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23:04 (토)
[아마추어 명가를 찾아서] (1) 태광고의 '희망 바벨', 3중고도 으랏차차! (上)
상태바
[아마추어 명가를 찾아서] (1) 태광고의 '희망 바벨', 3중고도 으랏차차! (上)
  • 이세영 기자
  • 승인 2015.02.10 10: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사의 산실' 태광고 역도부...예산·선수수급·시설 어려움에도 '내일의 에이스' 키운다

[300자 Tip!] 바야흐로 학원스포츠의 위기다. 출산 인구가 줄어들면서, 혹은 직업이 다양하고 세분화되면서 예전에 비해 운동선수를 꿈꾸는 학생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신체조건이 좋아도 선수의 길을 택하지 않고 이미 운동을 하고 있는 이들도 중도에 포기하거나 다른 길을 택하기는 경우가 많다. 이외에도 금전적인 문제나 프로의 문이 갈수록 좁아지는 현상 등 운동하는 학생들이 줄어드는 원인은 다양하다. 1988년 창단한 태광고등학교 역도부 역시 선수 수급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이다. 그럼에도 흔들리지 않고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시즌을 준비하는 선수들은 이 겨울 끝자락까지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바벨과 씨름하고 있다.

[평택=스포츠Q 글 이세영·사진 최대성 기자] 훈련장 문을 열자 바벨을 들어 올리는 선수들 10여명의 기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코치들은 선수들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큰 소리로 독려했다.

새 시즌이 얼마 남지 않아 훈련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다. 지난 시즌 각종 대회에서 3관왕을 4명이나 배출하고도 가장 큰 대회에서 부진했기 때문에 선수들은 저마다 결연한 각오로 담금질에 여념이 없다.

▲ 태광고, 태광중 역도부 선수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승환과 이슬기는 상비군 선발 때문에 훈련에 참가하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제주체전에서 태광고는 동메달 1개를 얻는데 만족해야했다. 다섯 명이 출전했지만 긴장했는지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결과. 적어도 금메달 한두 개쯤은 딸 것이라 내다봤지만 노골드에 그쳤다. 예년에는 색깔을 가리지 않고 메달을 휩쓸었기에 더욱 아쉬웠다.

2009년부터 7년째 태광고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는 안종혁(38) 코치는 “직전 대회까지만 해도 잘 치렀는데, 다들 긴장했는지 가장 중요한 대회에서 실력 발휘가 안 됐다”며 “최소 9개의 메달을 예상했는데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가 나왔다”고 지난 시즌 '화룡점정'을 못한 것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 다수 국가대표 배출한 '역사(力士)의 산실'

태광고는 '역사(力士)의 산실'이라 불릴 만큼 기량이 뛰어난 선수들을 다수 배출했다. 1988년 창단 당시 지휘봉을 잡은 안혁선 감독은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며 우수 선수들을 확보, 각종 대회를 석권했다.

1991년에는 국가대표급 여자선수 6명을 확보했고 이듬해 한국역도연맹으로부터 역도 우수교로 선정되기도 했다.

▲ 태광고 안종혁 코치는 "훈련 장소가 낙후돼 교체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예산이 부족해 훈련장 공사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장미란을 지도했던 최종근 고양시청 코치는 태광고가 낳은 대표적인 국가대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한 그는 남자 105㎏급 인상(190㎏)과 용상(226㎏), 합계(415㎏) 신기록을 16년째 보유하고 있다.

그의 뒤를 이은 스타는 조유미(23·고양시청)와 정지연(23·평택시청)이다. 태광고 재학 당시 전국체전 여고부 인상과 합계에서 3년 연속(2008~2010년) 정상을 밟았고 용상에서는 2년 연속(2009~2010년) 우승을 차지했다. 정지연 역시 실업 무대에서 꾸준히 성적을 내며 모교의 이름을 빛내고 있다.

◆ 녹록지 않은 현실, 시대 흐름 따라가는 지도법으로 정면돌파

선배들의 업적에 누가 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문 선수들은 지난해까지 전국대회를 휩쓸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하지만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들이 대부분 3학년이라 졸업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7월 경기도회장배대회에서 나란히 남고부 3관왕에 오른 고상훈(85㎏급)과 박상범(69㎏급), 같은 대회 여고부 69㎏급 인상 2위를 차지한 홍나리, 4월 춘계대회에서 은메달을 3개를 딴 조규혁(105㎏급 이상) 등이 이제 학교를 떠난다.

선수 개개인의 기량을 향상시키는 것이 시급하지만 과감한 투자를 하기 힘든 상황이다.

1년에 한 번 나오는 예산을 대회 출전비나 기타 경비로 쓰고 남은 돈으로 전지훈련을 가야 하는데, 살림이 빠듯하다 보니 3년째 동·하계 전지훈련을 하지 못했다.

안 코치는 “다른 학교 학생들이 우리 학교에 전지훈련을 올 때 선수들이 자극을 받다 보니 기량이 올라가더라”며 “우리도 예산만 확보된다면 다른 곳에 가서 새로운 경험을 해야 하는데 아쉬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학교 예산 문제는 우리의 의도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털어놨다.

