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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터뷰] '오뚝이 궁사' 김우진, 시련 속에 핀 꽃이 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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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터뷰] '오뚝이 궁사' 김우진, 시련 속에 핀 꽃이 더 아름답다
  • 이세영 기자
  • 승인 2014.11.20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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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전3기' 제주체전 세계신기록·3관왕·MVP 영광으로 2년간 슬럼프 청산하고 부활 꿈꾸다

[300자 Tip!] 한동안 양궁 팬들에게 잊혔던 그 이름 김우진(22·청주시청), 그가 다시 명중 퍼레이드를 시작했다. 최근 2년간 국가대표팀 선발전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신 김우진은 한층 성숙해진 경기 운영능력과 집중력으로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국민들에게 알렸다. 선수 생활에 위기가 오기도 했지만 양궁을 좋아하는 마음이 더 강했다. 그것이 김우진이 지금까지 양궁을 계속하게 된 원동력이었다. 심장이 단단해진 김우진은 2년 전 불발됐던 올림픽 출전을 위해 오늘도 구슬땀을 흘린다.

[청주=스포츠Q 글 이세영·사진 노민규 기자] “양궁은 여자 친구 같아요. 여자 친구 기분이 하루는 좋았다가 다른 날 갑자기 나빠지는 것처럼, 양궁도 하루 잘 맞다가 어떤 날은 지독하게 안 맞거든요.”

양궁의 매력을 설명해달라는 질문에 독특한 대답이 나왔다. 스물 둘 나이에 이미 산전수전을 겪은 선수이기에 가능했다.

여러 차례 시련을 겪고 일어선 김우진은 한층 단단해졌다. 그는 선수 생활을 그만둘 수도 있었던 고비를 넘고 또 다른 꿈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제주 전국체전에서 MVP를 차지한 뒤 소속팀 선수들과 훈련하며 다음 시즌을 준비하고 있는 김우진을 청주에서 만났다.

▲ 인생의 3분의 2 이상을 양궁과 함께해 온 김우진. 그에게 양궁은 '또 다른 나'다.

김우진은 2010년 혜성같이 등장해 세계 양궁을 평정했다.

열여덟 나이로 출전한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개인전과 단체전 2관왕에 오르며 2004 아테네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리스트 임동현(28·청주시청)에 이은 고교생 스타로 명성을 떨쳤다.

이듬해 토리노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개인전과 단체전을 휩쓸며 2관왕에 오르면서 단숨에 한국양궁을 대표하는 대들보로 자리잡았다. 당시 최소 5년간은 김우진의 시대가 계속될 것이라는 말이 오갔을 정도로 그의 기량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하지만 2012년부터 시련을 겪었다. 2012 런던 올림픽과 2013 세계선수권 대표 선발전에서 모두 탈락의 쓴맛을 봤다.

“2년 연속 메인 대회에서 2관왕을 했기 때문에 다들 제가 올림픽에 나간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막상 선발전에 떨어지고 나니 허무하더라고요. 한순간에 추락하고 나니까 슬럼프가 왔습니다. 자세가 흐트러지고 기록도 나아지지 않았어요.”

▲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양궁 리커브에서 김우진은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사진=스포츠Q DB]

◆ 전국체전, 2년 슬럼프 무너뜨린 '터닝 포인트'

잇따라 대표팀 선발전에서 떨어지고 난 뒤 김우진의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됐다. 국제대회에 출전조차 하지 못하게 되자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본인 역시 주위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안겼다는 생각에 큰 좌절감에 빠졌다.

김우진은 “2년간 슬럼프를 겪으면서 양궁이 미치도록 싫었다. 이렇게 반짝하고 끝나는 건가 생각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하지만 시련은 김우진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간신히 마음을 추스른 뒤 소속팀에 복귀해 열심히 몸을 만든 뒤 전국체전 우승으로 잃었던 자신감을 되찾았다. 처음 국가대표가 됐을 때보다 요즘 느끼는 성취감이 더 크다는 그다.

그는 지난달 제주에서 열린 전국체전에서 리커브 70m 352점으로 금메달을 딴 뒤 랭킹라운드 4개 거리(30m, 50m, 70m, 90m) 144발 라운드에서 합계 1391점을 쏴 세계신기록을 작성했다.

70m에서는 지난해 김종호의 350점을, 랭킹라운드에서는 4년 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자신이 세운 1387점을 넘어선 세계신기록이었다.

앞서 50m에서도 350점으로 대회 신기록을 작성한 김우진은 대회 3관왕에 오름과 동시에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했다. 런던 올림픽과 인천 아시안게임 선발전 탈락의 한을 조금이나마 씻을 수 있었던 우승이었다.

“제주도가 원래 바람이 많이 불기로 유명하잖아요. 그래서 많이 걱정했는데 우연찮게 바람이 멈춰주고 날씨가 좋아져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제가 슬럼프를 겪고 있다고 하셨는데 이번 대회에서 그것을 어느 정도 무너뜨렸다고 생각합니다.”

