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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2015] (47) 이천수 '현역 후반기', 시민구단 인천의 레전드를 꿈꾼다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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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2015] (47) 이천수 '현역 후반기', 시민구단 인천의 레전드를 꿈꾼다 (下)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5.09.21 15: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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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과 멀어졌지만 지기 싫어하는 열정 여전…한 발 더 뛰는 악바리 정신으로 ACL 출전티켓 도전

[인천=스포츠Q 글 박상현·사진 이상민 기자]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건너 뛰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 찾아왔지만 이천수에게 여전히 대표팀의 기회는 오지 않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희노애락을 함께 했던 홍명보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지만 이천수는 대표팀에 들 수 없었다.

그리고 이천수의 대표팀 발탁 가능성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이천수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

"2011년에 대표팀을 맡으셨던 조광래 감독님께서 오미야에 오신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조광래 감독님께서 지켜본 선수는 김영권(25·광저우 에버그란데)이었어요. 그리고 제 임의탈퇴가 해결되지 않아 여전히 대표팀 발탁에는 부정적이었죠. 대표팀으로 돌아오려면 임의탈퇴부터 해결해야겠다 싶어 오미야의 재계약 제의도 뿌리치고 한국으로 돌아왔어요. 금방 해결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요. 2011년 그 때가 마지막 기회였던 것 같아요. 지금은 워낙 좋은 후배가 많으니…"

▲ 이천수는 정말 별명이 많다. '미꾸라지'나 '밀레니엄 특급' 같은 긍정 의미의 별명도 있지만 구설수 때문에 '혀컴', '입천수'라는 반갑지 않은 이름도 있다. 그러나 이천수는 자신의 원동력인 자신감을 표현하다보니 생긴 오해라고 말한다.

◆ '혀컴'·'입천수'라는 별명, 자신감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천수는 정말 별명이 많다. 그라운드 구석구석을 잘 파고든다고 해서 붙여진 '미꾸라지'라는 별명을 제일 좋아한다. 2000년대 초에는 이름에 '이천'이 들어가 '밀레니엄 특급'이라는 별명도 있었고 체격이 크지 않지만 날렵한 움직임 때문에 '아시아의 다람쥐'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반갑지 않은 별명도 있다. 온갖 구설수에 오르면서 풍운아에 악동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 가운데 가장 껄끄러운 별명은 '혀컴' 또는 '입천수'일 것 같다. 당돌하다는 부정적인 의미다.

"항상 저보다 잘하는 선수를 우상으로 삼았어요. 어렸을 때는 데이비드 베컴을 좋아해서 헤어스타일부터 패션, 사생활까지 따라했어요. 프리킥도 베컴처럼 잘 차고 싶어 정말 열심히 연습했어요. 그런데 제가 베컴처럼 되고 싶다고 하니까 부정적인 말이 따라오더구요."

하지만 이천수는 '사실 그런 것이 아니고'라며 한 번도 변명을 한 적이 없다. 변명이나 부정을 하지 않으니 이천수가 정말로 그런 말을 한 것처럼 오해를 샀다.

"변명하거나 부정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아시아의 베컴'이라고 생각하고 그에 맞게 더 열심히 뛰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보면 자신감의 표현이라고나 할까요. 그 자신감이 지나쳐 주위에서 보기에 당돌하다고 손가락질할 수도 있지만 사실 저는 자신감 빼면 아무 것도 아니거든요."

이천수의 구설수(?)는 또 하나 있다. 바로 "FC 서울이 언제부터 명문팀이었다고"라는 말이다. 실제 방송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 이천수는 FC 서울과도 악연이 있다. 세뇰 귀네슈 서울 감독의 도발에 발끈, "서울이 언제부터 강팀이었느냐"고 맞받아친 것. 그러나 이는 도발에 대응한 것이지 본의는 아니라고 말한다. 이천수는 언제나 팬들의 이런 질문에 "서울은 명문팀"이라고 말해준다.

