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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2015] (2) '꼿꼿한 거부, 꿋꿋한 도전' 자긍으로 편견 메치는 안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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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2015] (2) '꼿꼿한 거부, 꿋꿋한 도전' 자긍으로 편견 메치는 안창림
  • 이세영 기자
  • 승인 2015.01.16 1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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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귀화 거절' 재일동포 3세 유도 국가대표 안창림에게 조국이란?

[300자 Tip!]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선택의 기로에 선다. 특히 스포츠 선수는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지지를 얻을 수도 있고 비난받을 수도 있다. 물론 선수의 존재 이유 중 하나가 팬이지만, 선수가 택하는 것이 팬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비난을 받을 이유는 없다. 선수의 선택은 선택대로 존중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성숙한 팬 문화다. 안창림(21·용인대). 재일동포 3세다. 조부, 외조부부터 아버지, 어머니까지 모두 한국인이다. 일본 귀화를 놓고 선택의 기로에 서기도 했지만 그는 대한민국 국적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광복 70주년이 되는 2015년 벽두. 자이니치(在日)에 대한 차별에 편견과 꼿꼿이 맞서 한국 유도 국가대표로 올림픽 무대에 서는 날을 그리는 안창림의 뜨거운 심장이 쿵쾅거리고 있다.

[태릉=스포츠Q 글 이세영·사진 최대성 기자] 서울 태릉선수촌 필승관 유도장으로 들어서자 땀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국가대표 훈련 파트너를 포함해 70여명이 매트를 누비고 있었다. 그 가운데 매트를 땀방울로 흥건히 적시는 사나이가 돋보였다. 지난해 11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위에 오른 뒤 제주 그랑프리 국제유도대회 73㎏급에서 금메달을 딴 안창림이다.

안창림은 재일동포 3세 유도선수다. 일본 와세다대로 유학을 왔던 외할아버지가 교토에 정착했고 그 역시 교토에서 가라데 도장을 운영하는 부모와 살았다.

▲ 안창림이 태릉선수촌 필승관 유도장에서 유도복을 바르게 접어놓은 뒤 호흡을 가다듬고 있다.

일본에서는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많은 차별과 무시를 당했다. 중학교 때 친구들이 한국인이라고 비웃고 놀렸다. 하지만 안창림은 자신이 한국인이라는데 자긍심을 늘 품고 있었기 때문에 유도에만 전념했다. 오히려 짓궂게 놀리는 친구들과 더 친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부모님께서 심하게 놀리는 친구와 친해지면 좋은 것이라고 알려주셨다”며 “친해지면 모진 말을 안 하게 되고 이해해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 "한국인, 내가 지켜야하는 것"

교토제일초등학교 1학년 때 유도를 시작한 안창림은 한국 국적이기 때문에 일본에서 열리는 모든 대회에 출전할 수는 없었다. 선발전 출전은 꿈도 못꿨고 학생대회만 뛸 수 있었다.

그가 쓰쿠바대 2학년이던 2013년 10월 전일본학생선수권대회 73㎏급에서 우승하자 쓰쿠바대 감독은 물론, 일본 대표팀 감독까지 찾아와 귀화를 권유했다. 그를 일본 대표팀 선발전에 출전시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안창림은 일본 지도자들의 끈질긴 설득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당초 대학 졸업 후 실업팀으로 가려 했지만 일본에서 이룰 것은 다 이뤘다고 판단했다. 한국으로 건너와 용인대에 편입하기로 마음먹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한국인이기 때문에 일본 귀화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일본에서 생활이 익숙하지만,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은 부모님이 국적을 유지했기 때문에 저 역시 국적을 바꾸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또 한국에서 유도를 하고 국가대표가 되는 게 멋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요.”

안창림에게 한국인은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지켜가야할 자긍이랄까. 그는 “내가 한국에 오면 일본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고, 일본에서는 한국인이라고 놀림을 받는다”며 “그래도 한국인은 내가 지켜야 하는 것이다. 할아버지 세대부터 3대째 내려오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귀화는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자신에게 한국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는 질문에 안창림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 처음엔 적응하기 힘들었던 한국문화

한국인이지만 20년 가까이 일본에서 살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한국문화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한국과 일본 유도 선수들은 모두 단체생활을 하지만 차이가 있었다. 한국 선수들이 단체행동을 많이 하고 선후배 사이가 엄격한 반면, 일본 선수들은 독단적인 행동을 할 때가 많다.

