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22:11 (금)
[논점Q] '푸른 바다의 전설' 전지현, '도깨비' 공유의 '마법'이 절실한 시대
상태바
[논점Q] '푸른 바다의 전설' 전지현, '도깨비' 공유의 '마법'이 절실한 시대
  • 김윤정 기자
  • 승인 2016.12.21 16: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판타지 드라마, 현실성 없는 얘기로 현실을 얘기하다

[스포츠Q(큐) 김윤정 기자] “급기야는 청문회장에서 ‘대통령과 최순실은 같은 급’이었으며 ‘최근으로 올수록 공동정부 같았다’는 기가 막힌 실토까지 들어야 했던 우리.”

손석희 앵커는 지난 12일 방송된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을 통해 최순실 씨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한 청문회에서 차은택 씨가 전했던 말을 언급했다. 

이는 믿기지 않는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 대목이었다. 현실감 없는 일들이 나라를 뒤덮고 있는 지금, 안방극장에서는 ‘판타지’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유독 주목을 받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SBS ‘푸른 바다의 전설’과 tvN ‘도깨비’ 등이 그것이다. 

SBS 수목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 전지현 [사진 = SBS 수목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 화면 캡처]

올해만 해도 판타지 드라마로는 현재 방영 중인 ‘푸른 바다의 전설’과 ‘도깨비’를 비롯해, tvN ‘싸우자 귀신아’, ‘또 오해영’, SBS ‘달의 연인 보보경심 려’, jtbc ‘마녀보감’, MBC ‘W(더블유)’ 웹드라마 ‘천년째 연애중’, ‘널 만질거야’ 등이 시선을 잡았다.  

그렇다면 ‘판타지’ 드라마가 꾸준히 등장하는 이유는 뭘까?

먼저 ‘판타지(fantasy)’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자. 

영어 뜻으로 ‘(기분 좋은) 공상’이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공상’이란 ‘현실적이지 못하거나 실현될 가망이 없는 것을 막연히 그리어 봄. 또는 그런 생각’이다.  

다시 말해 ‘판타지’란 현실적이지 못하거나 실현될 가망이 없는 것을 기분 좋게 그려보는 일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현실적이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혼란스런 국정 상황에서, ‘푸른 바다의 전설’과 ‘도깨비’는 판타지로 현실을 잊게 하며 시청자의 참담한 마음을 위로해 주는 기능을 하면서 더욱 큰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불황일수록 ‘도피성 문학’이라 불리는 로맨스와 판타지 장르 등의 소설 매출이 늘어난다고 한다. 판타지가 주는 순수하고 환상적인 분위기가 현실적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까닭이다.  또 늘 비슷비슷한 드라마 소재들과, 여기에 싫증을 느껴 새롭고 신선한 것들을 찾는 시청자들의 욕구가 반영돼 만들어진 결과라는 지적도 이런 이유에서다.  

tvN 금토드라마 ‘도깨비’ 공유, 김고은 [사진 = tvN 금토드라마 ‘도깨비’ 화면 캡처]

드라마 속 판타지 요소를 조금 더 들춰 보자. 

‘푸른 바다의 전설’에서 전지현은 ‘인어’라는 상상 속의 바다 동물이다. 흔히 진주를 ‘인어의 눈물’이라고 표현하기 때문일까, 극 중 인어인 전지현은 눈물을 흘려 진주를 만들어내는 기발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키스한 상대 남자는 기억을 잊는다.  

‘도깨비’ 속에서는 ‘전설’을 ‘현실화’한 대목이 있다. 저승사자 혹은 귀신과 눈을 마주치면 죽는다는 전설적인 얘기를 극 속으로 끌고 왔는데 인간인 김고은이 저승사자 역의 이동욱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그중 하나다.  

익명을 요구한 한 드라마 관계자는 “판타지에서의 캐릭터는 현실 속 인물이 아닌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는 환상의 인물인데,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들은 위로를 받는 것 같다. 또 상상 속의 인물은, 존재 하든 안하든 자신에게 좋을 대로 생각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도깨비’의 공유가 환상의 캐릭터지만, 또 시청자들은 이런 남자와의 연애를 꿈꾸며 나름 현실과의 연관성을 찾는다”고 분석했다. 

tvN 종영드라마 '싸우자 귀신아' 옥택연, 김소현 [사진 = tvN 종영드라마 '싸우자 귀신아' 화면 캡처]

드라마 속 캐릭터들은 대부분 현실과 거리감이 있다. 특히 판타지라면 그 스토리까지도 더욱 현실과 멀어진다. 평범한 여성이 ‘킹카’인 남성으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는 설정부터 귀신과 사람의 로맨스, 그리고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능력 등은 현실 속에서는 가능성이 낮거나 섬뜩한 얘기지만, 드라마에서는 마냥 로맨틱하고 멋지게 그려진다. 

하지만 이런 현실감 없는 얘기들을 통해 시청자들은 대리만족과 즐거움을 느낀다는 게 판타지 장르가 사랑받는 이유다. 판타지물이 ‘어른들만의 동화’로 통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시청자들은 현실성이 없는 작품들을 통해 내심 ‘마법’을 기대한다. 

이는 어린이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색칠공부’가 어른들을 위한 아트 테라피 혹은 스트레스 해소용의 목적을 갖고 컬러링북으로 출판돼 인기를 끈 현상과도 비슷하다. 

컬러링북을 구입해 직접 채색을 해본 경험이 있고, ‘도깨비’ 시청자이기도 한 김수지 씨는 “컬러링북을 처음 구입하게 된 이유가, 당시 머리가 복잡한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색칠을 하다보면 그냥 좀 나아지더라. ‘도깨비’를 보고 있어도 진짜 얘기가 아닌 걸 알면서도 어느새 드라마에 빠져 있는 나를 발견한다. ‘킬링 타임’ 용도 되지만, 확실히 현대인들에겐 ‘힐링’의 역할을 하는 것 같다. 판타지의 수요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나 컬러링북이 팔리는 것과 비슷한 맥락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MBC 종영드라마 'W(더블유)' 이종석, 한효주 [사진 = MBC 종영드라마 'W(더블유)' 화면 캡처]

이처럼 판타지 장르는 환상적인 공간을 빌려 어른들이 잊고 지냈던 순수한 감성과 영감을 일깨워주고 현실의 고단함과 피로감을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

판타지 드라마를 보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들은 현실도피를 하고 스트레스 해소와 욕구 충족을 동시에 해결하며 ‘힐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역으로 현실과 철저히 유리된 판타지 작품들이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는 시청자들이 살아가는 현실의 고달픔과 무게감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를 쓴 작가 조앤 K. 롤링(Joanne Kathleen Rowling)은 지난 2008년 있었던 하버드 대학교 연설 중 “세상을 바꾸는데 마법은 필요하지 않다. 우리 내면에 이미 그 힘은 존재한다. 우리에겐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장기 불황과 청년 취업난 등 악재에 발목이 잡혀 있는 대한민국은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로 ‘순실의 시대’까지 겹쳐 국민 스트레스 지수가 한껏 치솟고 있다. 현실도피라는 일각의 비판 속에서 판타지에 열광하는 것은 ‘마법’으로라도 기막힌 현실을 해결하고픈 열망은 아닐는지….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관련기사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