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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현장] "휠체어는 큰 신발일뿐", 배려와 신뢰로 열정 맞춘 '쉘 위 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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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현장] "휠체어는 큰 신발일뿐", 배려와 신뢰로 열정 맞춘 '쉘 위 댄스'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10.22 1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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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아시안게임] 댄스스포츠 콤비 종목, 눈높이는 다르지만 장애인-비장애인 행복한 평등 댄스

[300자 Tip!] 대부분 스포츠 종목은 남녀가 따로 경쟁을 한다. 여자선수가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남자선수들과 한 팀을 이루는 경우는 드물고 남자선수가 기량이 떨어진다고 해서 여자팀에서 뛸 수 없다. 남녀가 팀동료로 만나는 것은 혼성경기 외엔 없다. 남녀가 함께 팀동료로 만나는 것도 흔치 않은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팀동료로 만나 호흡을 맞추는 종목이 있다. 장애인 스포츠 종목인 휠체어댄스스포츠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선수가 동료로 만나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구슬땀을 흘리며 열정의 맞춤 댄스를 펼친다. 비장애인이 장애인 선수의 보조자 역할을 수행하는 종목이 있긴 하지만 팀동료로 만나는 것은 휠체어댄스스포츠가 유일하다.

▲ 이재우(오른쪽)-장혜정이 21일 인천 강화고인돌체육관에서 열린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콤비 라틴 클래스1에서 경기 전 음악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강화=스포츠Q 글 박상현·사진 노민규 기자] 사교댄스, 댄스스포츠라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각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남녀가 유별하다는 시각이 여전한 한국 사회에서 남녀가 서로 안고 춤을 춘다는 것은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색안경을 끼고 보기에 충분했다. 남녀가 함께 춤을 추는 것은 불경스러운 일로 여겨졌다.

하지만 한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직접 댄스스포츠에 도전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댄스스포츠라는 종목이 한낱 몸짓이 아니라 예술을 추구하면서도 자신의 파트너와 함께 완벽한 호흡을 맞추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지를 알 수 있게 했다.

이미 댄스스포츠는 적지 않은 나라에서 스포츠로 인정받고 있다. 올림픽은 물론 패럴림픽에도 정식으로 채택된 종목은 아니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인정을 받은 세계댄스스포츠연맹까지 구성되어 있다.

댄스스포츠는 아시안게임에서도 한 차례 정식종목으로 진행된 적이 있다.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시범종목이었던 댄스스포츠는 2010년 광저우 대회에서 한 차례 정식종목으로 치러졌다. 중국이 10개 종목을 모두 석권하는 상황에서 한국도 은메달 7개와 동메달 3개로 선전했다.

▲ 이영호(왼쪽)-이은지가 21일 인천 강화고인돌체육관에서 열린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콤비 라틴 클래스2에서 환상 연기를 펼치고 있다.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는 한국이 압도적이다.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을 통해 처음으로 휠체어댄스스포츠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가운데 금메달 6개 가운데 5개를 한국이 가져왔다.

그런데 휠체어댄스스포츠를 단순한 한 종목만으로 치부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동등하게 스포츠를 즐겨야 한다는 절대 명제와 이상 속에서 휠체어댄스스포츠야말로 가장 이상에 가까운 종목이기 때문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신체적인 차이가 있어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완전히 뒤집는 스포츠가 바로 휠체어댄스스포츠다.

◆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팀동료로 만나는 유일한 스포츠

"비장애인이 팀동료가 아니라 보조자 역할이었다면 결코 휠체어댄스스포츠를 선택하지 않았을 겁니다."

콤비 스탠다드 클래스1 종목에서 이재우(19)와 함께 호흡을 맞춰 금메달을 따낸 장혜정(38)의 한마디다. 2011년부터 이재우와 함께 호흡을 맞춰온 장혜정은 지난해 독일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 세계대회 2외, 러시아 IPC 세계대회 4위, 세계선수권 5위 등 세계 대회에서 실력을 인정받아왔다. 아시아권에서는 단연 톱이었다.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직전 열린 지난달 러시아 IPC 세계대회에서도 은메달을 따내고 돌아온 이재우-장혜정 커플은 콤비 스탠다드 클래스1에서 왈츠, 탱고, 비엔나 왈츠, 슬로폭스, 퀵스텝 등 5개 세부종목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며 금메달을 따냈다.

