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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양예빈 여서정, 대한민국에서 스포츠 천재가 살아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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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양예빈 여서정, 대한민국에서 스포츠 천재가 살아남는 법
  • 안호근 기자
  • 승인 2019.08.09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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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피겨 퀸’ 김연아, ‘마린보이’ 박태환. 

둘은 어릴 적부터 천재 소리를 들으며 세계적인 선수로 발돋움했다. 이들은 한국의 자부심이 됐고 우리는 ‘천재적 재능’을 가진 이들의 등장에 열광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얼마나 많은 유망주들이 더딘 성장으로 결국 도중하차했을까. 일일이 언급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재능들이 ‘반짝 관심’을 받다가 제2의 김연아, 박태환이 되지 못한 채 대중의 관심 밖으로 사라져 갔다. 김연아 박태환이 괜히 ‘돌연변이’라는 평가를 받는 게 아니다. 그만큼 유망주들이 한국에서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하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다. 실로 어떤 비법이라도 있는 것인지 궁금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 '여중생 볼트'로 한국 육상계에 혜성 같이 나타난 양예빈. [사진=대한육상연맹/연합뉴스]

 

◆ 떡잎부터 남달랐던 김연아-박태환, 뒤따르는 여서정 양에빈 조대성 신유빈

한국 스포츠사의 가장 위대한 인물을 꼽으라면 빠지지 않는 이가 김연아와 박태환이다. 불모지와 다름없는 한국 피겨스케이팅과 수영에서 세계 정상에 우뚝 섰기 때문이다.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세계신기록으로 금메달을 목에 건 김연아는 세계 여자 피겨 역사에서도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7세 때 처음 스케이트를 신은 그는 14세 때 태극마크를 달았고 2002년 첫 출전한 노비스(13세 이하)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론 참가한 모든 대회에서 시상대에 오르는 ‘올포디움’을 기록했다. 이는 여자 피겨 사상 김연아가 유일하다.

5세 때 천식을 치료하기 위해 처음 물속으로 뛰어들었던 박태환은 대청중 3학년 때 역대 최연소로 국가대표가 됐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부정 출발 실격으로 쓰라린 가슴을 부여잡았던 그는 이듬해 6차례 한국 신기록을 세우며 ‘천재’ 수식어를 달더니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약관의 나이에 400m 자유형으로 당당히 최고의 자리에 섰다.

이들이 과거 영광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면 현재 한국 스포츠를 뜨겁게 달구는 예비 스타들이 있다. ‘여중생 우사인 볼트’ 양예빈(15·충남 계룡중), 양학선 이전 ‘도마 1인자’이자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여홍철(48) 경희대 교수의 딸 여서정(17·경기체고),  그리고 남녀 탁구 신유빈(15·청명중)과 조대성(17·대광고) 등이 첫 손에 꼽을 수 있다. 

 

▲ 한국 스포츠의 영웅 피겨 김연아(왼쪽)와 수영 박태환. 어릴 적부터 꾸준한 성장으로 올림픽에서 나란히 금메달까지 차지했다. [사진=연합뉴스]

 

‘육상 김연아’라고도 불리는 양예빈은 지난 7월 전국시도대항육상경기대회 여자 중학교 400m 결선에서 55초29로 결승선을 통과, 1990년 김동숙(55초60) 이후 29년 만에 여자 중학생 한국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는 성인을 포함해도 한국 여자부 전체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아시아권으로 범위를 넓혀도 18세 이하 중 7위다. 그보다 위에 있는 6명은 모두 2004년 3월생인 그보다 언니인 2002년, 2003년생이어서 기대감은 더욱 커져만 간다.

