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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학로 핫가이 박은석의 '프라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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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학로 핫가이 박은석의 '프라이드'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8.11 11: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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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최대성기자] 캐나다에서 온 헨리가 방송가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면, 대학로에는 미국 뉴욕 출신의 연극배우 박은석(31) 바람이 뜨겁다.

최근 2~3년 사이 화제작들의 주인공을 연이어 연기하며 주목받았다. 잘 생긴 외모와 스타성으로 열성팬들을 거느린 그는 올해 들어서만도 화제작 ‘히스토리 보이즈’ ‘수탉들의 싸움’에 출연한데 이어 오는 16일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 막을 올리는 연극열전 신작 ‘프라이드’의 주인공 올리버로 다시금 무대를 장악한다. 햇살 따가운 한여름 오후, 대학로의 한적한 카페에 애마인 오토바이를 몰고 그가 나타났다.

 

◆ ‘히스토리 보이즈’ ‘수탉들의 싸움’ ‘프라이드’ 연이어 퀴어 캐릭터 도전

한국 초연되는 영국 극작가 알렉시 캠벨의 ‘프라이드’는 1958년과 2014년을 넘나들며 성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던 동화작가 올리버와 보수적인 유부남 사진작가 필립을 통해 사회의 억압과 편견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자긍심,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원작은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드, 존 위팅 어워드 등의 시상식을 휩쓸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1958년 당시 동성애는 불법이었고, 성적 소수자에 대한 억압이 심했어요. 공원이나 생고기 배달 트럭 안에서 남몰래 만남을 가져야 했다고 해요. 죄인 취급받으며 불안정한 삶을 살았다면 2014년은 그동안 그들이 싸워왔던 역사의 결과로 훨씬 자유로워졌죠. 성적으로 너무 자유분방한 시대가 됐고요. 하지만 여전히 게이 프라이드 축제가 존재하는 걸 보면 편견이나 불평등이 해소된 건 아니죠. 또 성적 소수자들 사이에 가치관의 충돌도 존재하고요. 이 작품은 두 시대 사이의 역사, 그들의 정체성과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지를 말하고 있어요. 작품 안에 다른 두 시대가 펼쳐지다가 마침내 하나로 뭉쳐지는 점과 캐릭터의 변화가 흥미로워요.”

스승에게 연정을 느끼는 도도하고 거칠 것 없는 고교생 데이킨(히스토리 보이즈), 오랜 동성애인 M과 새롭게 관계를 맺은 여자 W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존(수탉들의 싸움)에 이은 연이은 퀴어 캐릭터다. 하지만 거친 남자부터 우유부단한 남자,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와 같이 캐릭터의 스펙트럼은 그 안에서 다채롭게 빛난다.

 

“배우는 작품성을 보고 움직이니까 상관없어요.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동일한 인물이 아니니까 ‘게이 역할이라 난 안해’는 어리석은 생각이죠. 어떤 게이인가가 중요하잖아요. ‘프라이드’에서 올리버가 인간으로서 동등함을 위해 싸운다면, ‘수탉들의 싸움’에서 존은 하나의 틀에 가둬놓으려는 획일적인 사고와 사회의 관습에 대해 싸우거든요. 수많은 비슷한 인물을 다르게 해석해야 하니까 작품에 도전의식이 생기고, 배우로서 성장할 수 있다고 여겨요.”

◆ 재미동포 출신으로 패션디자인 전공하다 연기위해 귀국…한국어 연마 위해 군입대

일곱 살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 뉴욕에서 성장했다. 영화광인 아버지가 소장한 방대한 양의 영화 DVD를 보며 배우와 연기를 동경했다. 어릴 적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여 미국의 유명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인 픽사의 애니메이터가 되기를 꿈꾸기도 했다. 미술과 연관 분야인 패션에도 관심이 생겨 낫소칼리지에 입학, 패션디자인을 전공했다.

학업을 할수록 그림과 디자인은 자신에게 있어 취미이지 평생 작업은 아님을 깨달았다. 21세가 돼서야 연기학원엘 다니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귀국을 추천했다. 동양인 배우는 뮤지컬 ‘미스 사이공’을 하지 않는 이상 미국 무대에서 주연을 맡기 힘들고, 뻔한 캐릭터만 맡게 되므로 기회가 더 많은 모국행을 권유한 것이다.

 

“부모님을 설득한 뒤 용기를 내 한국으로 왔을 때 오히려 친척분들이 ‘무슨 헛바람이냐. 다시 돌아가라’고 반대하셨어요. 당시엔 미래와 꿈을 두고 방황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제가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물불을 가리지 않은 성격이거든요.”

