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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팬도 불꽃이다', 한화 이글스는 어떻게 팬심을 훔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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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팬도 불꽃이다', 한화 이글스는 어떻게 팬심을 훔쳤을까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5.08.07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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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진-방문관중 1위, 포기 모르는 투자-디자인 마케팅-수용능력 한계 딛고 끊임없이 진화

[200자 Tip!] ‘나는 불꽃이다.’ 한화는 최근 그룹 광고로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야구단을 전면에 내세웠다. B2B 사업을 주로 하는 한화에 야구단은 소비자와 직접 대면할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다. 한화 이글스는 홈 연고인 대전, 충청 지역민들로부터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2015년의 야구특별시는 부산, 광주가 아닌 대전이다. 이글스의 홈구장 한화생명 이글스파크는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발 디딜 틈이 없다. '마리한화'란 애칭이 붙을 정도로 폭발력을 자랑하며 흥행의 중심으로 거듭난 한화 이야기를 담았다. 경기력이 아닌 마케팅 관점이다.

[대전=스포츠Q 민기홍 기자] “요즘 원정을 가면 고맙다는 소리를 다 듣네요.”

한화 이글스 우종범 마케팅 2팀장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는 올 시즌 잠실, 인천, 수원 등 수도권 경기장을 방문하면 타 구단 마케팅 팀장들로부터 감사 인사를 받는다고 했다. 한화는 1만 3917명의 방문관중을 불러모아 삼성(1만 2268명), KIA(1만 2143명)보다 앞선 티켓파워를 자랑하고 있다.

▲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의 1루 외야 응원석 풍경. 한화는 홈에서 치러진 48경기 중 18경기에서 매진 사례를 기록했다. [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홈경기 인기는 말할 것도 없다. 한화 이글스 선수단은 6일 기준, 대전과 청주 등 홈에서 치러진 48경기 가운데 18경기를 꽉 들어찬 관중 앞에서 치렀다. 2012년 매진 기록(14경기)은 지난달 15일 이미 넘어섰다. 2012년 세운 51만 9794명, 평균관중 7758명을 넘어서는 것은 시간문제다.

'김성근 효과'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2000년대 후반부터 하위권에 맴돌던 한화를 5강 싸움을 벌이는 팀으로 올려놓았으니 팬들이 반응하는 건 당연할 일. 그런데 알아야 할 것이 있다. 한화는 김성근 감독 부임 전부터 꾸준히 팬심을 잡아왔다는 사실이다. 마리한화의 인기에 성적까지 뒷받침된 한화는 이제 KBO리그의 굵직한 이슈를 선도하는 구단이 됐다.

◆ 진득한 팬심의 비결, 한화는 액션을 취했다 

“진득하신 분들이죠. 팬들 덕입니다.”

우종범 팀장은 가장 먼저 수년간 밑에 머물렀던 성적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는 성원을 보내준 지역민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대전이 고향이라 더욱 애정을 갖고 일한다는 그는 “져도 내일 이기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믿어주신 팬들 덕분에 현재의 한화가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 지난 7년간 처참한 성적을 냈지만 팬들은 그래도 한화를 외쳤다. 김성근 감독을 사령탑에 앉히는 등 팬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자세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사진=스포츠Q DB]

5-8-8-6-8-9-9. 지난 7년간 한화 이글스의 순위다. 처참한 성적표에도 불구하고 팬들은 등을 돌리지 않았다. 2008년 5920명이던 평균관중은 지난해 7424명으로 증가했다. ‘보살팬’이라는 소리를 듣는 와중에도 충성심을 발휘하며 야구장을 지켰다.

한화의 ‘액션’에 희망을 봤기 때문이다. 수뇌부는 안 되는 팀을 위해 갖가지 방법을 총동원했다. 한국 프로야구 최다승 지도자인 김응용 감독을 사령탑으로 모셨고, 충남 공주 출신인 메이저리거 박찬호 영입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김태균에게 연봉 15억 원을 안기는 파격 대우로 프랜차이즈 스타를 일본에서 복귀시켰다.