여홍철 교수의 딸로 더 잘 알려져 있던 여서정은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이후 한국 여자 체조의 간판으로 자리매김했다. 도마에서 아시아 정상에 오른 그는 지난 6월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겨룬 코리아컵에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이름을 딴 ‘여서정’ 기술을 국제체조연맹(FIG) 규정집에 등록시키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탁구 신유빈은 지난 6월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 기록을 경신했다. 5세 때 SBS 예능 프로그램 스타킹에 ‘탁구 영재’로 출연했던 그는 한국 탁구의 최연소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조대성은 지난해 12월 전국남녀종합선수권에서 역대 최연소(만 16세) 준우승을 차지했다. 스포츠 전 분야를 망라해 수상자를 선별하는 제24회 코카콜라 체육대상에선 여서정과 함께 신인상을 받기도 했다. 둘은 종합선수권 혼합복식에서 한 조로 나서 2위를 차지했다.

이밖에도 축구 이강인(17·발렌시아), 남녀 농구의 기대주 이현중(데이비슨대)과 박지현(이상 19·우리은행), 여자배구 정호영(18·선명여고), 남녀 피겨 차준환(18·휘문고)과 임은수(16·한강중), 유영(15·과천중) 등 한국 스포츠 역사에 한 획을 그을 기대주들이 팬들을 설레게 만들고 있다. 

아직 나아갈 길이 더 많은 이들이지만 이토록 각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더욱 높이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 무엇이 필요할까.

 

▲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도마 금메달을 목에 걸며 여자 체조의 간판으로 거듭난 여서정. [사진=연합뉴스]

 

◆ 천재 유망주가 살아남는 법 하나 : 개인화된 철저한 피드백이 필요하다

양예빈을 발굴하고 육성을 책임지고 있는 김은혜(29) 계룡중 코치는 “예빈이는 천재가 아니다”고 못 박았다. 그만큼 뼈를 깎는 훈련과 다양한 방법의 노력이 필요했다는 걸 강조한 것이다.

처음 양예빈을 발굴한 건 5년 전. 김은혜 코치는 양예빈이 예상보다도 더욱 가파른 성장세를 그렸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그에게 특화된 훈련 방식이 필요했다. 양예빈은 큰 키에 비해 근육량이 적어 오히려 보폭을 줄이고 있는 중이다. 부족한 균형을 위해 뛸 때는 물론이고 걸음걸이 자세부터 조정하게끔 돕고 있다. 훈련 시스템에 대한 우려나 김 코치의 역량에 대한 이야기도 심심찮게 나오는 걸 볼 수 있지만 개의치 않으려고 한다. 김 코치는 “예빈이는 당장 아시아나 세계 대회에 출전하는 게 아니”라며 “국내 대회와 세계 대회는 일정부터 시스템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이에 따른 훈련 체계도 다를 수밖에 없다. 역학 부분이나 심리적인 부분 등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고 차용해보고 양예빈에게 맞는 방법을 찾으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아무리 좋은 훈련법으로 알려져 있더라도 모두에게 정답이 될 수는 없다. 척추 측만증이 있던 우사인 볼트가 ‘단거리의 신’이 될 수 있었던 것엔 그의 신체적 특성을 고려하고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코치진의 맞춤 훈련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김 코치는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부분은 주변에 도움을 청했다. 

일례로 소년체전을 앞두고 부담감을 크게 느끼는 제자를 위해 교육청과 장학사, 주변 교수들에게도 연락해 지원을 받아냈다. 재활과 심리, 트레이닝 등 주변의 다양한 전문가들에게도 수시로 조언을 구해가며 제자에게 맞는 방법을 찾으려고 열심히 노력 중이다.

 

▲ 양예빈(위)과 여서정의 경기장면. 좋은 성적을 위해 지도자들은 이들에 맞는 개인화된 훈련을 연구, 적용하고 있다. [사진=대한육상연맹/연합뉴스, 연합뉴스]

 

무엇보다 성장기에 있는 선수들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단점이 보인다고 성급히 보완하려고 하기보다는 가장 급한 것부터 하나씩 천천히 수정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꺼번에 고치려고 하다보면 오히려 단점이 4,5개로 더 늘어나게 된다”는 게 김 코치의 부연 설명이다.

