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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2016] (17) 현대캐피탈 명가재건 그 이상을 꿈꾸는 최태웅, '업템포 2.0' 스피드배구 진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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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2016] (17) 현대캐피탈 명가재건 그 이상을 꿈꾸는 최태웅, '업템포 2.0' 스피드배구 진화는?
  • 이세영 기자
  • 승인 2016.05.30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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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에서 감독으로 부임 후 첫시즌 '정규리그 우승'…"업템포 2.0으로 진화된 스피드배구 펼치겠다"

[200자 Tip!] V리그 단일시즌 최다 18연승, 부임 첫 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최초 사령탑, 역대 최연소 정규리그 우승 감독. 이제 막 초보 티를 벗은 최태웅(40)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감독의 수식어는 연차에 비해 매우 화려하다. 정식 지도자 공부를 한 시간이 적었음에도 ‘봄 배구’를 하지 못했던 팀을 지난 시즌 챔피언결정전까지 끌어올렸다. ‘스피드 배구’를 추구하면서 지난 1년간 거둔 성과가 눈부시지만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지금보다 발전된 ‘업템포 2.0’을 갖고 새 시즌을 맞겠다고 선언했다.

[천안=스포츠Q(큐) 글 이세영·사진 최대성 기자] “비시즌 동안 거의 쉬지 못했어요. 트라이아웃 준비하랴, FA(자유계약) 챙기랴, 부상선수 관리하랴. 시즌 때보다 겨우 한 시간 더 자고 있어요.(웃음)”

‘배구 덕후’라는 별명만큼 비시즌에도 배구에 빠져 지내고 있었다. 최태웅 감독에겐 하루 24시간이 모자란 듯 보였다. 감독실 책상 위에 놓인 두툼한 노트와 손때 묻은 태블릿PC가 최 감독의 근황을 말해주고 있었다.

▲ 최태웅 감독이 천안 베이스캠프인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 감독실에서 '업템포 2.0' 화면이 뜬 태블릿PC를 들어보이고 있다.

현대캐피탈은 2014~2015시즌, V리그 출범 후 처음으로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7개 팀 중 5위에 머무는 굴욕을 맛봤다. 프로배구 명가의 자존심에 금이 가는 사건이었다.

변화가 필요했던 현대캐피탈은 구단의 상징과도 같았던 김호철 감독과 이별을 선언했고 그 자리에 최태웅 감독을 앉혔다. 파격적인 인사였다. 플레잉코치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현역 선수에게 지휘봉을 쥐어준 건 V리그에서 전례 없는 일이었다. 최 감독 역시 “며칠 동안 겁이 났다. 명문팀을 맡아 부담된 게 사실”이라고 돌아봤다.

바닥까지 떨어진 자존심을 회복시키는 게 우선 과제였다. 팀 분위기를 수습하고 체질을 개선하면서 성적까지 신경써야 하는 큰 짐을 안았지만 최태웅 감독은 ‘그 어려운 것’을 해냈다. 최 감독이 도입한 스피드 배구에 적응한 현대캐피탈 선수들이 즐기면서 배구를 했고 좋은 결과까지 이끌어냈다.

비록 챔피언결정전에서 OK저축은행에 패해 통합우승에는 실패했지만 직전 시즌보다 무려 29점이 많은 승점 81(28승 8패)을 획득, 7년만의 정규리그 우승으로 명가의 자존심을 회복했다. 단일시즌 최다인 18연승을 달리며 리그 새 역사를 쓰기도 했다.

최 감독은 “생각 외로 선수들이 정말 잘해줬다. 기대치보다 높은 경기력과 팀워크가 나와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당초 계획했던 것보다 잘했으니 100점 이상 주고 싶다”고 사령탑 데뷔 시즌을 돌아봤다.

