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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인생 스토리② 소녀, 드디어 모델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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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인생 스토리② 소녀, 드디어 모델이 되다
  • 배선영 모델 겸 스타일원미 대표
  • 승인 2014.10.15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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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69cm의 모델치곤 아담한 키. 평범했던 울산 소녀의 꿈 많은 상경. 잡지모델 데뷔, 온라인 쇼핑몰 성공, 뉴욕 런웨이 도전과 6년간의 미국 활동, 귀국 후 스타일링 디렉터로 활동하기까지 수많은 도전과 실패를 경험...  모델 출신인 배선영 스타일원미(www.style1.me) 대표의 범상치 않은 약력입니다.

배 대표는 작은 키 때문에 국내 무대에 서지 못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뉴욕과 LA 런웨이에 섰습니다. 그 과정에서 성취감도 맛봤지만 세계의 높은 벽도 실감했다고 합니다.

스포츠Q는 '도전의 가치'를 소중히 여깁니다. 패션 모델을 꿈꾸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배 선영 대표의 '뉴욕 런웨이 도전기'를 연재합니다. 국내 또는 뉴욕의 런웨이에 서기 위해 도전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좋은 지침서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배선영 모델 겸 스타일원미 대표] 2001년, 모델의 꿈을 가지고 모델 학원을 수료하고 모델 일에 도전했지만 성과는 없었고 하루하루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원래 나는 런웨이 모델이 꿈이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때부터 아무리 키 크기 운동을 해도 키는 170cm 를 넘지 못했다. 그래도 꿈만은 항상 런웨이의 스포트라이트를 꿈꾸곤 했다.

▲ 라이센스지 얼루어 패션 화보 중 일부. [사진=배선영 대표 제공]

2000년대 초반 나는 서울 패션 위크, S.F.F.A 컬렉션을 자주 보러 다녔었는데, 시원시원한 캣워크에 반해 장윤주 선배를 동경했었다. 그래서 '모델 장윤주' 라는 다음 카페를 개설하고 회원수가 4000여명이 넘을 때까지 운영했었다.

시즌마다 회원들과 장윤주 선배를 보러 컬렉션에 가서 응원하곤 했었고, 컬렉션에 갈 때마다 나는 베스트 드레서로 사진이 찍히곤 했었다.

나의 롤모델을 삼아 장윤주 선배의 캣워크 동영상을 하루에도 수 십번 이상 보고 연구했고, 선배가 나온 화보와 인터뷰 등을 항상 가까이 했었다.

그러던 중에 ‘나도 가능성이 있는 모델인데 왜 난 주목받지 못하고 이렇게 팬 카페만 운영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꿈을 이루고자 장윤주 선배 카페를 폐쇄하기로 마음 먹었다.

압구정동에 있는 같은 피트니스 센터를 다녀서  장윤주 선배와 자주 부딪치곤 했는데  팬 카페를 폐쇄했다는 사실이 많이 미안했었다.

나는 2000년도 모델 학원을 다닐 때부터 항상 운동을 하며 몸매를 가꿨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비롯해 요가를 하루 중 2-3시간은 할애했었다. 지금도 조깅과 스트레칭은 생활습관이 되어버렸다.

'모델일을 어디서부터 하면 좋을까…' 고민하며 찾아보던 중, 잡지 '에꼴' 촬영을 하게 되었을 때 그 매니저가 사진을 돌렸던 방법이 문득 생각났다. 그 매니저는 잡지사마다 나를 데리고 가서 에디터에게 프로필을 건네며 인사를 시켰다.

우편으로 보내는 것보다  '그 방법이 최선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인터넷 검색 후 여러 연예인들의 사진이 걸려 있는 프로필 전문숍에서 사진을 찍었다.

모델에게 있어서 프로필 사진은 서류전형과도 같다. 그 사진 몇 장 안에 자신의 이미지를 녹여 낼 수 있어야 한다.

여러 가지 의상을 준비하고 청순함, 귀여움, 발랄함, 섹시함의 이미지를 연출했다. 이미지 시안을 준비해 촬영 전 스태프들과 상의하며 메이크업과 분위기를 원하는 대로 만들었다.

