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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본색] (21) '디어 마이 프렌즈' 염혜란, 진실된 연기의 힘 (인터뷰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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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본색] (21) '디어 마이 프렌즈' 염혜란, 진실된 연기의 힘 (인터뷰Q)
  • 오소영 기자
  • 승인 2016.07.12 1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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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자 Tip!] 어머니를 매몰차게 내쫓은 순영(염혜란 분)은 그제야 머리칼로 덮었던 얼굴을 드러냈다. 차마 부모에게 보일 수 없었던 얼굴엔 남편의 폭력으로 인한 짙푸른 멍이 들어 있었다.

2일 종영한 tvN 금토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극본 노희경, 연출 홍종찬)는 노년들의 삶을 통해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그려냈다. '디마프'는 어떤 인물도 허투루 등장하지 않은, 인물 한 명 한 명이 살아 있는 작품이었다.

문정아(나문희 분)의 첫째딸 순영의 에피소드는 가정폭력에 대해 다뤘다. 순영 역을 맡은 배우 염혜란(41)은 나문희와 모녀로 호흡을 맞추며 찌르르한 감동을 남겼다.

[스포츠Q 글 오소영·사진 이상민 기자] TV 시청자에겐 다소 낯선 얼굴일지 모르지만, 염혜란은 연극계에선 유명한 배우다. 그동안 연극무대에 주력했다면, 최근에는 영화('조선마술사' '해무' '밀양' '내 아내의 모든것' 등)와 드라마로 활동 영역을 넓히기 시작했다. 드라마의 경우 '디어 마이 프렌즈'가 데뷔작이다. 베테랑임에도, 염혜란은 "브라운관과 스크린에서는 완전한 신인이다"는 겸손한 배우다.

▲ 최근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 순영 역으로 출연한 배우 염혜란을 대학로에서 만났다.

◆ 공들여 찍은 '디마프', 용기있는 순영과 여성들의 작품

'디마프'는 많은 시청자들에게 웰메이드 작품이라고 평가받는다. 극본과 연출의 완성도, 배우들의 연기 등 빠지는 것 없이 모든 요소가 들어맞았다. 염혜란은 '디마프'를 데뷔작으로 택하게 된 것이 행운이라고 말한다.

"아주 짧은 장면을 찍을 때에도 감독님과 대화가 오갔어요. 예를 들어 순영이 짐을 챙겨 나서는 장면을 찍을 때도, 무엇부터 짐을 챙기면 좋을지, 어떤 움직임이 좋을지 의논했죠. 항상 '이렇게 해라'는 지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였어요. 모든 장면에 섬세하게 신경을 써 주셔서, 촬영이 스피디하면서도 '공들여 찍는다'는 느낌을 받았죠. 전 드라마 촬영장을 본 적이 별로 없으니 다들 이렇게 하는 줄 알았는데, 주변 얘기를 들어보니 '디마프'같은 촬영장이 없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순영은 정아 부부가 입양한 딸로, 대학교수와 결혼해 잘 사는 줄만 알았지만 사실은 남편에게 폭행당하고 있었다. 순영은 이 사실을 숨기고 살았지만, 결국 이혼하고 원했던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드디어 자신의 삶 자체를 살아가는 사람이 됐다. 이런 순영의 모습은 염혜란이 캐스팅된 연극인 '잘자요, 엄마'에서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염혜란의 캐스팅은 우연하게 이뤄졌다. 노희경 작가가 나문희 출연 연극 '잘자요 엄마'를 보러갔다가, 극중 딸로 등장하는 염혜란을 보고 캐스팅하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은 '잘자요 엄마'에 이어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도 또다시 모녀로 출연하게 됐다.

"나문희 선생님과 작가님이 워낙 친하시다 보니 공연을 보러 오셨어요. '디마프' 기획단계였는데, 출연하면 좋겠단 말씀을 하셨죠. 정말 기뻤지만 마음은 비우고 있었는데, 몇 달 뒤에 캐스팅 연락이 왔어요. 선생님과 연극 연습, 공연을 함께한 덕분에 드라마에 큰 도움이 됐어요. 드라마 촬영 때 처음 뵈었다면 너무 존경하는 선배님이다 보니 제가 그 앞에서 너무 얼었을 것 같아요."

