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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프로배구 '2군제', 닭과 달걀의 또 다른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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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프로배구 '2군제', 닭과 달걀의 또 다른 논쟁?
  • 이세영 기자
  • 승인 2016.11.22 0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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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인들 2군 리그 운영 한 목소리, 하지만 현실은?

[스포츠Q(큐) 이세영 기자] “프로배구도 이제는 2군제를 도입해야 할 때다!”

요즘 배구계에서 ‘비빌 언덕’만 있으면 나오는 이야기가 프로배구 2군제다. 한국배구의 국제경쟁력과 미래를 걱정하면서도, 또 프로배구의 저변확대와 활성화를 모색하면서도 거론되는 방안 중의 하나가 프로배구 2군제다. 이미 배구판의 화두가 된지 오래라는 소리다.

박기원 인천 대한항공 감독은 2군제 도입을 주장하는 단골손님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지난달 말 “(최근 V리그를 보면) 나이가 많은 선수도 아직 뛰고 있는 데 비해 새로운 얼굴은 별로 없다. 한국배구의 미래를 생각하면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면서 프로배구 2군제도 도입에 관한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 V리그 경기 도중 서울 GS칼텍스 선수들이 웜업존에서 열띤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사진=스포츠Q DB]

박기원 감독은 “기존 1군 선수들이 사용하는 차, 숙소 등을 함께 이용하면 큰 비용 없이도 2군 운영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며 조심스레 덧붙였다. 

사실 한국배구의 대외 경쟁력 추락이 우수 자원의 부족도 한 이유라는 것을 고려하면 프로배구 2군제 도입은 시급한 과제이기도 하다. 올해 남자 대표팀은 월드리그에서 턱걸이로 2그룹에 잔류했다. 남녀 대표팀 모두 아시아배구연맹(AVC)컵에서 최하위인 8위에 그쳤다. 

한때 아시아를 호령했던 한국배구로선 서글픈 현주소가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국내외적으로 한국배구의 판을 키우고 경쟁력을 높이려면 이제는 야구와 축구, 농구처럼 2군 리그 운영이 절실하다는 것이 배구계 안팎의 중론이다. 

배구보다 일찌감치 프로화의 길을 걸은 야구, 축구, 농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프로야구 2군 리그에 해당하는 한국야구위원회(KBO) 퓨처스리그는 1990년에 시작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간 예산 문제 때문에 조명시설이 갖춰지지 않아 대부분 낮 경기로 치러졌지만 올해 문화체육관광부의 2016 프로스포츠 주최단체 지원금 사업을 통해 월요일 경기를 오후 6시에 편성, 생중계까지 마련했다. ‘먼데이 나이트 베이스볼’은 KBO리그의 주인공이 될 각 팀 유망주들의 기량을 팬들이 안방에서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퓨처스리그 선수들의 야간경기 적응을 통한 경기력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됐다.

프로농구의 2군 리그도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미국프로농구(NBA)의 하부리그인 D리그에서 이름을 따온 한국프로농구(KBL)의 D리그는 2014년 출범했고 그 시초가 2009년 닻을 올린 서머리그와 윈터리그다. 1군 라인업에 포함된 선수들 중 경기에 뛰지 못하는 선수들을 참가시켜 경기력을 향상시키려는 목적으로 창설됐다. 초대 대회에는 총 7개 팀이 참가했는데, 2016~2017시즌에는 9개 팀으로 늘었다. 54경기를 4개월 동안 소화하는 일정이며, 1차와 2차로 나뉘어 대회가 진행된다.

이밖에 프로축구(K리그)는 R리그, 여자프로농구(WKBL)는 WKBL 퓨처스리그를 2군 리그로 활발히 운영하며 1군 비주전 선수들과 영건들의 기량 향상에 힘쓰고 있다.

하지만 프로배구 V리그는 2005년 창설 이후 2군 리그를 운영하지 않고 있다. 해마다 열리는 통합 워크숍에서 나오는 주제가 바로 2군 리그이지만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도 ‘논의’ 단계에 머물러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프로팀이 신인 드래프트에서 즉시 전력감 외에는 선수 영입을 꺼리고 있고, 유망주들이 뛸 무대가 없어 실력이 줄어든다고 지적하고 있다. 가까운 예로 지난달 남자부 드래프트를 보면, 인천 대한항공과 대전 삼성화재는 2라운드부터 신인 선수를 뽑지 않았다. 서울 우리카드와 천안 현대캐피탈, 안산 OK저축은행도 3, 4라운드 지명을 포기했다. “선수 육성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구단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팀 당 엔트리가 너무 적다고 토로한다. 현재 최대 19명까지 엔트리를 구성할 수 있는데, 이 인원으로 2군을 만들기가 어렵다는 것.

