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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서울올림픽기념관① 26년전 '우생순'의 감동과 대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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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서울올림픽기념관① 26년전 '우생순'의 감동과 대면하다
  • 유필립 기자
  • 승인 2014.08.04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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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역사는 책에서나 보고 일부러 작정하지 않으면 만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잠시 주위를 둘러보면 역사는 항상 우리와 마주하며 숨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평소 대중교통 수단으로 오가던 길, 또는 몇 백미터만 더 걸으면 닿을 수 있는 역사의 현장을 기회가 되는 대로 휴대폰 앵글에 담아 보고자 합니다. 굳이 전문가들에게 역사적 사실을 묻지 않아도 안내판이나 설명서만으로 우리는 꽤 많은 역사적 사실과 지혜, 교훈과 접할 수 있을 듯합니다.

[스포츠Q(큐) 유필립 기자] '1988년 9월 17일 오전 10시30분' 서울종합운동장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제14회 서울올림픽대회의 화려한 막이 올랐다.  88서울올림픽은 이날 시작돼 10월 2일까지 16일간 펼쳐졌다. 2주 후인 10월 15일부터 24일까지는 서울장애인올림픽대회도 열렸다.

88서울올림픽은 ‘화합과 전진’을 기본이념으로, ‘최다의 참가, 최상이 화합, 최고의 성과, 최적의 안전, 최대의 절약’을 대회목표로 개최됐다. 한국은 아시아에서는 2번째, 세계에서는 16번째로 올림픽을 치른 개최국이 됐다.

▲ 올림픽공원에 가면 웅장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세계평화의 문'이 우리를 맨 먼저 안내한다. 1988년 7월 건축가 김중업씨의 설계로 건립된 조형물로, 높이 24m, 폭(전/후) 37m, 전면 길이 62m(날개 정면폭)의 규모다. 한국 전통건축의 둥근 곡선을 활용, 비상과 상승의 이미지를 강조했다.

동서 냉전이 지속되던 시대에, 서울올림픽은 세계평화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뜻깊은 대회였다. 전세계 160개국에서 모두 1만3000여 명의 선수단이 참가했다. 16년 만에 동서양 진영 선수단이 모두 참가하여 동서간 이념분쟁과 인종차별을 뛰어넘어 ‘화합의 올림픽’을 이뤘다.

▲ '서울올림픽기념관'은 올림픽회관(오른쪽)과 붙어 있다. 올림픽회관은 년 1986년 서울 아시아경기대회와 1988년 서울 올림픽대회 조직위원회 사무실로 쓰였으며 현재는 대한체육회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사용하고 있다.

경기는 정식종목 23개, 시범종목 2개, 시범세부종목 1개, 전시종목 2개, 전시세부종목 1개가 치러졌다. 당시 태권도와 야구는 시범종목이었다.

소련, 동독, 미국이 종합메달 순위와 금메달 순위에서 모두 1,2,3위를 차지했다. 소련은 금메달55, 은메달31, 동메달46개를 획득했고 동독은 금 37, 은 35, 동 30개, 미국은 금 36, 은 31, 동 27개를 각각 차지했다. 당시 공산권의 맹주였던 소련, 서독과 통일되기 이전의 동독이 얼마나 올림픽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는지 실감나는 기록이다.

▲ '평화의 장'에서는 고대올림픽의 기원과 근대올림픽 부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올림픽의 역사와 의미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 제1회 아테네올림픽대회에 모인 IOC위원들의 모습. 이들에 의해 근대올림픽은 화려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당시는 14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었으며 회원은 영구적으로 지위가 보장되었다. (1965년 이후 75세까지만 위원직을 맡을 수 있게 됐다)

 

▲ '월계관의 영예' 부활된 근대올림픽에서는 고대올림픽 정신을 기려 올림피아 성역의 올리브 나뭇가지를 메달과 함께 상으로 주기도 했다.

당시 크리스틴 오토(수영/동독)는 무려 6관왕을 차지했고 매트 비욘디(수영/미국)가 5관왕(은1,동1), 블라디미르 아르테모프(체조/소련)가 4관왕(은1)을 기록했다. 김수녕은 여자 양궁 개인과 단체에서 2관왕에 올랐다.

한국여자핸드볼은 정상에 오르며 ‘우생순’ 신화를 탄생시켰다. 당시 금메달을 목에 건 여자핸드볼대표팀 주인공은 손미나, 김미숙, 박현숙, 성경화, 김현미, 김명순, 김경순, 석민희, 김춘례, 한현숙, 이미영, 이기순, 임미경, 김영숙, 송지현 선수였다.