김성근 감독 선임과정은 더욱 드라마틱했다. 온라인 청원 운동은 물론이고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한화 그룹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 팬들까지 생겼다. 결국 김승연 회장이 직접 나서 김성근 감독 영입을 지시했다. 최근 2년간 그들이 FA(자유계약선수) 시장에서 선수 영입에 투자한 돈은 274억 원. 지난주에는 현역 메이저리거인 에스밀 로저스에게 70만 달러(8억 원)의 연봉을 안기기도 했다.

▲ 가득 들어찬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 관중 수용 능력이 1만 3000석밖에 안 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사진=스포츠Q DB]

우종범 팀장은 “밖에서 보기에는 비합리적인 소비 패턴이라 여길 수 있다”면서 “그동안 팬들께서 밑에서 숨죽여 지내온 것에 대한 보상,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한화라는 구단이, 나아가 그룹이 정말 열심히 하는구나’라는 것을 보여드린 것이 효과를 본 것 같다”고 말했다.

'괜찮아유'로 상징되는 충청도 특유의 너그러운 특성은 한화 그룹의 사훈인 ‘신용, 의리’와도 묘하게 닮았다. 야구단에는 한화의 철학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소비재를 팔지 않는 대기업 한화는 팬과 스킨십을 하는 유일한 수단인 야구단을 통해 기업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어필했고 팬들은 그렇게 패하는 와중에서도 ‘최강한화’를 외치고 또 외치며 믿음을 보냈다.

24년째 한화팬이라는 대전 출신의 직장인 한상인(31) 씨는 이글스에 대한 변치 않는 충성심을 류현진과 기대감으로 정리했다. 한 씨는 “류현진이 없었다면 암흑기를 견뎌내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박찬호, 정근우, 이용규 등 A급 선수들을 데려오는 것을 보고 희망을 놓지 못했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으니 매년 나은 성적을 기대하며 한화를 지켜봐왔다”고 말했다.

◆ 디자인을 중시했다, 팬들이 응답했다

한화는 이번 시즌부터 4색 유니폼을 착용하고 있다. 주중 홈에는 흰색, 주말 홈에는 주황색, 주중 원정에는 연회색, 주말 원정에는 진회색 옷을 입는다. 한화팬들은 각양각색 유니폼에다 이글스 올드 버전까지 기호에 따라 옷을 구매하는 쏠쏠한 재미가 생겼다.

고급스런 디자인은 가격 저항을 무너뜨릴 수 있는 유일한 요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일상에서 함께하기에는 부담스런 강렬한 주황색을 사용했던 한화는 “색이 너무 튄다”는 팬들의 요청을 적극 수렴해 모자를 검은색으로 바꿨고 곧이어 '있어 보이는' 유니폼을 출시하기에 이르렀다.

▲ 한화가 야심차게 내놓은 4색 유니폼. 디자인에 각별히 신경을 쓴 어센틱 저지는 팬들의 뜨거운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우종범 팀장은 “그룹에서도 각별히 신경을 썼다. 유니폼뿐만 아니라 창단 30주년 기념 패치에도 심혈을 기울였다”며 “구단은 물론이고 그룹 차원에서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공들여 내놓은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뿐이 아니다. 한화는 야구장 곳곳도 주황색으로 도색해 팬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주황색 유니폼의 경우 색에 약간의 변화를 줬는데도 호평이 쏟아졌다. 한양대학교 스포츠산업학과 최준서 교수는 “전문 디자이너가 검정, 흰색, 회색 등 나머지 색들과 조화를 고려해 역량을 발휘했을 것”이라며 “이는 같은 색이라도 컬러의 미묘한 차이가 얼마나 큰 차이를 느끼게 하는지를 알 수 있다. 디자인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유니폼 발표 과정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지난해 12월 배우 조인성과 함께 서도 뒤지지 않는 이태양을 내세워 예고를 했다. 마케팅팀은 한달이 지난 올해 초 4색 유니폼을 한꺼번에 공개해 화제성을 극대화시켰다. 우 팀장은 “유니폼 콘셉트와 모델 선정, 보도자료 배포 시점 등 모든 프로세스가 중요했다”고 귀띔했다.