김성우 현대캐피탈 배구지원팀 사무국장은 “선수 정원을 25명으로 늘리고 그 중 15명을 경기 출전 선수로 잡으면 선수 10명을 확보할 수 있다”고 대안을 제시하면서도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V리그 한 시즌 경기수가 너무 적다고 생각한다. 36경기면 1년 365일 중 10%밖에 경기를 보여드릴 수 없다. 이렇게 적은 경기를 치르면서 1, 2군을 운영하는 게 옳은 건가 의문이 든다. 경기수가 늘어나야 선수들도 뛸 명분이 생긴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것이 말처럼 쉽지가 않다.

경기수를 늘리려면 구단의 예산도 늘려야 하는데, 현재 V리그에 등록된 남녀 13팀 중 공기업이 3팀이고 금융기업이 7팀이나 된다. 프로야구처럼 대기업이 운영하는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구단의 예산이 매우 한정돼 있다. 현재 프로배구 남자부의 샐러리캡(연봉 총액 상한선)은 23억 원, 여자부는 13억 원이며, 구단의 1년 운영비는 대략 50억 원이다.

이에 대해 한국배구연맹(KOVO) 홍보마케팅팀 관계자는 “2군을 운영하려면 적어도 1군 운영비의 절반이 필요하다. 비용 측면에서 부담을 느끼고 있는 구단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추가되는 선수들의 연봉은 물론이거니와 구단버스, 숙소시설 등 부대비용이 늘어나 일부 구단의 경우 이를 감당하기가 힘들다는 것.

신원호 KOVO 사무총장은 “보유선수와 샐러리캡 확대에 대한 13개 구단의 합의가 이뤄져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구단마다 의견이 다르기 때문에 조율이 필요하다”면서 “2가지 방식이 있다. 보유선수와 샐러리캡 둘 다 늘리느냐, 샐러리캡만 늘리느냐에 대한 부분도 논의돼야 한다”며 앞으로 접점을 찾아야 할 과제를 제시했다.

한 배구 전문가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쟁처럼 들린다. 과거 배구 프로화 시점에도 이런 종류의 논쟁이 있었지만 결국 시대의 흐름을 따라 여기까지 왔다”고 전한 뒤 “더 파이를 키워 국제 경쟁력도 커지면 덩달아 프로배구 인기도 높아질 수 있고 프로구단들의 홍보 마케팅 효과도 상승할 수 있으므로 전향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KOVO와 더불어 프로 구단들도 유소년 배구 활성화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원곡고 선수들을 위해 일일 코치로 나선 안산 OK저축은행 선수들. [사진=안산 OK저축은행 배구단 제공]

한편 KOVO는 프로배구의 ‘내실 다지기’를 위한 대안으로 유소년 배구의 발전에 힘을 쏟고 있는 중이다. 그것은 13개 구단 모두 마찬가지다. 

KOVO는 2년 전부터 유소년 시스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데, 신인 드래프트 계약 선수 입단금의 80%를 학교 지원금으로 사용하고 있다. KOVO 홍보마케팅팀 관계자는 “배구 저변 확대 차원에서 꾸준히 지원하는 중이다. 조금씩 성과가 나오고 있다”고 귀띔했다.

프로선수에 대한 처우가 개선돼야 배구를 하려는 유소년들이 늘어날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김성우 사무국장은 “프로에 2군 리그가 생긴다고 해도 자기 자식을 2군으로 보내기 위해 배구를 시키려는 부모는 없다”며 “2군은 또 하나의 계층이다. 부정적인 인식이 생길 수도 있다. 2군을 억지로 만들기보다는 비 주전 선수들의 처우를 개선해줄 필요가 있다. 지금 뛰는 선수들이 좋은 대우를 받으면 어느 부모가 자식에게 배구를 안 시키겠는가?”라고 주장했다.

프로배구는 관중이 해마다 늘고 있고 중계방송 시청률 또한 단순 비교하면 프로농구를 앞서는 등 나름의 진전을 이루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눈앞의 성과와 작은 지표에 만족하며 그 이면의 아픔은 물론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다면 조만간 더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 

10여 년 전 프로화라는 혁신의 길로 진화한 한국배구가 또다시 질적 양적 성장을 위해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다시금 중지를 모아야 할 시점이 아닐까?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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