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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터뷰] '키다리 아저씨' 한기범의 인생 2막 '희망' 리바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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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터뷰] '키다리 아저씨' 한기범의 인생 2막 '희망' 리바운드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10.30 1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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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병 수술 뒤 '한기범희망나눔' 설립…농구공으로 사회 밝히는 나눔 자선농구

[300자 Tip!] 선수들은 현역에서 물러나는 순간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 일찌감치 구단으로부터 차세대 감독감이라고 평가받는다면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외국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같은 행운은 극소수에게만 주어진다. 현역에서 은퇴했을 때 자신이 그동안 열정을 쏟아왔던 종목과 계속 인연을 맺고 있다면 그나마 행운이다. 대부분은 사업을 하는 등 스포츠 현장을 떠나게 된다. 한 농구인은 자신이 그동안 해왔던 농구를 통해 사회를 더욱 밝게 만드는 일에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그 역시 잠시 코트를 떠났지만 자신이 사회에 진 빚을 갚기 위해 다시 농구계로 돌아왔다. 1980년대와 1990년대 대표적인 센터였던 한기범(50)의 스토리다.

▲ 한기범은 두차례 심장수술을 통해 사회에 진 빚을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농구로 갚아나간다는 생각이다. 이를 위해 그는 사단법인 한기범희망나눔을 설립, 희망농구 대회를 열어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의정부=스포츠Q 글 박상현·사진 최대성 기자] 현재 한국 농구를 이끌어가는 지도자 가운데 현역 시절 중앙대학교와 기아자동차를 거쳐던 농구인이 적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농구인이 허재(49) 전주 KCC 감독이다. 고양 오리온스 코치를 지냈던 김유택(51) 중앙대 감독과 김영만(42) 원주 동부 감독 역시 중앙대와 기아자동차를 거쳤다. 승부조작에 연루되면서 불명예스럽게 농구와 인연을 마감한 강동희(48) 전 감독 역시 중앙대, 기아자동차에서 활약했다.

1980~1990년대 한국 농구를 주름잡았던 중앙대와 기아자동차에서 허재, 김유택 등과 함께 활약했던 농구인이 또 있다. 바로 한기범이다.

205cm의 길쭉했던 이 농구 선수는 중앙대, 기아자동차의 골밑을 지키며 맹활약했다. 1989년에는 농구대잔치에서 최우수선수(MVP)상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한기범이라고 하면 옛날 농구를 했던 것보다는 최근 방송에 많이 나왔던 것을 많이 생각한다. 개그콘서트 등 개그 프로그램에 가끔 모습을 나타낸, 키가 크고 웃긴 아저씨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 한기범은 중앙대학교와 기아자동차에서 뛰며 1980년대와 1990년대를 이끌었다. 그는 농구대잔치 MVP에도 선정되는 등 한국 농구의 버팀목으로 활약했다 [사진=한기범희망나눔 제공]

하지만 그는 여전히 농구와 인연을 맺고 있다. 한때 농구를 떠나 외도(?)를 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사회에 졌던 빚을 다시 갚아야 한다며 자신이 그동안 오래토록 해왔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농구로 되돌아왔다.

그는 현재 한기범희망나눔 대표이자 한기범농구교실 단장이다. 한기범희망나눔은 다음달 2일 의정부실내체육관에서 '스타와 함께 하는 희망농구'를 연다. 벌써 7번째를 맞는 이번 행사에는 KBS와 SBS 개그맨을 비롯해 박찬숙, 정선민, 천은숙, 정은순, 김지윤, 우지원 등 추억의 농구 스타들이 모두 참가한다.

◆ 두 차례 심장수술로 농구로 되돌아오다

한기범은 1986년부터 10년 동안 기아자동차의 선수로 활약하다가 은퇴했다. 프로농구가 생기기 전에 현역에서 물러났다. 이후 그는 구로고등학교와 중앙대학교 코치를 거쳤다. 그리고 이따금씩 방송에도 모습을 드러내며 대중들과 친숙한 인물이 됐다.

하지만 가족들의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인한 별세로 그의 불운이 시작됐다. 1981년 일찍 부친을 여읜 그는 2000년 2월 남동생까지 심장마비로 세상을 뜨면서 충격에 빠졌다. 아버지와 동생을 모두 심장마비로 잃자 '혹시 나도?'하는 생각에 진단을 받았다.

그 역시 심장마비의 이상 징후가 발견됐다. 거인병의 일종인 말판증후군이었다. 심혈관계통의 이상 발육으로 DNA 이상 때문에 생기는 유전병이었다. 205cm의 그 역시 말판증후군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혈관의 대동맥이 심하게 부풀어 있었다. 언제 혈관이 터져 갑작스럽게 사망할지도 모른다는 진단까지 나왔다.

실제로 말판증후군 때문에 세상을 하직한 선수들도 꽤 있다. 대부분이 장신의 농구, 배구 선수들이었다. 1990년대 성균관대와 현대자동차서비스의 센터로 활약했던 배구 스타 김병선 역시 말판증후군에 따른 심장마비로 22세 나이로 요절하기도 했다.

