로 말을 걸던 김광석·유재하·한영애 등 숱한 보컬리스트들은 ‘경악할 고음’ ‘화려한 테크닉’에 갇히지 않는 존재다. 그들은 대중과 감정을 나누며 감동을 빚어냈기에 위대한 뮤지션으로 인정받았다.

고음 만능 시대에 무명의 길거리 악사 곽진언과 깡마른 여배우 키이라 나이틀리가 일으키는 낮은 목소리 바람은 그래서 더욱 빛이 난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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