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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이병규 은퇴, LG트윈스 레전드가 프로야구에 남긴 '3가지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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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이병규 은퇴, LG트윈스 레전드가 프로야구에 남긴 '3가지 유산'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6.11.25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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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응원가 문화, 국제대회 맹활약 르네상스 개척, 개성 넘치는 타격폼

[스포츠Q(큐) 민기홍 기자] LG 트윈스의 상징 이병규(42)가 20년의 프로 생활을 뒤로 하고 다이아몬드를 떠난다. 지난주 두산 베어스 홍성흔에 이어 이병규마저 은퇴를 선언하면서 야구팬들은 잠실의 두 레전드를 한꺼번에 잃게 됐다.

이병규는 프로야구에 숱한 유산을 남겼다. 가장 큰 게 바로 응원가 문화다.

2010년대 들어서부터는 백업급 야수들도 대부분 응원가를 보유하게 됐지만 2000년대 극초반만 해도 개인 프로야구 응원가는 슈퍼스타의 전유물이었다. LG의 이병규와 두산의 김동주 정도만이 누릴 수 있는 일종의 특권이었다.

▲ 이병규가 LG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한다. 통산 2043안타를 때린 그는 프로야구의 레전드였다. [사진=스포츠Q DB]

이병규 은퇴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상이 이병규 응원가다.

“LG의 이병규” 3회, “안타” 4회가 반복되는 이병규 응원가는 프로야구 응원문화를 안착시키는 데 기여했다. 지난달 8일 2016 타이어뱅크 KBO리그 페넌트레이스 최종전인 두산전. LG 팬들은 이병규의 대타 등장에 모처럼 응원가를 목청껏 불렀다.

등장음악인 퀸의 ‘I Was Born To Love You’ 가사 뒤에 울려 퍼지는 이병규의 이름은 잠실 특유의 웅장함과 절묘한 조화를 이뤘다. 잠실 직관(직접 관람)자들은 이병규가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반복되는 그 감동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은퇴를 선언한 이병규는 국제대회에서 맹활약하며 한국프로야구의 르네상스를 이끌기도 했다.

드림팀 1기가 출범한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타율 0.560 4홈런 12타점으로 금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타율 0.351 4도루로 한국야구 최초 올림픽 메달 획득에 공을 세웠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 때에도 0.364의 불방망이를 휘둘렀다.

200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는 극심한 슬럼프에 빠져 타율 0.192에 그쳤지만 야구팬들은 이병규가 2라운드 한일전 이종범의 쐐기 2루타 직전, 특유의 배트컨트롤로 중전안타를 때려 김민재를 3루로 보낸 장면을 또렷이 기억한다.

이병규 은퇴로 새겨보는 것은 하나 더. 개성 넘치는 타격폼으로 성공을 이뤘다는 점에서도 높이 평가받을 수 있다.

이병규는 히팅 시 몸이 극단적으로 앞으로 쏠리는 치명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통산 5위에 해당하는 2043개의 안타를 때렸다. 만일 일본프로야구(NPB)에 진출했던 3년 공백이 없었더라면 양준혁의 2318개를 경신했을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병규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좋은 타자’라는 야구계의 일반적인 상식을 깼다. 어떤 코스로 어떠한 구질의 공이 와도, 타격폼이 망가져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안타를 생산했다. 다양한 히팅 포인트가 감탄을 자아냈기에 이병규의 은퇴는 더욱 아쉬운 대목이다.

통산 2000안타 고지를 밟은 8인(양준혁, 장성호, 박용택, 홍성흔, 박한이, 이승엽, 정성훈, 전준호) 중 가장 낮은 통산 출루율(0.365)을 기록했지만 이병규는 ‘배드볼 히터’였을 뿐 나쁜 타자는 전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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