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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에쿠우스' 신성 남윤호 "앨런은 내 운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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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에쿠우스' 신성 남윤호 "앨런은 내 운명" [인터뷰]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9.04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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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이상민기자] 공연가 샛별 남윤호(31·본명 유대식)가 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국내 초연 40주년을 맞은 연극 ‘에쿠우스’(4일~11월1일·충무아트홀 블랙)의 앨런으로 무대를 장악한다.

영국작가 피터 셰펴의 ‘에쿠우스’는 말 6마리의 눈을 쇠꼬챙이로 찌르고 법정에 선 17세 소년 앨런의 범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1973년 영국 초연 당시 엽기적인 소재와 파격적인 마굿간 정사장면, 배우들의 전라 연기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국내에서는 실험극장이 75년 초연한 이후 신드롬을 만들며 강태기, 송승환, 최재성, 최민식, 조재현, 류덕환 등 걸출한 스타들을 배출했다. 올해 앨런은 남윤호와 17세 영화배우 서영주가 번갈아 맡는다.

 

개막을 앞두고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남윤호의 첫 인상은 댄디한 엄친아. ‘에쿠우스’ 관련 대화를 나눌수록 광적으로 종교에 집착하는 어머니와 폐쇄적인 아버지 사이에서 희생물이 된 앨런의 억눌린 욕망이 뚝뚝 묻어났다.

◆ 뉴욕, 배우 대니얼 래드클리프 그리고 에쿠우스

“2009년 오디션을 보러 뉴욕 브로드웨이에 갔다가 ‘해리포터’ 대니얼 래드클리프가 주연한 ‘에쿠우스’를 처음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스크린에서 봤던 배우가 그런 연기를 한다는 게 대단하더라고요. 깊이가 느껴졌죠. 작은 체구임에도 좋은 에너지로 앨런에 잘 맞게 연기를 하더라고요. 스타덤에 머무르지 않는 그의 모습을 보며 ‘배우는 저래야 하는 게 아닌가’란 생각을 했죠.”

연습 막바지에 남윤호가 도달한 에쿠우스(라틴어로 말이라는 의미)는 어떤 형상일까. 그는 “작품의 주제는 70년대에나 지금이나 지속되는 화두 아닐까. 극중 상황을 이해하며 앨런의 진심을 파내려고 열심히 세공작업 중”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연출님과 캐릭터의 흐름, 상태, 왜 그런 행동을 했을 지에 대한 토론을 많이 했어요. 앨런보다 나이가 많으니 그의 진정성을 제가 얼마나 잘 받아들일지 그리고 어떻게 내 식으로 풀어낼 지가 관건이었죠. 앨런의 원초적 열정과 거친 부분을 살려보려고요. ‘에쿠우스’가 무대에 올려진 뒤에도 찾을 부분이 많을 것 같아요.“

 

앨런 역을 소화했던 쟁쟁한 선배들의 연기는 신경 쓰지 않는다. 부담 탓에 작품에의 몰입을 방해할 것 같아서다. 하지만 더블 캐스팅된 서영주의 앨런은 연습과정을 함께하므로 어쩔 수 없이 눈에 들어온다.

“영주는 뭘 하지 않아도 소년 같은 느낌이 나요. 특히 연극을 처음 하는 친구라 거기서 나오는 거칢, 투박함이 절로 있어요. 반면 전 관성이 있어서 너무 절제된 느낌이고요. 그런 면을 빨리 털어내려 애쓰는 중이에요.”

◆ 5월 ‘페리클레스’ 공연한 아버지 유인촌...에너지와 자기관리 대단한 배우

앨런의 불안한 욕망은 엘리트 코스를 착실히 밟으며 별 어려움 없이 성장했을 것 같은 남윤호에게도 낯선 감정이 아니다. 중학교 시절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8년을 머물렀다. 명문 로열 할로웨이대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하다가 연기에 눈을 떴다. 졸업 후 군대를 가 2년간 고민한 끝에 연기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한 번쯤 해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 미국 UCLA대학원에 진학, 연기를 전공했다.