▲ 태광고 1학년 진학 예정인 김영훈(앞)이 바벨을 들어올리고 있다.

선수들이 훈련하는 공간도 문제다. 훈련장이 오래되다 보니 지반이 가라앉아 앞으로 원만한 훈련을 소화하기 어렵다는 것. 안 코치는 “역도는 중심을 잡아야 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땅이 기울어진 상태에서 자세를 잡기 힘들다”며 “전국대회에서 메달을 많이 땄을 때 공사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지금은 쏙 들어간 상태”라고 말했다.

아울러 태광고는 선수 수급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학생이 운동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도 부모가 말린다는 것. 운동에 소질이 보이는 학생이라도 학부모가 공부를 시키겠다고 하면 설득하기 힘들어진다는 게 안 코치의 이야기다.

하지만 태광고는 이런 난관 속에서도 지도자들이 남다른 마인드와 깨어있는 지도법을 발휘, 위기를 헤쳐나가고 있다.

역도부 창단 28년. 뿌리 깊은 역사이지만 태광고는 기존 훈련 방법을 고수하지 않고 시대의 흐름을 따랐다. 다른 학교의 기록이 향상되면 비결을 물어 접목시켜보기도 하고 훈련 프로그램에도 변화를 줬다. 운동을 쉽게 포기하는 경향이 있는 요즘 학생들에게 강압적인 방법으로 훈련을 시키는 게 옳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안종혁 코치는 “선수들의 컨디션에 따라 훈련시간이 조절되기도 한다. 강제적인 분위기에서 운동하면 부상이 따라올 수도 있기 때문에 힘에 부쳐 보이면 훈련 강도를 낮춘다”고 설명했다.

7년차 베테랑이지만, 안 코치는 정기적으로 연수에 참가하며 학생들의 마음을 알고자 노력한다. 심리적인 부분 등 역도 외적인 것에도 관심이 많다. 끊임없이 배우려 하는 지도자가 있기에 앞으로도 태광고가 점점 발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 '될성부른 떡잎' 있기에 밝은 미래

실력이 좋은 언니, 오빠들이 대거 졸업하지만 남은 이들은 밝은 내일을 꿈꾼다. 당장 올해 성적은 저조할지 모르지만 내년을 기점으로 다시 역도 명문의 자존심을 회복하겠다는 각오다.

안 코치는 “태광중에서 올해 태광고로 올라오는 김승환(남자 50㎏급), 김영훈(남자 56㎏급)이 기대주”라며 “올해 큰 성과는 바라지 않고 내년 체전에 출전시키는 게 목표다”라고 밝혔다.

재학생 중에는 이슬기(여자 48㎏급)와 이윤정(여자 69㎏ 이상급), 유호성(남자 69㎏급)에 기대를 건다.

유호성은 “사재혁 선배가 롤모델이다. 역도를 할 때 자신감이 넘치는 면모를 본받고 싶다”며 “전국 10위권인 성적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20대 초반에 태극마크를 달아 존경하는 선배와 운동하고 싶다”고 바람을 나타냈다.

졸업반이 되는 이윤정은 “코치님과 내가 만족할만한 성적을 내면서 시즌을 마무리하는 게 목표다. 학교를 떠나는 날까지 후배들에게 역도에 대한 조언을 최대한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태광고 선수와는 별도로 장기적인 육성에 들어간 선수도 있다. 주인공은 태광중 진학 예정인 김다희(11). 평택 성동초 5학년에 재학 중인 그는 기계체조에서 역도로 전향한 뒤 오빠, 언니들과 함께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아직 시작한지 3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역도에 소질이 보인다는 게 안종혁 코치의 평가다.

▲ 이윤정(왼쪽)과 유호성은 올해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낼 선수로 기대되고 있다.

안 코치는 “체조로 단련된 기초체력이 있기 때문에 25㎏짜리 바벨도 곧잘 든다”며 “애초에 역도에 소질이 더 있었다. 체조 코치와 교류가 있었다면 조금 더 일찍 전향시켰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김다희는 “아직 기초를 배우는 단계이기 때문에 코치님의 조언을 잘 새겨들어 나만의 자세를 만들겠다”며 “중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배울 역도가 기대된다. 대회에 나간다는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떨린다”고 웃어 보였다.

에이스급 선수들이 대거 학교를 떠나지만 무럭무럭 자라나는 새싹들이 있기에 태광고의 미래가 밝아 보인다.

[취재후기] 실력이 출중한 선수들이 곧 학교를 떠나지만 남은 이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는 눈치다. 저학년, 고학년을 가리지 않고 각자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있다. 매일 훈련일지를 쓰며 하루를 돌아보는 선수들은 오늘보다 더 발전된 내일을 꿈꾼다. 지금의 노력이 후에 성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기에 바벨 한 번 더 들 때도 진지한 마음이 표정에서 엿보였다. 태광고 역도부 선수들의 열정이 좋은 결실로 이어질지 기대되는 대목이다.

[SQ스페셜] ② '엄동도 녹였다' 태광중·고 역사들의 유쾌한 담금질 로 이어집니다.

syl015@sportsq.co.kr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관련기사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