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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생각] 장윤창 '기물파손' 사건의 오해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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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생각] 장윤창 '기물파손' 사건의 오해와 진실
  • 최문열
  • 승인 2015.04.06 10: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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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최문열 대표 · 사진 최대성 기자] 지난 1월17일 오후 무렵이었습니다. 눈과 귀가 번쩍 뜨이는 뉴스가 전해졌습니다. 그것은 ‘‘배구전설’ 장윤창, 구단 기물 파손 입건’이라는 사회 뉴스였습니다. 그 누구보다 화들짝 놀란 것은 현역기자 시절 이따금 소통했던 지인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장윤창 경기대 교수의 평소 성격과 성품을 알고 있기에 ‘구단 기물 파손 입건’이라는 뉴스제목에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확인 한 뒤 순간적으로 “그동안 못 본 사이에 세상의 그 무엇이 장윤창 교수를 저렇게 만든 것일까?”, 이어 “얼마나 억울하고 분통이 터졌으면 점잖은 사람이 저랬을까?” 등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당시 장윤창 교수 관련 뉴스 1보는 뉴시스 기사였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장윤창씨가 프로농구 선수인 아들 장민국의 이적 요구를 거부하는 구단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구단 기물을 파손, 경찰 조사를 받게 됐다. 경기 안양동안경찰서는 17일 프로농구 안양 KGC인삼공사의 기물을 파손한 혐의(재물손괴)로 장윤창(54)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장씨는 이날 오전 3시께 안양시 동안구에 있는 구단 사무실에서 아들 장민국 선수의 타 구단 이적 동의를 요구하며 화분 2개를 바닥으로 던지고, 인조가죽 의자를 파손한 혐의다.>

 

#01 장윤창 사건을 바라보는 아주 특별한 반응

이같은 뉴스가 전해지자 인터넷은 후끈 달아올랐고 후속보도도 이어졌습니다. ‘장윤창 사태’, ‘장윤창 소동’ 그리고 ‘빗나간 부정’, ‘지나친 부정’으로 타이틀을 단 기사들이 쏟아졌습니다. 사건의 기본 사실(Fact)만 놓고 본다면 애매한 대목이 있긴 하나 크게 부정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실 속의 또 다른 진실(Truth)은 없는 것일까요?

한데 한 포털의 대문에 걸어놓은 기사에 누리꾼들이 적어놓은 추천순 상위 10위 안의 댓글을 보니 자못 흥미로웠습니다. 젊은 시절 ‘돌고래 스파이커’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배구선수 장윤창을 기억하는 이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대로 옮겨오면 이렇습니다.

"이 분 봉사활동도 많이 하고 훌륭하신 분인데. 좀 더 조사를 보고 판단하고 싶네요." (s-cool) / "그래도 해외오퍼 들어올 때 끝까지 한국배구를 살려야 한다며 부흥을 위해 남았던 인물이지. 멋진 남자인 건 확실. 큰 아들 사고로 잃고 둘째 장민국인가? '장판'에서 '인삼'으로 트레이드 됐지. 능력 좋은 삼번이나 부상이 많지. 다 잘 해결되기를" (아주쵸큼) / "고려증권 때 실력과 인간성 모두 겸비했던 선수로 기억해요."(engtranslation)

보통 비호감 유명인이 구설에 오르면 만신창이가 될 정도로 비난의 화살을 받기 마련인데 장윤창 교수의 경우 현역시절 좋은 이미지를 떠올리며 판단을 유보하는 이들이 다수였습니다. 이어 농구 기자들이 후속기사를 썼으나 장윤창 교수가 일부 매체의 제목처럼 이런 사태를 벌이게 된 근원적인 이유에 대한 보도는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도 나오지 않아 궁금증은 커졌습니다. 거기에는 오랫동안 지켜본 관찰자로서 장윤창 교수가 단순히 아들의 이적을 안 해준다고 해서 소동을 벌일 사람이 아니라는 개인적인 믿음과 판단이 작용했습니다.

이 때문에 장윤창 교수 관련 글을 쓰면서 독자에게 먼저 양해를 구하고자 합니다. 지금까지 주저리주저리 풀어놓았듯 장윤창 교수를 잘 알고 있는 자(者)로서 다소 주관적이고 편향적으로 흐를 수 있기에 하는 말씀입니다. 하여 여기서는 누가 옳고 그르냐의 시비를 가리기 보다는 지금껏 구단 한쪽의 주장만 나왔으니 이제는 장윤창 교수의 입장을 들어 보려고 합니다. 그래야만 이 사건의 숨겨진, 또 다른 진실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으니까요. 더불어 이 글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 최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시각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02 인간 장윤창의 남다른 면모, ‘고지식하거나 또는 약지 않거나’

장윤창 교수를 처음 만난 것이 1994년 봄 고려증권 코치 시절이었으니 알고 지낸지 어느덧 20년이 넘었습니다. 배구선수로서 그가 이인 강만수 김호철 등 내로라하는 선배들과 함께 세계 4강을 일궜고 고려증권 전성기를 이끄는 등의 눈부신 족적을 남겼다는 사실은 사족이라고 여겨집니다. 여기선 인간 장윤창의 면모만 거론하겠습니다.

