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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리틀 빅 히어로', 색약 딛은 디즈니 최초 한국인 애니메이터 김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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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리틀 빅 히어로', 색약 딛은 디즈니 최초 한국인 애니메이터 김상진
  • 오소영 기자
  • 승인 2015.01.16 14: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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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자 Tip!] "가족이 한국에 있다보니 1년에 한번쯤은 한국에 오는 편"이라는 김상진 애니메이터는 "작품(애니메이션 '빅 히어로')과 함께 서울에 오니 설레고 자랑스럽다"는 소감을 말했다.

김상진 애니메이터는 적색과 녹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적녹색맹의 판정을 받았음에도 미술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명하다. 미술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고 독학해 디즈니 최초 한국인 애니메이터가 됐다.

이후 그는 전세계적으로 흥행한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캐릭터 '엘사'와 '안나'의 어린 시절 캐릭터 디자인에 참여했고 앞서 '라푼젤', '볼트', '주먹왕 랄프' 등을 작업했다. 작지만 큰 영웅인 '빅 히어로'의 '베이맥스'와 '히로'처럼, 그 역시도 작지만 큰 '리틀 빅 히어로'다.

▲ 김상진 애니메이터와 '빅 히어로' 캐릭터 '베이맥스'. [사진=올댓시네마 제공]

[스포츠Q 오소영 기자] 김상진 애니메이터는 21일 개봉을 앞둔 '빅 히어로'에서 캐릭터 디자인과 컴퓨터 그래픽을 연결하는 작업을 총괄했다(캐릭터 디자인 수퍼바이저). 김 애니메이터를 14일 만나 '빅 히어로' 작업 이야기, 디즈니의 작업 환경, 언론이 주목하는 '색약 극복의 아이콘'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 '인간 승리 아이콘'? 누구나 안고 있는 작은 문제죠

"색약을 딛고 애니메이터가 됐다"고 널리 알려진 바 있어 이날 기자들과 가진 인터뷰에서도 관련 질문이 적지 않았다. 여기에 김상진 애니메이터는 겸손한 대답을 했다.

"개인적으로는 크게 색약이 걸림돌이 됐다고 느껴본 적은 없어요. 어떤 장애를 극복하고 인간승리처럼 묘사되는 부분이 좀 그렇죠.(웃음) 색약 때문에 가고 싶었던 미대에 못 갔지만, 일을 하면서 크게 문제를 느낀 적은 없거든요. 이런 핸디캡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키가 작을 수도, 클 수도, 시력이 나쁠 수도 있고, 손가락 중 하나가 짧을 수도 있는 것처럼요."

그는 자신의 색약에 대해서는 '작은 핸디캡'이라고 말했으나 그것으로 인해 오는 불평등한 기회에 대해서는 '문제'라고 언급했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을 이유로, 잠재적인 가능성과 재능을 개발해 내는 데 기회를 주지 못한다면 그건 문제가 있는 거죠. 이런 부분은 개선돼야 하고요. 제가 한국에 계속 살았다면 지금과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런 생각을 가끔 해보긴 해요."

디즈니는 김 애니메이터의 색약에 선입견을 갖는 대신 그의 미술적 능력에 주목했다. 그는 "디즈니에 근무하면서 적록색맹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 '빅 히어로'의 로이 콘리 프로듀서, 목소리 연기를 펼친 배우 다니엘 헤니, 김상진 애니메이터, 돈 홀 감독. [사진=올댓시네마 제공]

◆ 디즈니의 유연함, 아티스트의 능력 발휘할 수 있어요

김상진 애니메이터는 1995년 입사해 올해로 20년째 디즈니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늘 '이래서 디즈니구나'를 느낀다"고 했다.

"디즈니에서는 사람들이 흔히 지나칠 수 있는, 이야기의 세심한 부분이나 휙 지나가는 배경의 일부들에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써요. 때로는 '이 정도는 대충 넘어가도 일반 관객은 상관하지 않을 것 같은' 부분까지 어떤 논리가 있어야 하고, 왜 화면에 담겨야 하는지, 이런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답하죠."

이런 세심한 노력들을 토대로 디즈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들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물론 디즈니가 늘 승승장구한 것은 아니었다. 손꼽을 만한 작품을 내놓지 못하는 침체기가 한동안 지속됐다. 이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디즈니를 떠났고 그 역시 떠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이 침체기는 애니메이션 제작사 '픽사(Pixar)'의 수장 존 레스터가 디즈니로 오게 되면서 이겨냈다.

