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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장충단공원(하) 류관순 동상과 청계천 수표교가 이사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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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장충단공원(하) 류관순 동상과 청계천 수표교가 이사한 이유
  • 유필립 기자
  • 승인 2014.11.11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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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역사는 책에서나 보고 일부러 작정하지 않으면 만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잠시 주위를 둘러보면 역사는 항상 우리와 마주하며 숨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평소 대중교통 수단으로 오가던 길, 또는 몇 백미터만 더 걸으면 닿을 수 있는 역사의 현장을 기회가 되는 대로 휴대폰 앵글에 담아 보고자 합니다. 굳이 전문가들에게 역사적 사실을 묻지 않아도 안내판이나 설명서만으로 우리는 꽤 많은 역사적 사실과 지혜, 교훈과 접할 수 있을 듯합니다.

[스포츠Q(큐) 유필립 기자] 남산에는 우리 역사를 빛낸 위인의 동상이 유난히 많다. 위인들 중에서도 항일투쟁 운동을 주도했던 분들이 많다. '남산공원' 소개 사이트에 따르면 위인 동상은 모두 10개에 이른다. '동상의 요람'이라고 할 만하다.

장충단공원 일대의 장충자락에는 유정 사명대사상, 일성 이준 열사상, 류관순 동상, 김용환 지사상 등 네 분이 서 있고, 회현자락에는 김유신 장군상, 퇴계 이황 선생상, 다산 정약용 선생상, 안중근 의사상, 백범 김구 선생상, 성재 이시영 선생상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 류관순 열사 동상은 인적이 드문 남산 2호 터널 입구 인근에 위치해 있다.

왜 역사적인 인물들의 동상들이 남산에 모여 있는 걸까?

남산에 동상이 본격적으로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이다.

남산 자락은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식 신사인 조선신궁과 안중근 의사가 처단한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는 박문사가 있던 곳이다. 1968년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가 발족됐고 당시 정권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동상을 추진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일제 강점기의 아픈 추억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항일 독립운동과 관련한 위인들이 중심을 이뤘다.

이처럼 남산자락에는 오늘도 우리 역사와 함께한 위인들을 대거 만날 수 있지만 시대의 흐름과 함께 존재의 가치도 예전에 미치지 못한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곳에 자리한 동상이 적지 않다.

 

남산 2호 터널입구 호젓한 곳에 자리한 류관순 동상

▲ 일제의 총검과 온갖 고문 앞에서도 끝까지 의연했던 류관순 열사는 당신이 목숨바쳐 지킨 이 나라의 후손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실까?

장충단공원 인근에 위치한 류관순 열사 동상은 그 한 예다.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에서 장충단로를 따라 언덕길을 잠시 걷다보면 남산 2호 터널 입구로 향하는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곧바로 길을 건너면 류관순 동상이 있다. 안내판이 있지만 호젓한 곳에 자리해 숲이 우거질 때면 무심코 지나치기 쉽다.

류관순은 1902년 충남 천안시 병천면에서 태어나 1919년 4월 1일 병천면 아우내 장터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이화학당 고등과 1학년 때 3·1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귀향하여 인근 교회와 학교 지도자들과 만세운동을 협의하고 4월1일 아우내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 류관순 동상 기단 아랫 부분에는 3·1 독립만세운동 당시의 모습이 생생하게 조각되어 있다.

1919년 4월1일 아우내 장터에는 아침 일찍부터 천안 일대 뿐만 아니라 청주 진천동에서 3000여 명의 시위 군중이 모여 들었다. 이 때 류관순은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시위 군중들에게 나누어 주고 시위 대열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행진을 주도하였다.

이에 일본 헌병은 총검을 휘두르고 무차별 사격을 감행하여 류관순의 부모 등 19명이 현장에서 순국하고 30여 명이 부상당하였다.

일제는 류관순을 이 독립만세운동의 주동자로 체포하여 서대문형무소에 감금하였으나 옥중에서도 계속 독립 만세를 외치다가 모진 고문으로 결국 1920년 10월 18세의 꽃다운 나이에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 류관순 동상에 있는 공사개요. 애국선열조상건립위원회와 서울신문사가  1970년 10월 12일 세웠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류관순 동상은 원래 1970년 남대문 앞 녹지대에 건립됐지만 지하철 공사로 인해 건립 1년 만인 1971년 이곳으로 이전됐다.

▲ 해가 뉘엿거릴 무렵의 남산 2호 터미널 입구다. 왼편에 류관순 동상이 있다.

 

▲ 장충단로 옆에 있는 내리막 산책길이다. 왼편에 장충단공원이 있다.

 

청계천에서 장충단공원으로 이사온 수표교 

▲ 청계천에서 옮겨진 수표교다. 장충단로 쪽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다리 건너편은 장충단공원의 광장이다.

장충단공원에는 고풍스러운 돌다리가 있다. 장충단공원 광장과 장충단로를 잇는 수표교(水標橋)다. 그 밑으로는 생태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이 다리는 원래 청계천에 있었다. 청계천을 가로질러 쌓은 돌다리로, 물의 수위를 측량하던 관측기구인 '수표'를 세우면서 수표교라 불렸다고 한다.