장윤창 경기대 교수는 지난 1월 사건 당시를 떠올리면 복장이 터진다며 가슴을 치고 있다.

장윤창 사건을 뉴스로 접한 뒤 머릿속에는 몇 가지 단상이 떠올랐습니다. 아마 그것은 그 뉴스를 왜 받아들이기 힘든지에 대한 뇌의 활발한 작동의 결과라고 보입니다. 우선 장윤창의 인성입니다. 과거 배구 팬들이라면 기억하듯 장윤창은 코트에서 조용하면서도 매너 좋은 선수였지요. 실제 만나도 그랬습니다. 요즘 말로 ‘범생이’ 스타일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 듯합니다. 대화를 나누다보면 조금 답답하다 싶을 정도로 상식과 원리원칙을 중시합니다. 그래서 주변에선 “재미없다. 고지식하다, 융통성 없다”는 소리도 듣곤 합니다.

무엇보다 장윤창은 자기 관리에 철두철미한 사람이었습니다. 담배는 물론 술도 입에 대지 않습니다. 술자리를 몇 차례 가졌지만 그 앞에는 술잔 대신 빈 컵이 놓여있습니다. 술 대신 음료수를 마시기 위해서지요. 또 요즘 배우 송일국의 대한, 민국, 만세 삼둥이가 인기를 끌고 있지만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아들들에게 먼저 지어준 이는 장윤창이었습니다. 태극마크를 달고 해외 원정경기를 많이 나간 까닭일까요, 장윤창은 국가대표로서의 자존감과 자부심이 특별한 편이었습니다. 해외에서 온갖 텃세를 견뎌야 했던 장윤창은 어느 날 아들들이 태어나면 ‘대한+민국’으로, 딸들이 태어나면 ‘우리+나라’로 이름 짓겠다고 일기장에 써놓았고 정말 두 아들에게 대한과 민국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또 하나의 기억 한 토막-. 장윤창은 20여년 전쯤 사업하는 친구들에게 보증을 섰다가 당시 수십억 원의 빚더미를 안게 됩니다. 어쩌면 이는 남을 잘 믿고 한번 믿으면 그 믿음을 쉽게 저버리지 않은 장윤창의 순수 또는 순박한, 그래서 약지 못한 성격을 말해줍니다.

머릿속에 남아 있는 이미지가 이렇다보니 이 사건을 접하고 몇 년 동안 못 본 사이에 대관절 장윤창 교수에게 뭔 일이 생긴 것일까 하는 궁금증이 가슴 밑바닥에서 모락모락 피어올랐습니다. 그리하여 며칠 전 장윤창 교수에게 실로 오랜만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03 장윤창 기물 파손 사건의 또 다른 이면 속으로

이윽고 몇 분의 통화 만에 의문은 풀렸습니다. 장윤창 교수가 꼭두새벽에 아들이 소속된 구단 사무실에서 폭발한 것은 이적을 안 해 줘서가 아니라 자신을 속이고 농락하며 무시당한 것에 대해 욱하고 치민 까닭이었습니다. 저간의 사정이 어떻든 불미스런 사건에 휘말린 것에 대해선 분명 잘못한 일이고 본인 또한 이를 인정하고 크게 반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이제 겉으로 드러난 ‘장윤창 사건’ 말고 그 뒷이야기를 들어봐야 할 차례입니다.

이미 알려져 있다시피 장윤창 교수는 KGC인삼공사(이하 KGC)로 이적해 온 뒤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둘째 아들 장민국 때문에 속앓이 하던 중에 평소 알던 농구해설자 후배에게 ‘아들의 현주소’에 대해 냉정히 물었습니다. 그로부터 현재 팀간 트레이드가 오고간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고 그래서 단장을 자연스레 만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선수가 뛰지 못하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라는 원론적인 이야기와 함께 아들 이적 얘기를 꺼내자 단장은 역으로 제안을 했습니다. S구단의 모 선수라면 이적해 줄 테니 도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장윤창 교수는 평소 친분 있던 S구단 감독에게 전화로 의견을 물었고 긍정적인 반응을 들었습니다. 그 뒤 S구단은  팀 차원의 논의를 거쳐 KGC 측에 공식 제안합니다.

한데 이게 웬 일입니까? 갑자기 KGC가 달라졌습니다. 당초 카드 대신 다른 카드를 내밀었는데 S구단 입장에선 과도한 요구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협상은 결렬됐습니다.