이정식 여자 기계체조 대표팀 감독 또한 “천재성은 잠재력에 해당하는 말”이라며 “기술 등 나머지는 다 만들어가야 한다. 여서정을 지도한지는 2년 반 정도 됐는데 처음엔 한 가지 기술만을 할 줄 알았다.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위해선 몇 가지의 기술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훈련에 매진한 끝에 그 목표에 이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이 훈련에 보다 신경을 기울인다면 더욱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훈련법과 역학, 심리 등 과학적인 방법은 전문가의 조언을 듣는다. 일주일에도 2,3차례씩 스포츠과학연구소 교수들과 왕래하며 맞춤 성장법을 찾는 데 골몰하고 있다.

◆ 천재 유망주가 살아남는 법 둘 : 지도자와 소통, 멘탈 관리의 중요성

김은혜 코치는 유망주의 성장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요소로 체계적인 훈련은 물론이지만 이에 앞서 지도자와 선수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소통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리적인 부분에서 특히 많이 달라졌다. 본인이 스스로 이겨내지 않으면 극복하기 어려운데, 훈련과 경기를 뛰면서 성장했다”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고 가까워지면서 고민을 알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친구 같은 눈높이 소통을 통해 고충을 파악해갔다.

 

▲ 양예빈(오른쪽)과 김은혜 코치. 김 코치는 친구 같이 가까이 지내며 제자의 고충을 파악하려고 애쓴다. [사진=김은혜 코치 제공]

 

“예빈이는 심리적으로 도전하기를 두려워했다. 연습에 비해 경기력이 안 나왔는데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며 “400m가 주종목이기 때문에 거리 부담감이 있었는데 50m나 100m에서 퍼져도 되니 도전을 두려워말고 해보라고 강조했고 이 부분에서 많은 발전이 있었다”는 것.

최근 지상파 스포츠 뉴스 출연과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 관련 영상이 급속도로 확산되며 광고제의도 물밀 듯 들어왔다. 매니지먼트사와 스포츠 브랜드에서도 러브콜이 들어왔다. 그러나 김 코치는 양예빈 부모와 상의를 통해 이러한 제안들을 정중히 고사했다.

아직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상업성이 연관돼 있는 광고 등은 자칫 지나친 관심이 되거나 선수의 성장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 코치는 “당장 국내대회에 나서는 데 필요한 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며 “지금 지원을 받지 않아도 꾸준히 잘 해나간다면 나중에도 얼마든지 기회가 올 것이다. 중학생인데 정서적으로 그 이상을 앞서 나가게 하고 싶지는 않다”고 전했다.

이정식 감독도 “여서정이 대회를 앞두고 긴장하는 경우가 많다. 아직은 심리적으로 크게 흔들릴 수 있는 나이이기에 더욱 신경 쓰려고 한다. 스스로 극복할 수 있게끔 도와준다”면서도 “대회에 대한 준비가 잘 돼 있을 땐 그런 부담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무엇보다 철저한 훈련을 통해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리적인 부분 또한 스포츠과학연구소 교수들의 보다 체계적인 조언을 얻는다. “양예빈이 대회만 되면 긴장감 때문인지 평상시에 하던 것과는 조금 다른 동작들이 나온다”며 “적당하면 도움이 되지만 자칫 평상시에 했던 것과 지나치게 다르게 나올 경우엔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런 부분까지도 조절해주기 위해 꾸준히 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 현역 시절 김연아(위)와 박태환을 향한 언론의 취재환경. 과도한 관심은 아직 성장 중인 유망주들에겐 지나친 부담으로 성장에 지장을 줄 수도 있다. [사진=연합뉴스]

 

