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23:04 (토)
[SQ스페셜] 스위치히터, '흐린 기억 속의 그대'는 영영?
상태바
[SQ스페셜] 스위치히터, '흐린 기억 속의 그대'는 영영?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5.05.27 10: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5 KBO리그에 단 4명, 우투좌타 선호에 밀려 기피...융복합시대에 귀할수록 매력

[스포츠Q 민기홍 기자] 스위치히터. 좌타석, 우타석 구분 없이 두 타석 모두 다 설 수 있는 타자를 뜻한다. ‘양타’라고 표기한다.

박종호는 2000년 현대 소속으로 타율 0.340을 기록해 타격왕에 올랐다. 2003년과 2004년에는 현대, 삼성을 거치며 39경기 연속안타를 때려내 아시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장원진은 2000년 170안타를 때려내 이병규(LG)와 함께 최다안타 공동 1위를 차지했다.

롯데 레전드 펠릭스 호세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 ‘검은 갈매기’는 1999년 5월 29일, 전주 쌍방울전에서 한국 프로야구 사상 첫 번째로 한 경기 좌우타석 홈런을 기록했다. KBO리그 4시즌 동안 통산 타율 0.309, 연평균 23.9개의 홈런을 날려 부산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또 있다. LG서 뛰었던 이종열과 롯데서 선수생활을 마무리한 최기문은 수년간 그라운드를 지켰다. 둘은 빼어난 방망이 실력을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안정적인 수비를 바탕으로 주전 자리를 꿰차 스위치히터의 명맥을 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양타’의 씨가 말라버렸다. 생존경쟁에 적합한 것은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것은 도태된다는 ‘진화설’이 스위치타자들에게 적용된 것일까.

이들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왜 사라진 것일까. 앞으로의 미래는 어떨까. 

◆ 우투좌타 열풍에 사라져버린 스위치히터

2015년 개막일 기준으로 KBO에 등록된 프로야구 선수 628명 가운데 스위치히터로 등록된 선수는 7명이다. 투수가 3명이라 양 타석에 모두 들어설 수 있는 선수는 단 4명뿐. 서동욱(넥센), 김재현(SK), 박준서(롯데), 국해성(두산)이다.

26일 현재 1군 성적 기준으로 서동욱은 27경기, 타율 0.177(62타수 11안타) 2홈런 4타점만을, 김재현은 11경기 8타석 7타수 무안타 4득점 2도루만을 기록했을 뿐이다. 국해성은 3경기 7타석 4타수 무안타 1타점 1득점이 전부다. 지난해까지 대타로 쏠쏠한 활약을 펼쳤던 박준서는 아직 1군 출장 기록조차 없다.

최형우(삼성), 김현수(두산), 박용택(LG), 손아섭(롯데)은 수년째 KBO리그를 주름잡고 있다.

이들 넷의 공통점은? 우투좌타 외야수라는 점이다. 일본을 평정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서도 최고 반열에 오른 스즈키 이치로, 마쓰이 히데키 이후 한국 야구에도 우투좌타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 박종호는 토종 스위치히터 중 가장 화려한 현역시절을 보낸 선수다. 2000년 타격왕에 올랐고 2003년과 2004년에는 39경기 연속안타를 때려내기도 했다. [사진=LG 트윈스 제공]

내야도 마찬가지다. 1루수를 제외하고는 반드시 오른손으로 공을 던져야 하는 내야에도 오지환(LG), 오재원(두산), 서건창(넥센), 박민우(NC) 등 빠르고 센스 넘치는 우투좌타가 줄을 잇고 있다. 26일 KBO리그 역대 한 경기 개인 최다타이 8타점을 기록한 외국인 타자 에릭 테임즈(NC)도 우투좌타다.

현대, LG, KIA 등의 타격코치를 지낸 타격 이론 대가인 김용달 KBO육성위원은 “어렸을 때부터 우투좌타로 전향하는 선수가 많다. 이제 스위치히터는 고려조차 하지 않는다”며 “현장 지도자들 사이에도 어려운 것을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설명한다.

성공한 선수들의 사례는 야구를 시작하는 선수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오른손잡이들도 왼손 타석에 들어서는 마당에 스위치타자로 전향한다는 것은 무모한 짓이 돼버렸다. 박원준 한국리틀야구연맹 기획이사에 따르면 3400명이 넘는 전국 리틀야구 선수 중 스위치히터는 28명뿐이다. 0.01%도 되지 않는다.

아마야구와 리틀야구 현장을 누비는 한만정 MBC스포츠 해설위원 역시 “만일 추신수나 강정호 또는 동양계 선수 중 스위치히터가 있다면 어린 친구들이 벤치마킹할 것”이라며 “결국 트렌드를 주도할 선수가 나와야 하는데 현 상황에서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고 진단했다.

▲ 서동욱은 LG 소속 시절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좌우 연타석 홈런을 날린 선수다. 지난해 좌투수가 등판해도 좌타석에 들어섰던 그는 올해부터 다시 스위치히터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사진=넥센 히어로즈 제공]

◆ 스위치히터가 되는 과정,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한 타석에서만 쳐도 3할을 치기 힘든데 왜 스위치히터를 시도할까. 김용달 위원은 “스위치를 시도하는 이유는 재능이 떨어지는 선수들이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선택한다”며 “대개 우타자들이 왼쪽 타석에서 쳐보려고 시도한다. 반대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한다.

