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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현장] 20년 '김치볼' 열정의 러시, 희망의 터치다운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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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현장] 20년 '김치볼' 열정의 러시, 희망의 터치다운을 향하여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4.12.01 1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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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김치볼 삼성중공업-동의대 명승부... 내년 7월 풋볼월드컵 체제 돌입

[300자 Tip!] 미식축구 최강자를 가리는 김치볼이 올해로 20년째를 맞았다. 스포츠마케팅의 집대성이라 불리는 슈퍼볼이 열리는 날 미국은 온 나라가 들썩인다. 안타깝게도 스포츠뉴스들은 김치볼이 펼쳐진 날, 단 한 줄의 소식도 전하지 않았다. 겨울을 재촉하는 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거제에서 제20회 김치볼 열전이 열렸다. 삼성 블루스톰과 동의대 선수들은 왕중왕전다운 투혼을 보여줬다. 대장정을 마친 선수들을 만나 생생한 목소리를 들었다. 내년 월드컵을 대비 중인 국가대표 사령탑의 밑그림, 한국 미식축구의 현주소도 짚었다.

[거제=스포츠Q 글 민기홍·사진 강진화 객원기자]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날은 금세 어두컴컴해졌다.

경남 거제시 삼성중공업 조선소 내 축구장. 미식축구 라인을 표시하기 위해 붙인 하얀 테이프는 선수들의 격렬한 몸싸움에 금세 뜯어지고 찢겨져 흩날렸다.

▲ 지난달 30일 한국 미식축구 최강 클럽을 가리는 제20회 김치볼이 펼쳐졌다. 삼성중공업이 동의대를 7-6으로 꺾고 창단 15년만에 처음으로 우승컵을 들었다.

삼성중공업에 속한 외국인 선수들을 응원하는 지인들과 동의대를 응원하는 후원회만이 스탠드를 메웠다. 그들은 일당백의 목소리를 내가며 선수들의 이름을 연호했다. 회사 내에 위치한 경기장이란 특성상 일반인들이 오가며 접할 수 없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김치볼. 한국 최강의 미식축구팀을 가리는 축제.

1995년부터 대학리그 타이거볼 우승팀과 사회인리그 광개토볼 우승팀이 맞붙는 최종 결승이다. 누군가는 우스꽝스런 이름이라 놀려대지만 어느덧 성년을 지나 스무해를 채웠다.

삼성중공업과 동의대는 을씨년스러운 날씨 속에서 나란히 창단 첫 김치볼을 들어올리기 위해 한치의 양보 없이 맞서 싸웠다.

승자는 형님이었다. 사회인리그 최강 삼성중공업 블루스톰은 동의대를 7-6으로 물리치고 창단 15년만에 첫 우승컵을 들었다.

▲ 삼성중공업 이종수(뒤)가 천병희의 세팅을 받아 트라이포인트킥을 날리고 있다.

◆ ‘시스템 정착’ 블루스톰, 삼성 시대 열겠다 

“시스템의 승리입니다. 2연패, 3연패도 가능하겠는데요.”

박경배(45) 삼성중공업 감독은 우승 원동력으로 ‘시스템의 정착’을 꼽았다. 그는 “우승은 한두 명의 힘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첫 우승은 지도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블루스톰은 그동안 부산 그리폰즈, 대구 피닉스, 필스 바이킹스, 서울 워리어스 등에 밀려 김치볼에 명함조차 내밀지 못했던 언더독이었다.

그는 “재작년까지는 별반 다를 게 없었지만 지난해부터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며 “우수한 플레잉 코치와 선수들을 영입한데다 올해 초에는 매니저까지 새로 들였다. 선수들이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설명했다.

2012년 광개토볼 예선에서 고배를 들었던 그들은 지난해 광개토볼 4강에 오르며 가슴을 폈다. 이번 시즌에는 매 경기 40점대 이상의 폭발적인 화력을 보여주며 라이벌 사회인팀들을 줄줄이 넉다운시켰다. 기세를 몰아 대학 최강 동의대에도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고 고대하던 김치볼을 들어올렸다.