한화 유니폼의 왼팔에는 수입자동차 브랜드 폭스바겐 패치가 달려 있다. 사소한 것 같지만 팬들은 이에 대해서도 호감을 나타내고 있다. 최준서 교수는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가 긍정적인 반응을 불러올 수 있다”며 “시각을 중시하는 소비자는 충분히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부연했다.

이제 한화는 머천다이징 역량 강화를 위해 나선다. 우종범 팀장은 “독수리 캐릭터가 무섭다는 반응들이 더러 있다. 풀어나가야 할 과제”라며 “고객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1만 3000석의 한계, 그래도 진화했다 

프로스포츠단의 운영 목적은 승리이고 우승이다. 하지만 한화 이글스는 이기는 것에 최우선 가치를 두지는 않는다. 우종범 팀장은 “승리는 물론 중요한 요소이지만 서비스의 중심은 아니다”라며 “야구장을 찾은 고객이 만족하고 돌아가시는 방법을 끊임없이 궁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리한화'라는 키워드로 결속된 인기폭발에도 한화는 관중 유입에 제약이 되는 여러 악조건을 갖고 있다. 홈구장 한화생명이글스파크는 1964년 개장해 정원이 1만 3000석에 불과한데다 인근에 지하철역도 없다. 야구장이 자리한 중구 대흥동은 대전의 대표적 번화가인 유성구 관평동이나 서구 둔산동과는 차로 30분 이상 떨어져 있다.

▲ 좁은 통로에 가득 들어찬 팬들. 1964년 개장한 구장의 낙후된 시설은 한화 마케팅팀이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이다. [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우종범 팀장은 “관객들이 불편함을 느낄 요소들이 많다. 대중교통이 모자라고 주차 공간도 협소하다. 통로가 좁고 줄도 길어 불편함을 느끼실 것”이라며 “그래서 펜스를 설치해 안전에 신경 쓰고 식음료를 구매하실 때 에어컨 온도를 조절하는 등 작은 부분들부터 세심하게 신경쓰려 한다”고 밝혔다.

대전광역시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에야 유성구에 신축 야구장이 들어선다. 3만석 규모의 야구장은 대전 종합스포츠타운 조성 계획의 핵심 사업이다. 한화는 대전시와 협의해 신축 야구장 건립에 협조한다는 방침을 세워두고 있다.

열악한 사정에서도 한화는 진화를 멈추지 않았다. 2012년 관중석 증설, 2013년 외야 확장과 천연잔디 공사, 2014년 더그아웃 리모델링, 포수 후면석 신설 등으로 팬들의 니즈를 충족시켰다. TV 중계로 보면 대전은 다른 구장과는 달리 타석과 관중석의 거리가 매우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종범 팀장은 “마케터로서 바라볼 때 작은 규모의 시설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한계가 존재하는 건 사실”이라며 “광주, 대구 등 신축 구장이 부럽지만 현재 환경에서 팬들의 불편함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 한화의 제2홈구장 청주를 가득 메운 팬들. 한화는 2015 KBO리그의 흥행을 주도하고 있다. [사진=한화 이글스 제공]

[취재 후기] 야구장을 '파크'라 칭하는 시대다. 이기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은 틀렸는지 모른다. 승리지상주의는 옛말이다. 매년 우승하는 프로팀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한화팬들은 자꾸만 지는 경기를 보는 가운데서도 "나는 행복합니다"를 외쳤다. 한화는 그룹 문화와 지역민의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해 성적 외의 방법으로 팬심을 사로잡았다. 스포츠마케터들은 어떻게 해야 팀 성적과 좌우되지 않는 좋은 성과를 낼까를 늘 고민해야 한다. 한화야말로 좋은 사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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