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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자옥을 추모하며...이지적 여배우의 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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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자옥을 추모하며...이지적 여배우의 표상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11.16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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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용원중기자] 잇몸을 활짝 드러내며 웃던 노랑나비같은 여배우. 천상 여자였고 소녀의 감수성을 간직했던 김자옥이 6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한양대 연극영화과 재학 중이던 1970년 MBC 공채 탤런트 2기로 데뷔한 김자옥은 이듬해 KBS로 스카우트돼 사극 ‘심청전’의 여주인공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75년 김수현 작가의 ‘수선화’에 출연해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며 연기파로써 입지를 확고히 다졌다.

김자옥은 1970~80년대 MBC 드라마 왕국 시대를 이끌던 헤로인이었다. 미모와 스타성을 겸비한 TBC의 김창숙, KBS의 한혜숙과 더불어 방송3사 여배우 트로이카 체제를 구축한 주인공이었다. 청순하거나 섹슈얼한 이미지의 여배우가 주류를 이르던 시대에 단신의 김자옥은 청순한 느낌과 더불어 이지적이고 똑 부러지는 이미지를 장착한 보기 드문 연기자였다.

 

시인이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풍부한 감수성을 지닌 김자옥은 서울교대 부속 국민학교 시절 기독교방송 어린이 성우, MBC 라디오 드라마 ‘사랑의 계절’ 성우 출신답게 낭랑한 목소리와 정확한 발음으로 멜로드라마 속 비련의 여주인공뿐만 아니라 70년대의 독립적인 여성상을 표현하는 데도 적역이었다.

이는 당시 날라 다녔던 김수현 작가의 뮤즈로 낙점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가부장제 남성사회의 권위에 도전했던 김 작가 특유의 속사포 대사를 꼿꼿한 기상으로 소화할 수 있었던 그는 김 작가의 ‘수선화’ ‘신부일기’ ‘봄비’ ‘종점’ '상처'에 잇따라 출연하며 황금빛 호흡을 맞췄다. 탤런트 김혜자가 김 작가의 30대 페르소나였다면, 김자옥은 20대 뮤즈였다.

드라마의 인기를 등에 업고 스크린에 진출해서도 혁혁한 성과를 거뒀다. 역시 김수현 작가가 집필한 ‘보통여자’를 시작으로 당시 한창 유행하던 호스티스물인 ‘O양의 아파트’(1978)에서 열연해 제24회 아시아영화제 우수배우상을 수상했다. 이후 영화 ‘가을비 우산 속에’ ‘목마 위의 여자’ ‘태양을 훔친 여자’ ‘화요일 밤의 여자’ ‘낯선 곳에서 하룻밤’ ‘미워할 수 없는 너’ 등 여성의 성적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에로틱 무비와 순도 높은 멜로영화의 여주인공으로 80년대 초반까지 맹활약했다.

▲ '동갑내기 과외하기' '세번 결혼하는 여자' '신부일기' 'O양의 아파트'에서의 고 김자옥(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결혼과 출산 이후 90년대 들어 어머니와 아줌마 캐릭터로 탈바꿈한 그는 연기 폭을 확장해 드라마, 영화에서 푼수기 넘치는 코믹한 역할부터 푸근하고 우아한 어머니 역을 관록의 연기로 그려냈다. 주연이 아닌 조연을 맡는 상황에서도 김자옥의 개성적인 연기는 극에 풍성함을 더했다.

드라마 ‘굳세어라 금순아’ '불량주부' ‘내 이름은 김삼순’ ‘커피프린스 1호점’ '엄마도 예쁘다' ‘그들이 사는 세상’ ‘세번 결혼하는 여자’,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 ‘제니 주노’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의 어머니 역할은 천편일률의 틀에서 벗어난 김자옥 만의 어머니상이었으며 최신 트렌드에 전혀 뒤지지 않는 세련된 감수성을 한껏 드러냈다.

주체할 수 없는 ‘끼’를 지닌 그는 트로트 가수 도전에 이어 시트콤, 예능프로에서도 빛을 발휘했다. 공주 캐릭터를 정립한 뒤부터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능수능란한 코믹 연기를 토해냈고, 예능프로 ‘세바퀴’ 등에선 패널로 출연해 특유의 깔깔대는 웃음과 4차원 면모를 드러내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다. 올해 tvN ‘꽃보다 누나’에서도 소녀의 감수성과 더불어 유머러스한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줘 보는 이의 눈길을 붙들었다.

그때 그 시절, 보기 드문 이지적 여배우의 표상이었던 김자옥은 지적이고 야무진 인물부터 성적 욕망에 충실한 에로틱한 여인, 지고지순한 비련의 여주인공 등 스펙트럼 넓은 여성 캐릭터를 변주했다. 배우로서 그가 만들어낸 성과는 대단하며 그 그림자는 여전히 넓고도 짙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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