▲ 이재우(왼쪽)-장혜정이 21일 인천 강화고인돌체육관에서 열린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콤비 라틴 클래스1에서 음악이 끝난 뒤 피날레 동작을 하고 있다.

장혜정이 출전하는 클래스1 종목은 가장 장애정도가 심한 선수들이 출전한다. 클래스2 종목은 다리가 움직이는 장애인도 출전이 가능하지만 클래스1 종목은 배꼽 아래 하지가 완전히 마비된 장애인 선수가 나선다. 그렇기 때문에 그만큼 중심 잡기가 힘들다. 댄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몸의 중심과 균형을 잡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클래스1 종목은 함께 호흡을 맞추는 두 선수에게 힘겨운 것은 틀림없다.

그런만큼 장애인과 함께 호흡을 맞추는 비장애인 파트너의 역할이 중요하다. 댄스스포츠에서도 파트너 서로의 배려가 가장 중요하듯 휠체어댄스스포츠 역시 두 선수의 배려가 호흡의 절대 요소가 되는데 비장애인 파트너는 그날그날 몸 상태에 따라 컨디션이 달라지는 장애인에 대한 절대 배려가 필요하다.

비장애인 파트너가 장애인 파트너에 좀 더 세심한 배려를 해야 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일대일 팀동료다. 사이클이나 육상에서 비장애인 선수가 장애인과 함께 뛰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이들은 보조자에 불과하다. 함께 시상대에 올라갈 수 없다. 그러나 휠체어댄스스포츠에 출전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 선수는 함께 시상식에 오른다.

장혜정은 휠체어댄스스포츠를 하면서도 비장애인 선수와 팀동료로 만나 함께 호흡을 맞춘다는 것에 만족감을 느낀다.

장혜정은 "다른 종목은 보조를 받는 느낌이지만 휠체어댄스스포츠만큼은 일대일 팀동료로 만나기 때문에그 순간만큼은 장애라는 것을 잊게 만든다"며 "휠체어댄스스포츠를 할 때면 휠체어는 단순히 하나의 큰 신발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걷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휠체어라는 큰 신발을 신고 경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 이영호(오른쪽)-이은지가 21일 인천 강화고인돌체육관에서 열린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콤비 라틴 클래스1에서 금메달이 확정된 뒤 서로 안고 기쁨을 나누고 있다.

◆ 배려와 신뢰가 최고의 콤비로 만든다

하지만 '큰 신발'을 신은 만큼 서로에 대한 배려나 움직임도 세심하게 신경써야 한다. 처음에는 휠체어 바퀴에 밟히는 경우가 많았다. 또 경기할 때면 경쟁 선수의 휠체어와 부딪히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것은 훈련과 경험으로 극복한다.

이재우는 "파트너의 휠체어에 발을 밟힌 것이 한두번이 아니다. 게다가 방향이 어긋나면 부딪힐 수도 있다. 이런 것은 훈련하면서 서로 맞춰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완벽한 호흡을 위해 이재우와 장혜정은 서로를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휠체어댄스스포츠를 처음 배운 것도 이재우와 함께 호흡을 맞추면서였기 때문에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지만 장혜정이 계속 파트너를 선생님이라고 호칭하는 것은 역시 서로에 대한 배려 때문이다.

장혜정은 1남 1녀를 두고 있는 주부이지만 이재우는 용인대에 올해 입학한 대학 1학년생이다. 이재우가 장혜정과 처음 만나 호흡을 맞췄을 때가 고작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이모와 조카뻘이라고 낮춰 부르기 시작하면 호흡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 장혜정의 지론이다.

▲ 이재우(오른쪽)-장혜정이 21일 인천 강화고인돌체육관에서 열린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콤비 라틴 클래스1에서 호흡을 맞추며 아름다운 연기를 하고 있다.

