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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펀치' 조재현 "배우 기싸움, 드라마 망친다"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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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펀치' 조재현 "배우 기싸움, 드라마 망친다" ①
  • 오소영 기자
  • 승인 2015.02.12 1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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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자 Tip!] 배우 조재현(49)은 지난해 '정도전', 올해 '펀치'까지 브라운관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1989년 데뷔 후 연극, 드라마, 영화 등 다방면에서 연기해왔지만 맡은 인물의 이름 세 글자를 두 작품 연이어 똑똑히 남긴 것은 특별한 타이밍일 듯싶다.

백성을 중시하는 나라를 만들려 혁명을 꿈꾼 정도전,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권력을 좇아 비리를 불사한 이태준 검찰총장. 시대도, 성격도 겹쳐볼 수 없는 두 인물이었으나 조재현의 정도전과 이태준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펀치'는 한 회 안에서도 반전을 거듭해 일명 '뒤통수 맞는 드라마'라고도 불린다. 때문에 이태준 총장은 한 치 앞을 모르는 마지막까지 열심히 달릴 예정이다.

 

[스포츠Q 글 오소영 · 사진 최대성 기자] 조재현의 옥탑방은 아늑히 꾸며져 있었다. 침대맡에는 손수 그린 그림을 걸어놓고, 한 켠의 난로에선 고구마를 구웠다. 여기서 그는 그림을 그리고 대본 리딩을 한다. 막연히 어린시절부터 꿈이었던 공연장을 짓고, 그 꼭대기에 마련한 방에서 조재현의 연기와 삶은 피어나고 있었다.

"제가 TV에서 연기를 하는 걸 보고 중학교 때 함께 미술반이었던 친구가 굉장히 놀랐어요. 원래 저는 서울예고 미술과를 지망했었거든요. 친구는 갤러리에서 일하고 있는데, '나는 그림을 안 그려도 너는 그릴 줄 알았다'면서 충격적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에곤 실레를 좋아한다"는 그. 그 또한 자신의 그림 안에서 실레처럼 인간의 육체를 거칠게 묘사했다. 대본 위 인물을 구현해내듯, 그는 캔버스 위에서도 인간을 그려내고 있었다.

◆ "이태준 총장, '악역 인지한 악역'이라 매력적"

'펀치'의 이태준은 자신의 권력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인물들과 날카롭게 대립하지만 또한 인간적인 부분이 있어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조재현은 "마냥 악역만은 아니라는 점이 더욱 매력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이태준은 가난한 어린시절을 보낸 인물이다. 형이 아버지 역할을 하며 그의 고시 생활을 뒷바라지했고, 검사가 된 후에도 주변에서 성공을 못 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태준은 하는 행동은 굉장히 나쁘지만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까닭과 배경이 있었던 사람이죠. 악역이면서도 자신이 나쁜 것을 인정했다는 점이 굉장히 매력적이었어요. 정환에게도 '지옥에서 만나면 내게 침을 뱉어라'라고 얘기하잖아요."

▲ SBS 드라마 '펀치' 속 큰 귀마개는 조재현의 아이디어였다. [사진=방송 캡처]

박경수 작가가 극본 위에 표현한 이태준은, 조재현의 캐릭터 해석으로 구현됐다. 여러 정치인의 모습을 보며 인상적인 습관을 발견하면 따라해 보기도 하는 등 공을 들였다. 일례로 '진한' 경상도 사투리 연기는 화제가 됐고, 극중 '자장면 먹방'과 '귀마개' 또한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극중에서 자장면을 먹는 모습은 맛있게 먹는다고 해서 '먹방'이라고 해 주셨지만, 이는 어렸을 때 잘 먹지 못하고 자랐던 사람들에게 있는 식탐인 거죠. 가난하게 자란 이태준은 음식을 먹을 때 그럴 것 같았어요."

반듯한 정장과는 어울리지 않았던 커다란 크기의 털 귀마개 역시 화제가 됐다. 이는 대본에 없었던 조재현의 애드리브로, 권력을 갈구하는 이기적 인물이지만, 인간적으로는 소탈한 이태준을 표현한 부분이었다.