▲ 삼성중공업 타이트엔드 케빈이 동의대 선수의 마크를 뿌리치고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케빈, 데이비드, 브라이언, 테일러, 로비, 에릭, 조시까지 7명의 외국인 선수도 엔트리에 포함돼 있다. 52명으로 이뤄진 스쿼드는 기산 골든이글스(54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인원이다. 김태훈 동의대 감독은 얄궂게도 삼성중공업 주전 쿼터백이다. (따라서 김치볼에서는 동의대를 지휘했다)

임영화(28) 매니저의 합류도 전력 강화에 한축이 됐다. 박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식축구 매니저는 단순히 물을 나르는 사람이 아니다. 2012년까지 테이핑조차 스스로 해야 했던 블루스톰은 임 매니저 영입 이후 운동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됐다.

맏형 이종수(43)의 헌신도 빼놓을 수 없다. 삼성중공업 창단멤버인 그는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팀에 우승컵을 안기겠다는 일념 하나로 후배들을 이끌었다. 이종수는 “손에 땀을 쥐는 경기를 했다. 은퇴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이번 우승에 만족하지 않는다. 내 몸이 살아있는 한 끝까지 도전할 것”이라고 전의를 불태웠다.

▲ 삼성중공업은 창단 15년만에 처음으로 김치볼 무대에 올라 우승컵까지 들었다.

중간고리 역할을 하는 이동환(32), 김동형(33)도 리더십을 톡톡히 발휘했다. 국가대표 주장으로 한국의 2번째 월드컵 진출을 이끈 풀백 이동환은 “월드컵 예선 통과, 팀 우승에다 곧 있으면 장가까지 간다. 2014년은 생애 최고의 한해”라고 웃어보였다. 동의대에 이어 삼성에서도 주장을 맡은 김동형은 “후배들에게 질 수 없다”며 이를 악물었고 선수단을 다독였다.

삼성중공업은 대학을 졸업한 선수들이 가장 오고 싶어 하는 팀이 됐다. 팀명으로만 놓고 보면 삼성중공업 직원들인 것 같지만 팀원들 중 직원 비중은 10% 남짓에 볼과하다. 이 팀은 거제 조선소의 인조잔디 구장을 쓸 수 있고 스쿼드가 탄탄해 체력 부담이 적다. 경우는 좀 다르지만 야구, 배구처럼 미식축구도 ‘삼성 왕조’가 서막을 올린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이유다.

◆ 우승만큼 값진 준우승, '대학최강' 동의대 프라이드 

“동의대 만만치 않던데요.”, “준비 많이 했더라고요.” “It's great, awesome."

삼성중공업 선수들은 하나같이 동의대의 조직력에 엄지를 치켜들었다. 52명에 맞서 대등히 싸운 29명의 동생들은 김치볼을 눈앞에 두고도 뒷심 부족으로 분루를 뿌렸다. 트라이포인트킥을 놓친 것이 1점차 패배로 돌아왔다. 몇몇은 무릎을 꿇거나 주저앉아 눈물을 보였다.

▲ 양팀의 경기는 비가 내리는 와중에 조심스럽게 진행됐다. 섣부른 패스를 시도하기보다는 러싱플레이 위주의 플레이가 자주 나왔다.

유수경(21) 매니저는 “정말 이길 줄 알았다. 외국인을 보유한 삼성에게 약간 밀렸다. 결국 노련미에서 승부가 갈렸다”고 진한 아쉬움을 나타내며 “그래도 대학 미식축구하면 동의대라는 것을 보여줘 만족스럽다. 아쉬움은 남지만 내년을 기약하겠다”고 밝혔다.

동의대는 2006년부터 대학팀으로는 최초로 3년 연속 타이거볼을 제패해 트로피를 영구보존하고 있다. 통합 챔피언 도전은 이번이 4번째였다. 4쿼터 시작까지만 해도 6-0 리드를 잡고 있어 사상 첫 김치볼 제패를 눈앞에 뒀지만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다리에 경련을 일으킨 와중에도 60야드를 질주해 선취점을 뽑아낸 와이드리시버 김상홍(25)은 “너무 아쉽다. 쥐가 나는 바람에 보너스 킥을 차지 못했다”며 “나 때문에 진 것 같다. 졸업 전 마지막 대회라 반드시 이기고 싶었는데 아쉽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 동의대는 29명의 스쿼드로 52명의 삼성중공업을 상대해 대등히 싸웠다. 경기 후 동의대 선수가 드러누워 준우승에 그친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