◆ '외인 선발-FA 계약', 쉴 틈 없는 비시즌

지휘봉을 잡은 지 1년 만에 많은 것을 이뤘지만 최태웅 감독은 멈추지 않았다. 1년 농사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외국인 선수 선발과 FA가 코앞에 있었기 때문. 특히 트라이아웃 첫 시즌을 맞아 오레올 까메호의 빈자리를 메워야 하는 외국인 공격수를 고르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전체 162명 중 희망 초청선수 30명을 추리는 데 꼬박 열흘이 걸렸다. 최 감독은 “나를 포함해서 코칭스태프 7명이 하루 11시간씩 비디오를 봤다. 162명이 세계적인 선수들이라면 흥미를 갖고 봤을 텐데, 기대에 차는 자원들이 아니니 힘들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최 감독은 트라이아웃에서 선발한 캐나다 국가대표 레프트 툰 밴 랜크벨트(22·200㎝)에 만족감을 표현했다. 리시브와 기본기가 뛰어나고 블로킹 능력도 갖췄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현대캐피탈이 추구하는 스피드 배구에 녹아들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최초 162명을 놓고 분석할 때 눈에 들어왔던 선수예요. 매너가 좋고 훈련도 착실히 소화하고 있습니다. 이전 팀에서 교육을 잘 받았다는 인상을 줬어요. 자국 대표팀에도 속해 있는 만큼 세계무대 경험이 많은 선수예요. 이런 면이 어린 선수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FA 교섭은 한창 진행 중이다. 문성민과 여오현, 신영석은 잔류시켰지만 윤봉우와 임동규는 1차 교섭기간에 계약을 맺지 못했고 현재 구단과 재협상을 펼치고 있다.

최 감독은 “이번 FA 선수들이 경험이 많은 자원들이기에, 모두가 팀에 남는다면 다음 시즌을 준비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나와 1년 동안 경험했으니 더 좋은 팀워크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 첫 트라이아웃을 마친 최 감독은 "현대캐피탈의 스피드 배구에 적합한 외국인 선수를 뽑았다"고 말했다.

◆ 스피드배구의 진화, '업템포 2.0'의 정체는?

FA 협상이 끝나고 선수단이 모두 꾸려지면 본격적으로 다음 시즌에 대비한 전술 훈련에 들어갈 예정이다.

다가오는 시즌의 모토는 ‘업템포 2.0’이다. 지난 시즌 스피드 배구의 키워드로 내건 ‘업템포 1.0’에서 한 단계 발전된 형태다.

스피드 배구의 핵심은 코트 위에 있는 6명의 유기적인 움직임을 통해 공격적인 포지션을 점유하는 ‘토털 배구’다. 공격수 1~2명에 편중된 공격이 아니라 전 선수가 스파이크를 때리는 빠른 토털 패키지 배구가 핵심이다.

세터와 리베로를 뺀 전 선수가 로테이션에 관계없이 공격적인 포지션을 가져가면서 6명 전원이 공격과 수비에 적극 가담한다. 3명의 선수가 리시브를 맡고 이후 모든 선수들이 유기적인 움직임으로 코트 공간을 지배하는 플레이다.

최태웅 감독은 “업템포 2.0은 기존 1.0보다 정교하고 빠른 배구를 요구한다. 여기에 관한 내용을 소프트웨어로 만들어 태블릿PC에 저장해 놨다. 선수들의 관리와 분석을 통합적으로 할 수 있다. 일일이 설명하면 구단 기밀이 새어나가기 때문에 여기까지만 말하겠다”고 웃어보였다.

업템포 2.0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잠시 중단했던 수학 문제도 풀 참이다. 데이터를 다루는 데 도움이 될까 해서 지난 시즌부터 수학 문제집을 풀기 시작한 최 감독은 “중학교 1학년 과정의 수학을 하면서 ‘선수를 설득할 때 숫자가 설득력이 있구나’라는 걸 느낀다. 예를 들어 ‘센터 포지션 선수가 코트 왼쪽에서 블로킹 몇 개를 잡아내면 우리 팀 경기력이 올라간다’는 것 등을 데이터상으로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최태웅 감독은 지휘봉을 잡은 첫 시즌 V리그 최초 '단일시즌 18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사진=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제공]

◆ "림프암 투병, 긍정적인 마인드 갖는 데 도움 됐다"

지속적으로 강한 팀을 만들기 위해서는 감독이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팀을 운영하는지도 중요하다. 선장이 엉뚱한 방향으로 배를 몰면 선원들이 갈팡질팡하게 된다. 따라서 감독은 확실한 철학을 갖고 팀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코트에서 선수들을 다그칠 때도 있었다”고 밝힌 최 감독이지만 실제로 그가 경기 도중 선수들을 향해 큰소리를 낸 건 한 시즌을 통틀어 2~3번밖에 되지 않는다. 안 좋은 플레이를 해도 참을 인(忍)자 3개를 새기며 웃으려 애썼다.

이유가 있었다. 최 감독은 “사령탑이 코트에서 자기 기분을 맘대로 발산하면 감정 기복이 심하다는 것을 선수들에게 들키게 된다. 그러면 선수들은 감독 눈치를 본다. 경기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팀이 좋은 플레이를 펼쳐도 자제하려는 버릇이 들다보니, 경기 끝나고 숙소에 오면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다음날이 돼야 겨우 진정이 된다”며 웃었다. 배구로 쌓인 스트레스를 야식으로 푼다고 밝힌 최 감독은 “1년 사이에 19㎏이 쪘다. 선수 때는 75㎏이었는데, 지금은 94㎏”라고 고백했다.