드디어 사진을 찾으러 갔다가 사진관에서 나온 날, 압구정 로데오 길에서 나는 쎄씨, 에꼴 등을 비롯해 다섯 곳의 잡지사에서 그 달의 베스트드레서로 사진이 찍히게 되었다. 모델은 어딜 가든지 준비된 모습으로 다녀야 한다는 말이 공감되는 순간이었다.

그 당시 나는 여러 잡지사에서 '잡지사 다섯 곳의 베스트 드레스로 뽑힌 아이'라는 말이 돌고 돌아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다.

내 인생에서 그때가 '리즈 시절'이었는지…. 어딜 가든 엔터테인먼트사의 명함을 하루에도 두 세 장씩 받았으며, 걸 그룹 멤버나 연기자의 제의도 많이 받았었다. 하지만 당시는 오로지 런웨이 모델이 되고 싶은 욕망만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 쎄씨 모델 초기의 내 모습(왼쪽)이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시절의 화보가 아닌 패션 꼭지다. [사진= 배선영 대표 제공]

나는 내 인생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잡지사 여러 곳에 프로필 사진을 직접 돌리러 다녔다. 잡지에 보면 잡지사 주소가 있는데 사진 뒤에 내 정보를 써서 들고 무작정 찾아갔다. 너무 떨렸다.

'건물에 못 들어가게 하면 어쩌지?' '그럼 난 또 모델 일을 어떻게 시작 해야 하지?' '제발 사진만 놓고 올 수 있었으면….'

온통 간절한 소망만 있었다.

그런데 어렵게만 생각했던 잡지사의 벽은 겁먹었던 만큼 높지는 않았다. 에디터들은  일상인 듯 아무렇지 않게 사진을 놓고 가라고 했다.

2003년쯤 어느 날 부터 '쎄씨'라는 잡지사에서 전화가 왔다.

"선영이니?"

"네"

"여기 쎄씨 잡지사인데, 우리 촬영하자.  O 월 O일 중앙 M&B 건물 지하1층으로 와~ "

나는 '드디어 때가 왔구나!' '하늘이 또 한번 나에게 기회를 주는구나!!' '길목잡지가 아니구나!!!'

뛸 듯이 기뻤고 온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행복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패션 화보를 찍을 수는 없었다.

작은 촬영부터 열심히 임했다. 나는 예전의 에꼴 데뷔와 동시에 좌절을 맛본 그 시기부터 언제나 포즈와 표정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역시 노력하는 자만은 신이 포기하지 않는가 보다.'

나는 잡지책 거의 뒷장에 나오는 다이어트 요법 이라든가 연예인 따라하기 메이크업 이라든가…. 패션 화보가 아닌 그런 작은 촬영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작은 촬영이라도, 나 '배선영'을 불러주는 곳이 있다는 현실에 정말 눈물 날 듯이 감사했다. 그리고 열심히 했다.

모든 스태프들에게 인사도 잘했고 시간도 철저히 지키고 힘든 내색 한번 한 적이 없다. 더운 여름에 겨울 옷을 입고 촬영하고, 겨울에 여름옷을 입고 촬영해도 너무 뿌듯했다. 어릴 적 부터 꿈꿔왔던 '모델'이라는 꿈이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정말 꿈꾸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이루어 진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나는 진짜 모델이 되었다. 그토록 바라던 모델이 되었다. 정말 어두운 터널을 통과해 한줄기 빛을 따라 모델 세계로 들어간 것이다. 나의 꿈인 런웨이 모델은 아니었지만 학창시절 그토록 동경하던 잡지모델이 된 것이다.

▲ 쎄씨 9주년 기념 화보다. 당시 잘나가는 모델들만 찍었다. 위 왼쪽이 나다. [사진=배선영 대표 제공]

실패를 여러 번 맛본 탓에 나는 자만하지 않는 모델이 될 수 있었다. 매일 세 시간은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했다. 식단조절을 하며 탄력 있는 몸매를 가꾸고 나만의 포즈와 표정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백화점에 가서 여러 가지 의상도 많이 입어 보며 포즈를 취해 보기도 했다.  모델이 되어서도 잡지를 보며 포즈와 표정 연습을 꾸준히 했다.