"먼저 도발한 쪽은 세뇰 귀네슈 서울 감독이었어요. 울산과 서울의 경기에서 비긴 적이 있었는데 웃으면서 그라운드를 나오니까 귀네슈 감독이 '울산은 우리와 비긴 것을 다행으로 알고 웃으면서 나온다'고 말한 거예요. 물론 저와 우리 팀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상대팀을 깎아내리는 것은 비신사적이죠. 하지만 귀네슈 감독이 먼저 그렇게 나오니 저도 가만 있을 수 없었어요."

이천수는 당시 그 말에 후회하지 않을까. 실제로 이천수는 이후로 K리그 우승을 차지한 적이 없고 서울은 정상 트로피를 한 차례 안았다.

"시즌 초 팬들과 만남 자리를 가지면 '아직도 서울이 명문팀이 아니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항상 나와요. 그래서 저는 언제나 '서울은 명문팀이고 강팀이다'라고 말해주죠. 이제 그 논란에서는 벗어나고 싶어요(웃음)."

◆ "나를 지탱해준 것은 질투와 열정, 이젠 인천에서 모든 것을 불태운다"

인천은 이천수의 고향이다. 부평동중과 부평고를 나온 이천수가 인천의 유니폼을 입은 것은 어쩌면 운명과 같다. 2005년 울산의 우승을 이끌면서 시민구단 최초 우승을 노렸던 인천을 울렸던 이천수지만 이제는 '인천의 레전드'가 되고 싶어한다.

"인천은 제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예요. 이젠 인천에서 뼈를 묻어야죠. 제가 축구를 계속 하고 싶은데 구단에서 '너를 데리고 있을 수 없다'고 한다면 어쩔 수 없이 다른 팀을 알아봐야겠지만 그런 일이 없다면 인천에서 은퇴하고 싶어요.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인천 팬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딸 아이, 아내와 함께 행복하게 은퇴를 하고 싶어요."

그러나 이천수는 아직 자신이 은퇴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천의 우승까지는 아니더라도 시민구단 두 번째로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이끌고 싶어한다.

"성남은 대한축구협회(FA)컵 우승으로 진출한 것이니 저는 인천을 K리그 성적으로 AFC 챔피언스리그에 진출시키는데 앞장서고 싶어요. 플레이오프 라운드에 나가려면 3위 안에만 들면 되잖아요. FA컵도 4강까지 올랐으니 그쪽으로도 기회가 있지만 일단 리그 성적에 모든 것을 쏟아붓고 싶어요."

▲ 인천에서 나고 자란 이천수는 인천을 자신의 마지막 팀이라고 생각하며 뛴다. 이천수는 '인천의 레전드'가 돼 행복한 은퇴를 생각한다.

시즌 초 팀내 리더 역할을 해줄 것으로 봤던 설기현(36)이 성균관대 감독으로 가면서 돌연 은퇴, 인천의 맏형 자리는 이천수에게 덜컥 떨어졌다. 게다가 김봉길 전 감독이 물러나고 이임생 감독 선임 발표와 계약 불발, 그리고 김도훈 감독의 선임 등 사령탑 교체 과정에서 다소 삐걱거리는 일도 있었다. 아직 구단 재정 문제도 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인천이 6위를 지키고 있는 것도 어떻게 보면 우여곡절과 온갖 풍파를 다 겪은 이천수가 있기에 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제가 축구를 하면서 느낀 것은 정말 잘하는 선수와 보통 선수의 실력차는 정작 크지 않다는 거예요. 정말 종이 한장 차이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자신감을 갖고 하자고 얘기해주죠. 또 후배들에게 말해주는 것은 기회는 왔을 때 제대로 잡아야 한다는 거예요. 1년을 고생해서 다음 10년이 편해질 수 있다면 한 번 도전해볼 가치가 있는 것 아닐까요. 후배들에게 그런 얘기를 해주니까 동기부여가 잘 되는 것 같아요."