또 장혜정이 이재우를 선생님으로 부르는 것은 파트너로 호흡을 맞추면서 어린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럽고 배울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장혜정은 "너무 편해지면 안되기 때문에 서로 격식을 차리면서 유지하는 편이 훨씬 호흡이 도움이 된다. 특히 이번 국가대표 훈련을 하면서 더욱 친해지게 됐다"며 "4년 동안 파트너로 호흡을 맞추면서 어린 나이지만 존경하게 됐다. 대회를 뛰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정말 댄스스포츠를 즐긴다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밝혔다.

2인 이상 단체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동료에 대한 배려와 신뢰다. 특히 파트너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댄스스포츠르 하기 어렵다. 멋진 모습을 위해 화려한 고난이 동작을 해야 하는데 파트너를 믿지 못한다면 절대 할 수가 없다.

장혜정은 4년 동안 이재우와 함께 파트너로 뛰면서 신뢰를 쌓은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다.

장혜정은 "제주도에서 열린 휠체어댄스스포츠 대회에서 휠체어가 뒤집히는 사고가 있었다. 일반 휠체어로 경기하다가 당시에 경기용 휠체어로 처음 치른 경기였는데 적응이 안되는 바람에 넘어졌다"며 "둘이 함께 넘어지면서 너무나 당황했다. 하지만 먼저 나부터 챙기는 모습에 따뜻한 배려심을 발견할 수 있었고 이 때부터 파트너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것만 보더라도 배려와 신뢰라는 절대 덕목이 얼마나 휠체어댄스스포츠에서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료로 뭉쳐지지 않고서는 절대 배려와 신뢰가 생길 수 없다. 비장애인 선수가 장애인 선수를 도와 경기를 치른다, 또는 장애인 선수가 비장애인 선수의 도움을 받는다는 생각으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배려와 신뢰다.

▲ 박영철(왼쪽)-김유나가 21일 인천 강화고인돌체육관에서 열린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콤비 라틴 클래스1에서 아름다운 춤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 휠체어댄스스포츠에서 발견하는 '진정한 평등'

휠체어댄스스포츠는 콤비와 듀오로 나뉘는데 콤비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 선수와 비장애인 선수가 함께 호흡을 맞추는 경기다. 듀오는 두 선수 모두 휠체어를 탄 선수가 파트너로 경기를 치른다.

콤비와 듀오 종목에서 3관왕을 차지한 최문정(38)도 휠체어댄스스포츠의 최대 덕목은 역시 배려와 신뢰라고 말한다.

최문정은 "함께 호흡을 맞추는 선수가 다르기 때문에 아무래도 콤비와 듀오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라는 차이를 두게 되면 호흡 맞추는 것이 힘들어진다. 그저 팀 동료로 만나 배려하고 신뢰한다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해야 한다"고 밝혔다.

콤비 라틴 클래식2에서 장애인 선수 이영호(35)와 함께 호흡을 맞춰 금메달을 따낸 이은지(25)도 "비장애인 선수와 함께 댄스스포츠와 동선이 약간 다르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전혀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각자의 개성만큼이나 다른 능력에 따라 평등해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이 100이라는 대우를 받는 것이 아니라 능력이 1인 사람에게 100의 대우를 해주면 2인 사람에게 200의 대우를 해주는 것이 평등이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을 평가하면서 장애인이라고 해서 미리 능력이 낮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래서는 진정한 평등이 이뤄지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배려하고 신뢰하는 휠체어댄스스포츠야말로 진정한 평등을 구현하는 종목이라 할 수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만들어가는 환상의 호흡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취재후기] 장애인 스포츠와 장애인 아시안게임을 취재하면서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은 장애인들에 대한 차별이 아직까지 심하다는 것이다. 장애인 선수들을 만나보면 훈련할 곳을 찾지 못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현실을 깨닫게 된다. 또 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지원도 적고 이 때문에 소속팀이 없어 투잡을 하는 선수들도 너무나 많다.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은 장애인 스포츠에 대한 재고가 필요할 때다. 그것이 한국 스포츠가 선진 스포츠로 가는 길이다.

 

▲ 강성범(오른쪽)-현선미가 21일 인천 강화고인돌체육관에서 열린 인천 장애인아시안게임 콤비 라틴 클래스2에서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며 멋진 동작을 하고 있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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