#04 장윤창은 새벽 3시30분경에 왜 화분을 깨뜨렸나?

그 사실을 전해들은 장윤창 교수는 기가 막혔습니다. 그리고 사건 전날인 지난 1월 16일 오후 5시30분 경 구단 사무실로 달려가 말을 바꾸면 어떻게 하냐고 따졌습니다. 그러자 단장은 “팀 조율이 안됐다, 없던 일로 하자”고 잘라 말했습니다.

한동안 논쟁을 거듭했으나 의견을 좁힐 수 없었고 단장은 딴 일을 이유로 저녁 늦게 나갔습니다. 17일이 트레이드 마감 시한이어서 어떻게든 결정이 나야할 상황이었으므로 장윤창 교수는 단장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테니 다시 얘기하자며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러면서 구단이 지금껏 보인 행태에 울화가 치밀었습니다. 자신을 갖고 놀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억울함보다는 하나밖에 없는 둘째 아들의 미래가 더 걱정됐습니다. 아버지가 도와주려고 나섰다가 도리어 앞길을 막은 것은 아닌지 심하게 자책했습니다.

참고로 장윤창 교수는 2013년 9월 큰 아들 장대한을 하늘나라로 보내는 아픔을 겪은 바 있습니다. 농구를 하다가 골프로 전향한 큰 아들은 골프 연습 중에 갑작스런 심정지로 사망했습니다. 평소 지병은커녕 무척 건강한 데다 모든 운동에 능하고 집 안의 분위기 메이커였던 큰 아들이어서 날 벼락같은 충격은 아직 가시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자신이 농락당했다는 생각에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던 1월 17일 새벽 3시 30분 경 구단 사무실 안 광경은 장윤창 교수를 더욱 뿔나게 했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안절부절못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구단 직원들은 컵라면 끓여 먹으며 자신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시시덕거리고 있어 완전 무시당하고 있다는 마음에 자제력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들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의해 끌려간 장윤창 교수는 결국 사회뉴스의 핫한 주인공이 됐습니다.

장윤창 교수는 구단 기물파손 사건으로 일방적으로 매도돼 언론 기피증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05 장윤창 사건 그 뒤, 상황은 어떻게 전개되고 있나?

그 사건 뒤 얼추 2개월 20여일이 흘렀고 상황은 새 국면을 맞고 있습니다. 불구속 입건된 장윤창 교수는 곧바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KGC 측은 지난달 21일 임의탈퇴는 아니고, 남은 시즌 월급을 정상 지급한다는 조건으로 장민국을 귀가 조치했으며 시즌 종료 후 다시 트레이드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와 함께 장민국 트레이드가 시즌 중반부터 일부 구단과 진행돼 왔으며 트레이드 마감일 직전 삼성과 트레이드 성사 직전까지 갔다는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이 말은 결국 장윤창 교수가 이적을 제안한 것이 아니라 KGC에서 먼저 추진 중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까닭에 일각에서는 KGC가 장윤창 교수를 이용해 삼성의 의중을 타진하면서 손 안대고 코 풀려고 했고, 삼성이 혹하고 달려들자 많은 것을 취하려다 화를 자초한 것은 아닌지 또는 그들의 말 그대로 팀 내부의 조율이 안 돼 말을 바꾼 것은 아닌지 다양한 추측을 내놓고 있습니다. 일부 관계자들은 선수와 구단의 이해 상충으로 인한 갈등을 양 측이 세련되게 풀지 못한데 따른 어이없는 불협화음으로 분석하기도 합니다.

“스타플레이어 출신 아버지도 구단의 농간에 놀아나는데 보통 부모들의 사정은 어떨지 실감이 납니다. 선수 인권 차원에서라도 선수가 마땅히 뛸 수 있는 곳을 찾아 갈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돼야 하지 않을까요.” 장윤창 교수의 마지막 말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전히 해소되지 않는 의문은 하나 더 있습니다. 과문한 탓인지 구단 프런트가 소속 선수의 부친이 소동을 부렸다고 경찰에 신고한 예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국내 프로구단 정서상 선수 부모는 선수와 마찬가지로 한솥밥을 먹는 가족이라고 여기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서로 갈등이 있으면 대화로 푸는 게 상식이고요. 또 부모 입장에선 대단한 스타가 아닌 이상, 자식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구단이 ‘갑’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데 구단이 선수 부모를 경찰에 신고를 하다니요? KGC 구단은 그만큼 엄청난 위협을 받기라도 한 것일까요. 참고로 구단이 제시한 피해액은 10만원이었다고 합니다.

장윤창 사건에 대해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내막이 있는 것인지 궁금한 대목입니다.

<편집자 주> 필자는 스포츠서울에서 수년간 배구전문 기자로 활약했고 그 인연으로 실업배구연맹과 대한배구협회 홍보이사를 역임한 바 있다. 현재는 스포츠Q 대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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