안창림도 일본 학교에서 유도를 해왔기 때문에 일본식 문화에 젖어있었다. 그는 “처음엔 ‘선배에게 꼭 저렇게까지 대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며 “충분히 적응이 된 지금은 선후배간 예절을 지키면 인성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유도를 경험해봤기 때문에 각 나라 유도의 스타일이 어떻게 다른지도 알고 있다. 그는 “한국은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강조하고 일본은 기술을 중요시 한다”고 구분했다.

한국이 장기전에 강한 반면, 일본은 단 한 번의 기술로 경기를 끝낼 수 있는 방법을 전수하는 데 비중은 둔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한국에 유능한 지도자들이 많이 배출되면서 기술적인 면에서도 일본을 점점 따라잡고 있다. 국제대회에서 한국 선수가 일본 선수를 크게 메치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코치님들이 선수 한명 한명에게 세밀하게 주문하십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코치가 선수에게 맡기는 부분이 더 많았어요. 선수 스스로 자신의 유도를 되돌아보는 환경을 만들어 준 것이지요.”

▲ 안창림은 일본 귀화 권유를 뿌리치고 한국 국적을 유지, 용인대 편입을 결정했다.

◆ '황금체급' 명예 걸고 리우서 금 메친다

2년째 한국생활을 하고 있는 안창림에게 2015년은 숨가쁜 한 해가 될 것 같다. 아시아선수권과 세계선수권, 오는 7월 광주 유니버시아드까지 나서겠다는 포부다. 이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을 위한 전초전이다.

지난해 3월 남자 유도 73㎏급 국가대표에 뽑힌 그는 앞으로 2차 선발전과 3차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할 경우, 세계선수권대회 출전 티켓을 거머쥘 수 있다. 지난해 8월 세계선수권에서는 2라운드에서 물러났지만 올해는 반드시 좋은 성적을 거두겠다는 각오다.

안창림은 “지금 몸 상태가 많이 올라와 있고 대회가 열리는 8월까지 아직 시간이 있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을 더욱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그가 노리고 있는 무대는 내년 리우 올림픽이다. 아직 나이가 어려 그 뒤 대회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기회는 한 번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유도에만 절실하게 매달릴 참이다. 그는 “리우에서 금메달을 따고 은퇴해도 좋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운동하고 있다”는 말로 큰 무대를 겨냥한 각오를 표현했다.

한국 유도에서 남자 73㎏급은 굵직굵직한 메달리스트들을 배출한 ‘황금 체급’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원희(현 여자 유도대표팀 코치)를 비롯해 김재범과 왕기춘이 이 체급에서 올림픽 메달을 거머쥐었다.

▲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까지 남은 시간은 1년 반. 안창림은 자신에게 마지막 올림픽이 될 수도 있다는 각오로 올해 주요 국제대회를 통해 경쟁력을 키워갈 참이다.

안창림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이자 자신의 태릉 룸메이트인 왕기춘을 롤모델로 삼고 있다.

“기춘이형은 유도 스타일이 비슷해 본받고 싶은 선배입니다. 제가 유도에 대한 고민을 할 때 옆에서 많이 도와주시지요. 내년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삼은 것도 형이 조언을 해준 덕분이었습니다. 형은 아직도 베이징 대회에서 금메달을 못 딴 것에 많이 아쉬워해요.”

자신이 목표로 한 무대 이후로는 더이상 기회가 없다고 생각할 때 그 도전은 더욱 절실할 수 있을 터. 안창림은 리우 올림픽 시상대 맨 위에 서는 그날을 향해 오늘도 매트를 쉼없이 구른다.

[취재후기]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게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 안창림은 쉽게 답하지 못했다.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말로 대신했지만 답하기까지 몇 분 동안 그간 재일동포로 느꼈던 설움이 북받쳐 온 듯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모두 편견의 시선을 받고 있는 재일동포들이 앞으로 안창림의 도전을 보며 조금이나마 위로를 느끼길 바란다.

syl015@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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