새 도약을 다짐한 김우진의 눈빛이 빛났다. 이번 제주 체전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깊게 불어넣어준 대회였다.

▲ 활 시위를 당기는 김우진. 다음 목표는 국가대표 선발전 통과와 세계선수권에서 좋은 성적으로 입상하는 것이다.

◆ 이원면이 낳은 태극궁사, 대형사고 치다

어린 시절 김우진은 충북 옥천군 이원면에서 아버지, 어머니, 형과 함께 살았다.

양궁을 접한 계기는 초등학교 때 양궁부였던 형을 통해서였다. 형과 함께 학교를 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당시 양궁부 감독과 마주칠 일이 많았던 김우진은 감독의 권유로 양궁을 시작하게 됐다.

“이원초등학교 전교생이 250명밖에 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거기에 양궁부가 있었지요. 감독님의 권유로 양궁부에 들게 됐습니다. 중학교에 진학했을 때는 전교생 수가 더 적었어요. 그때 이원중학교 전교생이 200명이었어요. 두 학교 다 규모가 작았지만 다행히 양궁부 있어서 운동을 계속 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서 연이 닿아 충북체고까지 진학하게 됐지요.”

그가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시기는 이원중 2학년 때였다. 그는 당시 라이벌이 없었을 정도로 전국대회를 휩쓸었다. 가파른 상승세로 고등학교 때부터는 국제대회에 출전했다. 충북체고 졸업반 때 출전했던 대회가 바로 2관왕을 차지한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이었다.

▲ 2년간의 슬럼프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었지만 김우진은 그 때마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양궁장으로 나왔다.

◆ 태극마크, 사명감이 부여된 증표

대표팀 선발전을 통과한 뒤 태극마크를 달면 태릉선수촌에 들어가게 된다. 선수촌에 들어간 후에는 소속팀 선수들과 경쟁이 아닌 국가대표들과 경쟁을 벌인다.

소속팀에서 훈련보다 훈련강도는 높지만 그 속에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 흔히 말하는 ‘톱 클래스’ 선수들끼리 겨루기 때문에 경쟁심이 엄청나다. 김우진은 이를 ‘총성 없는 전쟁’이라 비유했다.

“한 발씩 쏘면서 서로가 서로의 점수를 의식해요. 정말 피 말리는 경쟁이지요. 하지만 이것이 안 좋은 쪽으로만 작용하지는 않습니다. 더 집중력 있게 운동할 수 있고 그러면서 경기력도 향상되거든요. 서로 발전하는 효과를 볼 수 있지요.”

김우진에게 태극마크는 사명감이 부여된 증표다. 국가대표로서 영광스러운 자리에 올라 봤고 여러 번 선발전에 떨어져도 봤다.

“달고 싶어도 못 다는 선수가 있고 적당히 해도 다는 선수가 있어요. 저는 태극마크를 단다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해요. 한 번 달고 있다가 다시 떨어져 나갔다가 또 다시 달게 됐는데, 거기서 오는 성취감이 앞으로 열심히 하게 되는 동기부여가 됩니다. 국가대표 양궁선수는 양궁을 하는 모든 선수를 대표하는 선수잖아요. 그것에 대한 사명감이 남달라요.”

전국체전을 통해 터닝 포인트를 마련한 김우진은 이제 내년 세계선수권대회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위해 다시 뛴다.

청주시청 홍승진 감독은 “선수들끼리 기술적인 것으로 도움을 주기보다는 양궁은 실질적으로 자신과의 싸움이다. 선수 개인기량과 기술은 타고났다고 봐야 한다”며 “우진이는 휴가를 줘도 보충훈련이 있으면 보충하러 올 정도로 열정이 많다”고 평가했다.

앞으로 목표에 대해 김우진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국가대표 선발전을 통과한 뒤 세계선수권에서 좋은 성적으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겠다”며 “그 뒤에는 한 번도 밟지 못한 올림픽 무대에서 좋은 성적으로 국민들의 성원에 보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온갖 시련을 딛고 다시 일어섰는데, 열심히 훈련해서 멋진 모습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많은 기대와 성원 부탁합니다.”

[취재후기] 김우진의 롤모델은 올림픽 단체전 2연패에 빛나는 박경모(39) 공주시청 감독이다. 그의 철두철미한 자기관리와 생활습관을 닮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역시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궁사다. 양궁을 ‘또 다른 나’라고 비유할 정도로 양궁에 모든 것을 쏟아 부은 김우진이다. 그는 선수 은퇴 후 지도자를 꿈꾸고 있다. 선수 때 명성을 그대로 이어가 자신처럼 뛰어난 기량을 갖춘 선수들을 발굴하길 기대해 본다.

▲ 김우진이 속한 청주시청 양궁팀. 왼쪽부터 2004·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임동현과 장시현, 홍승진 감독, 김우진, 배재현.

syl015@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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