서툰 한국어를 보완하고, 연기 기초를 배우기 위해 서울예대 방송연예과에 입학했다. 동기들보다 세 살이나 많은 상황이었으나 전공 분야를 맹렬히 배워나갔다. 당시 가수 제의를 많이 받았으나 모두 거절했다. 배우는 배우이고, 가수는 가수인데 어설프게 이것저것 하는 게 싫어서였다. 자신의 분야에서 ‘마스터’가 되기 위해선 한 우물을 파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여전히 능숙해지지 않는 한국어가 문제였다. 미국 영주권자라 피할 수 있었음에도 군 입대를 과감히 선택했다.

“하루 24시간 같이 뒹굴며 문화와 정서를 뼛속 깊이 익혀야 언어도 늘거든요. 군대만한 데가 없죠. 군 생활을 하면서 급속도로 늘었어요. 지금도 부모님이 계시는 미국에 최대한 안 가려고 하고, 외국인들을 만나지 않고, 영어를 쓰려하지 않는 이유도 언어 때문이에요. 한 번 영어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한국어 구사력이 다시 풀려 버리거든요.(웃음)”

◆ ‘옥탑방 고양이’ ‘햄릿’ ‘트루 웨스트’ 주역 꿰차며 연극계 블루칩 등극

제대 후 3D 영화를 제작하는 모 영화사의 프로덕션팀에 입사해 1년 동안 독일, 스위스, 미국, 중국을 다니며 3D 장비 구매 업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연기를 하고 싶었는데 방법을 몰라서 이런저런 일에 발을 내디뎠던 것이다.

 

2012년 한 차례의 오디션 탈락 고배를 들이킨 뒤 도전한 연극 ‘옥탑방 고양이’의 남자 주인공을 맡으며 꿈에도 그리던 연극계에 입성했다. 표현을 잘 하지 못하는 상남자 캐릭터라 본인의 컨디션과 딱 맞아 떨어졌다. 이어 인간의 이중성을 다룬 두 형제 이야기인 ‘트루 웨스트’의 엄친아 동생 오스틴, 3인극 리메이크 버전 ‘햄릿’의 주인공 햄릿으로 승승장구했다.

“‘트루 웨스트’에서는 극이 흘러가며 형과 동생의 입장이 뒤바뀌는 점이 너무 재밌었어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불량스러운 마초 스타일의 형 리 역을 꼭 해보고 싶어요.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햄릿’은 주인공의 고뇌와 복수심리, 어머니에 대한 트라우마, 삼촌과의 갈등과 같은 다양한 감정선을 표출할 수 있었기에 배우로서 도움이 많이 된 작품이고요.”

자신과 비슷한 캐릭터를 맡아 시너지 효과를 냈던 ‘히스토리 보이즈’를 비롯해 ‘수탉들의 싸움’ ‘프라이드’에 캐스팅되며 인식의 변화를 경험했다.

“이 작품들을 하기 전에 성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의식은 없었지만 관심도 없었어요. 그냥 나와 다를 뿐이란 생각? 하지만 그런 제 태도 역시 무시였던 것 같아요. 작품을 준비하며 그들의 역사, 자유와 권리를 위한 투쟁, 사회적 이중성, 가족 안에서의 위치 등을 공부하게 되면서 존경하는 마음까지 생기더라고요. 제 정신세계가 넓어지고 배우로서의 삶이 풍부해진 느낌이에요. 이렇게 삶의 교훈을 얻게 되는 연기가 너무 좋아요.”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게 아니라 매 순간, 용기와 선택으로 버텨온 그는 밑바닥부터 치고 올라오는 자수성가 스토리의 작품을 해보고 싶다. 농구광인 박은석은 운동할 때 가장 자유로움을 느끼기에 스포츠 영화에 출연하고프다. 자신의 백 그라운드를 살릴 수 있는 해외 영화에서 상투적이지 않은 동양인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 배우로서 아주 현실적인 꿈 3가지를 품고 산다.

[취재후기] 빛의 속도로 지나간 지난 10년. 지인들은 “왜 힘들게 고생하느냐?” “쉽게 갈 수도 있었을 텐데”란 걱정을 해준다. 박은석은 “그건 그들이 생각하는 길”이라고 쿨하게 정리해버린다. 오히려 자신의 길, 때와 절차가 있기에 너무 재미나다고 미소 짓는다. 동안임에도 글래머러스한 몸과 정신세계를 지닌 ‘베이글남’이자 자존감 강한 배우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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