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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배트플립-친정팀 상대 세리머니, 스포츠와 매너 그리고 불문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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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배트플립-친정팀 상대 세리머니, 스포츠와 매너 그리고 불문율
  • 안호근 기자
  • 승인 2017.02.03 14: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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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존중해 지켜야 할 불문율 존재, 스포츠는 페어플레이와 매너다

[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 광경 하나. 2009년 9월 토고 출신 골잡이 엠마누엘 아데바요르는 맨체스터 시티 소속으로 홈에서 친정팀 아스날을 만났다. 골을 넣은 아데바요르는 반대편 아스날 관중석을 향해 한참을 달려가 무릎 슬라이딩 세리머니를 펼쳤다. 마지막이 안 좋았다고는 하지만 아스날에서 대형선수로 성장한 아데바요르였기에 충격적인 행동이었다. 아스날 팬들은 손가락 욕(?)을 포함한 거센 반발로 응수했다.

# 광경 둘. 2015년 10월 미국 메이저리그(MLB) 아메리칸리그(AL) 디비전시리즈 5차전. 토론토 블루제이스 호세 바티스타는 7회말 결승 스리런을 쏘아 올린 후 배트를 멀리 던져버렸다. 이는 홈런을 허용한 텍사스 레인저스 샘 다이슨의 심기를 건드렸고 벤치 클리어링으로 이어졌다.

종목을 불문하고 스포츠에는 매너와 관련된 암묵적 약속이 있다. 이를 지키지 않을 시에 많은 비판을 받거나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축구와 야구를 포함해 농구, 배구 등에 존재하는 이 같은 불문율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 ‘불문율의 스포츠’ 야구, 위반 시 돌아오는 건 ‘뼈아픈’ 대가

복잡한 룰만큼 불문율만 해도 수십 가지에 이르는 스포츠가 바로 야구다. 이를 지키지 않을 시 뼈아픈 대가도 감수해야 한다. 정말 뼈까지 고통이 사무치는 사구(死球)가 그것이다.

국내 프로야구에서 배트플립은 하나의 문화다. 선수들은 홈런을 친 뒤 습관적으로 배트를 날리고 야구팬들은 누가 더 멋있게 배트를 던지는 지를 두고 입씨름을 벌이기도 한다.

하지만 MLB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바티스타에 대한 앙금이 남았던 텍사스 루그네드 오도어는 지난해 토론토와 경기에서 바티스타가 2루에 거칠게 들어오자 참지 못하고 펀치를 날렸다.

지난해 김현수의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경기에서 홈런을 날린 이대호도 배트 플립을 했다. 최근 한 방송에서 김현수는 당시 동료들에게 “한국 선수들은 원래 2루 땅볼을 쳐도 배트를 던진다”고 해명해 이대호가 공에 맞지 않도록 막아줬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이밖에 홈런을 친 타자가 타구를 오랫동안 바라보거나 너무 천천히 베이스를 도는 행동, 크게 앞서 있는 상황에서 도루를 하는 것도 금기시되는 행동들이다.

2011년 KIA 타이거즈 트레비스 블랙클리는 양의지가 홈런을 친 뒤 타구를 확인하기 위해 한참동안 자리에 머문 뒤에도 빠르게 베이스를 돌지 않자 불같이 화를 내기도 했다. 다소 불문율에 관대한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크게 앞서가는 팀이 도루를 시도하거나 번트를 대서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은 종종 목격할 수 있다.

투수의 경우 불가피하게 타자에게 몸에 맞는 공을 던지더라도 타자의 머리 뒤쪽으로 공을 던지면 안 된다. 보통 타자들은 공이 몸쪽을 향하면 몸을 뒤로 움직여 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습관 때문에 공이 몸 뒤쪽으로 오더라도 습관적으로 몸을 움직이다가 머리 등에 공을 맞아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염려 때문이다.

◆ 팬까지 고려하는 축구의 금기사항

축구에서는 전 소속팀과 경기에서 세리머니를 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로 통한다. 친정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레알 마드리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이를 철저히 지키는 선수로 유명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소속이었던 2007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친정팀 스포르팅 리스본을 만나 결승골을 넣은 호날두는 세리머니 대신 양손을 모으는 행동으로 전 소속팀에 미안함을 전했다. 스포르팅 팬들도 호날두의 배려에 박수로 화답했다.

레알 이적 후 2013년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에서 맨유를 상대로 골을 넣고는 기뻐하는 동료들을 향해 자제하라는 동작을 취하기도 해 훈훈함을 더했다.

선수가 부상으로 쓰러져 있을 때 공을 밖으로 내보내는 것은 축구에서만 볼 수 있는 배려 넘치는 플레이다. 때로 승리가 간절해 이를 모른 척하고 공격을 강행하기도 하는데 이는 논란을 낳는다.

