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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계 주도 '60년대생 트로이카 연출가' 박근형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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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계 주도 '60년대생 트로이카 연출가' 박근형 [인터뷰]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6.10 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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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 돌풍...소시민 일상, 시대정신 천착

[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이상민기자] 1960년대생 트로이카 박근형(52) 극단 골목길 대표, 김광보(51) 극단 청우 대표 겸 서울시극단장, 양정웅(47) 극단 여행자 대표는 요즘 연극계에서 가장 주가가 높은 연출가들이다.

이름 석자만으로 브랜드를 만들어낸 이들 중 맏형 격인 박근형은 극단 운영뿐만 아니라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로, 연극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6월20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연출로 하루를 25시간으로 쪼개며 산다.

 

◆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이 시대 아픔과 예외의 사례”

‘두산인문극장2015- 예외’ 시리즈를 마감하는 연극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는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는 일본 배우 겸 연출가인 이와이 히데토의 작품으로, 1990년대 이후 일본의 사회문제로 대두된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를 다뤘다. 몇 년 동안 집안에만 있다가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나온 세 남자 20대 타로(김동원), 30대 토미오(최광일), 40대 카즈오와 가족 등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두산아트센터에서 만난 박근형 연출은 “단지 히키코모리 얘기만이 아닌, 안과 밖을 구별하지 못하는 이 시대의 아픔과 예외의 사례다. 예외는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일 뿐이다. 이 연극은 예외의 시대 속 슬픈 자화상”이라고 말했다.

이날 공연에는 젊은 남녀관객들이 빼곡히 들어찼다. ‘히키코모리’보다 ‘왕따’ ‘삼포세대(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가 젊은 세대를 가로지르는 키워드일 텐데 다소 이례적인 풍경이다.

“과거엔 히키코모리가 남의 이야기인줄로만 알았는데 이제는 잠재된 본성과 맞닿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무한경쟁 시대, 3포세대의 영향도 있어서 타인과의 접촉을 끊고 자기 안의 동굴로 들어가는 청춘이 많아지는 듯하다. 사회가 진화하면 나타나는 현상일 수 있으나 분명 불행한 현상이다.”

박근형 연출은 작품을 준비하면서 배우를 찾는데 꽤 많은 시간을 들였다. 이런 역할은 연기만 잘해선 안 되고, 히키코모리와 흡사한 배우를 기용해야 공감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이제까진 호흡을 맞췄던 배우들을 캐스팅하곤 했는데 이번엔 처음으로 작업하는 배우들이 대다수였다.

▲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 '경숙이 경숙아버지' 공연 장면, 관객과의 대화를 하는 박근형 연출(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사진=두산아트센터 제공]

창작극 극본 집필 및 연출로 명성을 떨쳐온 그가 일본 원작을 토대로 한 번역극에 손을 댔기에 관심을 샀다. 자연스레 “얼마나 재해석됐을까”란 궁금증이 뛰 따른다. 하지만 박근형 연출은 손사래를 쳤다.

“일본에서 각광받는 작가의 작품이다 보니 가능한 작가의 의도를 살리는데 주력했다. 확실히 어려웠다. 작품의 생각이나 정서는 공유하나 대상(관객)이 다르지 않나. 히키코모리 현상에 대해 낯선 부분이 있기에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일 지가 가장 고민스러웠다. 원작에 충실했으나 도입부 안내방송 장면을 비롯해 대사 추가를 부분적으로 했고, 끝부분에서 출장상담원 토미오와 쿠로키(강지은)의 지하철 탑승 장면을 조금 수정했다. 함축성과 만화적 점프컷이 특징인 일본 연극의 색깔을 다소 옅게 하며 가급적 관객에게 스토리를 펼쳐 보이려고 했다. 일본에선 상당히 경쾌하게 풀었다고 하는데, 우리는 다소 묵직하고 서사 위주의 작품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극작가로도 유명한 박근형 연출은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 한국어 공연에 원작에 없던 대사를 추가했다. 카즈오와 엄마 요시코의 대사인 “미안해, 엄마다. 카즈오! 이분이 널 도와주실 거다” “어떻게 다른 사람이 날 도울 수 있나요?”, 타로의 엄마 카나코의 “제 잘못이에요. 그날 타로가 학교에서 돌아와서 울고 있을 때 제가 모른 척 했어요. 그날 무슨 일이 있었는데, 분명히 무슨 일이 있었는데 내가 무심했어요. 그때부터 시작된 거예요” 등은 극중 상황과 어우러지며 감동 지수를 높인다.

◆ ‘청춘예찬’ ‘경숙이 경숙아버지’ 등 2000년대 소극장 연극 모델 확립

‘혜화동 1번지’ 동인 2기(김광보 박근형 손정우 이성열 최용훈) 출신인 박근형 연출은 1999년 ‘청춘예찬’으로 그 해 연극계의 모든 상을 휩쓸며 평단과 관객에게 이름을 알렸고, 연극계를 이끌어 갈 차세대 연출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2006년엔 '경숙이 경숙아버지'로 연극계의 모든 상을 싹쓸이하며 스타 연출가의 면모를 웅변했다.

