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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은퇴식 홍성흔, 감동 남기고 떠난 '오버맨'의 파란만장 프로야구 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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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은퇴식 홍성흔, 감동 남기고 떠난 '오버맨'의 파란만장 프로야구 18년
  • 안호근 기자
  • 승인 2017.04.30 13: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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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글 안호근·사진 잠실=주현희 기자] 18시즌 통산 1957경기 출장, 타율 0.301 2046안타 208홈런 1120타점.

은퇴식을 가진 홍성흔(41)이 남긴 화려한 성적표다. 그 중 절반은 포수로 활약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놀라운 수치들이다. 18년 간 화려한 선수생활을 했던 홍성흔이 은퇴식을 끝으로 정든 그라운드와 작별한다.

홍성흔은 30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리는 두산과 롯데 자이언츠의 프로야구 경기에 앞서 은퇴식을 가졌다. 14년 동안 몸 담았던 두산과 FA(자유계약선수)로 4년 간 전성기를 보냈던 롯데의 경기여서 더욱 의미가 깊다.

▲ 홍성흔(왼쪽)이 30일 두산 베어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를 앞두고 열린 은퇴식에서 두산 주장 김재호로부터 꽃다발을 건네 받고 있다.

◆ 포수 마스크를 벗어야 했던 사연, 최고의 기회가 됐다

이날 은퇴식을 치른 홍성흔은 1999년 두산에서 프로에 데뷔했다. 일찌감치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며 병역 혜택을 받아 더욱 긴 프로생활을 할 수 있었다. 포수 왕국 두산에서 데뷔 시즌부터 진갑용을 밀어내고 주전 안방마님이 된 홍성흔은 신인왕을 차지했다.

리그를 대표하는 포수로 승승장구했다. 2001년에는 팀을 3번째 우승으로 이끌었고 2004년에는 최다안타상을 수상하며 2차례 포수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대표팀의 단골손님이기도 했다. 방콕 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의 주역이었고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금메달,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신화의 가운데에도 홍성흔이 있었다.

탄탄대로일 것만 같던 홍성흔의 선수 인생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포수로서 기량 하락 문제로 당시 김경문 감독과 마찰을 빚었다. 포수에 대한 상당한 애착을 보였던 홍성흔은 트레이드를 요구하기도 했지만 김 감독의 설득에 결국 2008년부터 지명타자의 길을 선택하게 됐다.

▲ 홍성흔(오른쪽)이 30일 은퇴식에서 한 때 롯데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이대호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전화위복이 됐다. 공격형 포수로 이름을 날렸던 홍성흔은 포수 마스크를 벗자마자 날아올랐다. 2008년부터 3년 연속 타격 부문 2위에 이름을 올렸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스스로를 유재석에 밀려 ‘만년 2인자’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니는 박명수에 비교하기도 했지만 놀라운 변신이 아닐 수 없었다. 은퇴식을 치르기 전까지 홍성흔이 오랜 기간 선수생활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됐다.

2009년 FA 자격을 취득한 홍성흔은 부산행을 택했다. 두산 팬들은 아쉬움이 컸지만 롯데 팬들에게는 축복이었다. 홍성흔-이대호-가르시아로 구성된 타순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팬들은 이들을 ‘홍대갈’ 트리오로 부르며 아낌없는 응원을 보냈다.

특히 2010년에는 시즌 막판 부상으로 111경기만을 치르고 타율 0.350에 26홈런 116타점으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홍성흔이 롯데에 머문 4년 동안 롯데는 매 시즌 가을야구를 경험했다. 지명타자로만 4차례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 홍성흔은 특유의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로 지도자는 물론이고 팬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진=스포츠Q DB]

◆ 성적 그 이상의 가치, ‘오버맨’ 홍성흔

2013시즌 두산으로 복귀해서도 2시즌 동안은 3할을 웃도는 타율로 팀 타선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2015년부터 기량이 하락세를 탔다. 팬들 사이에서는 홍성흔을 꾸준히 기용하는 감독의 용병술에 대해 불만이 터져 나왔다. 지명타자로밖에 활용이 불가능해 야수진이 탄탄한 두산에서 후배들의 앞길을 막고 있다는 비난까지 들어야 했다.

‘홍성흔 무용론’을 제기하는 팬들이 항상 지적하는 것이 많은 병살타다. 홍성흔은 은퇴식 이전까지 18년 간 통산 병살타 230개로 이 부문 역대 1위다. 잦은 번트를 시도하지 않는 팀에서 생활했고 발도 빠르지 않았다. 물론 오랜 선수생활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홍성흔이 부진할 때마다 “홍성흔이 살아야 팀이 산다”고 말하곤 했다. ‘오버맨’으로도 유명한 홍성흔은 늘 팀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부진에 빠지면서 스스로 이 역할에 대해 부담을 느꼈다. 그만큼 홍성흔이 더그아웃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 홍성흔이 30일 은퇴식에서 홈 플레이트에 입을 맞추고 있다.

지난달 열린 WBC에서 한국은 1라운드에서 충격적인 탈락을 맛봤다. 이 때 해설위원을 맡았던 박찬호는 “과거 한국이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낼 때는 홍성흔 같은 분위기 메이커가 항상 존재했다”며 “지금은 이같은 선수들이 보이지 않는다. 더그아웃이 너무 조용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부진한 가운데서도 2015시즌 프로야구에 새 역사를 세웠다. 역대 5번째로 통산 2000안타를 때려낸 것. 프로야구 34년 역사에 우타자로는 처음으로 2000안타의 고지에 올랐다. 그해 14년 만에 우승트로피도 들어올렸다.

지난해 주전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난 홍성흔은 시즌 종료 후 은퇴를 결심했다. 그는 당시 “끝까지 야구를 참 잘하는 영웅의 모습으로 은퇴하고 싶었던 개인적인 욕심이 있었다”면서도 “후배들에게 자리를 비워줌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 일인지, 또 얼마나 멋진 은퇴인지를 깨닫게 되었다”고 밝혔다. 메이저리그(MLB) 샌디에이고 산하 루키팀에서 코치 연수 중이던 홍성흔은 은퇴식을 위해 귀국했다.

▲ 30일 홍성흔의 은퇴식에는 가족들이 모두 함께했다. 왼쪽부터 딸 홍화리 양, 홍성흔, 아들 홍화철 군, 아내 김정임 씨.

이날 은퇴식에서는 그동안의 활약상이 담긴 하이라이트 영상이 상영됐다. 구단에서는 기념액자, 두산 선수단은 기념품과 꽃다발을 전달하고 롯데에서는 한솥밥을 먹었던 주장 이대호가 꽃다발을 건넸다.
  
아역 배우이기도 한 딸 홍화리 양이 시구, 아들 홍화철 군이 시타를 맡고 홍성흔이 마지막으로 포수 마스크를 썼다.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은 듯 화리 양은 빠른 공을 던져 관중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선수들은 모두 홍성흔의 전성기 시절 '반달곰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섰다. 홍성흔의 은퇴를 기념하기 위함이다.

퍼레이드를 위해 차를 타고 그라운드를 돌기 시작하자 두산과 롯데의 팬들은 모두 홍성흔을 위해 손을 흔들며 환호했다. 감사의 인사를 전한 홍성흔은 각별한 의미로 남아 있는 홈 플레이트를 향해 입맞춤을 했다.

미국에서 훈련과 영어 공부에 매진하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홍성흔. 은퇴식 이후 지도자로서 제 2의 야구인생을 위한 준비 과정을 이어갈 홍성흔이 특유의 ‘파이팅’으로 선수들을 지도하는 장면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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