▲ 수표교 밑에는 깔끔하게 단장된 아담한 생태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한양 도심을 흐르는 개천(開川, 지금의 청계천)의 다리는 조선 초에 토교(土橋)나 목교(木橋)로 지었다. 하지만 태종 연간부터 석교로 교체했는데, 수표교도 태종~세종 재위 기간에 돌로 개조했다.

수표교는 1958년 청계천 복개공사를 시작하면서 철거됐으며, 1965년에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 다리 길이는 27.5m, 폭 7.5m, 높이 4m이며, 재료는 모두 화강석이다.

▲ 장충단공원과 장충단로 사이에는 오솔길이 꾸며진 정원이 있다.

교각 하부는 물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마름모꼴로 만들어 졌다. 1441년(세종 23)에 다리 서쪽에 나무로 만든 측우기를 설치하였다가 성종 때 돌로 교체했다.

1760년(영조 36)에는 교각에 경진지평(庚辰地坪)이란 글자를 새겨 네 단계로 물높이를 측정함으로써, 다리 자체가 수량을 측정하는 수중주석표(水中柱石標)로 발전하였다. 수표교와 함께 있던 수표(보물 제838호)는 장충단까지 같이 왔다가 세종대왕기념관으로 옮겨졌다.

 

 

▲ 수표교 교각 하부는 물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마름모꼴로 되어 있다. 육중함이 느껴진다.

장충단공원에 운치를 더하는 생태 연못

장충단공원과 장충단로 사이에는 생태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수표교에 수직으로 꾸며진 생태공원은 상류에 해당하는 맨 윗부분에 미니 폭포가 조성되어 있고, 물가에 군데군데 놓인 조약돌과 목조 보도가 운치를 더해준다.  여기에 아담한 산책로가 시민을 휴식터로 안내한다.

▲ 생태연못 상부에 위치한 미니 폭포 '벽천'.

 

▲ 수표교에서 내려다본 생태연못 상부 모습.

 

 

 

 

 

▲ 하부에 조성된 생태 연못.

◆  한옥의 매력과 차, 그리고 대화가 있는 다담에뜰

장충단공원을 가로지르면 끝부분에 전통의 풍취를 느낄 수 있는 한옥찻집 '다담에뜰'이 나온다. 우리 한옥의 정취를 느끼며 차와 음료, 한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뜰에는 세월을 느끼게 하는 분재들이 있고 마당에는 민속촌에서나 볼 듯한 추억의 농사 용품들이 추억의 여행을 떠나게 한다.

▲ 한옥 찻집인 '다담에뜰'의 뜰. 다양한 분재가 전시되어 있다.

 

 

 

 

 

 

 

 

 

늦가을 장충단 공원의 단풍에 물든 서정

요즘 장충단공원은 늦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샛노랑 은행 잎과 다홍의 느티나무 잎이 서정적인 그림을 그리다 못해 낙엽이 되어 나뒹군다.

▲ 장충정의 모습.

 

▲ 수표교에서 바라본 장충단공원과 동국대 캠퍼스. 온통 단풍에 물들어 있다.

 

▲ 장충단공원 입구에 있는 아름드리 은행나무. 샛노랑 잎이 물감을 색칠한 듯하다.

장충단공원 주변의 볼만한 곳들

장충단공원 주위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건물과 시설들이 여럿 있다. 남산 쪽에는 동국대 캠퍼스가 있고 왼편으로는 신라호텔과 영빈관, 장충체육관이 보인다. 동대입구역 건너편에는 장충교회도 있다. 장충체육관은 리모델이 한장이다.

장충리틀야구장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장충단공원을 관통해서 걸으면 동국대 정문 부근에 위치해 있다. 한국리틀야구연맹의 주경기장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올해 한국리틀야구의 월드시리즈 제패를 잉태한 곳이기도 하다.

▲ 장충리틀야구장. 10일에는 한국리틀야구연맹이 올해를 결산하는 올스타전이 열렸다.

 

▲ 장충리틀야구장은 야간에도 경기할 수 있도록 조명시설이 갖춰져 있다.

 

 

 

▲ 장충리틀구장 옆에 있는 고목 느티나무. 이곳은 남산의 여러 산책로 입구 중 하나다.

 

▲ 장충단공원에서 바라본 장충체육관 리모델 현장. 지붕과 타워 크레인이 보인다.

 

▲ 가까이에서 바라본 장충체육관 리모델링 돔 모습. 2012~2013 V리그 종료 이후 내부 리모델링을 거쳐 2013년 재개관할 예정이었지만 연기되었다. 2015년에 재개관할 예정이다.

 

▲ 신라호텔

 

▲ 장충체육관 맞은편에 있는 장충교회

◆ 장충단공원의 고즈넉한 야경

 장충단공원의 야경은 또다른 매력을 자아냈다. 동국대 교정 위로 저만치에는 남산 타워가 서울을 내려다 보고 있고, 공원의 가로등은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장충단로 건너편에 위치한 신라호텔 영빈관은  야간에 더 뚜렷하게 보였다.

▲ 동국대 교정 뒤편으로 남산 타워가 보인다.

 

▲ 장충단공원의 중앙 부분.

 

▲ 야간 조명과 어우러진 다담에뜰.

 

▲ 생태연못 부근의 정원 조명.

 

▲ 신라호텔 영빈관 입구.

 <끝>

 [유필립의 Walking History] 장충단공원(상) 쉼터에서 이준 열사, 사명대사를 만나다 도 함께 보세요^^

 

philip@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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