익히 알려진대로 야구는 왼손잡이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종목이다. 스윙 후 몸이 1루 방향으로 회전하기 때문에 스타트를 원활하게 끊을 수 있다. 발이 빠르다면 내야안타를 만들어낼 확률도 훨씬 높다. 우타자보다 두 걸음이나 1루에 가깝기 때문이다.

'우투좌타를 하면 되는거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꼭 그렇지 않다. 좌타자들은 타석 위치상 오른손 투수들의 공을 더 오래 볼 수 있고 우타자는 그 반대다. 자신 쪽으로 휘어 들어오는 슬라이더, 커브 등의 변화구를 때려내기 훨씬 수월하다. 실력만 받쳐준다면 어떤 유형의 투수가 나오더라도 스타팅 라인업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김용달 위원은 박종호와 이종열을 스위치히터로 연착륙시킨 인물이다. 그는 “강하고 멀리 칠 수 있는 쪽에 치중하다가 타율이 떨어진다 싶을 때 스위치로 전향하면 좋은 효과를 기대해볼 수 있다”며 “이종열의 경우 우측에서 잘 맞지 않아 스위치로 바꿨고 성공적으로 안착한 케이스”라고 예를 들었다.

김재현의 경우 원주고 1학년 때까지는 우투우타였지만 2학년 때부터 스위치히터가 됐다. 좌타자와 스위치히터를 두고 고민을 거듭했지만 결국 그는 5월부터 다시 스위치 실전을 병행하고 있다. 김강민, 이명기, 박재상, 조동화, 임훈 등 쟁쟁한 경쟁자들 틈에서 살아남기 위한 차별화 전략이다.

◆ 스위치히터는 이렇게 사라질 것인가 

스위치히터의 미래는 갈수록 불투명해 보인다. 대다수 전문가들도 부정적인 의견을 내놨다.

이종열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현역 생활을 떠올리며 “나의 경우 수비가 준수한 편이라 실전에 나설 기회가 많아 다행이었다. 처음에는 왼손 타석에서 감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며 “지도자들도 양쪽을 가르치기보다는 한쪽을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지 않았겠느냐. 스위치히터의 미래는 어둡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한만정 위원은 이어 “단순하게 생각하면 된다. 한 타자당 10번씩 치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을 5번, 5번으로 나누어 쳐 실력이 늘기는 힘들다”며 “야구 인기가 급증해 선수들이 늘어난 시점이다. 아마추어 현장에서 지도자가 스위치히터를 위해 배로 훈련시켰다가는 학부모들 사이에서 특혜를 준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문제점도 거론했다.

김용달 위원 또한 “가르치는 사람보다 하는 사람이 배로 힘들다. 힘든 부분이 많다”고 동의했다. 다만 그는 “인내를 갖고 경험을 쌓다보면 노하우와 테크닉이 생길 것이다. 순간순간 고비를 이겨내는 의지를 가지면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지난 25일 뉴욕 양키스타디움에서는 버니 윌리엄스의 영구결번 행사가 거행됐다. 베이브 루스서부터 데릭 지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레전드가 거쳐간 양키스는 19번째 영광을 차지할 선수로 백넘버 51번의 스위치히터를 택했다. 윌리엄스는 1991년 7월 메이저리그에 데뷔해 17년 동안 양키스에서만 2076경기에 출장하며 통산 타율 0.297, 287홈런 1257타점 2336안타를 기록했다.

1990년 애틀란타에 지명 된 후 19년간 2499경기, 타율 0.303, 468홈런 1623타점 2726안타를 기록한 치퍼 존스도 2013년 6월, 등번호 10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받았다. 이밖에도 메이저리그에는 카를로스 벨트란(뉴욕 양키스), 빅터 마르티네스(디트로이트), 파블로 산도발(보스턴), 카를로스 산타나(클리블랜드) 등 스위치히터들이 여전히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최기문의 경우 '포수 스위치히터'였다는 희귀성만으로도 팬들의 뇌리에 선명히 남아있다. 2012년 5월 12일 청주 한화전에서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좌우 연타석 홈런을 날린 서동욱도 그렇다.

스위치히터는 융복합이 대세인 시대, 팔방미인을 원하는 시대에 어쩌면 가장 적합한 유형의 타자인지도 모른다.

김용달 위원은 후배들을 향해 “팬들에게 색다른 재미를 선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달라”고 주문했다.

▲ SK 김재현. 빠른 발을 지닌 그는 "스위치히터를 유지할 생각"이라며 "양쪽에서 전체적으로 타율을 올리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사진=SK 와이번스 제공]

점차 사라져가기에 스위치히터는 더 매력적이다. 서동욱, 김재현, 박준서, 국해성이 더 분발해야 하는 이유다. 김재현은 "스위치히터를 유지할 생각이다. 아직 미흡하지만 열심히 훈련해 양쪽 모두 숙달할 것"이라며 "양쪽에서 전체적으로 에버리지를 올리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들이 힘겨운 과정을 딛고 당당히 자리를 잡는다면 스위치히터가 바글바글해지는 날이 다시 오지 말란 법도 없다. 스위치히터는 계속되어야 한다.

sportsfactory@sportsq.co.kr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