동의대에는 야구, 축구, 펜싱, 배드민턴, 미식축구까지 5개 운동부가 있다. 이중 엘리트 체육부가 아닌 것은 미식축구가 유일하다. 하지만 학교 체육진흥단은 나머지 4개 종목과 다를 바 없이 미식축구부에도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박철현 지도교수는 “대학 최초 3연패라는 전통, 우수한 선수들을 많이 배출했다는 자부심이 있다. 동의대 선수들은 눈빛부터 다르다”며 “다른 대학팀들과는 달리 체대생은 딱 한 명뿐이다. 불리한 스쿼드인데도 패스로 승부를 건다. 조직력이 남다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부상 선수가 많았던 것이 패인이었다. 시즌을 마친 직후 2명은 어깨 인대가, 1명은 손목뼈가 손상돼 수술에 들어가야 한다. 180cm대 선수가 현저히 적어 피지컬에서 압도당했음에도 형님들과 대등히 맞서 싸웠다.

▲ 60야드 전력질주 후 다리에 경련을 일으킨 동의대 김상홍(가운데)이 이동원(왼쪽)과 방기태의 부축을 받고 경기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 이제는 월드컵 체제, “1승, 5~8위전 진출이 목표” 

“11개국 전력이 모두 우리보다 낫죠. 현실적인 목표는 1승입니다.”

백성일(45) 한국 미식축구대표팀 감독은 국내에서 개최되는 모든 대회를 돌아다니며 선수들의 상태를 파악하는데 여념이 없다. 7개월 앞으로 다가온 풋볼월드컵에서 이변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2014년 일정을 모두 마친 한국 미식축구 선수들은 이제 내년 7월 4일부터 18일까지 스웨덴에서 펼쳐지는 국제미식축구연맹(IFAF) 제5회 풋볼월드컵을 향한 담금질에 들어간다. 이달 말 진행되는 트라이아웃을 거쳐 선발한 대표팀 44명은 부산 신라대, 구미 금오공대, 서울시립대를 거치며 한 달에 한 번씩 소집된다.

한국은 지난 5월 12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펼쳐진 아시아 예선전에서 쿠웨이트를 69-7로 완파하고 일본과 함께 아시아를 대표해 풋볼월드컵에 나가게 됐다. 미식축구가 국내에 제대로 자리잡기 전인 1999년 1회 대회에 불참했던 한국은 2003년 2회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 일본에 0-88으로 패해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다. 일본은 1,2회 대회에서 우승했다.

▲ 삼성중공업 임영화(오른쪽) 매니저와 동의대 유수경 매니저는 국가대표팀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다. 둘은 시시콜콜한 일에서 스케줄 관리, 테이핑에 이르기까지 대규모 선수단의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다.

2007년 3회 월드컵에서는 일본이 개최국 자격으로 자동 진출하며 최초로 본선에 진출했다. 아시아 예선에서 호주를 꺾고 나선 본선에서 프랑스를 3-0으로 물리치고 6개 출전국 중 5위에 올랐다. 2011년에는 또다시 일본의 벽을 넘지 못했다. 아시아 예선에서 0-77로 패하며 본선 진출이 좌절됐다.

2011년 4회 월드컵부터 참가국이 6개국에서 8개국으로 확대됐다. 이번 대회부터 아시아에 1장만 주어지던 본선 티켓이 2장으로 늘었고 한국은 아시아 최강국인 일본을 피해 월드컵 진출권을 따냈다.

삼성중공업에서는 정태승, 김태훈, 여봉도, 조민규, 이동환, 전홍덕, 천병희, 서형욱, 구우승, 김성훈, 장봉영 등이, 동의대에서는 남인제, 류승혁, 김상홍, 변준성, 강준혁 등이 대표팀에 승선할 것으로 보인다.

백 감독은 “1승은 결코 쉽지 않은 목표다. 재일교포를 합류시켜 전력 극대화를 꾀할 것”이라며 “한 경기를 잡고 5~8위 순위 결정전에 나가보고 싶다”는 출사표를 던졌다.

▲ 백성일 한국 미식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은 이달 말 트라이아웃을 통해 내년 스웨덴 월드컵에 출전할 44명의 선수를 가릴 예정이다.

