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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3승 거둔 날, 이름은 '세월' 배번은 '4.16.14'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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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3승 거둔 날, 이름은 '세월' 배번은 '4.16.14'였다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4.18 11: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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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라커에 'RYU 99' 대신 붙여 희생자 추모, 희망의 역투

[스포츠Q 박상현 기자] 류현진(27·LA 다저스)의 라커에는 보통 'RYU 99'가 붙는다. 하지만 18일(한국시간) 샌프란시스코 AT&T 파크의 원정팀 라커룸의 류현진 라커에는 다른 문구가 붙었다.

'SEWOL 4.16.14'

바로 지난 16일 진도 해상에서 침몰한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와 그들의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문구였다. 세월(SEWOL)호 참사와 그날 2014년 4월 16일(4.16.14)을 잊지 않고 추모한다는 의미였다.

스포츠가 국민에게 힘을 주는 경우는 이미 여러 차례 경험했다.

▲ 류현진은 18일(한국시간) 샌프란시스코 AT&T 파크에서 열린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원정경기에서 자신의 라커에 자신의 이름과 등번호 대신 'SEWOL 4.16.14'라는 문구를 붙였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로한다는 의미였다. [사진=LA 다저스 구단 공식 트위터 캡처]

굳이 베이브 루스가 어린이 환자에게 홈런을 꼭 쳐주겠다고 약속한 뒤 이를 그대로 재현해냈다는 일화를 말할 필요도 없다.

박찬호(40)가 그랬고 박세리(37·KDB산은금융그룹)이 그랬다.

박찬호는 아직 한국 야구가 세계 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했던 1994년에 메이저리그라는 무대를 밟았다. 곧바로 마이너리그행을 통보받긴 했지만 기량을 쌓은 뒤 LA 다저스 선발 마운드의 주축이 됐다.

1997년 우리나라가 IMF 사태로 국민들이 절망에 빠져 있을 때 박찬호는 내로라하는 메이저리그 타자들을 상대로 라이징 패스트볼을 앞세워 삼진을 잡았다. LA 다저스라는 명문팀의 에이스로 우뚝 서는 모습을 보고 희망을 찾았다.

박세리 역시 마찬가지. 비슷한 시기에 박세리는 미국여자프로골프투어(LPGA)에 진출했지만 기대에 다소 미치지 못하는 성적을 올리기만 했다. 당시 박세리를 후원하던 삼성도 성적이 나오지 않자 철수를 검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반전이 일어났다. 1998년 5월 18일에 맥도널드 LPGA 선수권에서 11언더파로 당당하게 우승을 차지한 것. LPGA 첫 승이 바로 4대 메이저 대회 우승이었다. 당연히 철수는 취소됐다.

이후 박세리는 한달 보름만에 2승째를 따냈다. US 여자오픈이었다.

제니 추아시리폰을 상대로 연장 접전을 펼친 박세리는 공이 연못 근처로 가는 위기 속에서 양말을 벗고 물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공을 처리한 뒤 우승을 차지했다. 양말을 벗자 드러난 뽀얀 발과 그와 대비되는 갈색의 다리는 국민들에게 강하게 각인됐다.

박찬호, 박세리에 이어 류현진도 희망을 던졌다. 30명에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하고 200명 이상의 실종자가 발생한 대참사에 비탄에 빠진 가족과 친구를 비롯해 온 나라가 침통에 빠진 상황에서 나온 승리였다.

그것도 2주 전에 자신에게 크나큰 아픔을 줬던 라이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상대로 한 것이었다. 지난 5일 경기에서 2이닝 8실점(6자책점)으로 무너졌던 류현진은 7이닝 무실점으로 멋지게 되갚아줬다. 류현진으로서도 2주 전 트라우마를 이겨내는 '힐링'의 경기였다.

류현진은 올시즌 가장 많은 112개의 공을 던졌다. 6회말까지 던진 뒤 자신의 임무를 마칠 것으로 예상됐지만 7회초 타석에 들어선 뒤 7회말 다시 씩씩하게 투구했다. LA 다저스가 이틀 연속 1점차 경기를 벌이느라 불펜 투수들이 많이 소진된 탓도 있지만 조금이라도 국민들에게 씩씩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류현진의 희망의 투구가 크나큰 슬픔에 빠진 가족들을 기쁘게 하기엔 무리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언제나 희망을 갖고 살아가자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꽃을 피울 수 있다는 용기를 주기에는 충분한 것이었다.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만 있다면 희망이라는 파랑새는 늘 우리 곁에 있을 것이라는 교훈을 류현진의 역투에서 얻었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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