'잘자요 엄마'는 "엄마, 나 오늘 자살할거야"라는 딸 제씨의 대사로 시작하는, 염혜란의 표현을 빌리면 "지독한" 작품이다. 어떤 면에서는 '디마프'의 순영과도 닮았다.

"'잘자요 엄마'의 제씨는 병으로 이혼하고 아들과도 헤어지는 인물이에요. 이 삶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했을 때 답은 자살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죠. 자살은 결코 좋은 결정은 아니지만 제씨 스스로 내리는 첫 결정이에요. 그 점이 '디마프'의 순영같기도 했어요. 순영 또한 스스로 힘있는 결정을 한 사람이죠."

▲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의 김순영(염혜란 분), 문정아(나문희 분) 모녀는 애틋한 가족의 정을 전했다. [사진= '디어 마이 프렌즈' 방송화면 캡처]

또한 염혜란은 '디마프'는 여배우로서도 행복했던 작품이었다고 털어놨다. '디마프'는 순영 모녀 외에도 박완(고현정 분), 조희자(김혜자 분), 장난희(고두심 분), 오충남(윤여정 분), 이영원(박원숙 분) 등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의 이야기다.

"여배우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소녀, 어머니, 창녀밖엔 없다는 말이 있어요. 그만큼 여성이 할 수 있는 배역이 없다는 뜻이죠. 누구의 어머니, 애인은 있어도 그 사람 자체를 연기하는 일이 잘 없어요. 하지만 '디어 마이 프렌즈'의 경우 여성들의 온전히 독립된 삶을 그려서 너무 좋았어요."

◆ 학과 동아리에서 연기 시작, 극단 연우무대서 배운 소중한 자산 

제1회 아름다운 연극인상, 제42회 동아연극상 신인상, 2009년 히서연극상 기대되는 연극인상, 2010년 서울연극제 연기상…. 염혜란의 빼곡한 수상 기록은 빼어난 연기력뿐 아니라 그동안 열심히 뛰어온 흔적을 말해 준다.

염혜란은 '엄마들의 수다' '이(爾)'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 '차력사와 아코디언' 등 다수 작품의 무대에 올랐다. 장기간 연습이 필요한 연극을 1년에 수작품씩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일 욕심이 많아 무리를 해서라도 다 해내고야 말았기 때문이었다.

염혜란은 대학 학과 연극 동아리에서 연기를 시작했다. 처음엔 동료들과 지내는 관계가 친하고 좋아 재미를 붙였지만, 자신도 몰랐던 끼가 나오기 시작했다.

"대학교 졸업 후 6개월 정도 직장 생활을 했는데 그때 제가 회사를 다닐 수 없는 사람이란 걸 알았어요. 외근 나갔던 길에 어느새 오디션 서류를 내고 있었죠."

▲ '디어 마이 프렌즈' 염혜란

그렇게 신입단원으로 들어간 곳이 극단 연우무대다. 연우무대는 문성근, 안석환, 송강호, 김윤석, 강신일, 이대연 등 유명 배우들이 거쳐간 곳이다. 유명한 선배들을 따라들어간 것은 아니었고, 우연이었다. 당시 신입단원을 모집한다는 곳이 연우무대뿐이었던 것이다.

"운이 좋았어요. 정말 좋은 선배들에게서 가르침을 받았죠. 선배들은 정형화된 연기를 가장 싫어해서, 혹시라도 번역투의 연기를 한다든가,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이면 '왜 그렇게 하니?'라는 따끔한 지적이 바로 날아오곤 했어요.(웃음)"

선배들 덕분에 염혜란 역시도 진실된 연기에 대해 배웠다. 염혜란은 늘 캐릭터를 연구하며 '납득할 수 있는가' 여부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연기하는 당사자가 공감, 납득하지 못한다면 거짓된 연기가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관련해, 신입단원 때 만난 배우 유연수의 조언은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는 자산이기도 하다.