2014년 한국과 아시아축구연맹(AFC) 22세 이하(U-22) 챔피언십 8강에서 맞붙은 시리아는 0-2로 뒤진 경기 막판 한국 수비수 황도연이 쓰러진 상황에서도 골을 넣고 세리머니까지 펼쳤다. 한국이 스스로 공을 사이드라인 밖으로 걷어냈고 다시 공을 넘겨주는 게 불문율이지만 시리아는 공격을 강행했다. 경기 후 알 샤르 시리아 감독도 “페어플레이가 아니었다”고 시인할 만큼 상식을 벗어난 행동으로 여겨졌다.

불문율을 지키려다 웃지 못 할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한다. 1997년 부천의 윤정환은 비슷한 상황에서 울산 골키퍼 김병지에게 공을 넘겨주기 위해 하프라인 부근에서 롱킥을 했다. 그런데 공이 그대로 골망을 흔들었다. 이 골은 프로축구 역사상 손에 꼽히는 장거리 슛으로 남았지만 양 팀 모두 원치 않았던 난처한 결과였다. 윤정환은 미안함에 어쩔 줄 몰라 했고 부천은 결국 울산에 한 골을 헌납하며 상황을 무마했다.

사실상 승리를 확정지은 상황에서 상대를 기만하는 것 같은 화려한 플레이도 삼가야 할 행동이다. 바르셀로나 네이마르는 2015년 5월 아틀레틱 빌바오와 코파 델 레이 결승전 3-1로 앞선 상황에서 일명 ‘사포’를 선보였다. 두 발 사이에 공을 끼우고 머리 위로 넘겨 상대를 제치는 기술이다. 패배를 직감했던 아틀레틱 빌바오 선수들은 순식간에 네이마르 주위로 몰려들었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 배구에서는 상대 코트를 등지고 세리머니를 펼치는 것이 불문율이다. 서울 GS칼텍스 선수들이 득점에 성공한 뒤 돌아서 세리머니를 하고 있는 장면. [사진= KOVO 제공]

◆ 농구 배구, 그 외 종목들은?

농구에서는 승부가 한쪽으로 크게 기울었을 때 앞서가는 팀이 4쿼터에 벤치 선수들을 기용하기도 한다. ‘가비지(garbage) 타임’이라고 한다. 상대에 어느 정도 점수를 좁힐 기회를 주는 동시에 백업 선수들에게 부족했던 출전시간을 부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또 크게 앞서가는 팀은 작전타임을 요청하지 않는다는 것 또한 농구가 가진 불문율 중 하나다. 2014년 12월 당시 고양 오리온스와 경기를 마친 뒤 허재 전주 KCC 감독은 추일승 오리온스 감독과 악수를 나누지 않고 곧장 라커룸으로 향했다. 경기 막판 20점 앞선 상황에서 추일승 감독이 작전타임을 불러 불문율을 어겼기 때문. 이후 추 감독도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다.

배구는 4대 구기 스포츠 중에서 유일하게 상대 선수와 직접적인 신체접촉이 없어 상대의 심기를 건드릴 일도 적은 종목이다. 하지만 배구에도 불문율은 존재한다. 세리머니를 할 때 네트 반대편의 상대를 향해 해서는 안 된다는 것. 경기를 보면 득점 후 선수들이 일제히 상대 코트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 환호를 하는 장면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관중들에게 적용되는 불문율도 있다. 사격과 역도, 양궁, 골프 등 순간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종목을 관전할 때는 소음을 내서는 안 된다는 것. 하지만 빗나간 팬심은 때로 선수들에게 독이 되기도 한다. 과거 ‘역도 영웅’ 장미란과 ‘피겨 퀸’ 김연아는 한국에서 열린 세계대회에서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환호를 보내는 관중들의 응원 때문에 제대로 된 경기력을 발휘하기가 힘들었다고 밝힌 적이 있다.

현장에서도 동업자 정신 측면에서 매너와 불문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과거 빙그레 이글스의 원조 에이스로 활약했던 ‘잠수함’ 한희민 충남 논산시 리틀야구단 감독은 “과거 선수 시절 삼진을 잡든 홈런을 맞든 무표정을 유지하려고 했다. 선수들끼리 조금씩만 감정을 자제하면 문제가 생길 일이 없다”며 “투수 입장에서는 홈런을 맞은 것만 해도 기분이 나쁜데 지나치게 환호하는 상대 타자를 보면 감정이 격해지게 된다. 투수가 자칫 일부러 타자를 향해 공을 던지면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은 맞은 타자 아니겠는가. 자신을 위해서라도 상대의 감정을 배려하는 플레이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포츠의 모든 불문율이 팬들의 공감을 사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선수들만을 위한 것들로 비치기도 하고 심지어는 현장에서도 생각이 갈린다. 다만 상대 선수의 심기를 건드리는 행동을 막고 심각한 부상을 방지하기 위한 행동 등은 보는 이들까지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착한 불문율’이 아닐 수 없다. 역시 스포츠는 매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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