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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리의 고별 화두, '금수저론'과 아버지 차붐에 '행복한 3-5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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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리의 고별 화두, '금수저론'과 아버지 차붐에 '행복한 3-5패'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5.11.07 2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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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중반에 아버지의 대단함 비로소 인식…자책하기보다 내가 갖고 있는 많은 것에 행복"

[상암=스포츠Q(큐) 박상현 기자] "아버지 차범근은 넘지 못했지만 즐거운 축구 인생이었습니다. 아버지를 넘겠다는 욕심은 늘 갖고 있었지만 항상 내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왔습니다."

'차미네이터' 차두리(35)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현역을 마감했다. 아직 소속팀 FC 서울의 경기는 두 차례 더 남아 있지만 이제 선수 차두리는 더이상 볼 수 없다. 차두리의 새로운 인생 2막이 열렸다.

차두리는 7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수원 삼성과 현대오일뱅크 2015 K리그 클래식 36라운드 홈경기 슈퍼매치를 통해 현역 은퇴식을 치렀다. 경고 누적 때문에 비록 경기에 출전하진 못했지만 경기 시작 전 박원순 서울시장과 시축을 하고 하프타임에 공식 은퇴식을 가졌다.

또 선수들은 차두리의 등번호 5번이 박힌 기념 유니폼을 입고 입장하면서 차두리의 은퇴를 축하했고 전반 5분에는 1분 동안 팬들이 차두리에 대한 기립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차두리는 하프타임 공식 은퇴식과 기자회견에서 모두 "나의 축구 인생은 3-5로 끝났다"고 말했다.

나름 자신의 축구 인생을 뜻깊게 살아왔고 한국 축구에 큰 족적을 남겼으면서도 '3-5 패배'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아버지 '차붐' 차범근 전 수원 감독을 넘지 못했다는 것이다.

차두리는 "네 살 때부터 내가 사랑하는 축구를 시작하면서 언제나 기준은 '차범근'이었다. 차범근을 넘고 싶었고 잘하고 싶었다"며 "나이가 들수록 차범근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위대한 선수였는지 깨닫게 됐다. 차범근 근처에도 가지 못했기 때문에 3-5 패배인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3-5라는 결과는 나름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고 선전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차두리는 "그래도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에 오르기도 했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첫 원정 16강도 이뤄내지 않았느냐"며 "비록 아버지는 이기지 못했지만 나는 복받은 사람이다. 나처럼 행복하게 뛰고 마감할 수 있는 선수가 얼마나 될까. 말 그대로 태어나보니 아버지가 차범근이었는데"라고 활짝 웃었다.

그렇다면 차두리가 목표였고 기준이었던 아버지를 넘지 못했음에도 행복하게 현역을 마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는 바로 '무한긍정의 힘'이었다. 말 그대로 '컵에 물이 반밖에 없네'가 아니라 '컵에 물이 반이나 남았구나'라고 생각하며 선수생활을 한 것이다.

차두리는 "어렸을 때는 뭘해도 자신 있었고 아버지를 넘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독일에서 뛰었던 20대 중반 때 팀이 강등이 되기도 하면서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을 비로소 하게 됐다"며 "그러나 아버지처럼 잘하지는 못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남들은 꿈만 꾸는 독일에서 뛰고 있는데 내가 왜 자책하고 좌절해야 하는지 반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항상 왜 안될까라는 생각하기보다 왜 이렇게 많은 것을 가졌을까를 생각하며 훈련했다. 생각해보니 정말 많은 것을 가졌더라"며 "축구를 하다보니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뤘고 좀 지내다보니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더라. 많은 것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하다보니 마음이 편해졌다"고 덧붙였다.

또 자신이 '금수저'였다는 일부 시각에 대해서도 생각을 전했다. 금수저인 것은 맞지만 분데스리가에 들어간 것이 아버지의 영향 때문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차두리는 "아버지 덕분에 분데스리가에 진출했다는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차범근이 아니라 프란츠 베켄바워 아들이라도 실력이 없는데 분데스리가에서 받아주겠느냐"며 "능력이 안되면 안되는 곳이다. 물론 최고의 팀에서 뛰진 못했지만 그래도 10년 동안 분데스리가에서 공을 차면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들과 경쟁했다. 10년을 버텨낸 것은 내 축구 인생의 큰 수확"이라고 전했다.

차두리는 "이제 에너지가 다 떨어졌다. 모든 경기에 100% 전력을 쏟을 수 있는 자신이 없다고 판단내렸기 때문에 아무런 후회없이 현역생활을 끝낸다"며 "독일에서 지도자 자격증 코스를 밟으면서 축구에 대한 세부적인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공부하면서 내게 어떤 일이 가장 잘 맞는지, 어떤 것을 배워야 한국 축구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생각해보겠다. 당장 감독이 되겠다, 행정가가 되겠다는 등의 결정은 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차두리는 기자회견장을 떠나면서도 환하게 웃는 표정이었다. 차두리는 "선수 생활하면서 기자들과 불편한 것도 있었는데 이젠 그럴 일이 없겠다. 자주 만날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스쳐지나가면 반갑게 인사했으면 좋겠다"며 취재진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전했다.

2015년 11월 7일, 차두리는 전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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