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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배우 윤진서 “난 연애 불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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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배우 윤진서 “난 연애 불구자”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7.15 1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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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최대성기자] 윤진서(31)는 배우에게 최적인 하얀 캔버스와 같은 얼굴을 가졌다. 빨간색을 휙 덧칠하면 도발적인 분위기를 내고, 블루를 채색하면 한없이 우울한 여인이 솟아오른다. 이번엔 따뜻한 옐로톤을 택했다. 로맨스영화 ‘산타 바바라’(17일 개봉)에서 광고회사 AE인 완벽주의 차도녀 수경이 돼 와인향의 사랑을 담근다. 사랑에 서툰 수경이 썸타는 대상은 낭만적인 음악감독 정우(이상윤)다.

 

하나. 이런 소소하고 잔잔한 영화가 나올 때가 됐는데…싶었다. 일상적이면서 공감할 수 있는 풋풋한 사람들 이야기 말이다. 역할에 빠져서 자신을 채찍질하느라 힘든 영화가 아니라 해피 바이러스를 퍼뜨릴 수 있는 영화가 하고 싶었다. 편하게, 스트레스 없이 찍었고 그게 영화에 묻어났다. “니네 사이 좋았던 것 같애”란 말을 들었을 때 뿌듯했다. 정신에 힘준 채 연기한 게 아니라, 진짜 놀다 왔다.

둘. 조성규 감독님은 극중 이름을 내 본명인 수경으로까지 바꿔주셨다. 여자 나이 30대면 커리어의 중간 지점인데 안주하는 여자가 있는가 하면, 프로페셔널을 키우는 여자가 있는데 나 역시 수경처럼 일에 철저하고 사랑에 서툰 스타일이라 공감이 갔다. 빠릿빠릿 일도 잘 하는데 사랑까지 그러면 무서울 것 같다. 연애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수경은 “좋아해”란 말을 못한다. “작업실로 갈게요” “밥 먹으러 갈게요”라고 티나지 않게 작업을 진행한다. 난 그런 것조차 못한다. 연애 불구자이지 싶다. ‘산타 바바라’에 합류하면서 계속 연애를 공부하고 있다.

▲ 영화 '산타 바바라'

셋. 정우는 돈 되는 거라면 영화, 광고음악 가리지 않고 작업한다. 변변한 집조차 없는 가난한 예술가다. 난 안정성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모험심이 강해서 남자가 자신의 꿈을 좇는다면 얼마든지 응원해줄 생각이다. 물론 서로 각자의 경제력을 가지는 건 필요하다. 대신 남자가 여자를 책임질 필요는 없다. 친구처럼 지내면 좋지 않을까. 특히 예술하는 사람들은 서로의 꿈이나 영역을 존중해야 한다.

넷. 지난해 4~5월경 영화의 중요한 배경이 되는 미국 산타 바바라 로케이션이 이뤄졌다. 할리우드 영화 ‘사이드웨이’에 등장했던 와이너리를 스크린에 담았다. 헤어지고 만나고를 반복하던 수경과 정우가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이야기가 함께 펼쳐진다. 희한하게 지난해엔 미 서부 캘리포니아에 있을 기회가 많았다. 누아르 멜로 ‘태양을 향해 쏴라’ 촬영을 LA와 라스베이거스에서 했고, 그 기간 중 드라마 ‘상속자들’ 1회에 특별 출연했다. 촬영이 끝난 뒤 한 달 동안 샌프란시스코, 요세미티 국립공원, LA를 혼자서 운전하며 여행했다. LA는 미디어 종사자들의 도시라 관련 업종에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 재밌는 곳이다.

 

다섯. 상윤 오빠는 동료 배우, 스태프들에게 허세를 부리거나 잘난 척하지 않고 수더분한 사람이다. 처음엔 서울대 출신에 엄친아 이미지라 깐깐할 줄 알았다. 아니더라. 맛집에 관해서만 아는 척을 하는데 정말 많이 안다. 해안가 도로를 드라이브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였는데 운전대는 오빠가 잡고, 나와 이솜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감독님과 배우들 사이에 의사소통이 잘 안돼 어떻게 말하나, 난감해하고 있었다. 그때 총대 메고 선뜻 나서서 감독님과 이성적으로 대화를 나누며 ‘오빠답게’ 처리하는 모습이 정말 멋있었다.