"사실 드라마에 애드리브를 하는 건 굉장히 조심스러워요. 현장에서 감독에게 제안했을 때 흔쾌히 받아들여줬죠. 그런데 다들 어떻게 알았는지, 보는 사람들은 현장에서 나온 애드리브인지 귀신같이 알던데요.(웃음) 처음은 애드리브였고, 이후 작가가 귀마개를 아예 대본에 넣어서 장면을 쓰기도 했죠."

 

◆ 배우 간 '기싸움' 싫다…연기는 하나를 향해 가야

극중 박정환(김래원 분)과 이태준은 처음엔 같은 편이었으나 점차 사이가 벌어지고 대립각을 세운다. 두 배우가 내뿜는 연기력에 일각에서는 이를 배우들 간의 '기싸움'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재현의 생각은 달랐다.

"흔히 '기싸움'이라고 표현하지만 연기는 싸움이 아니에요. 싸우는 역할이더라도 그건 모두 하나의 작품을 위한 거죠. 나는 배우들이 '기싸움'을 하는 게 정말 보기 싫어요. 싸웠다는 얘기가 나온다면, 누군가는 거기서 이겼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드라마는 망가진 거예요."

조재현이 말하는 촬영장은 극에서 서로 이빨을 빛내는 것과 달리 '신나는' 곳이었다.

"(김)래원이는 '눈사람' 이후 10년만에, (박)혁권이는 처음 만났어요. 같이 연기하면 너무 신나요. 그 배우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예요."

초반 묘한 공격적인 기류를 주고받았고, 지금은 일시적으로 같은 편(?)이 된 윤지숙 장관 역 최명길도 마찬가지였다.

"최명길 씨와는 '펀치'에서 처음 만났는데, 차갑고 이성적인 사람일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연기할 때만 그렇지 상당히 푸근하고 따뜻한 분이에요. 서로 '부부같다'는 말까지 하는 걸요.(웃음)"

 

◆ '펀치' 대본 놀라워, 인기 요인은 '강약조절'

극이 거듭되며 많은 드라마가 그렇듯 '펀치' 역시 대본이 나오는 속도가 늦어졌지만, 그럼에도 배우들의 열연은 이를 실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조재현은 "대본의 '필력' 덕에 나오는 속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사실 나는 이런 경우(대본이 촉박하게 나온 경우)가 처음이었어요. 그렇게 급박하게 대본을 받아서 어떻게 촬영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가능하더군요. 박경수 작가는 각 인물의 가슴에 들어가 글을 쓰는 것 같아요. 머리로 쓰고 맞추는 대사가 아니라, 가슴에서 나오는 대사라 쏙 들어왔어요. 이태준이 하는 말이 내가 하는 말처럼 돼 버린 기분이 들더군요."

조재현은 '펀치'의 대본과 작가를 극찬했다. "힘든 점은 없었느냐"는 질문에는 잠시 고민했다.

"굳이 힘든 걸 따지자면 한 장면 안에서 반전이 너무 많다보니 연기하는 사람도 지칠 때가 있었어요. 작가도 쓰면서 너무 힘들었을 거예요."

'펀치'는 대검찰청 내의 비리, 권력 다툼 등을 다뤘다. 무거운 소재는 자칫 시청자에게 외면받을 수 있었으나 수많은 마니아층이 생긴 것은 물론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조재현은 '펀치'가 시청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이유로 작가와 감독의 호흡이 만든 '강약조절'을 꼽았다.

"박경수 작가는 마이너적, 이명우 감독은 메이저적 성향이 있어요. 작가는 어렵게 공부해 데뷔했고, 감독은 미국 할리우드에서 공부했죠. 성향이 완전히 일치하는 두 사람이 드라마를 만들었다면 아주 무겁거나 했을 거예요. 하지만 두 사람의 성향이 달랐다는 점 덕분에 무겁기도 하고 유쾌하기도 한 드라마가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인터뷰] 조재현, "'정도전', '펀치' 나은 세상 위한 드라마"② 에서 이어집니다.

ohsoy@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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