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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조로증 소년, 30대 불륜남...'대학로 핫가이' 정문성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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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조로증 소년, 30대 불륜남...'대학로 핫가이' 정문성 [인터뷰]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5.22 0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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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두근두근 내 인생' '스피킹 인 텅스' 극단의 캐릭터 연기

[스포츠Q 글 용원중·사진 이상민 기자] 화제의 대학로 연극 ‘두근두근 내 인생’과 ‘스피킹 인 텅스’에서 동시에 주연을 맡고 있는 정문성(34). 꽤 오랫동안 뮤지컬·연극계에서 주목받아온 블루칩이다. 만만치 않은 연기경력에 걸맞게 요즘 그가 소화하고 있는 캐릭터는 남다르다.

김애란 작가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연극 ‘두근두근 내 인생’(유니플렉스 2관)에선 17세의 나이에 80세의 육체를 가진 선천성 조로증 소년 한아름 역을, 국내 초연작 ‘스피킹 인 텅스’(수현재씨어터)에선 1인3역으로 무대를 종횡무진 누빈다.

▲ 연극 ‘두근두근 내 인생’과 ‘스피킹 인 텅스’에서 동시 주연을 맡고 있는 '대학로 핫가이' 정문성.

◆ 국내 초연작 ‘스피킹 인 텅스’서 불륜 유부남·순정남 등 1인3역 소화

현대인의 관계와 소통을 성찰한 ‘스피킹 인 텅스’에서 정문성은 불륜의 유혹에 빠져든 가볍고 밝은 유부남 피트, 느닷없이 떠나버린 연인으로 인해 삶의 의미를 상실한 순정남 닐, 아내의 실종에 되레 은밀한 해방감을 느끼는 바람난 유부남 존을 1, 2, 3막에 걸쳐 다른 채도로 연기한다.

“원래 어려운 걸 좋아하는데 해도 너무한 요즘이에요. 한 작품에 오롯이 매진하기를 원했는데 ‘두근두근 내 인생’ 공연 중 받은 ‘스피킹 인 텅스’ 대본이 너무 좋아서 무리인 줄 알면서도 오케이를 했어요. 형식적인 면에서도 특이하고, 제가 맡은 세 캐릭터가 서로 연관이 돼 있는데다 각 막에서 중요한 드라마를 풀어가는 인물로 자리하고 있어서 매력젹이었죠.”

이 작품에는 9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상대의 가슴이 아닌 허공을 부유하는 언어들을 형상화하듯 대사가 많다. 특히 피트가 등장하는 1막의 출연진 대사량과 속도, 타이밍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리딩 당시 배우들은 자신의 대사를 찾아가기 힘들었을 정도였다. 런 스루(연습실 리허설)를 10차례 했는데 매번 대본대로 대사를 친 적이 없이 모두 ‘멘붕’에 빠졌다. 맹연습 끝에 어느 정도 해놓고 보니 2~3막은 감정을 많이 실어야만 해서 또 힘들었다.

“작품이 옴니버스 형식이라 드라마의 흐름이 뚝뚝 끊기는 면이 있어요. 하지만 배우는 감정을 쭉 가져가야 해니까 나중엔 2~3막을 더 많이 걱정하게 됐죠. 그런데 1막에서 두 부부의 겹치는 대사와 치고받는 대사 부분을 실수하지 않기 위해 지금도 공연 전에 배우들이 연습을 한 뒤 무대에 올라가요. 그래도 모두 베테랑 배우들이라 호흡을 하나로 모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 “아름이 연기할 땐 심신이 힘들어,,,피트, 존은 심리와 상황에 매달려”

살아보지 않은 삶마저도 현실감 있게 그려내야 하는 게 배우다. 선천성 조로증의 열일곱 소년, 불륜으로 번민하는 유부남은 그에게 배우로서의 자각을 그리고 자극을 한껏 불어넣는 배역이다.

“아름이를 연기할 땐 심신이 많이 힘들어요. 불편해진 몸을 표현하는 것도 만만치 않지만 1차원적인 감정으론 그 아이의 심리를 제대로 드러내질 못하거든요. 해결책은 최대한 몰입하는 거죠. 피트와 존의 경우엔 제가 미혼이라 그들이 처한 상황과 심리에 매달렸어요.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사라져버리고, 부족함을 느끼기 위해 누군가를 찾는 심리에서 시작해 조금씩 발전시켜간 거죠. 그나마 닐에게 가장 편하고 깊게 공감했던 것 같아요. 닐처럼 희망과 믿음 안에서 망가져갔던 기억이 있어서죠.”

