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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U-20 월드컵과 러시아 월드컵, 팬과 훌리건의 경계에서 얻어야 할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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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U-20 월드컵과 러시아 월드컵, 팬과 훌리건의 경계에서 얻어야 할 것은?
  • 이희찬 기자
  • 승인 2017.06.05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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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 향한 배려와 공감, '축제'와 '로봇'의 차이 만든다

[스포츠Q(큐) 이희찬 기자] #이야기 1. 2017 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조직위원회는 한국 U-20 대표팀 경기가 있을 때마다 서울역 광장과 광화문 광장에서 거리 응원전을 개최했다. 다양한 문화 행사와 공연, 축구 관련 체험 기회까지 제공해 ‘축제의 장’을 만들었다.

#이야기 2. 2018년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개최를 앞둔 러시아의 과학자들이 로봇을 발명했다. 로봇의 이름은 ‘알란팀(AlanTim)'. 알란팀은 경기장을 찾은 팬들이 러시아의 극성 축구팬들에게 위협을 받을 경우를 감지, 경찰에 연락을 취해 폭력 사태를 방지하는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똑같은 축구라는 컨텐츠로 진행되는 대회, ‘축제’와 ‘로봇’의 차이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독일의 철학자 노르베르트 볼츠는 저서 ‘축구의 미학’에서 “축구는 아주 사소한 차이로 승패를 가름으로써 팬들이 자기애를 느끼게 하는 데 적합한 스포츠”라고 정의한다.

볼츠가 말한 자기애는 때로 같은 팀을 응원하는 집단과 결합해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개최된 유로 2016. 러시아와 잉글랜드가 1-1로 비긴 것에 실망한 러시아의 극성팬들은 잉글랜드 축구팬들을 습격했다. 이 과정에서 100명이 넘는 잉글랜드 팬이 부상을 입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러시아 과학자들이 알란팀을 개발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러시아 훌리건들 뭇지 않게 극성 응원으로 악명 높은 잉글랜드 챔피언십 밀월의 훌리건들이 부르는 응원가 중 한 구절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대변한다.

"누구도 우리를 좋아하지 않아, 하지만 그건 상관없어.(No one likes us, but we don't care.)"

말 그대로다. 같은 팀을 응원하는 ‘우리’가 느끼는 소속감과 자기애가 그들을 제외한 모든 이들의 감정보다 중요하다는 것. 그들의 감정 표현과 폭력이 정당화되는 시작점이다.

훌리건의 폭력 행위를 악용하려는 경우도 있다. 글로벌 스포츠 매체 ESPN FC는 지난 3월 러시아 하원의원 이고르 레베데프의 발언을 전했다. 레베데프는 “러시아는 새로운 스포츠 문화의 선구자가 될 수 있다”며 “비무장 훌리건들을 관중석에 자유롭게 앉혀 싸우게 하는 것이 그 방법”이라고 밝혔다.

변호사 정기동 씨는 저서 ‘12가지 코드로 읽는 한국축구’에서 “축구는 민족적 열정의 표출 수단이 될 수도 있고 애국주의와 극우적 정치운동의 맹목적 도구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러시아 훌리건들의 과격한 행동과 레베데프의 거친 발언이 그 예다.

하지만 정기동 씨는 축구의 다른 측면에 주목한다. 그는 “하지만 축구는 삶의 동력이 되고 따뜻하고 튼튼한 연대의 매개가 되며, 나아가 새로운 삶의 방식의 모티브가 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FIFA U-20 월드컵을 준비했던 조직위원회가 집중한 대목이기도 하다.

▲ 한국 축구대표팀 공식 서포터즈 붉은악마는 한국과 잉글랜드의 2017 U-20 월드컵 A조 리그 3차전 당시 잉글랜드 선수들과 국민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보냈다. [사진=U-20 월드컵 조직위원회 페이스북 캡처]

한국 축구대표팀의 공식 서포터즈 그룹 ‘붉은악마’는 경기장 안에서 연대의 가치를 몸소 실천했다. 지난 26일 한국과 잉글랜드의 2017 U-20 월드컵 A조 리그 3차전이 열린 수원월드컵경기장에는 ‘맨체스터를 위해 기도를(Pray for Manchester)'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내걸렸다. 23일 잉글랜드 맨체스터 아레나 공연장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 사고의 희생자들을 기리고 잉글랜드 국민들을 위로하기 위한 메시지였다.

폴 심슨 잉글랜드 감독이 경기가 끝난 후 기자회견에서 “맨체스터를 위한 현수막이 인상적이었다”며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밝혔을 만큼 붉은악마의 응원은 깊은 울림을 줬다. 포르투갈전이 열린 천안종합운동장을 찾은 붉은악마 소속 A씨는 “잉글랜드에서 발생한 사고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싶었던 것이 붉은악마의 뜻”이라고 밝혔다.

▲ 2017 FIFA U-20 월드컵 조직위원회는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대회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K리그 클래식 FC 서울의 응원 소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는 B씨는 극성팬들의 폭력 행위에 대해 “경기장을 찾은 일부 극성팬들의 폭력이 모든 서포터들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폭력이 열정으로 포장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라고 밝혔다. B씨는 “경기장을 찾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B씨의 말처럼 U-20 월드컵 조직위원회는 축구를 통해 팬들의 열정을 한 곳으로 모으고자 노력했다. 가수를 초대해 공연을 열었고 함께 응원전을 펼쳤다. 축구에 관심이 없던 이들도 함께 ‘팬’이 되어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기회였다.

5월 31일 현재 2017 FIFA U-20 월드컵의 평균 관중 수는 8016명. 중간 집계 결과이긴 하나 이는 2013 터키 대회(5558명)와 2015 뉴질랜드 대회(7451명)보다 높은 수치다. 승부에 열광하고 아픔에 공감하는 팬의 자세와 함께한다면 수많은 로봇들 없이도 멋진 대회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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