여섯. 영화 ‘올드보이’부터 시작해 연기한 지 10년이 됐다. 장르와 형식에 있어 차이는 있으나 취향에 맞는 작품을 해왔다. 그러다보니 ‘윤진서의 영화톤’은 딱 정해져 있다. 상업영화 ‘바람피기 좋은 날’ ‘비스티 보이즈’ ‘비밀애’ 이후 한동안 저예산영화 ‘그녀가 부른다’를 비롯해 ‘영화판’ ‘경주’ 등에 출연했으니 이제 다시금 상업 영화할 때도 됐구나, 싶다. 그렇다고 억지로 탈바꿈하고 싶진 않다. 그동안 영화와 드라마에서 연기했던 캐릭터들이 진짜 나였다. 연기를 심화시켜 더 자연스럽게, 다양한 작품에서 보여준다면 내가 좋아하는 작품을 관객도 좋아하지 않을까.

 

일곱. 세상을 다 가보고 싶다. 세상 공부하면서 늙어가고 싶은 생각, 내가 체험한 인간·자연·문화를 좋은 작품으로 남기고픈 욕망 때문이다. 스무 살부터 여행하면서 얻은 경험이 글 쓰거나 연기할 때 투영되고,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있을 때 너무 기뻐서 다시금 여행을 떠난다. 순환의 의미다. 역사 인식이 나이와 경험에 따라 달라지듯 여행도 할수록 색깔이 달라지고 볼 수 있는 게 더욱 많아진다. 멕시코와 쿠바, 북유럽이 다음 목표다.

여덟. 외국어 실력은 여행을 지렛대 삼아 키웠다. 보통 혼자 떠나 한 곳에서 2~3개월씩 살아본다. 그러면서 로컬 사람들을 만나고 커뮤니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이럴 때 어학원, 요가·요리학원 다니는 게 지름길이다. 학원 사람들과는 취미가 비슷하니까 자주 어울려 다니고, 대화 소재가 늘면서 언어가 빨리 는다. 영어와 프랑스어를 공부해야 할 거로 생각하지 않고 이런 식으로 쉽게 다가갔다.

 

아홉. 에세이집 ‘비브르 사 비’에 이어 두 번째 책을 올겨울에 출간한다. 소설과 에세이를 결합한 형태다. 내가 구상한 인물이 여행 다니면서 경험하는 일들을 담았다. 시나리오는 틈틈이 자연스럽게! 딱 꽂히는 게 있으면 쓴다. 요즘 집필하고 있는 건 인간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휴먼 드라마다. 관심 가는 장르다.

열. 20대에는 놀만큼 놀았다. 앞으로 영화 찍고, 글 쓰고, 여행 계속 할 텐데 일을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단 생각이 새록새록 든다. 여행을 하더라도 연기와 글을 위해 찾으러 다니는 거에 치중할 거다. 나이 먹는 게 좋다. 내 주름조차 좋다. 늘 30대 여배우를 꿈꿔왔다. 어리고 예쁜 20대는 내가 겪었던 시절이라 탐내할 필요가 없지 않나. 중국 여배우 공리와 장만옥의 30대를 기억하나. 그 여유와 깊이,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을. 그들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도록 노력할 거다.

 

열 하나. SBS 예능프로 ‘패션왕 코리아’ 시즌2에 8월9일부터 고정 출연한다. 예능프로에 나와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 게 싫었고 소비되고 싶지 않았다. 영화에 에너지를 쏟고 싶어 그동안 출연하지 않았다. 이젠 내 일상을 보여주는 게 자연스럽고 즐거워졌다. 대사를 외우지 않아도 돼 너무 편하더라. MC 신동엽 오빠의 얘기는 정말 듣고만 있어도 재밌다. 섹드립의 신이다. 무슨 말을 해도 그리로 연결된다. 난, 말할 타이밍을 놓쳐 웃기만하는 바보같은 모습으로 나온다. ‘빨대 꽂힌 윤진서’를 기대하시라.

[취재후기] 영혼이 자유로운 이들은 한곳에 갇히기를 거부하며 세계를 떠돌아다닌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수많은 사유의 시간을 축적한 윤진서는 통찰력이 좋은 배우다. 논리정연한 말솜씨로 자신을 드러내고 상대를 설득한다. 그런 그가 자신의 비주류적인 태도를 설명하다가 “끝까지 가져가 보려구요”라고 툭 속내를 털어놨다. “좀 배고플 수도 있겠으나 안 먹으면 되죠, 뭐”. 고집 세고, 낙천적이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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