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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터뷰] '잡초근성' 신종훈, 아시아 넘어 세계로 뻗는 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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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터뷰] '잡초근성' 신종훈, 아시아 넘어 세계로 뻗는 펀치
  • 이세영 기자
  • 승인 2014.12.05 10: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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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게임 우승 발판삼아 '한국복싱 최초' 그랜드슬램 도전 선언

[300자 Tip!] 스물다섯의 나이에 이처럼 파란만장한 선수 생활을 보낸 이가 또 있을까. 신종훈(인천시청)은 복싱 국가대표가 된 뒤 출전한 국제대회에서 한 해 걸러 환희와 절망을 맛봤다. 메달을 따지 못할 때마다 수없이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쳐지나갔지만 신종훈은 불굴의 의지로 다시 일어났고 마침내 그랜드슬램의 절반인 아시아 무대를 평정했다. 환희를 뒤로하고 또 다른 꿈을 향해 전진하는 신종훈은 내년 세계선수권과 내후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통해 한국복싱 최초 그랜드슬램에 도전한다.

[인천=스포츠Q 글 이세영 기자·사진 최대성 기자] 2014년 10월 3일 인천 선학체육관.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복싱 49㎏급 결승전이 열린 가운데 한 선수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며 포효했다. 그는 한국 복싱의 간판 신종훈이었다.

토너먼트를 치르며 눈에 멍이 심하게 든 신종훈은 4년 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자신에게 8강전 탈락을 안겼던 자키포프 비르찬(카자흐스탄)을 꺾고 금메달을 획득했다. 4년 만에 펼친 화끈한 복수전이었다.

▲ 집안을 세우고자 시작했던 복싱. 신종훈은 남다른 승부욕과 근성으로 한국 복싱의 간판이 됐다.

“상대가 세계랭킹 1위 선수였기 때문에 마음을 냉정하게 먹고 링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이기고 나니 평정심이 무너지더라고요. 세리머니를 할 때 태극기를 거꾸로 든 것도 나중에 알았습니다.”

신종훈에게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절실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이후 긴 슬럼프에 빠져 있다가 가까스로 출전한 첫 대회이기 때문이다. 신종훈은 복싱으로 다시 웃기 위해 쉴 새 없이 펀치를 날렸고 마침내 3년 만에 메이저 대회에서 금메달을 거머쥘 수 있었다.

◆ '내 방이 있는 것'이 소원이었던 소년

오래 전부터 미디어를 통해서 비춰졌던 것처럼 복싱은 배고픈 운동이다. 헝그리 정신이 떠오른다.

신종훈이 복싱을 시작한 배경도 여느 선수들과 다르지 않았다. 1남 3녀 중 둘째로 태어난 신종훈은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아 어렸을 때 부모님과 함께 방 두 칸짜리 집에서 살았다.

여섯 식구가 방 두 칸에서 사는 것은 매우 불편한 일이었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를 어떻게 보냈는지도 몰랐을 정도였다. 그는 복싱을 통해 반드시 자신만의 공간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어 했다.

“어렸을 적 꿈은 제 방을 갖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방 세 칸에 화장실 두 개가 달린 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었지요. 그래서 정말 열심히 운동을 했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꿈을 이뤘고 부모님과 누나, 동생들도 잘 살고 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복싱을 시작한 신종훈은 청소년기에 누려야 할 것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교복을 입고 평범하게 학교생활을 한 친구들이 부러웠다.

신종훈은 “운동이 너무 힘들어서 부모님께 그만두겠다는 이야기까지 했었다”며 “아버지께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어머니께서 운동을 계속 하라고 하셨다. 집이 구미에 있었고 경산에 학교가 있었는데 매주 어머니가 학교까지 오셔서 뒷바라지를 해주셨다. 어머니가 다시 집으로 가실 때 참 많이 울었던 것 같다”고 떠올렸다.

▲ 신종훈이 글러브를 낀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의 뒤에 있는 태극기가 눈에 띈다.

◆ 뚝 끊겼던 지원, 인천 아시아드 계기로 늘어나

신종훈이 가정을 세우기 위해 선택한 복싱은 2002년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3개, 은메달 2개, 동메달 5개를 따낸 이후 두 차례 대회에서 '노 골드'로 떨어졌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 3개, 동메달 1개에 그치더니 4년 뒤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단 한 명도 결승에 진출하지 못하는 굴욕을 맛봤다.

국제대회에서 성적이 부진하자 외부에서 들어왔던 지원이 뚝 끊겼다.

“처음에는 여기저기서 운동화와 운동복 등 훈련에 필요한 것들을 많은 기업들이 후원해줬습니다. 하지만 복싱이 대중들의 기억에서 잊히면서 도움의 손길도 끊겼습니다. 저희가 성적을 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다른 투기종목과 많이 비교가 됐지요. 유도나 레슬링 같은 경우는 근육 보충제가 많이 들어왔는데 저희 복싱 선수들에게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때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많이 느꼈습니다.”

