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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가을단풍 맞이...길상화와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되새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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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가을단풍 맞이...길상화와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되새기며
  • 이두영 기자
  • 승인 2020.10.12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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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이두영 기자] 서울 성북구 성북동에 위치한 길상사에 가을이 왔다. 약 2주 전까지는 꽃무릇이 붉게 피어 주말마다 방문객들로 북적였다.

지금은 노거수 가지에 단풍이 시작돼 깊어가는 가을을 실감하게 한다. 이 아름다운 풍경이 있게 한 사람들의 흔적과 정신을 더듬으며 산책을 시작해 본다.

넓게 보면 절 위치는 북한산 자락이다. 법당인 극락전을 비롯한 설법전(수련원),선열당(후원),지장전,진영각,길상선원 등 건물들이 교목 숲에 안주하고 있는 모양새다. 줄기 굵은 활엽수와 개울가, 담장 밑 등에 갖가지 들꽃까지 피어 잘 가꿔진 자연 정원 같다.

길상사.
길상사.

 

길상사는 평생 무소유를 설파한 법정스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지금의 길상사 자리에서 대원각이라는 큰 음식점을 운영하던 고 김영한 씨가 10여년의 간청 끝에 1995년 여름, 음식점 땅을 법정스님에게 시주하는 데 성공했다.

대한불교 조계종 송광사의 말사로 창건됐으며 절 이름은 대법사였다. 1997년에는 공덕주 김 씨의 뜻과 법정스님이 강조한 정신을 살려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로 변경됐다. 법정스님이 지어 준 김 씨의 법명은 길상화였다.

법정스님은 2010년 3월 11일 길상사에서 입적했다. 그러나 그가 발족한 시민모임 ‘맑고향기롭게’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자연생태를 가꾸는 문화모임으로 활동을 왕성하게 이어가고 있다.

새소리, 개울물 소리, 방문객 정담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길상사. 그곳에는 술 냄새, 고기 냄새 대신 나무와 풀의 향기가 흐른다. 속세를 벗어난 자들의 여유로운 마음과 부처의 자비가 흐른다.

법정스님 유물이 전시된 진영각.
법정스님 유물이 전시된 진영각.

 

지난 80년대까지 정치인과 기업인, 광화문 일원의 신문사 기자 등이 드나들던 개울가 방갈로 방들은 스님들이 잠을 자는 처소로 바뀌었다.

불교에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정해져 있지 않고 늘 바뀌는 것을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고 한다.

매일 술과 음식을 퍼 나르던 대원각의 개울가는 침묵과 청량감이 가득한 수행공간으로 바뀌었다. 여자 종업원들이 손님 시중을 위해 옷을 갈아입던 공간은 북소리가 은은하게 울리는 범종각으로 바뀌었다. 제행무상이다. 종각 처마 끝에는 지금 단풍색이 화려하다.

고 김영한 씨는 일제강점기인 1916년에 태어났다. 10대 시절에 요식업에 종사하는 기생으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지만 중앙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수필을 쓰는 문학 활동도 있다. 시인 백석과의 염문설도 화제가 됐다. 

김 씨는 맑은 물이 흐르는 성북동 배밭골을 매입해 식당을 열었다. 후에 대원각으로 바뀐 이 식당은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삼청각,오진암과 더불어 서울의 3대 요정으로 불릴 정도로 커졌다.

부지가 약 7,000평으로 넓은데다가 권력자들이나 기업인들이 은밀하게 접대받기 좋은 지리적 환경을 갖췄기 때문.

대원각이 길상사로 변해 첫 법회가 열리던 날, 김 씨는 자신은 죄 많은 여자이며 불교를 잘 모르지만 여인들이 옷을 갈아입던 팔각정에서 맑고 장엄한 범종소리가 울려 퍼지게 해달라고 소원을 밝혔다.

개울 위쪽에는 법정스님의 초상화와 의복,저서 등 각종 자료를 전시한 진영각이 있다.

마당으로 올라서면 풍성하게 가지를 두른 숲이 알은 체를 한다. 누린내풀,피나물꽃,투구꽃 등 가을꽃들은 담장 그늘에서 화사하게 피어 자칫 쓸쓸할 법한 분위기를 상쇄시킨다.

오른쪽 담장의 ‘법정스님 유골 모신 곳’은 모든 이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곳. 소박한 팻말 하나가 꽂혀 있지만 스님이 수많은 강연과 저서에서 강조했던 무소유 정신은 보는 이의 뇌리를 죽비처럼 때린다.

1932년 전남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 국민관광지 근처 마을에서 태어난 법정스님은 통영 미래사에서 출가한 뒤 하동 지리산 쌍계사, 합천 가야산 해인사, 순천 조계산 송광사 등에서 수행했다. 말년에는 강원도 외딴 암자와 송광사 불일암에서 무소유의 삶을 실천했다.

입적을 앞두고는 다비식을 극도로 소박하게 하고 베스트셀러 ‘무소유’를 포함한 모든 그의 저술을 더 이상 출판하지 말도록 당부했다.

이에 따라 그가 쓴 책은 서점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후 10년 세월이 흐른 최근 맑고향기롭게 측은 법정스님 저서들의 전자책(오디오북) 제작을 진행하고 있다.

길상사는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으며, 입장료나 주차요금을 받지 않는다. TV 드라마에서 강북 부잣집의 대명사로 상징되는 ‘성북동집’들이 들어서 있는 동네라서 조용한 편이다.

길상사 단풍은 다음 주쯤 황홀하게 물들 것으로 예상된다. 1,000억 원이 넘는 재산을 선뜻 기부한 공덕주와 이기심과 욕심을 버리고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라던 스님의 큰 가르침은 화려한 단풍 못지않은 기쁨을 선사한다.

근방에 한국가구박물관, 우리옛돌박물관 등 가볼만한 곳들이 있다. 절 바로 옆에는 식음료가게가 거의 없지만, 한성대입구역(삼선교)과의 사이 도로 주변에 퓨전음식점과 김밥집 등 식당, 카페,베이커리 등 먹고 마실 곳이 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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