한기범은 동생의 장례가 끝나자마자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수술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2000년에 첫 수술을 받았던 그는 2008년에 한 번 더 수술대에 올랐다.

두 차례 심장수술은 그에게 새로운 삶을 가져다줬다. 벌써 지천명의 나이가 됐지만 농구를 4쿼터 이상 뛰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정상인처럼 생활이 가능해졌다.

▲ 한기범은 말판증후군으로 인한 심장수술을 두 차례 받은 후 한기범희망나눔을 설립, 희망농구 행사를 열고 있다. 행사에서 나오는 수익금은 심장병을 앓는 어린이를 비롯해 다문화가정, 소외계층에 기부된다.

하지만 심장수술은 그에게 빚으로 남았다.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해 2000년에는 수술비 등 치료비가 6000만원 넘게 나왔고 8년 뒤 받았을 때 역시 사업 실패 때문에 경제적으로 크게 어려워 타인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심장수술을 받으면서 우리 사회에 심장병 때문에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죠. 저 역시 심장병으로 고생하고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해 도움을 받는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겨운지를 잘 압니다. 그래서 농구를 통해 제가 졌던 빚을 사회에 되돌려주자고 결심했죠. 희망을 나누면서 사랑과 세상을 함께 나누는겠다는 거죠. 그래서 사단법인 한기범희망나눔을 만들게 된 겁니다."

한기범이 한기범희망나눔을 통해 자선농구를 하게 된 것은 홍명보(45) 전 축구대표팀 감독과 무관하지 않다. 홍명보 감독 역시 자신의 장학재단을 통해 유망주 선수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한편 홍명보 자선축구를 열기도 했다. 여기에 착안했다.

또 때마침 의정부시장과 만난 것도 자선농구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의정부시장이 의정부실내체육관을 흔쾌히 빌려줬고 의정부내 기업과 지인들로부터 십시일반 지원을 받아 농구 선후배들과 함께 2011년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첫 자선농구를 열었다. 중앙대, 기아자동차에서 함께 했던 강동희, 허재, 김유택과 함께 이충희(55) 전 감독, 문경은(44) 서울 SK 감독이 첫 행사를 함께 했다.

"당시만 해도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시간도 늦춰지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죠. 전문기획사에 맡기면 좀 더 수월하게 진행됐을텐데 그 돈을 좀 아껴보려고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가 다 도맡아서 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행사시간은 자꾸 늦춰지고 함께 행사에 참여했던 농구인들은 불만을 가졌죠. 그래도 첫 행사치고는 무사히 넘겼습니다."

당시 모았던 수익금은 모두 어린이심장재단에 기부했다. 또 다문화가정과 소외계층에도 기부하기도 했다. 2011년을 제외한 매년 두 차례 서울과 의정부를 오가며 희망농구 행사를 열고 있으며 올해 역시 지난 5월 서울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연데 이어 다음달 2일 의정부실내체육관에서 행사를 연다.

▲ 한기범은 매년 2회 스타와 함께 하는 희망농구를 연다. 희망농구 행사는 농구계 선후배들을 비롯해 연예인들이 총출동한다. [사진=한기범희망나눔 제공]

◆ 은퇴 뒤에도 스포츠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풍토 기대

한기범희망나눔을 통해 그 역시 다시 농구계로 돌아왔지만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구로고등학교와 중앙대학교 코치를 역임하긴 했지만 자신이 감독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감독이라고 하면 경기 전체를 볼 수 있는 시야도 필요하고 상대팀에 대해 완벽하게 분석할 수 있는 통찰력도 있어야 하죠.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것은 선수들을 완전히 휘어잡을 수 있는 카리스마까지. 그런데 저는 카리스마가 부족해요. 순둥이거든요."

자신을 순둥이라고 말하자 옛 기억이 떠올랐다. 한기범이 기아자동차에서 뛰었을 때 코트에서 폭력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기범은 대걸레자루를 휘둘렀고 이는 그대로 언론에 보도됐다.

"삼성전자와 경기였는데 김유택과 임정명이 맞부딪히면서 갈등이 시작됐죠. 이 때문에 삼성전자 선수들이 코트로 뛰쳐나가려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크게 다치겠다 싶어서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앞섰죠. 그런데 뭐 경황이 있어야죠. 가장 먼저 보이는게 대걸레자루였어요. 정신없이 휘두르긴 했는데 누구를 때리려고 한게 아니에요. 삼성전자 선수들 나오지 못하게 하려고 한거지.(웃음)"

이야기는 다시 은퇴 후의 삶으로 되돌아갔다. 그는 코치직을 떠나 한동안 사업을 시작했다. 탈모방지 삼푸 사업을 하기도 했다. 꽤 판매도 잘됐다. 그런데 정작 손에 쥔 것은 거의 없었다. 계약 과정에서 잘못돼 그는 남좋은 일만 시키고 말았다.