특히 이번 ‘방언’을 뜻하는 제목의 ‘스피킹 인 텅스’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작품은 소통의 부재를 다루고 있으나 정문성은 “모든 사람들은 둘의 현상에 대해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지고, 그걸 진짜인 것 마냥 믿고 산다. 소통의 부재가 일어나는 이유를 계속 늘리려고 한다”며 “다름을 인정하고 가야 하는데 이 작품 속 배역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9명이 대화하는 연극”이라고 짚는다.

두 작품에서 우울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어 나머지 시간에는 밝게 지낸다. 머리에 앞서 몸이 원하는 대로 내버려둔다. 그렇게 하면서 숨통을 틔운다. 배우 정문성이 치유하는 방식이다.

 

◆ 가수지망생에서 뮤지컬 배우로 급커브...영화 방송으로 영역 확장

가수를 꿈꾸던 소년이었다. 주변의 기대가 컸을 만큼 성적도 우수했다. 아이돌 가수들이 대학 연극영화과에 진학하는 데서 영향을 받아 대입 연기학원에 다녔다. 면접 때 즉흥연기를 빼어나게 해내서 순천향대 연극영화과 차석으로 입학했다. 대학시절에도 교내 가요제에 출전해 1등을 하는 등 자신이나 주변 사람 모두 가수를 할 거라 여겼다.

연기를 할수록 재미를 느꼈다. 잘 한다는 칭찬도 자주 들었다. 군대에서 연기냐 노래냐를 놓고 고민의 시간을 보냈다. 제대 후 솔로음반 제의를 받아서 1년 동안 시간 투자를 한 뒤에야 가수의 꿈을 완전히 접었다. 그 이후론 방학 때도 한 번도 쉬는 법 없이 연기에 매진했다. 대학 졸업 무렵인 2007년 오디션을 통해 김윤석 설경구 황정민 안내상 등 명배우들의 산실인 ‘지하철 1호선’에 승차했다.

이후 창작뮤지컬 ‘빨래’를 비롯해 ‘여신님이 보고 계셔’ ‘글루미 데이’ ‘온 스테이지’ 등 뮤지컬만 줄곧 하다가 ‘모범생들’을 시작으로 ‘나쁜 자석’ 등 연극에 꽂혀 지냈다. 영화 ‘남쪽으로 튀어’에서 비중 있는 조연을 맡았고 지난해엔 드라마로도 영역을 넓혀 ‘비밀의 문’ ‘수상한 가정부’ ‘무정도시’에 나왔다.

“지난 6~7년 동안 쉴 틈 없이 무대에 오르다보니 에너지가 고갈됐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드라마를 하게 된 거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제가 추구하는 게 무대만은 아니므로 과정을 밟아가는 게 감사하죠. 제일 좋은 건 무대죠. 거짓말로 하면 들킬 수밖에 없는 거리인 점, 단 한 번의 공연이라는 데서 오는 스릴이 커요. 에너지가 튕겨져 나가고 들어오며 극장의 공기를 관객과 함께 만드는 것도 더할 나위 없는 매력이고요.”

 

◆ “그 사람의 마음을 눈과 손에 담아 연기하고 싶어”

작품 복이 터졌다. 6월6일부터는 뮤지컬 ‘사의 찬미’(‘글루미 데이’에서 명칭을 바꿨다)에서 일제 강점기 시절 극작가이자 연극운동가였던 김우진 역을 맡아 관객과 만난다. 유아인 변요한 주연의 SBS 특별드라마 ‘육룡이 나르샤’(9월 방영)에는 악역으로 출연한다.

이에 앞서 ‘빨래’ 10주년 공연에선 주인공인 이주노동자 솔롱고 역을 다시 맡는다. 특히 ‘빨래’는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출연, ‘빨래 귀신’이란 닉네임을 얻을 정도로 분신과 같은 작품이라 의미가 남다르다.

“어떤 배우가 될지 계속 고민해 왔어요. 도달한 결론은 ‘진짜인 연기를 하는 배우’예요. 진짜일 순 없겠지만 그 순간은 배우로서 서 있고 싶진 않더라고요. 그 사람의 마음을 눈에 담고, 손에 담아서 연기하고 싶어요. 조의 집, 닐의 서재가 그들의 공간이 아닌 내 집과 서재가 되도록 만들 수 있는 배우이고 싶어요.”

[취재후기] 행동하는 햄릿형 배우다. 인터뷰 도중 자신에 대해 내리던 객관적 평가가 꽤 인상적이었다. 신선한 연기를 하는 어린 나이도 아니고, 멋있는 역할을 할 수 있는 나이대도 아니라 어정쩡하다는. 지금은 고맙게도 감독들이 불러주셔서 출연하는 상황이나 자신의 색깔이 분명한 배우가 됐을 때는 적극적으로 나설 거란 전략전술까지 마련해 놨다. “신난다” 대신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부터 ”넌 잘 할 수밖에 없다“는 자기최면을 걸고 있다는 그의 독백이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gool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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