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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칼럼] '좋은 야구감독'의 조건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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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칼럼] '좋은 야구감독'의 조건은 무엇인가
  • 박용진 편집위원
  • 승인 2016.07.06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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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진 감독의 수상한 야구]

[스포츠Q(큐) 박용진 편집위원] 어떤 감독이 좋은 감독인가.

우리는 일반적으로 성적을 잘 내는 감독을 좋은 감독이라고 말하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

메이저리그(MLB)와 일본의 예를 보더라도 나타난다. 1960년대 일본 요미우리를 맡은 가와카미 데쓰하루 감독은 9년 연속 일본시리즈 우승을 이끌었지만 훌륭한 감독이라 일컫지 않는다.

당시에는 감독의 역량보다 선수들의 기량이 더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선수로 나가시마 시게오, 왕정치, 모리 마사아키, 가네다 마사이치 등을 들 수 있다. 가와카미 감독은 선수를 지나치게 감독 통제 하에 두기로 유명한 지도자였다. 독재자 스타일의 지도자로 불리며 명감독으로 평가하는 이가 적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해태 타이거즈 사령탑 시절 9회 우승, 삼성 라이온즈 감독으로서 한 차례 한국시리즈 정상에 오른 김응용 감독이나 현대 유니콘스를 4번 우승시킨 김재박 감독에 대한 평가는 의외로 박하다. 선수가 좋아서 우승했다고 보는 견해도 적지 않다.

명감독이라는 말을 듣기 위해서는 어떤 면모를 갖춰야 할까.

한국 프로야구보다 역사가 긴 일본의 예를 들어보자. 일본의 3대 명감독으로 미하라 오사무, 미즈하라 시게루, 쓰루오카 가즈토를 들 수 있다. 이 세 감독은 성적도 잘 냈지만 훌륭한 인품을 갖춘 감독으로 정평이 나 있다. 선수들의 평도 좋다. 준수한 성적과 더불어 훌륭한 인품까지 갖췄을 때 명감독이라 불릴 자격이 있다.

MLB에서도 우승을 많이 했다고 명감독이라는 말을 듣지 않는다. 미국에선 바비 콕스 전 애틀랜타 감독을 훌륭한 지도자로 꼽는다. 1978~1981년, 1990~2010년까지 애틀랜타에 몸담은 콕스 감독은 총 4508경기에서 2504승 2001패를 기록했다. 한 차례 월드시리즈 정상에 올랐고 내셔널리그(NL) 5회 우승을 포함한 14년 연속 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이런 공로로 콕스 감독은 2014년 만장일치로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콕스 외에도 조 토리 전 양키스 감독은 소속팀의 월드시리즈 4회 우승, 토니 라 루사 전 세인트루이스 감독은 월드시리즈 3회 우승을 일궜다. 이들 역시 성적과 더불어 훌륭한 인품을 갖춘 감독으로 평가받고 있다.

‘야구란 무엇인가’의 저자 레너드 코페드는 감독의 임무에 대해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있다.

“감독이라는 지위에 편승해서 선수들을 함부로 휘몰아쳐서는 안 된다. 프로야구 선수는 성인들이 자기 인생을 걸고 하는 엄숙한 직업이다. 게다가 야구장에서 펼쳐지는 플레이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채찍질한다고 해서 더 잘될 수 있는 게 아니다. 미식축구나 아이스하키처럼 몸을 부딪치는 종목은 약간의 흥분상태가 더 좋은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야구는 아주 섬세한 신경과 반사동작을 요구하는 예민한 경기이기 때문에 흥분하면 오히려 해로울 뿐이다. 감독이 선수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앞장서서 이끄는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으름장을 놓는다든지 선수의 마음을 사로잡겠답시고 사탕발림을 하는 것은 통하지 않는다.”

이런 면을 볼 때 감독은 그리 간단한 직업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기술 이전에 선수들을 컨트롤하는 정신적인 문제다.

정신을 다루는 데 실패한다면 성적도 나지 않을 뿐더러 감독으로서 수명이 짧아진다. 감독은 마음을 다스리는 직업으로, 선수들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하며 동기유발을 높이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이론이 빈약한 경험에 의존한다면 멀리 걸어갈 수 없다.

감독은 팀을 패배하게 할 수 있어도 승리하게 하기는 매우 어렵다. 2016시즌 프로야구 정규시즌이 절반가량 지났다. 개막에 앞서 전문가들이 판도를 점쳤지만 그 예상들이 많이 빗나가고 있다. 왜 예상이 항상 빗나가는 것일까. 한마디로 답하자면 기술적인 면이 아닌 정신적인 면이 야구 경기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정신의 세계를 측정한다는 것은 태평양 바다 속을 들여다보는 것만큼 어렵다.

야구를 흔히 ‘정신의 경기(Mental game)’라고 한다. 정신이 경기의 승패를 지배하는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감독의 역할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려 한다. 이렇게 되면 감독은 신이 돼야 한다.

감독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일일이 공이 가는 길을 가르쳐 줄 수 없는 노릇이다. 투수에게 어떤 공을 던지라고 말해 줄 수 있어도 공이 그 자리로 가도록 할 수는 없으며, 타자에게 언제 스윙을 하라고 알려줄 수 있어도 직접 공을 때릴 수는 없다. 따라서 지금은 선수 스스로 야구를 하는 시대다. 감독이 일일이 개입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케케묵은 훈련으로 선수의 기량을 끌어올리려는 현대야구와 동떨어진 야구를 하며 성적은 바닥을 헤매고 있는 감독도 있다. 지나친 연습과 코칭은 슬럼프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과한 것은 부족한 것만 못하다’는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

한국 프로야구도 점점 감독의 역할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야구가 발전할수록 선수들 스스로 경기를 풀어가고 있다. 이것을 타율적으로 감독이 풀어가려 한다면 오히려 부작용이 생겨 경기력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순위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최하위 팀을 분석해 보면 지나치게 감독의 통제 하에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여러 면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는 게 사실이다.

지나친 간섭으로 위축된 선수들은 동기부여가 이뤄지지 않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감독 혼자 모든 것을 풀어갈 수 없다. 때문에 파트별로 전문 코치를 두고 팀을 운영한다. 초창기에는 감독의 영역이 컸지만 오늘날 프로야구는 날이 갈수록 분업화가 이뤄지고 있다. 이것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요구사항이다.

현대야구에서는 독재자가 아닌 선수 스스로 야구를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열어주는 지도자가 좋은 감독이라는 말을 듣는다. 경기는 선수가 하는 것으로, 감독은 선수가 경기를 잘 풀어갈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다. 이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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