◆ 천재 유망주가 살아남는 법 셋 : 지나친 관심은 독, 이강인 향한 ‘묵묵론’이 필요하다

언론과 대중의 관심은 유망주들을 동기 부여시키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게끔 하는 힘이다. 다만 지나침은 독이 된다. 띄워주기 식 관심을 등에 업은 수많은 유망주들이 역효과로 인해 그저 그런 선수에 그치거나 성인 선수로 제대로 성장하지도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인터넷 문화가 발달하면서 댓글에 영향을 받는 경우도 많아졌다. 김 코치는 “99%가 좋은 댓글이라고 해도 1%에 상처를 받게 되더라”며 “양예빈이 초기엔 댓글을 보고 상처를 받는 등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했다. 도움이 되지 않으니 보지 말라고 이야기를 했고 잘 따라줘 이제는 확인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코치의 멘탈을 흔드는 댓글들도 적지 않다. 연맹과 교육시스템 등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에 힘이 빠지기도 한다. “양예빈이 인생과 목표를 바라보고 천천히 나아가려고 하는데 대중의 관심이 쏟아지며 부담이 커졌다”며 뜨거운 관심은 이해하면서도 근거 없는 비방과 선수들에게 독이 될 수 있는 언급은 삼가주기를 당부했다.

여서정은 아직 언론에 대한 관심이 부담스럽다. 지난해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여자 체조의 간판으로 등극하며 급격히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는데, 아직은 어린 나이이기에 인터뷰를 하는 것 자체에도 스스로 어려움을 느낀다는 게 이정식 감독의 말이다.

이 감독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기에 익숙해져야 한다고는 이야기를 해준다. 스스로 생각을 바꿔나가는 수밖에 없다”면서도 성적에만 너무 집중하는 보도 등은 어린 선수에게 지나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으니 자제해달라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나타내기도 했다.

 

▲ '누리꾼이 지켜낸' 이강인은 지난 6월 U-20 월드컵에서 골든볼을 수상하는 등 세계가 주목하는 기대주로 성장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강인을 대하던 누리꾼 문화도 본보기가 될 수 있다. 

2007년 축구 예능프로그램 ‘날아라 슛돌이’로 존재를 알린 이강인은 지난 6월 열린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한국의 준우승을 이끌며 골든볼(최우수선수)을 수상했다. 미래가 창창한 그를 바라보는 축구 팬들은 관련 기사가 나올 때마다 ‘묵묵론’을 주장했다. 유망주의 몰락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요소인 지나친 관심을 삼가고 묵묵히 응원하자는 취지였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이강인 관련 기사엔 “묵묵히 응원하자”는 댓글이 언제나 베스트 댓글로 달려 있었는데, 이는 이강인이 어느덧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샛별 중 하나로 성장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줬다.

천재 유망주들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은 클 수밖에 없다. 제2의 김연아와 박태환의 등장은 상상만으로도 설레는 일이다. 다만 ‘천재’, ‘재능’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 붙는 건 문제가 될 수 있다. 심리학계 석학이자 40여년 간 성공의 비밀에 대한 연구를 한 캐럴 드웩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의 실험 결과에 천재 유망주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힌트가 있다.

‘천재’ 소리를 자주 들은 아이들은 성공, 성적에 대한 강박이 있는데 어려운 문제를 접할 경우 자신이 풀 수 없다는 생각에 좌절하게 된다. 이로 인해 자신이 잘 풀어 칭찬을 받을 수 있는 문제에만 집착하게 된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이는 성장에 방해가 된다는 것. 

드웩은 “지능이나 재능을 칭찬하지 말라. 그런 칭찬은 실패했다”며 노력과 과정에 대한 칭찬이 수반될 때 아이들을 더욱 도전적으로 만들고 성장 가능성을 키운다고 했다. 

재능이 뛰어난 유망주들을 향한 관심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어떤 방식으로 관심을 표출 하느냐도 이들의 성장을 좌우할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다. 팬들이 명심해야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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