▲ 김상진 디즈니 애니메이터. [사진=올댓시네마 제공]

"이전까지 디즈니는 아티스트 중심이 아닌, 명문대 출신의 임원진이 이끄는 회사였어요. 실무를 담당하는 아티스트와의 소통이 불가했죠. 존 레스터는 애니메이터 출신 아티스트예요. 모든 책임권한을 감독에게 줬고 작품을 만들며 소통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죠.

사무실 공간에도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도록 많은 변화를 줬어요. 예전엔 직원들 간 벽이 있어서, 하루 일과를 끝낼 때까지 다른 부서 사람들을 전혀 못 볼 때도 있었죠. 시간이 지나며 이런 변화가 정착되고 결과물이 쌓이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유연한 조직으로 변화한 디즈니는 새로운 것을 위한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2009년에는 마블(Marvel)사를 인수해, 마블 원작으로 애니메이션을 선보이는 작업에 관한 논의를 시작했다. '빅 히어로'는 '마블'의 원작을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 선보이는 첫 작품이다. 제목과 캐릭터 이름들은 원작에서 따 왔지만 다른 요소들은 새롭게 창조했다.

"마블을 디즈니가 인수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분이 좋았어요. 디즈니는 디즈니의 전통 안에서 항상 새로운 것을 만들어보자는 시도를 늘 하는 곳이에요. 지금까지 디즈니가 내놓은 작품들을 늘어놓고 보면 그 스타일과 이야기가 굉장히 다양하거든요. 이 시도는 감독의 아이디어에 달린 거예요. 해 보고 싶다고 하면 기회를 주죠."

◆ "디즈니 첫 한국 캐릭터 '고고', 배두나 참고했죠"

'빅 히어로'에는 디즈니 최초로 한국인 캐릭터가 등장한다. 극중 한국인이라는 설명은 없지만 김상진 애니메이터는 "감독의 동의 하에 김시윤 캐릭터 디자이너가 처음부터 한국인으로 설정하고 작업했다"고 밝혔다. 까만 머리칼과 터프한 성격, 빠른 속도를 가진 고고는 목소리 연기도 할리우드 한국계 여배우 제이미 정이 맡았다. '고고'는 어떻게 디자인했을까.

"한국 선수들이 쇼트트랙 스케이팅 분야에서 최고잖아요. 이 선수들의 특징을 잡아 넣었어요. 외적인 부분에서는 배우 배두나 씨를 참고했어요. 배우의 전체적인 느낌을 많이 봤죠."

김상진은 "김시윤 디자이너는 재미교포라 한국어에 서툴지만, 한국인들만 알 수 있는 코드이자 단어인 '무다리'라는 용어를 쓰면서 자신의 블로그에 고고를 소개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 '빅 히어로'에 등장하는 캐릭터 '고고'. [사진=올댓시네마 제공]

'빅 히어로'의 주 캐릭터 디자인 작업은 어땠을까. 주인공인 만큼 '히로'와 로봇 '베이맥스'를 구현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히로'의 경우 머리, 초기 디자인 콘셉트에서는 지금보다 더 단순하고 독특한 머리 모양을 가지고 있었어요. 2D를 CG로 옮기는 작업이 쉽지가 않은데, 초기의 아이디어를 최대한 살리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죠.

'베이맥스'의 경우 이보다 더 단순할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한 모습이죠.(웃음) 하지만 캐릭터 디자이너로서는 단순하면 단순할수록 더 어려운 측면이 있었어요. 스티브 잡스의 '애플' 제품을 많이 참고했어요. 그가 말한 '단순함이 궁극의 정교함'이라는 말처럼 단순하면서도 직관적인 점을 살리려고 노력했죠."

[취재후기] 디즈니 캐릭터 '겨울왕국'의 엘사·안나 자매, '라푼젤'의 라푼젤 캐릭터들은 관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김상진은 "이러한 사랑 또한 캐릭터가 아닌 이야기에서 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무리 캐릭터 디자인이 완벽하다 하더라도 관객들과 감정을 나누지 못하면 그건 쓰레기인 거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에 캐릭터 디자인도 알맞다면 '겨울왕국'같은 경우가 나오는 거고요."

'빅 히어로'는 '치료 로봇' 베이맥스가 천재소년 '히로'와 함께 위기의 도시를 구하는 이야기다. 마음을 치료해 주는 베이맥스와 히로의 이야기엔 진한 감동이 있어 공감할 여지도 커 보인다. '빅 히어로'는 오는 21일 개봉한다.

ohsoy@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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