이천수는 여태껏 자신을 지탱해준 힘을 질투와 열정이라고 말한다. 특히 그라운드에서 질투는 투쟁심과 오기로 변한다.

"저는 상당히 질투가 많은 성격이거든요. 그래서 경기에서 진다는 생각 자체를 하고 싶지 않아요. 그 질투가 간혹 잘못 비춰진 적도 있긴 하지만 그만큼 승리에 대한 욕심이 많다고 봐야죠. 그래서 인천을 더욱 좋은 팀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고요. 아직 제게 열정도 많이 남아있어요."

이젠 인천의 맏형이 돼 후배들보다 한 발 더 뛰고 솔선수범하고 있기에 인천도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더이상 이천수에게 '악동'의 이미지는 보이지 않는다. 오직 축구에 올인하고 지기 싫어하는 '악바리'만 남아있는 것 같다. 선수생활 후반기를 후회없이 보내기 위한 이천수의 의지가 엿보인다.

▲ 한때 악동의 이미지가 강했던 이천수는 이제 악바리가 돼 인천을 이끌고 있다. 후배들을 다독여가며 시민구단 인천을 AFC 챔피언스리그에 진출시키고 싶은 것이 이천수의 현재 희망이자 도전과제다.

이천수 프로필

△ 생년월일 = 1981년 7월 9일
△ 출생지 = 인천
△ 체격 = 174㎝ 65㎏
△ 소속팀 = 인천 유나이티드
△ 출신교 = 부평초-부평동중-부평고-고려대(중퇴)
△ 주요 경력
-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국가대표
- 2000년 AFC 아시안컵 국가대표
- 2002년 FIFA 한일 월드컵 국가대표
-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국가대표
- 2006년 FIFA 독일 월드컵 국가대표
- 2007년 AFC 아시안컵 국가대표
△ 소속팀 경력
울산 현대(2002~2003)-레알 소시에다드(2003~2005)-누만시아(임대, 2004~2005)-울산 현대(2005~2007)-페예노르트 로테르담(2007~2009)-수원 삼성(임대, 2008)-전남(재임대, 2009)-알 나스르(2009~2010)-오미야 아르디자(2010~2011)-인천(2013~)
△ 수상 경력
- 2002년 K리그 신인상
- 2002년 K리그 도움왕 (9개)
- 2002년 자황컵 체육대상 남자최우수상
- 2002년 체육훈장 맹호장
- 2003년 AFC 선정 2002 올해의 신인
- 2004년 올해의 프로축구 대상 프로스펙스 특별상
- 2005년 K리그 MVP 및 미드필더부문 베스트11
- 2005년 K리그 챔피언 (울산 현대)

[취재후기] "제가 언제 은퇴하면 좋을까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이천수가 기자에게 대뜸 물어온 질문이다. 자신에게 열정이 있고 이기고 싶은 욕심도 많은데 과연 좋은 선수로 현역을 마칠 수 있는지에 대한 걱정이 있는 것 같았다. "어느새 3살이 된 딸아이가 경기가 있는 날이면 '아빠가 꼭 골 넣게 해주세요'라고 간절히 바라더라구요. 그런 딸이 축구선수 아빠를 이해해주면서 경기를 볼 수 있을까요? 그렇게 되려면 초등학생은 되어야 할 것 같은데요." 아직 이천수보다 형님인 김병지(45), 현영민(36·이상 전남), 김남일(38·교토 상가), 이동국(36·전북 현대)도 여전히 주전으로 뛰고 있다. 그래서 기자가 하나의 바람을 이천수에게 얘기했다. "한일 월드컵 멤버 가운데 가장 마지막으로 은퇴하세요." 당시 가장 막내였으니 어쩌면 이게 정답인지도 모르겠다.

[챌린지 2015] (47) 인천의 등대 이천수, 나를 지탱해준 힘은 '질투와 열정' (上) 로 돌아가시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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