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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캐피탈 배구단이 신나게 춤추는, 아주 특별한 이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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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캐피탈 배구단이 신나게 춤추는, 아주 특별한 이유란?
  • 최문열
  • 승인 2016.03.07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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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최문열 대표] 18연승의 파죽지세-.

그동안 V리그를 호령했던 김호철(전 현대캐피탈 감독, 단일 시즌 15연승)과 신치용(삼성화재 단장, 두 시즌에 걸친 17연승), 국내 배구계의 두 명장이 작성한 기록도 말끔히 갈아치웠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배구단 최태웅(40)감독이다.

현대캐피탈은 지난 6일 NH농협 2015-2016 프로배구 V리그 남자부 우리카드와의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3-0으로 승리함으로써 사상 첫 단일시즌 18연승의 대기록을 세웠다.

지난해 4월 지휘봉을 잡은 최 감독이 코치 수업도 건너 뛴 초보감독이었다는 점을 놓고 보면 최연소 및 데뷔시즌 정규리그 우승에 이어 일군 18연승 기록은 그 의미가 사뭇 특별할 수밖에 없다.

도대체 현대캐피탈 배구단에는 무슨 일이 있었기에 지난 시즌 '봄배구' 첫 탈락이라는 부진을 겪다가 올 시즌 ‘V리그의 아이콘’으로 급부상한 것일까? 이미 지난달 25일 7년만에 정규리그 우승을 일구자 다수 매체들은 현대캐피탈의 우승 비결을 분석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것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스피드배구의 과감한 시도와 성공, 거기에는 국내에서 한번 쓴 맛을 본 바 있는 오레올 까메호와 만년 2인자 신세였던 장신세터 노재욱(191cm)의 재발굴과 재발견을 이끈 최태웅 감독의 소신과 뚝심, 구단의 전폭적인 신뢰와 지원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현대캐피탈이 신나게 춤추는 이유의 전부일까? 왠지 2%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 이유는 타 팀과는 다른 현대캐피탈만의 그 무엇이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만의 ‘아주 특별한 목표’가 연승의 큰 원동력이 됐다는 생각으로 모아졌다. 사실 현대캐피탈의 최근 경기를 지켜보면 그들의 표정과 몸짓에는 생기와 활력 그리고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 그들의 빠른 플레이에는 남과는 ‘다른 배구’에 대한 자부심이 진하게 묻어있었고 조금 더 과장하면 한국이 추구해야할 ‘새로운 배구’의 가야할 길이라는 사명감까지 담겨 있는 듯했다.

그러면서 아주 오래 전에 일독했던 짐 콜린스-제라포라스가 지은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속에 담긴 ‘크고 위험하고 대담한 목표(BIG HAIRY AUDACIOUS GOALS)’라는 대목이 떠올랐다. 저자들은 자신의 업종 내에서 수십 년 간 최고 중의 최고였던 비전 기업들이 세계에서 가장 생명력이 강하고 성공적인 회사들로 성장 발전한 그들만의 남다른 특징을 조사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크고 위험하고 대담한 목표’(이하 BHAGs)였다.

BHAGs는 발전을 자극하기 위한 강력한 수단으로, 목표 그 자체가 동기를 부여하고 조직원들로 하여금 절대적인 헌신을 하게 한다. ‘진짜 BHAGs는 명확하고 강력하여 힘을 한 곳으로 모으는 중심적 역할을 한다. 가끔 거대한 팀 정신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것은 조직이 언제 목표를 달성했는지 알 수 있도록 뚜렷한 결승점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어쩌면 최태웅 감독의 현대캐피탈은 세계배구의 큰 흐름인 ‘스피드배구의 국내무대 이식’이라는 BHAGs를 갖고 있었다. 외국인 선수에게 공격력을 의존하는 ‘몰빵배구’가 승리 방정식이 된 작금의 현실, 그것을 구현해낼 인적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스피드배구의 실현은 아슬아슬한(hairy) 도전일 수밖에 없다. 또 국내 배구 팬들이 ‘몰빵배구’에 식상해 등을 돌리고 한국배구가 세계배구의 흐름을 읽지 못해 국제무대, 심지어 아시아무대에서도 맥 못 추는 상황에서 스피드배구의 장착은 크면서도(big) 대담한(audacious) 도전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감독은 물론 선수단, 그리고 구단 프런트까지 ‘내면의 열정’을 부추겼고 강한 자부심으로 하나로 묶이게 했다. 초반 부진에 부진을 거듭, 위기에 몰리기도 했으나 그래도 끝까지 밀어붙인 것은 ‘다른 배구’, ‘새로운 배구’를 향한 열정과 자부심이 아니었을까?

아울러 그들을 춤추게 한 것은 ‘최고보다는 최선’의 가치다.

그들은 시즌 개막전부터 우승(최고)보다는 플레이 안착(최선)에 중점을 뒀다. 매 경기 승리를 따내기 보다는 스피드배구의 완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최태웅 감독이 오레올에게 공격이 쏠리자 세터 노재욱에게 “져도 좋으니 볼을 주지 마라”는, 일반 팬들로선 이해할 수 없는, 특단의 지시를 내린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최태웅 감독이 “코트를 놀이터라고 생각하고 경기를 즐겨라”, “과거가 쌓이면 현재 연승이 쌓이는 것, 현재에 최선을 다하자”, “원하는 것은 쉽게 얻지 못 한다”는 등 최선의 가치를 강조한 것도 맥을 같이한다.

이어 스피드배구가 우여곡절 끝에 점점 틀을 잡아가자 예의 그 강점이, 그 묘미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그것은 ‘함께 하는 즐거움’과 ‘함께 만드는 힘’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전원 수비 전원 공격의 토털배구 성격으로 리시브 불안 시에도 한 템포 빠르게 움직이는 스피드배구는 공격과 수비를 분담했던 분업배구와는 달랐다. 종전에는 주 공격수만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마련인데 세터와 리베로 빼고 전원이 공격에 가담하니 모두가 주인공이 됐다. 더 이상 현대캐피탈에는 주연과 조연이 없었다. 모두가 주연이었다. 더욱이 상대 블로커를 헷갈리게 하기 위해 공격수 전원이 매순간 같이 나서다보니 ‘함께 하는 즐거움’은 더욱 커졌다.

또 약속된 패턴플레이보다 공격옵션이 더 다양해지다보니 감독과 선수, 또는 선수 전원이 머리를 맞대고 공격 전략을 짜야 했다. 공격수 전원의 움직임이 복잡하면 할수록 상대 블로커의 발목을 잡을 수 있으므로 플레이를 창의적으로 ‘함께 만드는 힘’은 더욱 배가됐다. 코트에 나선 선수 전원이 자신 의 역량을 쏟아 부으려 했으며 그것을 ‘혼자’가 아닌 ‘다 같이’ 협력으로 만드는 최적의 공격방식을 고민하는, ‘생각하는 배구’로의 전이도 자연스레 이뤄졌다.

물론 현대캐피탈 앞에는 오는 18일 펼쳐지는 챔피언결정전이 눈앞에 있다. 하지만 그 성패를 떠나 정규리그에서 보여준 18연승의 대기록은 ‘크고 위험하고 대담한 목표’가 얼마나 구성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그 실현을 위해 동기 부여하는지 잘 말해준 증거가 아닐 수 없다.

“당신은, 아니 당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은 ‘크고 위험하고 대담한 목표’를 갖고 있는가?”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가 아무 목표 없이 사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조금은 따끔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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