"'진실된 연기를 하느냐'가 중요하단 말씀을 해 주셨죠. 캐릭터를 만들고 꾸며내는 것이 아닌, 나 자체로서 접근하고 진실된 연기를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셨어요. 신입 땐 당연한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연기를 하면 할수록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아요. 연기스킬은 시간이 갈수록 발전하고 몸에 익지만, 진실된 연기를 하느냐는 갈수록 퇴색돼요."

이렇게 선배들에게 배운 내용들은 자연스럽게 후배들에 대한 가르침으로도 이어진다. 최근 영화 '아가씨'에 출연하며 주목받는 신인이 된 김태리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존경하는 선배로 염혜란을 꼽기도 했다. 염혜란은 김태리의 얘기가 나오자 "특별히 가르쳐준 것은 없다. 가르쳐줄 만한 사람도 아니다"며 쑥스러워했다.

"태리 배우는 어떤 티를 내지 않고 마음을 표현하는 친구인 것 같아요. 늘 말없이 공연을 보러 오고, 축하하러 와요. 공연을 보러 와선 어느새 스스로 대기실을 치우고 있더라고요.
태리 배우도 저처럼 학과 연극동아리 출신이에요. 어떻게 연기를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고 해서 저희 극단을 소개해 줬어요. 조명, 음향 스태프로 일하면서 연기 훈련을 함께 했죠. 대범하고 본능적인 연기를 해서, 깜짝깜짝 놀랐어요. 제가 감히 말하자면, 앞으로 무서운 배우가 될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아가씨'의 캐릭터는 태리 본연의 모습과 잘 맞아서 더 예뻐 보였던 것 같아요. 순수하면서도 강인하고, 여성스러우면서도 씩씩하고요."

▲ '디어 마이 프렌즈' 염혜란

◆ 전라도 사투리 연기가 특기, 소외된 캐릭터에 마음이 가요 

'디마프'에서는 전혀 보여주지 않은 모습이지만, 염혜란의 특기 중 하나는 사투리 연기다. 염혜란은 전남 여수 출신으로, 맛깔나는 전라도 사투리 연기를 선보인다. 연극 '해무' 무대에 오르면서는, 극본을 사투리로 옮겨쓰는 작업에도 참여했다.

영화 '해무'는 동명 연극을 원작으로 한다. 이 인연으로, 영화 '해무' 주연배우이자 연우무대 선배인 김윤석을 도와주기도 했다.

"김윤석 선배가 극본을 보시다가, 전화를 하셔서 어떤 억양으로 하면 될지 물어보시곤 했어요. 사투리 부분을 녹음해 달라고 하셨는데, 그 녹음파일을 들으면서 연습을 하셨대요. 굉장히 열의가 대단하셨던 기억이 나요."

앞으로 염혜란은 연극뿐 아니라 더 많은 드라마, 영화를 통해 대중을 만날 예정이다. 다음에는 어떤 작품의 어떤 캐릭터로 그를 만나게 될까.

지금까지 맡았던 수많은 캐릭터 중, 가장 마음이 가는 역할을 물으니 곰곰이 생각한 후 답이 나왔다. 염혜란은 "덜 가지고 가난한 사람에게 마음이 간다"고 했다. 어딘가 더욱 정이 가고 마음에 남는 역할로 그를 만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눈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란 연극 작품이 있어요. 장애를 가진 엄마가 아들을 사랑하는 내용인데 그 작품과 캐릭터가 인상 깊게 남아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캐릭터들을 살펴보면, 남들 눈엔 바보같은데 그 사람만의 방식으로 용기있는 결단을 내리는 사람들이에요. 이들을 보면 너무 가슴이 아프면서도, 꼭 지지하고 싶어요."

▲ '디어 마이 프렌즈' 염혜란

[취재후기] '앞으로의 활동계획'을 물으니 "자연스럽게 됐으면 좋겠어요"란 답이 돌아왔다.

"욕심을 버리고 천천히 갔더니 자연스럽게 좋은 작품들을 만났어요. 작은 역할이지만 배운 것도 많았고요. 차분히 대중과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천천히 조바심내지 않고 가겠다는 염혜란이다. 하지만 그리 머지않아 더 많은 대중에게 사랑받을 배우가 되지 않을까,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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