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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고양무지개야구단 '행복소통', 다문화-새터민 가정에 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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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고양무지개야구단 '행복소통', 다문화-새터민 가정에 빛을!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6.07.15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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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허구연무지개야구단, 5년째 모범 운영...무지갯빛 다문화, 하나로 엮은 고양시 '야구소통법'

[200자 Tips!] 경기도 고양시는 스포츠산업을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는 대표적인 도시다. 지난해 대한민국 스포츠산업대상에서 지자체로는 처음으로 대통령상을 받았다. 고양의 슬로건은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의 도시’다. ‘다양한 꽃이 있을수록 꽃다발이 아름답다’는 철학은 체육 정책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고양허구연무지개야구단은 결혼 이주민, 외국인 근로자 등 다문화 구성원이 소통할 수 있는 모범 사례로 꼽힌다.

[고양=스포츠Q 글 민기홍·사진 최대성 기자] 레인보우를 새긴 흰색 유니폼을 입은 어린이들이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에 위치한 고양스포츠타운에 하나둘 모여든다. 공을 잡아내겠다는 열정만큼은 7월 뙤약볕만큼 뜨겁다. 이들의 부모 중 한쪽은 북한, 중국, 일본, 베트남, 타지키스탄 등지에서 왔다. 고양허구연무지개야구단은 다문화, 새터민 가정을 위해 2012년 4월 닻을 올렸다.

▲ 왕지린 양이 내야 펑고 훈련을 받고 있다. 고양허구연무지개야구단은 5월부터 10월까지 격주로 모여 훈련을 받는다.

허구연 한국야구위원회(KBO) 야구발전실행위원장이 단장을 맡고 박용진 전 LG 트윈스·한화 이글스 2군 감독이 감독 지휘봉을 잡았다. 김용달, 임호균, 손혁, 전준호 등 전·현직 야구 지도자들이 자원봉사를 자처했다. 김성봉 부단장은 야구를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고양시와 의견을 조율하는 궂은일을 맡았다.

5년째, 매년 5월부터 10월까지 매월 둘째주와 넷째주 고양스포츠타운 리틀구장에서 교실이 열린다. 대상은 초등학생 3학년부터 6학년, 다문화 또는 새터민 가정의 자녀들이다. 김성봉 부단장이 “이렇게 더우면 안 하겠다던 친구들이 이젠 저렇게 서로들 하겠다고 달려든다”며 웃는다. 이날 일산서구의 최고 기온은 섭씨 33도였다.

◆ 김성봉 부단장-박용진 감독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변했다"

무지개라는 이름. 여러 색깔이 조화를 이루자는 의미다.

“성격도 좋아지고 자신감도 생기고요. 모난 친구들, 나서지 못하던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변한 걸 보면 뿌듯하지요.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소외감을 느낄 수 있는데 변해가는 모습들을 보면 보람을 느낍니다. 제가 예순다섯입니다. 손주뻘하고 장난 치고 스킨십하면 참 재밌어요.”

▲ 미네소타 극동 스카우트인 김태민 코치(윗줄 가운데)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을 행복이라 여긴다.

김성봉 부단장이 그라운드의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기본기를 배우는 1그룹, 내야 땅볼 처리 훈련 중인 2그룹, 외야 플라이를 잡아보겠다는 3그룹이 보였다. 고양시 주무관이 “등록 선수 31명 중 26명이 나왔다”며 “출석률이 아주 좋다”고 활짝 웃는다.

박용진 감독은 "재밌게 놀아준다고 생각하고 지도한다. 야구를 가르치면 얼마나 가르치겠느냐"며 "인사성, 희생정신, 예의범절을 가르치는 시간이다. 처음과 비교하면 엄청 달라졌다. 5년째 접어드니 질서가 생겼다. 인격, 기본 소양을 갖춰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유달리 눈에 띄는 선수가 있다. 양동근(가람초 6)이다.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벌써 키가 170㎝을 넘는다. 독보적인 기량을 갖췄지만 그는 "야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협동하는 것"이라며 "4년째 야구를 하면서 한 사람이 못 해도 팀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 고양시의 지원, 진정성에서 나온다

고양시의 체육사랑, 정평이 나 있다. 2010년 최성 시장 부임 이후 스포츠도시가 됐다. 오리온(농구), 다이노스(야구), 자이크로FC(축구) 등 프로스포츠 구단을 유치했고 피겨 그랑프리 파이널, 축구대표팀 A매치 등 국제경기도 여러 차례 개최했다. 생활체육 발전도 눈에 띈다. 2014년 기준으로 고양스포츠타운에서 생활체육을 즐긴 인구가 239만명에 달했다. 3년새 무려 4배나 증가했다.

▲ 독보적인 기량을 뽐내는 양동근. 김주찬처럼 빠른 프로야구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다.

무지개야구단 사업담당자인 고양시청 체육진흥과 김은아 주무관은 “무지개야구단은 시장님이 상대적으로 소외될 수 있는 이들에게 눈을 돌려보자는 취지로 마련한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고양시 외국인 주민의 비율은 100만 고양인 중 2만명 즉, 2%를 넘는다. 무지개야구단과 성격이 같은 솔롱고스 농구단을 운영 중이고 매년 5월엔 다문화가족 배드민턴 전국대회가 열린다.