김 감독은 언제부터 상황에 관계없이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썼을까. 바로 현대캐티탈 이적 후 림프암 판정을 받고 투병 생활을 이어갈 때인 2010년부터다. 병명이 밝혀졌을 땐 충격을 받았지만 이내 훌훌 털고 일어날 생각만 했단다.

“‘내가 암에 걸린 거 맞아?’ ‘이까짓 거 그냥 훌훌 털자’는 마음으로 투병했어요. ‘코트에 다시 서고 싶다. 아니, 다시 설 거다’라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품었지요. 이것이 지도하는 데 많은 도움이 돼요.”

최 감독은 선수들에게 배구를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길 원한다.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선수단의 고충을 듣고 이를 해결하려 애쓴다. “선수에서 바로 감독이 되니 선수들의 애로사항을 단숨에 알 수 있다”며 웃은 그는 “배구에서 감독의 비중은 50%라고 생각한다. 경기는 선수들이 하지만, 경기력이 올라오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건 내 몫”이라고 강조했다.

▲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고 림프암을 극복한 최태웅 감독은 이를 선수단 운영에도 접목시키고 있다. 선수들이 즐거운 마음을 갖고 코트에서 뛰놀게끔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다.

◆ '외유내강'의 마음가짐으로 배구하는 팀

“이름값이 화려한 선수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선수들이 자기 실력 외에 팬들과 잘 어울리는 팀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현대캐피탈을 오랫동안 강팀으로 만들고픈 최태웅 감독의 장기적인 비전이다. 팬들에게 사랑받는 구단이 되고, 팬 친화적인 구단 문화를 이어가고 싶단다. 여기에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 전력까지 구축한다면 금상첨화라는 게 최 감독의 생각이다.

그는 “밝고 활기찬 배구를 하지만, 내면에는 강한 승부욕이 자리하는 팀을 구축하고 싶다. 선수들이 ‘외유내강’의 마음가짐으로 운동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표현했다.

“지난 시즌 우리 선수들을 항상 사랑해주신 팬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팬 여러분들의 열정적인 응원에 힘입어 선수들이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올해도 그 보답을 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 최태웅 감독 프로필

△ 생년월일 = 1976년 4월 9일
△ 체격 = 185㎝ 94㎏
△ 출신학교 = 인하사대부고-한양대
△ 주요 경력
- 1999~2010년 삼성화재 블루팡스
- 2003년 아시아챌린지컵 국가대표
- 2007~2008년 월드리그 국가대표
- 2008년 제1회 AVC컵 국가대표
-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 2010~2015년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선수
- 2015년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감독
△ 수상 경력
- 2001년 V코리아 세미프로리그 세터상
- 2002년 슈퍼리그 세터상
- 2003년 프로배구 V투어 세터상
- 2006년, 2008년, 2009년 V리그 정규리그 세터상
- 2009년 V리그 챔피언결정전 MVP
- 2012년 V리그 특별수훈상
- 2013년 V리그 세트 1만개 기준기록상
- 2014년 V리그 10주년 역대 베스트7 세터 부문
- 2016년 V리그 정규리그 우승(감독 데뷔 시즌)

[취재후기] 지난 시즌 최태웅 감독과 관련해 화제가 된 것이 바로 ‘명언’이다. 어록이 생길 정도로 큰 관심을 모았는데, 가장 화제가 된 명언이 바로 “여기 있는 모든 관중들이 너희를 응원하고 있다. 그 힘을 받아 경기를 한번 뒤집어보자”는 말이었다. OK저축은행과 홈경기에서 3세트 도중 흐름을 뺏기자 선수들을 독려하는 차원에서 이 말을 했다. 마법처럼 역전승을 거둬 더 화제가 된 이 명언에 대해 최 감독은 “‘이 말을 꼭 해야지’라고 생각하고 말한 게 아니다. 말하고 나서 나도 깜짝 놀랐다”며 “그만큼 많은 팬들이 우리 팀을 사랑해주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레 나왔던 것 같다”고 웃었다. 현대캐피탈 명가 재건의 숨은 공신은 천안 팬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 최태웅 감독은 "경기 전에 명언을 준비하는 건 아니지만 클럽하우스의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비유적, 은유적인 표현을 한다. 그러면 선수들도 잘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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