▲ 88서울올림픽은 '화합과 전진'이라는 기본이념 아래 동서 이념의 장벽을 넘어 성공적으로 개최됐다. 육상 3관왕을 차지한 그리피스 조이너의 역동적인 모습이 당시의 성공을 증언하는 듯하다.

 

 
▲ 1936년 베를린올림픽 설명 패널에는 조국을 잃은 설움을 안고 마라톤에서 월계관을 썼던 손기정 선수(위)의 모습과 그가 당시 부상으로 받았으나 1986년에야 뒤늦게 찾아온 그리스 청동 투구(아래) 소품도 만날 수 있다.

 

▲ '명예의 전당' 손기정(중앙)을 비롯, 올림픽 역사를 빛낸 전세계 스타들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하다.

개최국 한국은 금메달 12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1개로 일약 4위로 뛰어올랐다. 대한민국은 흥분의 도가니가 됐고 세계 스포츠계도 깜짝 놀랐다. 대회 휘장은 한국 전통문양인 삼태극을 그린 작품이었고, 올림픽 마스코트는 한국산 호랑이(호돌이)였다. 코리아나는 공식 주제곡 '손에 손잡고'를 개막식 공연에서 강한 비트와 함께 열창했다.

▲ 88서울올림픽의 성화를 옮겼던 성화봉(왼쪽)과 안전램프(오른쪽)다. 당시 성화는 그리스 헤라 신전에서 채화돼 25일간을 달려 잠실 주경기장에 도착했다. 최종주자는 86서울아시안게임에서 육상3관왕을 차지했던 임춘애 선수였다.

 

▲ 88서울올림픽에서 시상했던 금,은,동 메달이다. 당시 선수들은 이 메달을 목에 걸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고 시상대에 올랐을 때 얼마나 가슴 벅찼을까?

서울올림픽이 처러진지 만 26년이 다 돼 간다. 이제 당시의 탄성과 환희는 역사 속의 한 페이지가 되어가고 있다. 서울올림픽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서울올림픽은 한국 스포츠사에 가장 커다란 획을 그은 일대 사건이었으며 한국 현대사에서도 대회 전과 후를 구분할 정도로 대도약의 이정표가 됐다.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공원에 있는 올림픽회관에는 ‘서울올림픽기념관’이 있다. 지금은 예전처럼 찾는 이들이 많지 않아 한적한 느낌마저 들지만  깔끔하게 단장한 채 오늘도 26년전 영광과 환희의 순간들을 전하고 있다.

▲ 지름 2m의 '용고(龍鼓)'. 88서울올림픽 개막 당시 식전공연에서 1200개 소고의 일사분란한 합창 속에 주경기장에 입장한 뒤 세 차례의 굉음을 토해내며 세계적인 축전의 서막을 알렸다.

서울올림픽기념관(www.88olympic.or.kr)은 대회 2년 후인 1990년 9월18일 문을 열었다. 대회의 영광과 성과를 재조명하고 올림픽정신을 계승 발전시켜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며, 교육과 오락 등 복합형태의 테마형 설치로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조성하겠다는 목적이었다.

무료로 운영되는 기념관은 상설 전시관과 기획전시관으로 크게 구성되어 있다. 1층은 ‘평화의 장’과 ‘기획전시실’ 등으로 꾸며져 있고, 2층은 ‘화합의 장’ ‘번영의 장’ ‘영광의 장(영상관)’ 등의 전시실로 이뤄져 있다. 지하 1층은 서울올림픽 및 올림픽에 관련된 자료들을 보유한 자료실이 있다.

 

▲ 88서울올림픽이 열렸던 종합운동장의 모형. 1982년 7월 야구장(오른쪽)이 준공되었고, 주경기장(왼쪽)은 1984년 9월에 개장했다.

 

▲ 올림픽공원의 모형. 서울시가 1984년 4월에 착공해 1986년 4월에 완공하였다. 86서울아시아경기대회와 88서울올림픽대회를 목적으로 건설되었으나 지금은 다양한 용도를 갖춘 종합공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평화의 장(Place of Peace)’은 올림픽과 관련된 전반적인 정보를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공간이다. 고대올림픽의 기원과 역사, 근대올림픽 부활 이후 벌어진 현대까지의 올림픽 대회를 통해 올림픽정신과 각 대회의 의미를 살펴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올림픽사에 길이 남을 영웅들의 명예로운 이름과 영광스런 순간들을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다. <계속>

     ☞ <서울올림픽기념관② 굴렁쇠 소년의 꿈을 보다>를 함께 보세요.

philip@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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