하지만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신종훈이 금메달을 딴 뒤 다시 후원이 늘었고 신종훈을 비롯한 국가대표와 실업팀 선수들은 더 나아진 환경에서 운동을 할 수 있게 됐다.

신종훈은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모든 선수들이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을 못 딴다면 한국 복싱이 완전히 추락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한마음 한뜻으로 노력한 결과 금메달 2개, 은메달 3개, 동메달 1개를 따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말했다.

▲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뼈저리게 겪은 신종훈.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복싱에 대한 지원이 늘어 누구보다 기뻐했다.

◆ 두 차례 메이저 대회 실패, 잡초근성 키웠다

아직 스물다섯밖에 되지 않았지만 신종훈의 복싱 인생은 한 편의 영화로 만들어도 될 정도로 파란만장했다.

2009년 밀라노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딴 신종훈은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가장 유력한 금메달 후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신종훈은 세계선수권에서 올린 기세를 광저우 아시안게임까지 이어가지 못했다. 그는 광저우 대회 8강전에서 카자흐스탄의 비르잔 자키로프에게 패하고 말았다.

기대가 컸기에 실망감도 컸다. 운동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이때 당시 대표팀 감독이었던 이승배 감독이 "이것은 살아가는 데 과정일 뿐이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용기를 불어넣었고 신종훈은 다시 체육관으로 향해 훈련에 매진했다.

2011년은 승승장구했던 한 해였다. ‘광저우 쇼크’에서 벗어난 신종훈은 그대 아시아선수권 금메달, 세계선수권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특히 세계선수권에서는 런던 올림픽 출전권이 주어지는 8강이 현실적인 목표였지만, 당시 세계최강 쿠바 선수를 꺾고 결승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울렸다.

세계선수권 은메달. 당연히 올림픽 금메달에 욕심이 났다. 목표는 무조건 금메달이었다. 어떤 혹독한 훈련도 금빛펀치를 향한 신종훈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오로지 금메달 하나만 바라보고 울면서 훈련을 했습니다. 훈련하면서 정말 힘들었어요. 대회를 치르기 전에는 정말 많은 관심을 받았기 때문에 저 역시 기대감이 컸습니다.”

당시 세계랭킹 1위였던 신종훈은 호기롭게 링 위에 올랐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신종훈은 16강에서 알렉산다르 알렉산드로프(불가리아)에게 14-15 판정패를 당해 탈락했다.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은 신종훈은 링에서 쉽게 발을 떼지 못했다. 가까스로 라커룸에 들어간 뒤 펑펑 울었다. 이후 이른 귀국길에 올라 공항에 도착한 뒤 올림픽 다큐멘터리를 촬영했던 프로듀서와 껴안고 또 한 번 눈물을 쏟았다. 한동안 숙소에서 나오지 않을 정도로 극도의 좌절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신종훈은 잡초처럼 다시 일어났다. 김원찬 인천시청 감독의 지휘 아래 열심히 몸을 만들어 인천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과한 뒤 마침내 아시아 최강자에 올랐다.

▲ 신종훈이 새도 복싱을 하고 있다. 그는 빠르고 간결한 공격이 장점으로 꼽히는 선수다.

◆ "한국복싱 최초 그랜드슬래머 되고파"

아시아선수권과 아시안게임을 휩쓸며 명실상부 49㎏급에서 아시아 최고의 선수가 된 신종훈은 이제 세계선수권과 올림픽을 제패하면 한국 복싱사상 처음으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된다.

복싱에서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투기종목에서 그랜드슬래머는 많이 배출됐다.

유도에서는 이원희(33) 여자 대표팀 코치와 김재범(29·한국마사회)이 4대 메이저 대회를 휩쓸었고 레슬링에서는 박장순 자유형 대표팀 감독과 심권호 레슬링협회 이사가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특히 심 이사는 두 체급에서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신종훈은 “2011년 세계선수권에서 은메달을 딴 뒤 지난해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고 싶었지만 부상 때문에 출전할 수 없었다”며 “일단 내년 10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한 뒤 올림픽에서 모든 것을 걸고 싶다. 형들도 했는데 욕심이 난다”고 말했다.

“복싱하면 신종훈. 신종훈 하면 복싱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도록 앞으로도 열심히 훈련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선수가 되겠습니다. 앞으로도 지켜봐 주세요.”

[취재후기] 박시헌 복싱 대표팀 감독은 한 방송을 통해 떳떳한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방송을 통해 박 감독의 이 말을 들었다는 신종훈은 “감독님이 평소에도 네 자신을 속이지 말고 정직하게 훈련하라고 말씀하신다”고 말했다.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면 모든 것이 따라온다고 믿는 신종훈. 국가대표 선발전을 준비하며 흘리는 굵은 땀방울이 그랜드슬램이라는 결과로 보상받길 기대해 본다.

▲ 신종훈은 곧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른 뒤 내년 10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 대비한다.

syl015@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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