◆ 한국 미식축구의 현주소, “지켜봐달라” 

“내려갈 곳이 없습니다. 올라갈 일만 남았습니다.”

김동희 대한미식축구협회(KAFA) 사무국장의 눈이 빛났다. KAFA가 출범한 지 69년째. 뚜벅뚜벅 전진했어야 하는데 누구도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풀지 못했다. 지난 9월 부임한 김 국장은 어떻게 해야 한국 풋볼을 번영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으로 연일 머리를 싸매고 있다. 과제는 산더미다.

역대 KAFA 사무국장은 모두가 무료 봉사자였다. 김 국장은 부임 조건으로 유급을 내걸었다. 그는 “액수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의미가 중요한 것”이라며 “규정화 포맷을 갖춰나갈 것이다. 한국 풋볼이 합심해 한발 나아갈 기회다. 사무국에 힘을 실어달라”고 호소했다.

20돌의 의미있는 행사였지만 취재진은 아무도 없었다. 치밀한 전략이 격돌하며 불꽃 튀는 명승부를 연출했고 수준 높은 플레이가 연이어 나왔지만 누구도 알지 못했다. 2010년대 초반까지는 간혹 다큐멘터리 프로를 통해 다뤄지던 김치볼은 이제 미디어의 관심에서 벗어났다. 이날은 부산, 경남 지역 언론들로부터도 외면받았다.

▲ 강요식 대한미식축구협회 고문은 고심 끝에 회장직을 수락하기로 마음먹었다. 육사 생도 시절 럭비를 했던 그는 미식축구의 매력에 푹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들쭉날쭉한 일정과 경기 장소가 문제로 지적됐다. 19회까지 김치볼은 12월 초부터 2월초까지 서울, 부산, 대구, 남양주 등 고정된 날짜와 운동장 없이 치러졌다. 김 국장은 “내년부터는 12월 첫째주 토요일, 접근성이 좋은 수도권 위주로 김치볼 일정을 잡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월드컵에 나설 선수들의 출전 여부도 걱정해야할 처지다. 정장 단복같은 것은 꿈꾸기도 힘들다. 풋볼월드컵조직위원회에서는 왕복 비행기표를 제외한 경비를 대주는데 1인당 300만원에 달하는 자비를 들여 스웨덴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대학생은 시간은 있지만 비용이, 사회인 역시 2주를 비운다는 것이 각각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서울, 부산, 대구 3개 지역에만 편중된 것도 문제다. 김 국장은 “호남권과 충청권 팀의 창단 필요성에 대해 절감하고 있다”며 “플래그 풋볼(전체적인 규칙은 비슷하나 부상 염려가 있는 거친 태클과 몸싸움을 배제한 풋불)팀 확대를 통해 저변을 확대해나갈 것”이라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희망은 있다. 내년 시즌부터는 ‘김치볼’이라는 네이밍에 매력을 느낀 대한민국김치협회가 일정액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공석이던 회장직도 조만간 주인을 찾게 된다. 이날 경기장을 찾아 시축을 한 강요식 대한미식축구협회 고문이 차기 회장직 제의를 수락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육군사관학교 생도 시절 럭비를 했던 그는 자연스레 미식축구의 매력에 빠졌고 고심 끝에 수장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강 고문은 “미식축구 전략, 전술을 보고 있노라면 빠지지 않을 수 없다”며 “보급이 덜 되어 그렇지만 붐이 일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든다”며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 제20회 김치볼에서 우승한 삼성중공업(왼쪽)과 동의대 선수들이 한데모여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두팀은 결승전다운 팽팽한 경기로 왜 사회인, 대학리그 최강 자리를 차지했는지를 증명해 보였다.

[취재 후기] 거함 삼성중공업을 상대로 김치볼에 걸맞은 경기력을 선사한 준우승팀 동의대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블루스톰 선수들은 이구동성으로 동의대를 극찬했다. 우승의 기쁨을 최대한 즐기면서도 ‘최고의 상대’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것을 잊지 않았다.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미약하게나마 기량을 꾸준히 향상시켜왔고 월드컵 티켓을 따내며 존재감을 입증했다. 새 수장과 실무자를 맞은 한국 미식축구과 한 마음 한 뜻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기를 바란다.

sportsfactory@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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