작은 촬영부터 열심히 하다 보니, 다른 잡지사의 촬영 제의도 차츰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신디더퍼키, 키키, 휘가로, 유행통신 등 지금은 폐간된 중철지를 비롯해 얼루어, 코스모걸 등 라이센스지의 촬영도 많이 할 수 있게 되었다.

매년 제일 잘나가는 모델들만 수영복 화보를 찍으러 해외 촬영을 갈 수 있었는데, 2004년 여름에는 '유행통신'에서 사이판으로 해외 촬영을 떠나게 되었다. 그 촬영은 '엄현경, 정윤조'와 함께 했었는데 아직도 만나면 그때 그 추억을 꺼내곤 한다.

나의 스케줄 다이어리는 매달 일정이 꽉 차게 되었고, 멋있는 패션화보 모델로 활동하게 되었다. 이제는 여러 페이지에 나만 혼자 나오는 패션 화보 모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당시 함께 활동했던 친구들로는 '엄현경, 홍수아, 황샘, 이은성' 등이 있었는데 그때 그 친구들은 중고등 학생이었고 나는 23세 정도였다.

쎄씨 촬영이 끝나면 떡볶이도 함께 사먹고, 강남에 있는 잡지사에서 촬영이 끝나면 압구정 로데오길의 카페에서 밥먹고 수다떨던 추억이 아직도 새록새록하다.

'저 동생들처럼 나도 어릴 때 부모님께서 모델 일을 반대만 하지 않으셨다면 지금쯤 모델로 더 성공하지 않았을까?'

나는 그때, 나이 콤플렉스를 느끼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23세면 나도 많이 어린 나이였고 뭔들 못하겠냐는 생각이 드는데 말이다. 이처럼 안 보이는 생각의 울타리에 나를 잠시 가둬놓기도 했었던 것 같다.

잡지모델  활동을 하니 여러 광고 에이전시에서 연락이 오고 광고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그 당시 포스코 및 코카콜라 등 여러 광고를 찍었다.

그리고, 모델라인 시절 나에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하셨던 워킹 선생님의 추천으로 스위스 시계 'RADO'의 캠페인 화보를 신화의 '에릭' 씨와 촬영하게 되었다. 그  광고는 보그, 바자 등의 유명 라이센스 지에 수개월간 나왔고, 백화점 및 시계 매장에 한참 동안 걸려 있었다.

▲ 워킹 선생님의 추천으로 오디션을 보게된 RADO 시계 광고 중에서. [사진=배선영 대표 제공]

언제부턴가 부모님은 나의 꿈을 응원해 주셨다.

그렇게 어린 시절 모델의 꿈을 반대만 하셨던 부모님께서 달마다 잡지가 나오는 날이면 서점에 가셔서 내가 나온 잡지를 구입하셨다. 은행과 미용실 등 백화점에서 내가 나온 사진을 보시고  좋아 하시곤 했다.

비로소 내 꿈을 인정 받았고, “내 딸은 모델이야” 라고 말씀 하시는 걸 들으며 내심 뿌듯했다. 그렇게 나는 모델생활을 했다.

지금은 배우가 된 ‘이민기’의 모델 초창기 시절, 3일동안 뮤직비디오를 함께 밤샘 촬영한 적도 있었다. 당시 살던 논현동에서 친했던 동네 동생이라 가끔 밥을 먹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 당시 친했던 친구들이 거의 대부분 연예인이 되어 서로 각자의 길을 걷다 보니 쉽게 만나지 못하고 잊혀지는 게 아쉽기도 하다.

보통의 사람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과 우정을 쌓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일하는 모델계는 함께 꿈을 꾸던 친구들이 점점 멀어지기도 한다는 점이 안타까울 때가 있다.

몇 곳의 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해서 소속이 되고 연기자 준비도 한동안 한 적이 있다. 송혜교의 '가을동화'에 나오는 은서의 대사를 하며 눈물 연기를 연습했고, 공효진의 '눈사람' 대사 연습을 하며 연기의 맛에 매료된 적도 있다.

어느 날은 소속사에 유명 개그 프로그램의 PD 분이 오셨는데 내가 눈물 연기하는 것을 보시더니 개그우먼으로 데뷔하라고 하셨다. 지금은 미녀 개그우먼들이 많지만 그 당시만 해도 그런 제안에 자존심이 상할 정도로 너무 불쾌했다.

