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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시몬스와 오재원, WBC '고척 참사'가 한국야구에 던진 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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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시몬스와 오재원, WBC '고척 참사'가 한국야구에 던진 물음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7.03.10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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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민기홍 기자] 한국야구가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또 조기 탈락했다. 2013년에는 1라운드에서 2승 1패라도 했는데 2017년에는 1승 2패다. 그것도 장소가 홈인 고척 스카이돔이라 더욱 뼈아프다.

잃은 게 너무나 많다. 국가대항전만 나서면 기적을 일궜던 김인식 감독의 끝이 초라해졌다. 야구팬들은 “FA(자유계약)로 100억씩 받으니 배가 불렀다”는 비난을 퍼붓는다. 김태균의 거수경례, 김재호의 미소, 이대호의 무성의한 주루 등을 성토하며 “KBO리그 응원을 보이콧하자”는 강경한 움직임을 보이는 이들도 있다. 

‘고척 참사’를 돌이킬 수는 없으니 이번 WBC를 통해 얻은 것이 무엇인지 살피려 한다.

일단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랭킹 3위가 ‘허울’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메이저리그(MLB)에 진출한 정상급 선수들을 제외한 KBO리그 A급의 국제 경쟁력에 대해 깊게 생각해볼 기회가 비로소 왔다.

한국이 2차전에서 만난 네덜란드의 유격수, 안드렐튼 시몬스(LA 에인절스)는 같은 이름의 침대브랜드 광고 카피가 내세우는 ‘편안함’을 줬다. 3루수-유격수 간으로 빠지는 타구를 백핸드로 잡아 스텝도 밟지 않은 채 2루로 가볍게 던질 때, 고척 스카이돔 스탠드에서는 탄성이 터졌다.

쥬릭슨 프로파(텍사스 레인저스)가 우규민(삼성 라이온즈)의 밋밋한 변화구를 퍼올려 우측 담장을 크게 넘겼을 때, 임팩트 순간의 그 파워는 KBO리그 토종 타자들에게선 절대로 찾아볼 수 없는 것이라 입이 벌어졌다.

김인식 감독은 투수 원종현(NC 다이노스) 장시환(kt 위즈) 이대은(경찰야구단), 야수 김하성(넥센 히어로즈) 등을 거론하며 “이제 젊은 선수들이 성장해야 한다”며 “이번 WBC가 (한국야구가) 바뀌는 과정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1982년생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김태균(한화 이글스) 오승환(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을 10년 넘게 쓰고도 성적을 내지 못했으니 한국야구의 세대교체는 가속도가 붙게 됐다. 이번 조기 탈락으로 정근우 이용규(이상 한화), 강민호(롯데), 김광현(SK) 등 2008 베이징 올림픽 황금세대를 이을 자원의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2018 아시안게임, 2020 도쿄 올림픽, 2021 WBC는 김하성, 구자욱 심창민 박해민(이상 삼성 라이온즈), 박건우 허경민(두산 베어스), 김재윤(kt), 임정우(LG 트윈스) 등 1990년대 생들이 성장해 주축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WBC 2라운드 진출 실패는 곧 새로운 피들의 책임감이 막중해졌다는 걸 의미한다.

태극마크에 대한 중요성이 새삼 강조되고 있다는 점도 어떤 면에서는 고무적이다. 2009 WBC를 앞두고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박찬호가 흘렸던 눈물, 2008 베이징 올림픽 4강 일본전에서 결승 홈런을 때리고 “그동안 너무 못했다”고 이승엽이 흘렸던 그 눈물을 되돌아보게 되는 순간이다.

한국은 마지막 대만전에서만큼은 팬들이 납득할 만한 플레이를 펼쳤다. 손아섭(롯데)과 오재원(두산)이 11회초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찬스를 합작하자 환호가 터져나왔다. 3회초 김하성이 내야안타를 만들기 위해 전력질주, 1루에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으로 도달했을 때도 분위기가 고조됐다.

제대로 깨졌으니 와신상담하면 된다. 김인식 감독과 2008 황금세대를 이제는 놓아주고 새로운 선수들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대선배들처럼 국가대표로서의 자부심을 가져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매번 이길 수 없다. 언젠가 한번은 닥칠 사고였다. ‘고척 대참사’는 한국야구의 기회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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