 

1970~80년대 거대 담론을 리얼리즘 미학이나 전통의 현대화로 풀어내던 연극적 양식과 어법에서 탈피해 현대 소시민의 일상을 자연스러운 연기, 미니멀하고 기능적인 세트로 표현함으로써 2000년대 일상극, 소극장 연극 모델을 확립한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꼿꼿하게 시대정신을 작품에 아로새기곤 하는 그는 우울한 일상의 끝은 절망임을 보여주면서도 어딘가에 있을 희망의 존재를 상기시키는 매력적인 연출가다.

특히 ‘청춘예찬’ ‘대대손손’ ‘경숙이 경숙아버지’ ‘너무 놀라지 마라’ 등에서 아버지의 부재와 상실을 그려냄으로써 물질만능주의의 산업화 시대 이후 정신적 질서를 상징하는 아버지의 존재가 어떻게 변화돼가는 지에 천착했다. 대중문화계에 불고 있는 ‘아버지 열풍’ 메이커인 셈이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 그런 감정은 아니다. 철부지 막내아들인데다 나이차가 굉장히 많아 아버지 생전에 별반 대화한 적이 없었다. 늘 아버지가 궁금했다. 가족을 통해 뒤늦게 아버지에 대해 알게 되면서 글에 아버지를 투영시켰던 것 같다.”

또 하나의 연출 특징은 배우에게 맡김으로써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는 점이다. 디렉션에 방점을 찍기보다 배우들이 지닌 창의성, 캐릭터 해석에 힘을 실어주면서 놀이를 하듯 작품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배우마다 다르다. 구체적인 디렉션을 주면 로봇처럼 돼버리는 배우, 야단을 치면 오히려 자극을 얻는 배우 등 다양하다. 맞춤형 디렉션을 할 뿐이다. 이번엔 배우들이 상당히 힘들었을 거다. 막힐 때 연출가가 길을 뚫어줘야 하는데 ‘해보고 싶은 대로 해봐라’라고 했으니.(웃음) 자신의 연기패턴이 확고히 구축된 개성 강한 배우들이 상당히 많아서 애를 먹었으나 조금씩 아귀가 맞아갔다. 속도가 더뎌 작품의 큰 형태가 뒤늦게 나와 다른 때와 달리 불안 불안했다.”

◆ “관객에게 가장 중요한 건 이야기...신작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준비 중”

2015년 들어 ‘경숙이 경숙아버지’를 5년 만에 무대에 다시 올려 뜨거운 반응을 일궜다. 3~4월엔 도쿄 타이니 앨리스극장에서 ‘만주전선’ 일본 공연과 국내 공연, 5월엔 ‘히키코모리 밖으로 나왔어’로 쉼표 없는 행진을 벌여가고 있다.

 

올해 안에 연극 2편을 출산할 준비를 틈틈이 하고 있다. 독회를 끝낸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가미가제로 차출된 조선인 청년들, 이라크 전쟁의 희생양으로 참수된 한국인, 배를 타고 가다가 피폭된 해군들, 현재 시점의 탈영병 이야기를 교차 편집하며 이 시대 인간은 군인이 될 수밖에 없으며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고 말한다. 또 한 편의 작품은 구상 중이다.

연극 작품들도 시대와 관객층의 변화에 발맞춰 색다른 시도를 많이 하는 추세다. 화려한 볼거리, 타 장르와의 결합, 기능적이고 장식적인 요소의 유입 등 다종다기하다. 하지만 관객의 마음을 붙잡는 것은 결국 서사, 이야기의 힘이라고들 토로한다. 연극의 최전선에 있는 박근형 연출은 어떤 생각일까.

“서사는 취향일 수도, 연극을 바라보는 관점일 수도 있다. 그런데 한국 관객에게 가장 중요한 건 이야기다. 공연 후 작품에 만족하지 못할 때 관객들은 흔히 ‘도대체 무슨 이야기야’를 가장 먼저 말한다. 직설적이든 은유적이든 이야기의 큰 흐름을 관객의 머리에 남겨놓은 상태에서 다른 재미와 감흥을 찾는 게 올바르지 않을까 싶다.”

■ Who’s 박근형?

1963년 서울 출생. 경성고 졸업 후 1986년 극단 76 배우로 출발해 연출로 전향했다. 97년 ‘쥐’로 자신만의 개성을 알렸으며 99년 ‘청춘예찬’을 발표한 뒤 이듬해 백상예술대상 희곡상, 동아연극상 작품상 희곡상을 휩쓸었다. 2003년 동아일보 '차세대를 이끌고 갈 연출가' 1위에 뽑혔다. 2006년 ‘경숙이 경숙아버지’로 올해의 예술상, 동아연극상 작품상 희곡상, 대산문학상 희곡상을 수상했다. 2009년 ‘너무 놀라지 마라’로 동아연극상 작품상 연출상, 대한민국 연극대상 작품상을 받았다.

‘베키쇼’ ‘만주전선’ ‘유령소나타’ ‘청년 오레스테스’ ‘햄릿 업데이트- 길 위의 햄릿’ ‘잠 못드는 밤은 없다’ ‘선착장에서’ ‘선데이서울’ ‘아스피린’ 등의 작품이 있다. 배우 박해일 고수희 윤제문 엄효섭 등이 그의 제자들이다. 김영민 배두나 장영남 등 재능있는 배우들이 함께하고 싶은 연출가로 그를 열렬히 꼽는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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