난 스타가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모델을 하며 나만의 개성이 있는 연기자 길을 걷고 싶었기 때문이다.

개그우먼 제안은, 모델라인을 다닐 때 동기들이 “넌 키가 작아서 모델이 절대 될 수 없어”라고 했던 그 말을 듣는 기분이었다.

그 소속사에서 친해진 친구 중 '김나영'이라는 친구는  m.net  VJ로 데뷔를 하게 되었고, 케이블 방송부터 시작해 국군방송, 아침방송 등을 거쳐 지금은 유명 방송인이 됐다. 멀리서나마 그녀를 볼 때마다 정말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난 그 친구가 고생하던 무명시절, 옆에서 서로 응원했으며 해가 바뀔 때마다 '2004년 유망주' '2005년 유망주'라는 수식어를 붙여주며 기를 북돋아 주곤 했다.

지금은 그 친구가 패션으로 주목받고 있는데 패션 센스가 뛰어난 그 친구에게서 배운 점도 많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나는 패션은 어느 여름 저녁 나영이의 패션이다.

'카키색 반바지와 아이보리색 오프숄더 탑, 그리고 아담한 밀짚모자.'

그 컬러의 조합은 10년이 지난 지금 매치를 해서 밖에 입고 나가도 스타일리시해 보일 만큼 멋진 썸머 룩이었다.

한번은 m.net 에서 열리는 시상식에 나영이가 리포터처럼 연예인들의 인터뷰를 맡게 되었는데, 그 당시는 유명하지 않아 협찬이 되지 않았다.

우리는 밤 늦게 동대문 도매상가를 돌아다니며 드레스와 공단으로 된, 팔꿈치까지 오는 장갑을 샀다. 나영이가 그 시상식에서 다른 연예인들에게 주눅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 후에도 나는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할 때 나영이에게 의상 협찬을 해주었고, 나영이는 방송 사진을 쇼핑몰에 올려서 판매를 촉진하게끔 도와주곤 했었다.

▲ 유행통신 사이판 수영복 화보를 촬영하기도 했다. 오른쪽이 나다. [사진=배선영 대표 제공]

나는 모델로서 왕성한 활동을 할 때 개인 미니 홈페이지에 항상 데일리룩 사진을 업로드하곤 했는데, 항상 나의 패션 아이템들에 대해 질문을 많이 받았다.

“이 스커트 어디서 샀어요?” “이 스타킹은 어디서 구매하셨나요?”

2004년 여름, 나는 모델활동을 하며 집 렌트비나 충당해야겠다고 생각하여 온라인 쇼핑몰을 오픈하게 되었다. 그 당시는 그런 사업이 신기했는지 여러 잡지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 왔다.

여러 잡지사에서 서로 기사를 써주겠다고 하였고, 매월 인터뷰 기사가  나가면서 운영하던 온라인 쇼핑몰의 회원수는 점점 늘어만 갔다.

'옷 잘 입는 모델 배선영'의 온라인 쇼핑몰이라는 광고효과를 톡톡히 보았기 때문에 광고비 한 푼 들이지 않고 잡지 마케팅의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찰리 채플린의 명대사 중에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고 했던가…

온라인쇼핑몰 창업을 하며 나는 부딪치면서 배울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에 동대문에 의류를 사입(구입)하러 가서 온라인 쇼핑몰이라고 말하면 물건을 주지 않는 일이 다반사였다. 무시를 받기 일쑤였다.

새벽시장을 돌며 물건을 사입했고, 코디를 한 후 사진을 찍어 하루종일 업로드를 해야만 했다. 다행히도 사진학과를 나와서 주변에는 사진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대학교 강의시간 매일 모델만 서느라 놓쳤던 촬영기법 및 조명, 그리고 포토샵을 틈틈이 사진학과 동기들에게 배우며 쇼핑몰 운영에 매진했다.

하지만 쇼핑몰 운영은 보는 것처럼 쉽지 않았다. 물건을 사입하는 것부터 택배 배송까지 정말 일이 많았다. <계속>

패션 인생 스토리① 소녀, 꿈을 꾸다 도 함께 보세요^^ 

패션 인생 스토리③ 쇼핑몰에 도전하다 도 함께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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