김성봉 부단장은 “시에서 5년을 꾸준히, 30명 안팎으로 진정성 있게 지원을 해주니 많은 도움이 된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임승찬 군의 아버지 임경수 씨도 “야구는 적잖은 비용이 드는, 진입장벽이 있는 종목이라 기회를 갖기 힘들다”며 “큰 혜택이란 걸 잘 안다. 고양시와 허구연 단장님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무지개야구단 업무를 인계받았다는 김은아 주무관은 “처음에야 일이었지만 이젠 재밌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걸 보면 유대감, 책임감이 생긴다”며 “지난주엔 처음으로 티볼 대회에 나갔는데 팀 정신으로 스스로들 알아서 뭉치더라. 새로 들어온 친구들을 보듬고 친해지는 걸 보면 정말 예쁘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 김성봉 부단장(왼쪽)과 박용진 감독(오른쪽)이 허구연 위원장과 인연으로 자원봉사를 자처했다.

◆ 미네소타 스카우트 "이게 왜 고생입니까? 행복이지!"

“자, 오늘 집중이 잘 안 됐지? 집중하지 않으면 야구도, 공부도 잘 안되는 거야. 알겠어요?”

웅성웅성대던 아이들이 김태민 코치의 한마디에 눈을 반짝였다. 그가 박병호를 메이저리그(MLB)로 보내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미네소타 트윈스 극동 스카우트이란 걸 제대로 아는 어린이는 몇 없다. 그들에겐 김 코치는 야구 가르쳐주는 선생님이다. “아직 공이 무섭다”는 아이들은 따로 백네트로 불러 집중 지도할 만큼 열정이 넘치는 열혈남이다.

김태민 스카우트는 1990년대 중반 LG 트윈스, OB(두산 전신) 베어스에서 선수로 뛰었다. 호주에서 나고 자라 호텔경영학을 전공했고 호주 리틀야구단을 지도한 경력이 있다. LG에서 박용진 감독과 맺은 인연으로 2013년 초부터 봉사를 하고 있다. “더운 날 고생이 많다”고 덕담을 건네자 “이게 왜 고생이에요. 행복이죠. 재밌기만 한 걸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김 코치의 헌신 덕에 무지개야구단은 희생을 배웠다. 양동근은 “나 혼자 잘 하는 것보다는 다 같이 수비 잘할 때가 훨씬 기분이 좋다는 걸 중계플레이를 하면서 알게 됐다”고 말했다. 임경수 씨는 “아이들이 혼자 잘해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우치는 것 같다. 힘들어도 참고 하는 법, 실수하면 극복하는 법, 집중력, 성취감 등 얻은 게 참 많다”고 귀띔했다.

▲ 무지개야구단 지도자들은 "소극적이던 아이들이 협력, 희생, 협동의 가치를 배웠다"고 입을 모았다.

◆ kt 주권, 무지개야구단에서 나오지 말란 법 없다

주권(21)이 kt 위즈의 차세대 에이스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5월 27일 넥센 히어로즈전 완봉승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내년 3월 개막하는 야구 국가대항전 제4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참가 여부가 화제로 떠올랐다. 2007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지만 그의 어머니는 중국동포 조선족이다. WBC는 선수가 부모의 국적을 선택해 출전할 수 있다.

임경수 씨는 "주권의 사례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며 "무지개야구단에서도 그런 선수가 나올지 모른다"는 희망 섞인 바람을 전했다.

양동근은 "여기서 야구를 하면서 프로야구 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다"며 "투수, 야수 모두 욕심이 난다. KIA 타이거즈 윤석민이나 김주찬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KBO는 시장 확대를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 5월부터 해외 인터넷 중계 서비스를 시작했고 중국 야구시장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중국봉구협회(CBAA)와 업무협약도 맺었다. 임 씨는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온 엄마들은 아들, 딸을 보려 운동장에 나와 야구라는 종목을 처음 접한다"며 "무지개야구단이 야구 시장을 키우는 데 씨를 뿌리는 과정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고무공을 치고 받는 단순한 놀이가 누군가에겐 꿈이고 기회이고 희망이다. 지방자치단체는 변두리로 눈을 돌렸고 마음껏 뛰어놀 무대를 마련했다. 소외될 뻔했던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은 야구를 통해 활력을 얻고 사회에 녹아들었다. 이것이 스포츠의 힘이다. 고양시는 체육이 갖는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법을 안다. 무지개야구단이 그걸 잘 보여주고 있다.

[취재 후기] 고양허구연무지개야구단 외에도 박정태 레인보우, 양준혁 멘토리, 구세군안산다문화센터 유소년, 울산 스윙스 등 다문화 아이들을 위한 야구팀들이 여럿 있다. 지난해 9월엔 우수 꿈나무를 육성, 발굴하는 한국다문화야구연맹이 닻을 올렸다. 극소수의 외국인 노동자가 일자리를 빼앗고 흉악 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다문화 가정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가워지고 있지만 이들은 남이 아니다. 야구로 융화된 어린이들이 무럭무럭 성장해 프로 무대에서 활약할 날을 기대한다.

▲ 임승찬 군(왼쪽)과 아버지 임경수 씨. "아들이 야구로 적극적으로 변했다"며 지자체와 허구연 위원장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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