“아버지(유인촌)가 배우였어도 연기엔 별 관심이 없었어요. 영화 보는 걸 좋아했을 뿐이죠. 그러다가 연기를 선택한 이유는 억압된 욕망을 풀어내기 위해서였어요. 정제된 감정을 연기로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흥미를 느꼈던 거죠. 대학원에 다니면서 ‘내가 하고 싶었던 게 연기였구나’를 깨달았고요. 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 ‘한 번 해봐라. 대신 할 거면 잘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거셨고요. 다행이었죠.”

2012년 귀국, 연극 ‘로맨스티스 죽이기’로 데뷔했다. 연출가 양정웅(극단 여행자 대표)과는 이때부터 인연이 돼 ‘로미오와 줄리엣’ '히에론, 완전한 세상' ‘홀스또메르’ ‘정글북’ ‘페리클레스’에 출연했고 지난해 초 극단 여행자에 입단했다.

 

특히 선배 연기자이자 아버지인 유인촌 전 문광부장관은 그에게 든든한 버팀목이자 넘어야 할 산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후광이 싫어 예명을 사용하고, 아버지가 이끄는 극단 유시어터와는 다른 길을 걸어가려고 부단히 애썼다. 하지만 ‘홀스또메르’에 이어 지난 5월 ‘페리클레스’에선 젊은 날의 페리클레스와 노년의 페리클레스를 번갈아가며 연기했다.

“아버지께선 양정웅 연출이기에 출연을 허락하셨고, 전 이런 기회가 또 언제 있을까 싶어서 나서게 됐어요. 옆에서 아버지의 연기를 지켜보면서 대단한 배우임을 느꼈죠. 가만히 앉아만 있는데도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와 분위기가 엄청나세요. 화술에선 경지에 오른 배우이고요. 특히 철저한 자기관리는 배우로서 닮고 싶고, 배워야할 부분이에요.”

◆ 고전작품에 매료...경험 쌓은 뒤 연극·영화연출 도전

지난해 영화 ‘나의 독재자’의 경호원. ‘빅매치’에선 컴퓨터 해커 손호준의 동료로 출연했다. 영화는 워낙 동경했던 장르라 경험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출연했다.

“각 매체에 맞는 연기를 해야 하니까요. 현 시대가 한 장르만 물고 늘어져서는 힘들다보니 더 많이 경험해보고 싶고요. 나이가 더 들고, 경험이 많이 쌓이면 전공을 했던 연극·영화 연출에 도전해봐야겠단 생각도 하고 있어요. 당장은 연기에 치중해야겠지만요.”

 

남윤호는 현대물보다 그리스 비극, 셰익스피어 희곡, 입센과 체홉의 작품 등 고전 작품에 더 끌린다. 고전이 지닌 힘이 그의 열정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고전을 많이 접해봐야 배우에게도 무게감과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연극 ‘갈매기’도 언젠간 꼭 해보고 싶고, 죽기 전에 한번은 해보고 싶은 로망과 같은 작품은 ‘햄릿’이고요.”

배우로서 자질을 계발하기 위해 중국어를 배우는가 하면 관악기, 보컬 트레이닝을 받고 있다. 감수성을 풍부하게 하고 새로운 자극을 얻기 위해 공연, 전시, 독서, 클래식부터 힙합에 이르기까지 음악 감상에 시간을 할애한다. 특히 그림은 시각적 이미지 생성에 도움을 주는 좋은 교과서다.

“이제는 배우가 삶의 일부분이 된 것 같아요. 점점 연기에 대한 자부심이 커져가고요. 더 부합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고요. 아직은 ‘배우’로 불리는 게 쑥스럽지만 ‘배우’ 타이틀에 맞게끔 더 실력을 쌓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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