▲ 한기범은 대걸레를 휘둘렀던 일만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 나온다. 그러나 당시 대걸레를 휘둘렀던 것은 상대 선수가 코트에 나오지 못하도록 겁을 줬던 것이지, 폭력을 행사하려 했던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운동만 하다보니 스포츠 선수들이 은퇴한 뒤 사회에 나오게 되면 정말 아무 것도 몰라요.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하는데 상당히 부족하죠. 결국 스포츠인들이 계속 스포츠를 통해 사회에서 일할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되어야 하죠. 그러려면 결국 스포츠인들이 생활체육에 적극 뛰어들어야 합니다. 농구만 하더라도 농구 동호회들이 꽤 많거든요. 동호회나 생활체육을 하는 곳에 은퇴 선수들이 지도하는 사례가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그 역시 한기범농구교실을 통해 아이들에게 농구를 가르치고 있다. 유명선수들의 이름만 가져다 쓰는 몇몇 농구교실과 달리 한기범농구교실은 능력있는 강사와 함께 자신이 직접 관리하고 지도에 신경을 쓰고 있다. 희망나눔 사업과 농구교실까지 요즘 그는 몸이 두서너 개라도 모자라다.

"야구에도 은퇴선수협회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축구도 은퇴선수들이 모여 많은 사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농구는 인원이 적긴 하지만 축구나 야구를 벤치마킹해서 은퇴선수들이 단체를 만들고 이를 통해 생활체육이나 학교의 방과후 수업에 투입되면 어떨까 싶어요. 은퇴선수들이 할 일은 많아요. 그런데 연계가 안되는 것이 아쉬워요."

◆ 아시안게임서 남녀 동반 우승했지만 갈 길이 멀다

그는 인천 아시안게임 당시 꿈을 꿨다. 평소에 꿈도 잘 꾸지 않고 꾸더라도 길몽은 별로 없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외국에서 농구를 하는데 경기가 끝나고 나서 금메달을 주는 거예요. 그런데 금메달 아래에 고리가 하나 더 있었는데 거기에 금메달을 하나 더 걸어주네요? 해몽을 해보니까 재물운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잔뜩 기대했는데 그게 아시안게임 남녀 동반제패로 이어지네요. 김이 좀 새긴 했지만 꿈이 딱 들어맞아 너무 기뻤어요."

하지만 그는 아시안게임의 남녀 동반 금메달에 안주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현재 한국 농구의 상황이 너무나 좋지 않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 한기범희망나눔이 주관하는 희망농구 대회에는 직접 한기범도 출전한다. 두차례 심장수술을 받은 그는 벌써 50 나이가 됐지만 농구를 뛸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다.[사진=한기범희망나눔 제공]

"요즘 누가 아이들에게 운동시키려고 하나요. 모두 공부시키려고 하죠. 게다가 귀하게 키우니까 더더욱 운동을 시키지 않으려고 하고요. 제 아들도 중학교 2학년인데 이제서야 늦게 농구를 시작했어요. 실제로 초등학교 가면 선수 구하기가 힘들어서 팀도 잘 운영이 안됩니다."

학생 선수가 배출되지 않고 학원 농구가 예전같지 않은 지금 해결책은 역시 클럽시스템의 정착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공부와 스포츠를 병행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학생들이 스포츠와 더 친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운동하고 훈련하느라 공부를 뒷전으로 할 수 밖에 없는 현행 방식이 아니라 공부와 농구를 함께 할 수 있는 클럽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해요. 이를 위해서는 방과후 수업도 활성화해야 하고 할 일이 많아요."

농구 하나로 세상을 밝게 만드려는 그를 보면 마치 동화책에 나오는 키다리 아저씨 같다.

"키다리 아저씨까지는 아니고요. 뭐 키가 크니까 그런 의미에서 키다리 아저씨죠. 그런데 아직까지 한기범희망나눔이나 모든 사업들이 지원을 받아서 운영되고 있는 것이 좀 아쉬워요. 빨리 재정 자립을 이뤄내서 다른 분들께 도움을 받지 않으면서 계속 사업을 펼쳐나갔으면 좋겠어요."

[취재후기] 그의 인기는 여전하다. 사진 촬영을 하는데 몇몇 의정부 시민들이 그를 알아보고 악수를 청한다. 키가 큰 것 하나만 보고 그를 알아보는 것은 아니다. 자선농구행사 열린다는 포스터를 봤다는 사람들이었다. 농구를 꼭 보러가고 싶다는 시민들이 많았다. 한기범의 농구 사랑과 나눔 실천이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효과다. 그가 들고 있는 농구공 하나에 사회가 좀 더 따뜻해진다면 그것으로 그의 농구 인생 제2막은 대성공이 아닐까.

 

▲ 한기범은 스포츠 선수들이 은퇴 뒤 계속 스포츠 현장에 남을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스포츠 선수들이 생활체육 지도자가 되거나 방과후 수업 선생님이 돼 계속 스포츠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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